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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새로 생긴 동네 더치 커피 전문점, 스테이지 나인. 

그리고 잠깐 동안의 커피 여행. 

짧고 굵은 목넘김, 낮고 은은한 향기, 

초봄 햇살이 빌딩 사이로 사라지고 그 틈새를 물들이는 어둠.  

출렁이는 어두움이 입술에 닿을 때, 살짝 미소를 짓는다. 

아, 나는 역시 예가체프구나. 

우아하고 깊은 시원함. 시큼함. 쓸쓸함. 허전함. 

지난 청춘 깊이 숨겨져 있던, 늙어가는 피부 아래 잠겨있던, 그 기억이 

무심한 거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함께 다가오는 공포여. 내 삶, 미래의 두려움이여. 

쫓기듯 뭉게, 뭉게, 뭉게

위로, 위로, 올라가는 내 삶의 진정성이여,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들뜬 모험이여,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의 불꽃을 앗아갔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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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휴일.퇴근길.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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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가여운 아침의 풍경, 

모두들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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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많은 눈 속의 내키지 않은 출근길. 작고 낡은 검정 타이어를 끼운 초록 빛깔 마을버스가, 빠르게 떨어져 쌓이는 눈송이들을 아주 느리고 무겁게 밟으며 힘겹게 경사진 도로를 올라왔다. 누군가가 바쁜 출근길에 왜 이렇게 마을버스는 안 오는거야라고 말했지만, 정류소에 있던 다른 이들의 입술, 목, 눈꼬리, 머리, 다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못했다, 숨을 헉학대며 버스가 왔다. 계속 눈이 내렸다. 출근은 시작되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고 우리들 모두 내일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 모두 다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사랑하던, 했던 그녀도, 한때 믿는다고 착각했던 하나님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나를 찾는 걸까, 정말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 사람들을 모르겠다, 모른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없었다. 그렇게 실패하며 나는, 우리는 늙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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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녀들도 사랑을 잃은 날 밤, 쉬지 않고 울 것이고 결국엔 사랑을 믿지 못한 채 늙어갈 것이다. (이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지 


몇 개의 카페를 보내고 난 다음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선 밖이 잘 보였다. 카페 밖엔 사람들이 없었고 까페 안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스타벅스 특유의 소란함이 커피 향 사이로 밀려나왔다.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나는 내 고요한 휴식을 취하러 왔단 말인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카페에서 혼자 시간 보내기를 잘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두 세 시간 동안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고 온다고 하지만, 나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하지만 미련스럽게도 자주 시도하지)


2.

카페의 소란스러움은 가라앉은 척 했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사물들의 소리와 뒤섞이며 공명했다. 소리들은 일정한 패턴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딪혔다. 내 귀를 귀찮게 했고 얼굴을 때렸으며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창 가 자리를 앉으려 했지만, 슬픈 5월의, 따가운 햇살은 커다랗고 투명한 창을 그대로 지나 내 몸을 데웠다. 결국 그늘진 안 쪽 자리로 옮겼다. 


둥근 테이블에 앉아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했다. 뭔가 근사한 문장을 적고 싶지만, 문장이 근사할 땐 오직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사랑을 얻어낼 때 뿐이다. 문장은 차분한 사랑의 확신 속에서 대기 속으로 흘러나와야 하고 그녀는 그 흘러나오는 문장의 모습을 보아야만 한다. 이 순간, 진짜 사랑은 시작된다,고 믿었지만, 그 때 내 나이 27살이었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3.

중년의 사내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두리번거릴 때, 그는 우연히 마주 치는 시선 속엔, 늘 말 못 할 비밀이 있거나 흐느적거리는 슬픔이나 터놓고 내뱉고 싶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확고해질 때면, 황급히 책 속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옆자리에 앉은 이에게 다가가지 않는 용기를 발휘했다. 다행한 일이다. 


4. 

우리는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타인이라고 여기지만, 언젠가부터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그건 나도 그들에게 익명이고, 그들 또한 나에게 익명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익명을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자아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거대한 자아는 목적 없이 대도시의 대기 속을 새벽까지 떠돌다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꿈 속으로 사라지겠지. (아, 지금은 아닌가)    





5.

카페에서 혼자 오래 앉아 있는 법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어떤 휴식들이 필요해서지만, 휴식을 취하고 나오는진 모르겠다.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하기도 하고 가방에서 읽던 책을 꺼내 펼치기도 하지만, 1시간 이상 버틴 적은 없다.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집중해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결국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지만, ... 재미없는 풍경 속으로 내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다.


