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창작과비평사 



책 뒷 장을 펼쳐보니, 1997년 5쇄라고 적혀있다. 지금 읽어도 쉽지 않은 이 책을 나는 1997년이나 98년 쯤 구입했을 것이다. 아마 인적이 뜸했던 그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꺼내 읽은 아래 문장으로. 


이처럼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평론들의 한 장마다에서 풍겨나오는 우울 - 사사로운 의기소침, 직업상의 낙담, 국외자의 실의, 정치적 역사적 악몽 앞에서 느끼는 비감 등 - 은 적합한 대상, 즉 종교적 명상에서처럼 거기에서 정신이 자신을 끝까지 응시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심미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순간적인 구원을 발견할 수 있는 어떤 표상이나 이미지를 찾아 과거를 더듬는다. 그리고 발견해낸다 - 30년 전쟁의 독일에서, '19세기의 수도' 빠리에서. 왜냐면 바로끄와 근대의 이 둘 모두가 그 본질상 우의적(allegorical)이어서 우의이론가의 사고과정에 걸맞기 때문인데, 자신을 형상화해줄 외부의 대상을 찾는 비구상화된 의도인 이 사고과정을 그 자체가 이미 '언어 이전'의 우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 73쪽 ~ 74쪽 


그 때, 1990년 후반 문학전공자들의 일부는 발터 벤야민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이십 대 후반 이 책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챕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십년 가까이 지난 후인 올 8월부터 읽기 시작해 겨우 다 읽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벤야민은 죽은 채로 우리 옆에 앉아 속삭이고, 나에게 이제 독서란 1시간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일상이 되었고, 회사에서의 시간 이외에 나머지 시간들은 다 조각나 있었다. 길고 조용하게 이어지는 양질의 시간이 나에게 구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고, 이 책의 독서 경험은, 최근 내가 읽는 다른 책처럼 조각나 있고 형편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뒤늦은 독서는, 나에게 깊은 후회와 함께 이제서야 읽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하였다. 종종 어떤 책들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들처럼.  이 책은 나에게 헤겔-마르크스의 이론이 어떻게 문학 이론에 영향을 끼쳤는가를, 다소 얕게 알고 있었던 에른스트 블로흐와 루카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아도르노부터 시작해 마르크스주의적 해석학의 몇 가지 형태라는 2장에선 발터 벤야민, 마르쿠제와 쉴러, 에른스트 블로흐를 다룬 후, 게오르그 루카치, 사르트르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는 헤겔과 마르크스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전반기 중요하게 여기지는 문예이론가들의 대표적인 저서들을 중심으로 비판적 서술을 전개한 후, 마지막 챕터에서 '변증법적 비평'에 대해 논의하며 책을 끝낸다. 종종 프레드릭 제임슨을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헤겔-마르크스의 영향 아래서에서  현대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과 비판을 전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제임슨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책들 중의 한 권이며, 앞으로 그가 나아가게 될 어떤 이론적 지향점을 이해하게 해준다. 그 현대문화를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의 모든 부분들이 중요했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챕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에 대한 그의 시각을 확실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아래 문장처럼. (프레드릭 제임슨을 읽다 보면, 종종 아도르노에 대한 편애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연구한 싸르트르가 아니라... )


이제 우리는 상품사회에서 예술작품이 지니는 심원한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것은 상품이 되지 않는 것이며 소비되지 않는 것이며 상품적 의미에서 불쾌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가장 충분히 전개하여 적용한 아도르노의 음악 분석으로 되돌아가도 무방할 터인데, 이 분석은 실제로 그의 여타의 비교적 헤겔적인 실천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진실로 마르크스주의적인 부분을 이룬다. - 383쪽 


