쓸쓸함 27

현대적 쓸쓸함,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와 홀로

토요일 아침,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쓰레기를 버리고 ... 아, 겨울인가, 그러기엔 춥지 않아, 이 불길함이란.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마을에 백 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 한 명이 살해당한다. 사람들은 서로 웅성웅성거리며 누가 범인인지 추측해 대다가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 오해를 사고 있던 한 명을 지목하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하였음에도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그리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변호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심하게 때리곤 마을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사람 한 명이 또 살해당하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살인하지 않았음을 막연하게 추측하곤 외부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죄가 없는가? 내가 이런 마을에서 살고 있다면,..

혼술, 또는 쓸쓸한 두려움의 시각

혼술의 빈도가 늘어나는 나이.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어 가는 계절. 술에 취하는 것이 무서워지는 시간들. 기도를 올리기 위해 두 손을 모으지만 계속 방향이 어긋나는 몸으로 변해가는 시절. 인생의 오르막이 아직도 한참 남아 있음을 아직 어린 아들을 보며 깨닫을 무렵, 역시 위스키는 부드럽게 취하긴 적당하지 않아. 특히 탈리스크는 피트가 좀 거칠고 날카로워. 난 좀 더 묵직하고 부드러운 피트가 필요해. 그래야 취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혼자 주절거리던 시간. 그런 시간들이 흘러 어둠 속으로 묻히는 여름밤. 밖에 닫힌 창 너머로 비 소리가 들리고 ... 내가 취한 걸 아무도 모르는 어떤 깜깜한 밤.

봄의 정원, 시바사키 도모카

봄의 정원 시바사키 도모카(지음), 권영주(옮김), 은행나무 베란다와 창문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형태가 똑같은 창으로 햇빛이 비쳐 들었다. 2층 집은 벽에, 1층 집은 바닥에도, 볕이 드는 곳과 그늘의 경계가 보였다.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를 내는 것도 없었다. 해시계처럼 양달과 응달의 경계가 이동할 뿐이다. 도서관에서 그냥 집어들고 읽었다. '아쿠타카와 수상작'이라고 하나, 그냥 작은 소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대 일본을 알 수 있을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할까. 관음증적이면서도 쓸쓸한 봄날의 풍경화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도 독자도 심지어 소설 속 인물들 마저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고나 할까. 결코 속마음을 들킬 필요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그 때 그 모습만을 묘사할 ..

일요일 출근

출근을 했다. 평일에는 전화, 회의, 출장 등으로 정신이 없으니, 주말에야 여유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그렇다고 엄청 여유로운 것도 아니어서 쫓기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 없구나. 다들 이런 걸까. 아니면 나만 이런 걸까. 적당히 쓸쓸하다. 기분 좋은 쓸쓸함이랄까. 그냥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런, 그리운, 하지만 슬픈 감정이랄까.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엘 들려 시집 구경이나 해야 겠다. 그것으로 사소한 위안으로 삼아야지.

카프카의 드로잉. 그리고

카프카의 드로잉을 한참 찾았다. 뒤늦게 발견한 카프카의 그림. 하지만 제대로 나온 곳은 없었다. 잊고 지내던 이름, 카프카. 마음이 어수선한 봄날, 술 마실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에 살짝 절망하고 있다. 한 때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나를 사랑하던 존재들이, 내가 그토록 원하는 어떤 물음표들이 나를 스치듯, 혹은 멀리 비켜 제 갈 길을 가는, 스산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탁, 탁, 지나쳤다, 지나친다, 지나칠 것이다. 내가 보내는 오늘을, 십년 전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똑같이 내 십 년 후의 오늘을 지금 나는 상상할 수 있을까. 뜬금없는, 나를 향한 물음표가 뭉게뭉게, 저 뿌연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새벽,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건 변하지 않았구..

스테이지 나인

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새로 생긴 동네 더치 커피 전문점, 스테이지 나인. 그리고 잠깐 동안의 커피 여행. 짧고 굵은 목넘김, 낮고 은은한 향기, 초봄 햇살이 빌딩 사이로 사라지고 그 틈새를 물들이는 어둠. 출렁이는 어두움이 입술에 닿을 때, 살짝 미소를 짓는다. 아, 나는 역시 예가체프구나. 우아하고 깊은 시원함. 시큼함. 쓸쓸함. 허전함. 지난 청춘 깊이 숨겨져 있던, 늙어가는 피부 아래 잠겨있던, 그 기억이 무심한 거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함께 다가오는 공포여. 내 삶, 미래의 두려움이여. 쫓기듯 뭉게, 뭉게, 뭉게위로, 위로, 올라가는 내 삶의 진정성이여,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들뜬 모험이여,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의 불꽃을 앗아갔던 사랑이여.

눈 속의 출근길

뜻밖의 많은 눈 속의 내키지 않은 출근길. 작고 낡은 검정 타이어를 끼운 초록 빛깔 마을버스가, 빠르게 떨어져 쌓이는 눈송이들을 아주 느리고 무겁게 밟으며 힘겹게 경사진 도로를 올라왔다. 누군가가 바쁜 출근길에 왜 이렇게 마을버스는 안 오는거야라고 말했지만, 정류소에 있던 다른 이들의 입술, 목, 눈꼬리, 머리, 다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못했다, 숨을 헉학대며 버스가 왔다. 계속 눈이 내렸다. 출근은 시작되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고 우리들 모두 내일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 모두 다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사랑하던, 했던 그녀도, 한때 믿는다고 착각했던 하나님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나를 찾는 걸까, 정..

카페, 프로젝트 사무실, 쓸쓸한 일요일

1.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