6. 

하지만 가끔 근사한 향기를 가진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가끔 삼성동에 갈 일이 있으면 에스프레사멘테 일리를 들리곤 한다. 길을 가다 무심코 들렸다는 듯 성의 없는 목소리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러면 정말 근사한 커피가 나온다. 





7. 

쓸쓸한 일요일이다. 블로그에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몸은 피곤하기만 하다. 나라는 엉망이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알고 있을 텐데, 저러는 걸까. 아니면 정녕 모르는 걸까.


최근 들어 자주 주말에 나가 일하게 된다. 단기 목표는 있으나,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진다. 마음은 아직도 스무살 때처럼 정처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는데, 술 마실 친구들도 드물고 술 마시는 것도 부담스러운 노화가 시작되었다. 거참. ... 어느새 일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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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egal,

Wendy with chin on hand, 1982




잊고 지내던 조지 시걸(George Segal)을 보고 울 뻔 했다, 아라리오뮤지엄, 낮고 어두운 실내 한 구석에 있던. 


이 작품은 아라리오 뮤지엄에 있던 작품이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던, 가장 비슷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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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사방에서(From the four direction), 1985 




다행이다. 이우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니.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고, 내가 조금 더 일찍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이우환의 작품을 살 수 있을련지도 모르리라. 기회가 닿으면 포스터 액자라도 구해야 겠다. 


가을, 살찌는 계절이지만, 나는 지쳐가기만 한다. 아마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직장인들도 그럴까? 하긴 이런 때가 있으면 저런 때도 있는 법. 


오후 외부 회의를 끝내고 들어온 사무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래 시를 읽는다. 




生의 쓸쓸한 오후를 



生의 쓸쓸한 오후를 걸어갈 적에
찬란하여라 
또 하루가 가는구나 

내 무덤에 풀이 
한 뼘쯤은 더 자랐겠구나 

- 최승자
(<포지션> 2013년 가을호 수록) 

(* 위 시는 http://blog.naver.com/lalalal22 에서 읽었습니다.) 




역시 최승자라고 중얼거린다. 이런 느낌, ... 하지만 이 느낌마저도 '소비의 사회' 속에서 희석되고 있었다. 어쩌지 못하는 쓸쓸함마저도 소비되는 시대. 끔찍하기만 하다. 그렇게 끔찍한 2013년의 가을. 



나는 내일 새벽, 내가 스무 해 넘게 살아온 도시로, 노트북과 서류와 책을 안고 내려간다. 아마 내려가서도 바쁘게 보낼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그래도 나이는 먹는다. 어쩌면 시간 가는 것이 우리 인생 최대의 축복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무덤을 향해가고 언젠가 내 무덤에도 풀이 자랄 것이다. 사방을 둘러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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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마음, 나쓰메 소세키(지음), 김성기(옮김), 이레 



1.
나쓰메 소세키, 무려 1세기 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시대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근대성(modernity)의 본질을 간파한 것이리라.  

이번 소설도, 내가 이전에 읽었던 소설과 비슷하게, 큰 사건이 없이 한 편의 풍경화처럼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소설의 전반부는 나와 선생님이 만나고 가깝게 되는 과정을, 소설의 후반부는 선생님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 부분은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나머지 한 부분은 독백에 가까운 편지로만 구성된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대화가 아닌 '글로 씌어진 편지'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리고 오래 전에 상처 입었던 마음이, 누군가에 그 마음의 속내를 드러내자마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취하게 되는 건, 과연 올바른 방식일까 하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윤리적 질문까지 던지게 되는 건, 그 극단적인 선택- 죽음, 자살- 을 비정상적이라고 하기엔 이미 우리의 마음은 너무 닫혀있고 상처입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절벽의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더군. 만족할 만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좀 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을 테지. 하지만 ... ... 자네, 알고 있나. 사랑은 죄악이야." 
- 42쪽 


2.
사랑하는 마음은 죄악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일방적이고 소통하지 않으며 오직 내 마음을 알아주길 상대방에게 호소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선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야만 하고, 그 죽음 위로 사랑을 수놓아진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그런데 결국 사랑을 해도 쓸쓸하고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해도 마음은 위로받지 못한다. 마음은 혼자이고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한 채 (똑같은) 죽음을 향해 간다. 마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근대의 개인주의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고, 그 근대의 끄트머리에 선 우리들에게 자살이란 너무 일상적이 된 셈이다. 