이 책 <<변증법적 문학 이론의 전개>>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책으로 일찍 번역되어 국내 소개되었지만, 제대로 읽히지 못한 책들 중의 한 권이다. 문학이론 서적들이 드물던 시절, 나 또한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읽지도, 듣지도 못했으니. 더구나 1장 아도르노에 대해 읽기 위해선 현대 음악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 근현대의 여러 학설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하니, 제대로 읽히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아도르노의 저서들 중 <<신음악의 철학>>을 선택하여 아도로노의 고급문화주의자적 면모를 드러내면서 동시에서 문화산업에 대한 부정과 함께 그 속에서 작품이 상품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제 열정의 모방이 아니라 음악적 매체를 통하여 무의식에서 나온 신체적 충동들을 위장되지 않은 상태로 기록하는 것이며, 형식의 금기들이란 그러한 충동들을 검열하려 하고 그것들을 합리화하여 이미지로 전환시키려 하는 것이므로, 이런 형식의 금기들에 공격을 가하는 충격들 및 정신적 외상(trauma)들을 위장 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이처럼 쇤베르크의 형식적인 혁신들은 표현된 사물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후자의 새로운 리얼리티가 의식으로 뚫고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최초의 무조 작품들은 정신분석학의 꿈의 기록(transcript)이라는 의미에서 기록이다. ...... 그러나 이러한 표현상 혁명의 상처들은 그림과 음악 모두에서 원본능(id)의 밀사로서 예술가의 의식적인 의지에 저항하는 얼룩과 반점이며, 이들은 표면을 훼손시키고 옛날 이야기의 핏자욱처럼 추후의 의식적인 수정으로 씻어낼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수난은 그것이 더 이상 예술작품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시로서 이것들을 작품 속에 남겨놓았다. 

- 아도르노, <<신음악의 철학 Philosophie der neuen Musik>> 42~43쪽 (40쪽에서 재인용)


문학(이론) 전공자에게 추천하지만, 만만치 않는 책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헤겔의 <<법철학>> 서문이나 <<정신현상학>>, 또는 마르크스의 <<독일이데올로기>> 정도는 읽거나 개론 수준의 이해를 가져야 할 터이고 소개된 여러 문학이론가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긴 그래도 쉽지 않을 것인데, 끊임없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아나톨 프랑스도 나오고 페르난도 페소아도 등장한다. 작가 이름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끔 이런 문장 - '무조성이란 말하자면 음악의 유명론(唯名論) 같은 것이다' - 이 등장할 때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흥미진진하고 많은 것들을 새로 읽고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아놀드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기억해둘 만한 인용문들을 옮긴다. 시간이 나면 다시 읽어볼만한 책인데,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구나. 


"따라서 역사가 우리로부터 시간적으로 점차 멀어지거나 우리가 사고 속에서 역사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기만 하면 역사는 더이상 내면화될 수 없고 이해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 역사의 이해가능성이란 애당초 잠정적인 내면성에 부속된 단순한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 끌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중에서 (265쪽 재인용) 


"역사란 내가 깨어나려 애쓰는 악몽이다."

-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중에서 (302쪽 재인용) 


"문체와 관계를 맺는 것은 역사보다는 생물학이나 과거의 차원이다. 문체는 작가의 '대상'이며 영광이자 감옥이며 고독이다... ... 그 비밀은 작가의 육체에 파묻힌 기억이다. 문체의 암시적인 힘은 말해지지 않은 것이 일종의 언어적 간격으로 남아 있는 회화에서처럼 속도의 현상이 아니라 밀도의 현상이다. 왜냐하면 문체의 비유 속에 거칠거나 부드럽게 조합되어 문체 밑에서 견고하고 깊이있게 지속되는 것은 언어와는 전적으로 다른 한 현실의 단편들이기 때문이다."

- 롤랑 바르트, <<Le Degre zero de l'ecriture>>, 58~59쪽(331쪽 재인용)


"유력한 개개인이 그들의 정신과 성격의 특수한 자질로 인해 사태의 개별적 양상과 일부 특정한 결과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사태의 전반적인 추세를 바꿀 수는 없고, 이 추세는 다른 힘들에 의해 결정된다."

- 쁠레하노프, <<역사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 The Role of the Individual in History>> (352쪽 재인용)


"세계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데 대해 한 마디 하자. 이 문제에 대해 철학은 항상 지각생이다. 세계에 대한 사고로서 철학은 현실이 그 전개과정을 다 마친 이후에야 나타난다. 개념이 가르치는 것은 역사가 이미 필연적인 것으로 보여준 것이다. 현실이 성숙했을 때에야 이상은 현실적인 것과 대치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때 이상은 이 세계의 본질을 포괄하는 지적 영역의 형태 속에서 이 세계를 스스로 재구성한다. 철학이 그 백발을 은빛으로 칠할 때 삶의 형식은 이미 노쇠했으며 이 은빛으로 칠한 백발은 삶을 회춘시킬 수 없으며 단지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기 시작한다."