3. 
강상중 교수의 최근 두 권,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나쓰메 소세키의 충분한 해설서가 될 수 있으며, 나쓰메 소세키를 기초로 하여 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위로가 될 순 있을 것이다. 그는 <<마음>>에서 선생님의 편지를 두고 아래와 같이 평한다. 


그리고 '개인적 공명'이라는 말에서 저는 소세키를 떠올립니다.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대에 고독한 영혼끼리 공명하는 무언가는 <<마음>>에서 '선생님'과 '나' 사이에 오고간 것이 아닐까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친척'과도 인연을 끊었으며, 고등유민이기 때문에 '사회'와도 접점이 없고, 단 한 명인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가족'인 '아내'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게 되어 버린, 세계 어디와도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우주로 튕겨 나간 공 같은 궁극의 개인입니다. 
아울러 선생님은 이름조차 없습니다. 이름 없는 공空입니다. 그 선생님은 최종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외에 길이 없었습니다만, 그때 작품의 절반에 이르는 길고 긴 고백인 '나'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는 테일러가 말하는 개인적 공명을 찾는, 세대를 초월한 이야기의 시도가 아니었을까요. 
강상중, <<살아야 하는 이유>>,  146쪽 - 147쪽 
(* 개인적 공명: 찰스 테일러가 주장하는 바로, '흩어진 개인들이 새로운 차원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개인적 공명'이라고 해야 할 새로운 공통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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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육체의 나이에 익숙해지는 2013년.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쓸쓸해지는 나이. 사십대. 날씨 변화에 터무니없이 민감해지(또는, 아프)고, 어린 아들의 웃음에 눈물이 나고(고마워서) 아내의 잔소리가 듣고 싶어지는(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끝도 없이 물컹물컹해지는 마흔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지나간 젊음 위로 쌓여 얼어간다. 얼어붙은 불안은 깊고 날카로운 냉기를 시간 속으로 밀어넣고. 


잠시 내일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내 주위를 피한다. 미래는 무섭고 현재는 견디기 어렵다. 현대 문명은 어쩌면 과거 문명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불안들을 켜켜히 쌓아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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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비스듬하게 바람 따라 나풀나풀거렸다. 커피 향이 거리 위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대비되는 빛깔끼리 대화하는 법이 없는 도시에는 외로움만 흘렀다. 투덜되는 쓸쓸함 앞에서 커피는 사소한 위안이 되었을 뿐, 결국엔 둥근 테이블 위에 오래 머물지 않고 푸른 하늘 위로 떠나버렸다.

가을이 왔다. 그리고 가을이 갈 것이다. 해마다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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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딱딱하고 무거운 책을 끝까지 읽기도, 힘겹게 다 읽는다고 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 다른 이들은 혹시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아리송할 때가 많다. 이것이 독서 모임 빡센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첫 책으로 강유원의 책과 세계’(살림)를 선정했다. 책은 얇다. 두 번째 책으로 선정된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가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인데 비해, 첫 번째 책은 두 번째 책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얇고 가볍다고 하여 읽기 만만한 책은 절대 아니다. 도리어 무겁고 두 세 번에 걸쳐 완독해야 할 책에 가깝다.

모인 이들은 책을 즐겨 읽으나, 독서 모임에 경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나 또한 독서 모임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오고 간 이야기는 두서 없었다. 그리고 두서 없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긴 주제는 '쓸쓸함'이었다.


책의 시작부터 '쓸쓸한 세계'가 시작된다. 
 

 

쓸쓸한 세계: ‘길가메시 서사시

사람의 삶은 고되다. 고됨은 여가를 용납하지 않는다.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학문이 본래 여가라는 뜻을 가졌듯이, 여가가 없는 이들은 텍스트를 읽을 틈이 없다.
-
6



그리고 왜 쓸쓸해지는가에 대해 짧은 설명이 이어진다.  



참으로 덧없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고통스러운 세상, 쓸쓸한 인생. 유행가 가사 같은 정조는 이렇게 오랜 옛날부터 인류 곁에 있었다.

후대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렇게 말한다.

길가메시여, 그대가 찾는 것은 결코 찾을 수 없으리라. 신들이 인간을 창조할 때 죽음을 인간의 숙명으로 안겨주고 영생의 삶을 거두었기 때문이오. 그대가 살아있는 시간을 즐겁고 충만하게 보내오. 그대와 손을 잡는 어린아이를 사랑하오. 그대의 아내를 품에 즐겁게 해주오. 기껏해야 이런 것들만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이 때문이오.

인간은 이렇게 읊으면서도 끊임없이 신의 자리를 탐냈다. 만족되지 않는 욕구의 좌절. 사랑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수메르에는 사랑 노래가 드물다. 수천을 헤아리는 수메르 점토판 중에서 사랑을 다룬 시는 딱 두 편뿐이었다.

- 8쪽에서 9쪽까지



쓸쓸한 고대 세계에서 시작되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그 당시의 시대상을 언급하면서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먼 옛날의 서사시들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없이도 세계가 쓸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또다시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 허망하다. 쓰라린 것이다.

- 91



하지만 행복한 시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행복한 시대의 지식인은 처세와 개인의 안락을 위한 저작을 남긴다. 키케로의 우정론은 웅변, , 서한, 철학을 망라하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라틴어 문학의 백미로 간주되는 글이다. 행복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저작에는 삶의 긴장보다는 문체의 다채로움을 위한 노고가 깊게 배어 있고, 또 그것으로써 평가받는다.
- 48

 


그런데 행복한 시대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우호적이지는 않는 듯 읽힌다. 

 

로마적 세계가 실용적이라 함은 달리 말해서 합리성의 극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서 합리성을 가치가 포함된 것이나, 독일의 관념론자들이 말하는 사변적 합리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성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ratio’의 본래의 뜻, 계산으로 파악해야 한다. 로마는 이성적이었으므로 계산이 분명한 사회였다.

- 43



독서 모임 내내 현대 지식인의 쓸쓸한 세계 인식, 고대 세계와 현대, 로마 시대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 중간중간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아래는 두서 없었던 내 의견의 일부다.

1. 인류가 이성을 가지는 순간, 쓸쓸하다는 감정은 운명처럼 깃든다. 이성이란 내가 아닌 나 밖의 외부 세계를 인식을 한다는 것을 뜻하며, 나와 외부 타자를 경계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이 지성을 가지는 순간부터, 인간은 나 밖으로 펼쳐진 자연을 객관화시킬 수 있고 질서를 부여하게 되었으며, 나와 타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런데 이 지성(문명)의 시작은 '나'를 홀로 있게 한다. 쓸쓸한 자아는 이렇게 시작된다.

결국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데카르트적 자아의 붕괴)가 되며, 그것으로 인해 외부 세계마저도 붕괴되는 현대로 이르게 된다. 마치 길가메시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듯, 인간의 이성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이성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이성으로 전락하게 되는 포스트 모던에 이르게 되는...

2. 로마와 현대
역사적으로 현대와 가장 유사한 시대가 있었다면, 그것은 헬레니즘을 지나쳐가는 후기 로마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세계가 천천히 무너지고 사람들이 가상의 놀이문화에 빠져들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교육 제도가 붕괴되며 모든 일상 생활이 계약 관계로 성립되던 시기가 후기 로마였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깊이 없는(천박한) ratio에 기반해 있다. 현대도 이와 비슷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여러 학자들이 비판하는 도구적 이성의 본격적 시작도 이 로마 시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로마적 행복의 귀결이 중세적 세계라면 과연 그것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가?   

로마 시대에 대한 탁월한 해설서는 제롬 카르코피노의 저서다. 보기 드물게 탁월한 역사책이다.

고대 로마의 일상 생활,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우물이 있는 집)
http://intempus.tistory.com/889


2번째 독서 모임 '빡센'은 8월 첫번째 토요일 오후에 열린다. 혹시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책 '16세기 문화 혁명'을 읽고 참가하면 된다. 두서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야기할 거리를 가지고 와야할 것이다. (독서 모임에 대한 안내는 본 블로그 공지사항을 확인하거나 검색)



빡센의 첫 번째 책.

책과 세계 - 10점
강유원 지음/살림


빡센의 두 번째 책.

16세기 문화혁명 - 10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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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세알 2010.07.19 09:43 신고

    이렇게 정리된 걸 읽으니 또 새롭네요. 근데 '16세기 문화혁명'에 별다섯개네요. 저는 읽으면서 제가 손을 잘 못 든 것이 아닌가 슬~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근대에 대해 확실한 개념을 잡고 싶었고 지금도 그 주변 언저리에 있는 학자들, 현대 자본주의의 아버지인 학자들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 16세기라는 한정된 범위, 전환적 17세기 문앞을 확인해 두자는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너무 병렬적이라 학술서로서는 가치가 있겠으나 일반인들이 읽고 토론하기엔 좀 그렇지 않은가 싶기는해요. 그래도 항상 뚜껑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 토론의 재미이니까 기대해 봅니다. 책과 세계에서 제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듯이...