- 헤겔, <<법철학>> 서문에서. (356쪽 재인용) 


"변증법이 헤겔의 손에서 신비화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변증법의 일반적 작용형태를 포괄적, 의식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사람임에 변함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 신비화의 껍질 내부에서 합리적 핵을 찾아내려면 이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 2판 서문에서 (361쪽 재인용)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1934 ~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데리다: 데리다 철학의 개론적 이해 Jacques Derrida zur Einführung

H. 키멜레(Heinz Kimmerle) 지음, 박상선 옮김, 서광사, 1996 



  




데리다에 대해선 대학 시절부터 많은 논문과 책을 읽었지만, 늘 모호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지만, 결론은 같다. 그의 방법론 - 미국에선 흔히 '해체'라고 부르는 - 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늘 남는다. 


물론 "차연의 철학"이라는 명칭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명칭은 - 아도르노에 의해 발전된 동일화하는 사유(identifizierendes Denken)에 대한 비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차연[다름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동일화시키지 않음, 즉 다른 것 혹은 구별되는 것을 같은 것이나 동일한 것으로 여기지 않음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연적 사유는 통일적이고 그 자체로서 증명할 수 있는 철학적 흐름으로 특징짓는 일은 사실 그 의미에 거슬리는 일이다. 차연적 사유는 그 자체 다른 것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속에 있는 것이지 항상 같은 것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데리다의 차연의 철학이라고 말 때 그것은 동일한 것이거나 동일한 것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자체가 끊임없이 바뀌는 철학이다. - 15쪽 


끊임없이 바뀌는 게 철학이라니! 


차연은 "흔적의 유희"로 완성되고 있으며, 의미도 없고, (눈 앞에 있는 물건처럼)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유희에서 스스로-자기와-구별됨(Sich-von-Sich-Unterscheiden)은 하나의 흔적으로서 이 흔적은 또다시 지워지는 흔적이다. - 93쪽 


데리다는 자주, 나에게 문학 비평처럼 읽힌다. 그는 텍스트 안으로 텍스트 행간 사이에 숨은 의미, 혹은 의미의 부재를 흔들며 해체한다. 그에게는 글쓰기가 첨예한 문제로 떠오른다. 하긴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만큼 '개념'과 '개념의 해체'에 매달린 적도 없으리라.  


책의 폐쇄성(Geschlossenheit [끝맺혀짐, 닫혀짐])을 두 배로 늘림으로써 사람들은 그 폐쇄성을 부수고, ... 그 순간부터 ... 책 속의 책을, 원천 속의 원천을, 중심 속의 중심을 읽을 수 있으므로 그 때부터 심연(Alggrund [바닥이 없음])이, 무한히 다양화되는 끝없음(Un-grund)이 시작된다. 다른 것이 같은 것에 있다[있게 된다]. 

- 데리다, <<글쓰기와 차이>> 중에서 (65쪽에서 재인용) 



데리다 철학에 대해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값진 선물이 될 수 있겠지만, 데리다는 철학자다. 아니, '철학서에 대한 해체 비평가'라는 표현이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철학이라고 할 때, 그건 건축적(구축적)임을 뜻한다. 그러나 데리다는 반-건축적이거나 탈-구축적이다. 그는 그것을 지향했고 철학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몇 개의 단어로 모이긴 하지만, 체계적이지 않고 도리어 병렬적이고 동어반복적이다. 데리다의 다양한 전략과 실천들을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데리다가 일관되게 이야기한 '차연'의 의미를 되새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할 당시(1998년 경으로 기억된다), 데리다 철학에 대한 소개 서적도 얼마 없었지만, 그나마 이 책이 제일 나았다. 지금은 어떤 지 모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책이 어려운 철학책임에 분명할 테니, 일반 독자에게 권할 책은 아니다.  아마 지금도 데리다 철학 소개서로 손색이 없을 테지만, 굳이 지금 데리다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는 인문학 전공자에게도 마찬가지일테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서양철학사를 읽거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추천한다. 아니면 아도르노의 다른 책을. 이 책을 옮긴 박상선의 말대로 데리다는 아도르노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아도르노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Jacques Derrida (1930 - 2004)



데리다에 대한 소개는 아래 글이 좋을 듯 싶어, 옮긴다.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지도]형이상학의 폐쇄적 원리 해체 - 진태원(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좋아하는지 모르겠는데... 산만한게 꼭 저같아서 좋네요.