    • 저도 읽기 시작했는데, 다들 읽으면서 어려워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근대를 이해하는 시기로 16세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확실히 16세기는 과도기입니다. 12세기가 한 번의 과도기였다면(중세에서 근대로의 계단), 16세기는 중세와의 연결고리가 확실히 끊어지는 시기입니다(15세기가 아니라!). 그리고 17세기는 본격 근대의 시기입니다. 아마 8월 초 모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같습니다. ^^


 

잠자리에 일찍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늘 그렇듯이.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가라 앉고 까닭 없이 끝 간 데 모를 슬픔으로 가득 찰 때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거나 글을 읽거나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악기 하나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만, 지방 중소 도시에서 자란 터라 학원도 많지 않았고 여유도 되지 못했다. 그 흔한 기타 하나를 사놓긴 했지만, 몇 곡 연습하다 그만 두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기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버린 적이 없는데.)

 

우울할 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지난 연말부터 무너진 마음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쫓기듯 살아온 걸까. 아니면 게을러져서. 그것도 아니라면, 판도라의 상자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인터넷 서점에서 슈베르트와 고흐, 아르보 페르트와 나쓰메 소세키를 주문했다.

 

오늘은 일정이 빠듯하다. 오전에는 여의도 근처, 오후에는 삼성동 코엑스, 청담동, 압구정동을 거쳐야 한다.

 

당분간 말을 줄이고 침묵을 즐겨야겠다.

 

1505년에 그린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16세기 초반 베네치아. 막 세기말이 지났으므로 세기말의 어수선함이 아직도 남아있으나, 세기 초의 열광적인 기분은 느끼지 못하고 고작 불투명한 안도감 정도. 논리적으로는 신의 존재가 사라졌음을, 종교적 미덕과 가치가 세속화되는 세계 앞에서 무너지고 세속적 가치로 대체되던 시대. 마치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수작을 거는 남자에게, 아니면 이미 바람난 아내의 부도덕함에 격분하여 바람 피운 남자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자신의 도덕적 정당함은 증명하지 못한 채, 결국 죽어버리고 마는 생의 역설마냥, 벨리니의 피에타는 한없이 쓸쓸하고 슬프다. 과거는 이미 잊어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기.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고 믿었으나, 마음이 낸 상처로 인해 모든 인지를 상실한 시대. 쓸쓸함과 슬픔이 지나치면 혁명이 도래하는 걸까. 아니면 광포한 현실정치가 도래하는 걸까. 아니면 다락방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쓸쓸히 죽어가는 걸까(폰토로모는 그렇게 죽었다). 오늘 종일 조반니 벨리니의 이 작품이 떠오를 것 같다. 하지만 내 생이 이토록 쓸쓸하고 슬프지 않기를 바란다.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패널에 유채, 65*90, 1505, 이탈리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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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느 공장에서 나온 지 30년은 더 되었을 파이오니아 턴테이블은 잘만 돌아가는데,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나온 지 불과 10년 남짓 지난 티악 시디플레이어는 요즘 들어 자주 지친 기색을 드러내었다. 하긴 나도 요즘 너무 지쳐버렸다.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고 싶지만, 쓰러지지 않는 걸 보면 나이를 괜히 먹은 것 같지 않다
 

작은 회사에 들어와서, 기획에, 홍보마케팅에, PM, 경영 관리에, 인사에, 영업에, …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왔다. 그런데 요즘 문득 내 자리가 과연 어디인지 궁금해졌고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고객사를 2배로 늘렸지만, 온전히 내 성과로 보기 어렵다. 문서 작성이야 도가 텄지만, 과연 문서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가에 대해서도 이젠 회의적이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답시고 자유롭게 한 탓에, 내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내가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지쳐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결국은 나는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했지만, 스페셜해지는커녕, 아는 이의 말처럼 접시물 지식을 가진 제러널리스트가 되어있었다.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지만,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는 셈이다. 마치 사랑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 연애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조차 알지 못한다. 버림받기 두려워한 탓에 연애마저도 소극적이어서 도대체 남자라는 정체성에 의심이 갈 정도다.


결국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관점에서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 외의 관점에서는 나이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셈이다.

몇 달 전에 구입한 크세나키스 박스 세트. 이쁜 패키지 만큼 음악도 좋았으나, … 영문 자료를 찾아가며 그의 음악에 대해서 정리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젠 의욕마저도 없다. 그저 누군가 그의 음악을 낯설어 하지 않기를.

 


작년 선물로 받은 서양난에 꽃이 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음울한 음악이 흐르는 이 작은 사각의 방에도 기적 같은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내 일상에도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생기기나 할 것인가.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해볼까 생각 중인데, 현명한 결정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어떤 종류의 일을 할 만큼 에너지가 넘치거나 자신감에 차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시작할 때, 그저 현상유지만으로 올 한 해를 만족해야겠다고 했으나, 그것마저도 꽤 어려운 종류의 일이 되었다. 라이 쿠더의 파리 텍사스 LP는 돌아가면서 우울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렇게 밤은 가고, 내 마음도 가고, 모든 것이 가고 난 다음, … 내일부터 내가 사랑하는 나쓰메 소세키, 도널드 바셀미, 폴 오스터만 읽어야겠다. 예전같은 기분을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그리고, 쓰다만 소설도 몇 개 있었구나. 눈이 신나게 오던 몇 년 전부터. 내가 치명적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지 몇 년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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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were silent for a while.
"Beautiful day," she then said through a sigh


숨쉬기 조차 힘든,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더위와 땀, 거친 숨소리와 낯선 화장품 향과 향수 내음이 실내 에어콘 소리와 뒤범벅이 된 지하철 2호선 객차 안에서 서서, 소설을 읽다가 한참을 중얼거렸다.

내 기묘한 일상이 너무 어색한 요즘이다.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환상 소설의 한 토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낯선 언어의 쓸쓸한 반어는 내 시선에서 한참을 머문 후, 다음 페이지로 향했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어느 수요일의 정오는 슬프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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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바쁘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책 두 권 읽고 리포트를 하나 써야 하고, 모짜르트의 대관미사(KV 317)을 무려 10번은 듣고 가야 한다. 외워오라고 시키지 않은 것만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을 정도니.

내일까진 여름에 있는 아트페어를 위한 몇 개의 원고를 써야 하고, 회사에서 PM을 맡은 다른 프로젝트에 몇 개의 다른 업무가 추가될 듯 하다.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개인적 일엔 무관심해져 버렸다.

그러다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요즘 내 사는 모습이 딱히 좋아보이지 않아 보인다. 쓸데없는 자기 반성이랄까. 근처에 사는 친구라도 있으면 소주라도 한 잔 하면 딱 좋은 밤이다.

사무실 근처에서 사온, 브랜딩된 원두 커피 향이 좋다. 오디오에 모짜르트의 대관 미사 CD를 올려놓고 멀뚱멀뚱 천정을 바라본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서 가장 행복한 녀석들은 금붕어 2마리다. 어쨋든 저 녀석들은 내 옆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오늘 밤 금붕어 2마리가 부럽기만 하다.



모짜르트, 대관미사 - Agnus D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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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이 글을 보면 그리고 지금까지 올리신 글을 보면 지하련님이 뭐 하시는 분인지 정말 오리무중이네요. 미술 관련 일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음악 듣는 숙제가 있고, 프로젝트 관리도 하시고요... ^^

    너무 바쁘신가 봅니다. 그리고 옆에 누군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구요... 어쨋든 음악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너무 많은 일을 하지만, 제법 실속도 없다는.. 하핫. 이젠 실속도 좀 차리려고 했더니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ㅋ~. 일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 ㅋㅋ


(갤러리 아트링크의 정원)



일요일 낮에 안국동, 사간동 갤러리들을 돌아다녔다. 청바지에 가방을 매고, 가방 속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철부지 같은 공부의 열정을 증명하듯 몇 권의 책과 노트, 그리고 철 지난 니콘 D70  카메라가 있었다.

수요일 오전, 지난 일요일의 한가로움이 쓸쓸하게 그립다.

회사 건물 1층에 나가, 몇 주만에, 극소량의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을 먹었다. 그러면서 내 일상을 탓했다. 고상한 척 하지만, 고상하지 않고, 강한 척 하지만 절대로 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100%,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비극적이고 슬픈 곳으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아주 가끔 누군가가 내 마음 전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면, 혹은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역시 인생은 이율배반적인가. 우리는 언제나 이룰 수 없는 어떤 반대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하긴 꿈 꾸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사실을 종종 깨닫는 것만으로 아주 가끔, 아주 짧은 순간, 덧없는 허위처럼, 우리의 삶은 그나마 살아볼만한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한 잔의 생맥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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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오니, 어느새 자정이 지나있다. 지하철 안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크를 읽었다. 세계는 지금 미국식 경제 정책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로 고심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지금 어떻게 하면 (레이건 이후 부시까지 이어진) 미국식 경제 정책들을 잘 도입할 수 있을까 고심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긴 르몽드 디플로마크라고 하면, 소위 말하는 '좌빨' 저널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니(내가 읽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지만). 