    마침 아도르노의 「사회학 강의」를 혼자서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게 ㅋㅋㅋ 막 읽고있는데 개중 반가운 글입니다. ㅎㅎㅎ

    소개 너무 감사드립니다. 지하련님은 추천하지않으셨지만 저는 꼭 읽고싶네요. 참 저같은 사람이라 ㅋㅋㅋ

    • 데리다보다 아도르노가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네요. ^^;;; 인문학도 워낙 유행을 타는지라.. ㅎㅎ


후기 마르크스주의 - 8점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한길사


후기마르크스주의 Late Marxism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 한길그레이트북스


몇 달 전에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서평을 쓰지 못했다. 딱딱하고 압축적이며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이론서를 읽기에는, 내 독서 태도가 성실하지 못했다. 어떻게 겨우겨우 완독하기는 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아도르노에 대한 편애로 가득 찬 프레드릭 제임슨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속하지만, 아도르노는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벤야민에게서 영향 받았겠지만, 실은 벤야민의 독특함 이상이다. 벤야민에 대한 이상한 선호(대중적 인기)로 인해, 아도르노는 종종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견해대로) 포스트모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이론가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산업을 이야기했지만, 문화산업이 가지는 독특함보다는 고전(클래식)문화에 기대어 미국식 문화산업이 가지는 폐해와 악덕 때문이었고, 재즈는 경멸했고,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적 문화 코드와는 거리가 먼 이론가였다. 하지만 프레드릭 제임슨은 아도르노에게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마르크스주의를 끄집어낸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해석을 그는 한 권의 책을 엮어낸 것이다. 책은 아도르노의 거의 모든 저서들을 오간다. 또한 철학, 사회학, 문학을 오가며, 아도르노의 사유가 가지는 성격과 현대 사상과의 유사성,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속에서 아도르노가 가지는 중요성을 언급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 우세종이라는 강력한 의미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아도르노의 중요성은 차라리 그의 사회학적 내지는 철학적 비판 속에 있을 것이다. 사실 아도르노가 실증주의라고 부른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르는 것으로서,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좀더 초보적인 단계가 실증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재현의 문제이다. (중략) 비록 모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총체성은 존재할 지 모르지만 인식될 수도 묘사될 수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 총체성을 재현하는 것이다. 변증법이란 - 부정변증법 같이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는 변증법일지라도 -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작업인, 이 원의 전체 넓이를 구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읽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두께도 두께지만, 아도르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읽기 어렵다. 또한 프레드릭 제임슨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도르노임을 명심해야 한다. 즉 (프레드릭 제임슨의 편파적인 시각에서의) 후기마르크스주의자 아도르노에 대한 비판적 해설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기에 이 책을 손에 들 이가 있기라도 한 걸까. 나 또한 ‘후기마르크스주의’라는 책제목에 이끌려 구입했지만 말이다.

현대 철학의 관점에서 재현이나 총체성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약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부생에겐 어려운 책이고 대학원생에게나 적당하다. (이 책을 읽은 나는 뭔가… 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장호연 옮김/마티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장호연(옮김), 마티, 2008년


 

자네는 새로운 나라를, 또 다른 고향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거네.
이 도시가 항상 자네를 따라다닐 테니까.
자네는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동네에 살다가 나이를 먹고,
결국은 같은 집에서 늙어갈 테지.
자네는 이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네.
그러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펼칠 희망은 버리게.
자네를 실어다 줄 배는 없네, 자네에게 열린 길은 없어.
여기 이 좁은 모퉁이에서 이제까지 삶을 낭비했듯이,
세상 어디에 가든 마찬가지로 삶을 망칠 것이네.
-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도시> 중에서(205쪽 재인용)



이 시처럼, 어쩌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내 삶을 망쳐왔으니(내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앞으로도 망쳐갈 것이다. (참 무책임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 지구가 망쳐져 가는 것처럼. 터무니없게도 나는 내가 ‘세속적이고, 기지가 넘치고, 귀족적인 우아함이 있’기를 바랬지만, 이 바람은 거친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시대착오’적인 무산 계급의 실현 불가능한 대부분의 것들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런데 그 스스로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도르노 옆에 서서 시대착오적인 말년의 양식을 보여주었던 예술가들에 대해 분석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저작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도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예술가들의 말년 작품들을 연구했다는 점이다.)