지난 주 토요일에는 약 일곱 개 정도의 전시를 챙겨보았다. 약간 불편한 동선이었고 두 개의 약속이 있었던 터라,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몸이 피곤한 만큼 영혼은 꽤 풍요로웠다. (보았던 전시들의 리뷰를 적을 생각인데, 과연 언제 다 적을 수 있을련지~)

일요일에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약간의 청소를 하고 11시까지 한강변을 달렸다. 오래되고 낡은 운동화에, 내 거추장스럽게 늙은 육체가 다서 걸리적 거리긴 했지만, 내 견디기 힘든 쓸쓸함을 조금 잊게 해주었다.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토요일엔 갤러리들을 돌아다니고, 일요일엔 달리기, 또는 등산을 하면 어떨까 싶다. 올해 10Km를 1시간에 들어오는 것으로 목표를 잡아야겠다.)


오늘은 밤 늦게까지 일을 했고, 몸은 피곤하고 머리는 아프고 마음은 슬프다. 월요일에는 반드시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결국 운동을 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시인 김사인 선생이 오랜 수배 생활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학과에서 몇 시간짜리 특별 강연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가 읽어준 시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지난 주에 만났다. 그의 앞에는 이창동 감독이 앉아 있었다. 80년대 잘 나가던 소설가였는데, 지금은 영화감독이 되어 있었다. 김사인 선생의 시집 한 권과 이창동 감독의 소설책 한 권을 올 봄이 가기 전에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소설을 쓰지 않는 형의 소설집도 같이 읽어야겠다. 문학, 참 오래만에 들어보는 그리운 이름이었다.


映山紅(영산홍)


              서정주(徐廷柱)



영산홍 꽃잎에는
山(산)이 어리고.

山(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小室宅(소실댁).

小室宅(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山(산)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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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03 17:31

    비밀댓글입니다

    •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피해'라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클림트 전시는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전시이며, 상당한 수준의 보험료도 있기 때문에 좀 비싸게 책정한 보입니다.

  • 2009.02.04 19:42

    비밀댓글입니다



예기치 않게 슬럼프가 왔다. 일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 반 나절 정도 못한 일을 오늘 새벽 3시간 동안 끝낼 수 있었다.

지난 금요일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혼란스러웠으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우울해졌다. 예전같으면 편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흐트러졌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새벽에 잠을 자기도 했으나, 일어나는 시간은 오전 7시 전후였다. 술을 과하게 마신 날도 있었으나, 취하지 않았고 실수도 없었다. 약간, 혹은 매우 쓸쓸해졌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주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는 일이 있었다.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째 척 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 더블 LP를 듣고 있다. 대학시절, 시를 쓰던 친구 자취방에서 듣던 그 느낌 그대로 였다. 교육대학을 다녔으나, 교대가 가진 안이함(졸업하면 바로 교사가 될 있었기에)이 싫어 자퇴를 하고 시를 쓰기로 했던 친구였다. 시를 무척 잘 쓰던 친구였으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글을 잘 쓰던 친구들의 글은 어느 문학잡지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이들 중에는 종종, 자주 글쓰기를 그만두는 친구들도 많았다.

요즘 부쩍 외롭다는 생각이 자주 찾아온다. 하긴 너무 오래 혼자 자취를 했다.

마음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자주 주기도문을 묵독한다. 신앙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신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인간이 신을 만들고, 신을 믿게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을 최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에게서 구체적인 형태나 형식을 원한다. 보이지 않는 신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위해 사람들은 맹신도가 된다. 사랑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집착을 만들듯이.

이제 12월이다. 신의 축복이 늘 옆에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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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가을의 향기를 못내 아쉬워하는 듯, 비가 내렸다. 올해의 연애도 실패였고 올해의 사업도 성공이라기 보다는 실패의 빛깔에 가까웠다. 독서의 계절은 오지 않았고 작품 감상은 우아해지지 못한 채, 돈에 걸려 넘어지며, 내 감식안을 시험했다.