이제 말년의 예술과 반대 방향으로 노화의 길에 접어든 현대 음악은 그저 “악보만 복잡할 뿐 사실상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하고 들뜬 여행”(아도르노, <<음악에세이>> 중에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말년의 양식에는 부르주아의 노화를 두고 보지 않고 계속 거리두기와 망명과 시대착오의 감각 - 말년의 양식은 바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더 중요하게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사용한다 - 을 고집하려는 긴장이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다.
- 41쪽

 

아도르노는 일차적으로 에세이스트였고, 에세이란 그에 따르면 “대상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것에 관심을 두는” 형식이며, “내밀한 형식적 법칙은 이단이다.” 아도르노의 의미로 볼 때 에세이스트라는 존재는 당대에 유행하는 모든 것에 영원히 맞서 싸우고 화해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보통 “에세이가 당대에 갖는 의미는 시대착오에 있다”고 말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시대착오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월트 디즈니의 <판타지아>나 호세 이투르비와 오스카 레반트가 출연하여 멋지게 연주하는 할리우드 뮤지컬 등으로 음악 산업이 거대화되어 가는 시대에 여전히 고전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다.
- 141쪽



사이드가 주목하는 말년의 양식은 거리두기, 망명, 시대 착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표범>>과 원작소설인 람페두사의 <<표범>>을 교차시키면서 영화와 소설 사이에서, ‘귀족출신이면서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두 인재가 이렇게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그가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그 당시 충분한 비평적 지지와 (커다란 성공은 아닐지라도)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거리를 두었으며, 혹은 망명을 선택하거나 종종 과거의 양식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였다. 도리어 그들이 받은 비평적 지지와 대중적 인기도 낯선 것에 가깝다.


모더니즘 문학은 조이스와 T.S. 엘리어트 같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시대를 떠나 신화와 서사시, 고대 종교 의식 같은 옛 형식들로 돌아가려 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말년의 양식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은 역설적이게도 명칭과 달리 새로움을 내세운 운동이라기보다 늙어감, 종말의 운동이 된 것이다.
- 194쪽



'옛 형식으로 돌아가려는 태도'은 한국의 비평가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조로(早老)'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도리어 늙어가는 예술에 대한 반기에 가깝다. 미술도, 음악도, 문학도 늙어가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고 새로운 것이 있다고 한들, 우리 삶은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에 비롯된 것이다. 이럴 때일 수록 사이드가 말하는 바의 '말년의 양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차르트는 다 폰테와 함께 작업하면서 속죄나 변명의 기회가 아예 없는 세상, 유일한 법은 방탕함과 조작의 힘으로 표현되는 이동과 불안정이며, 죽음에 의해서만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을 제시하려 했는데, 이렇게 잠재적으로 끔찍한 견해에 <코시 판 투테>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 작품은 결코 쓰지 못했다. 모차르트가 이 오페라에서 독보적인 솜씨를 발휘하여 이룩한 것은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음악과 그토록 부주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이야기의 결합이다.
- 110쪽


로코코 예술가 모차르트의 유쾌하고 발랄한 단음계 속에 숨겨진 음울하고 허무주의적인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 모차르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야말로 '말년의 양식'에 속한다. 꼭 장 완트완 와토의 세계처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8세기로 돌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18세기 로코코 자체가 바로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상승하는 부르조아 계급 앞에서 성직자와 귀족들은 계속 고개를 뒤로 돌리며서 거리를 두고 망명하고 옛 노래만, 옛 문화만 향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우울하고 유쾌하지만 슬픈 예술 양식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 스스로도 '시대착오'이면서 '시대착오'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사용해 왔다. '시대착오'라는 단어에 대한 새로운 의미 하나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년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문학비평가로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철학, 음악, 문학을 가로지르며 폭 넓고 깊이 있는 비평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신고

Comment +11

  • 무의식적으로 '말년'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말련' 혹은 '시대착오'라는 단어가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도 이 책을 읽고 몇 가지 단어에 대해서 새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간만에 읽은 좋은 책이었습니다. ^^

  • noi 2008.06.22 17:14 신고

    어마 깜딱이야.. 안그래도 친구가 얼마전에 이 책을 보내줬답니다 ^^ 현재 절반 읽었어요.. 사이드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다는.. 코지판투테를 유튜브에서 찾아 틀어놓고 덧글 씀다 ^^

    • 아도르노가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듯이, 에드워드 사이드도 클래식 음악에 대단한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저도 기회 닿으면 피아노를 배울 생각입니다. ^^ ㅎㅎ

  • 2008.06.23 20:41

    비밀댓글입니다

  • 이분 글 읽어보려했는데, 미리 좋은 정보 주시네요.
    큰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

  • 몰시간성 anachronie 좋아하죠. 덕분에 사이드의 이 책도 한번 보겠습니다.

    •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말년의 양식이 가지는 특징을 탁월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거침없이 앞을 향해 가는 시대 속에서 고개를 뒤로 올리는 양식이라고 해야 하나...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저도 덕분에 좋은 책 읽었어요.^^
    간만에 설레게 하더군요.

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충분하다, 쉼보르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