종일 반쯤 잠에 취해, 술에 취해, 쓸쓸함에 취해 피곤했다. 겨우 밤 늦게 정신을 차리고 설겆이와 청소를 했으나, 나를 행복하게 해줄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스턴트커피에 오래된 우유를 잔뜩 넣고 죽는 시늉을 했다. 라디오를 틀었으나, 잔뜩 잡음이 끼인 채, 주파수 사이를 헤매며 겨우겨우 내 귀에 도달했다.

내일 약속은 한없이 뒤로 밀려가는 듯 하고 까닭없는 내 사랑도 한없이 뒤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얼마 전 만난 어떤 이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여주었으나, 나는 그를 도울 힘이 없었다. 불안함이 내 영혼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난 너무 쓸쓸했던 것이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쓸쓸함 앞에 맥없이 무너지며, 우리를 한없이 가난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화려한 거짓말로 이루어진 성곽이며, 성문일 뿐이다. 그 곳엔 이미 아무 것도 없고 정처없는 바람만 오갈 뿐이다.

하지만 이 밤, 라디오의 잡음은 견딜한 것이다. 행복한 어떤 사건이 생겼으면 좋겠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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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行人
나쓰메 소세키(지음), 유숙자(옮김), 문학과지성사



인생은 쓸쓸한 거다.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연인은 떠나가고, 마음 한 켠에 남은 상처는 새벽 네 시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마냥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이 현대식 사랑이다. 그러니 다치지 않기 위해 사랑은 한 켠으로 밀어 놓은 지 오래. 하얀 눈이 보기 드문 겨울이 가고 황사 가득한 봄이 오고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과 만나게 된다.


어떤 확신처럼, ‘인생은 쓸쓸한 거다’라고 읊조리지만, 그것을 확인할 때면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건 어쩌지 못한다. 



     방 안은 촛불로 인해 소용돌이치듯 동요했다. 나도 형수도 눈살을 찌푸리고 타오르는 불꽃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한 쓸쓸함이라 형용될 법한 심정을 맛보았다.
    (156쪽)



아무런 사건도 없지만, 아무런 사건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 소설은 당황스럽고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쓸쓸함으로 시작해 불안함으로 끝나는 이 소설 앞에서 독자가 쥐게 되는 것은 그저 ‘인생이 그렇지, 뭐’ 정도.


나쓰메 소세키는 여러 상황들과 공간들을 만들어놓고 그 속에 인물들을 가둔 채 그들의 외면을 훑는 것만으로 그들의 심리적 변화를 드러낸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장이 흐르지만, 그 긴장 끝에는 어떤 결말이나 긴장의 해소를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독자의 몫이란 건가. 하긴 그에게도 그것을 해결한 힘도, 지혜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인생이 쓸쓸한 걸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래, 인생은 쓸쓸한 거다. 그것을 받아들인 채 늙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생이 쓸쓸한 거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흐르는 눈물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행인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숙자 옮김/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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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이 색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 이들은 바로 인상주의자들이다. 시간 따라 변하는 색채의 현란함, 그 현란함이 가지는 찰라의 쓸쓸함, 그리고 쓸쓸함이 현대인들의 피부를 파고 들어 삶의 양식이 되었음을 깨닫게 해준 이들은 인상주의 이후의 모더니스트들이다.

그리고 그 쓸쓸함은 본래적인 것이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견고한 피부를 만들고자 한 이들이 초기의 모더니스트들이라면, 그 쓸쓸함으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순간의 희열 속에 온 몸을 던지는 것이 후기(post)의 모더니스트들이 아닐까.

고객사를 가다 오는 길에 어느 집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붉은 잎사귀를 찍는다. 하나는 내 혓바닥 같다. 다른 하나는 누구의 혓바닥일까.

지금 나는 누군가의 혓바닥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붉은 혓바닥 하나가 붉은 혓바닥 하나를 기다리는 가을 풍경이란, 처참해보인다. 단풍은 원래 그런 빛깔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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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ing Wind, 1921, etching,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유화에서는 부드럽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에칭 판화에서는 거칠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란 도시의 쓸쓸함이다. 그리고 그것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난 쓸쓸해'라고 인정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편안함을 던져준다. 그러나 그 뿐. 호퍼는 그 곳에서 멈춰 서서, 그저 쓸쓸하고 외로울 뿐이다.

왜 쓸쓸한 지, 왜 외로운 지 알지도, 알려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래 보고 있으면 지루해지고 과연 쓸쓸한 건가 되묻게 된다. 이것이 에드워드 호퍼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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