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옥토버 

2017.12.8 - 2018.1.31. 

아르코미술관 제 2 전시실 




몇몇 작품들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대단한 느낌은 없었다. 결국 설치작품들은 규모와 공간의 문제일까. 스펙터클이 중요한 것일까. 꼭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작품을 보기 전에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거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작품의 해석과 수용에 치명적이다. 결국 조형 예술이 활자언어에 종속되어 그것의 해석/비평에만 의지하게 된다. 무채색의, 별 감흥없이 서있다가 설명을 듣거나 읽었을 때야 비로서 '아'하고 반응한다면, 그것은 독립적인 조형작품이 아니다. 대체로 이 전시의 작품들이 그랬다. 


현대 미술은 너무 자주 비평적 언어에 종속되어, 먼저 개념적 어젠다를 설정한 후, 마치 개념의 설계도를 따라가듯 작품이 만들어지거나, 그렇게 전시된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 살펴보면서 한국 현대를 이야기하고자 한 이 전시는 실패했다. 애초에 '러시아 혁명'은 우리로부터, 일반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리 있다. 즉 관객과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다. 프랑스 혁명의 귀결이 '나폴레옹'이듯 러시아 혁명의 귀결은 '스탈린 체제'와 '냉전'이다. 차라리 혁명이 아니라, 혁명을 부르게 되는 상황에 주목하고, 그 상황에 대한 보다 나은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 예술가의 역할로 보긴 어렵거나 제한적일 것이다. 


이상엽의 사진이나 양유연, 이우성의 작품은 이미 보았다. 양유연의 최근 작품은 처음이었으나, 그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페인팅에서의 스타일의 변화는 사각 평면에 담긴 것 뿐만 아니라 사각의 평면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페인팅이 담기는 매체, 또는 형태도 중요하다. 이상엽의 사진은 잘 알려져 있는 작품들이다. 



전시 팜플릿에 이번 전시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옮긴다. 



- 지금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다른 체제로의 이행은 역사적 필연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존속하지 않지만, 100년 전 인류의 한 사회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길로 사회주의 혁명을 관철했다. 러시아혁명이라 명명되는 이 사건은 인류의 역사에 내재되어 있던 본성을 끄집어낸 사건이었으며,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라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이 전시 <<옥토버>>는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러시아혁명에 주목하면서도 한국사회에서의 계급투쟁과 계급적대를 한국의 근현대사와 당대의 운동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 이처럼 <<옥토버>>는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지배/피지배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며, 더 나은 사회와 체제를 이성적으로 열망하고 희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회의 진보적인 힘에 대해 예술언어는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담아내고자 한다. 




양유연, 얼룩, 장지에 아크릴릭, 198x138cm, 2017




이상엽, 자본주의_모스크바, 종이에 잉크젯, 100x150cm, 2004



이상엽_울란우데, 부랴트공화국_Epson 9800 K3 ink, Hahnemuhle paper, monochrome_17×17 _2006


이상엽_모스크바, 러시아_Epson 9800 K3 ink, Hahnemuhle paper, monochrome_11×14 _2007 



이상엽의 사진 작품 몇 개 더 찾아 올린다. 사진이 좋은 점은 실제 보는 것과 모니터로 보는 것과의 차이가 다른 장르보다 덜하다는 것이다. 양유연이나 이우성의 작품은 실제로 봐야 하지만.. 



이우성의 아르코 전시 작품 이미지는 구하지 못했다. 대신 학고재 전시 풍경을 학고재 웹사이트에서 일부 옮긴다. 학고재






2009/02/09 - [예술의 우주/리뷰] - 그림 좋다 展 과 Propose 展 - 순수와 상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Comment +0


니나 카렐Nina Canell 개인전 <새틴 이온Satin Ions>

2015년 5월 29일 - 8월 9일 

아르코미술관 제2전시실 





전시 팸플릿을 읽어야만 이해가 되는 예술 작품은 어떻게 받아야 들여야 할까. 그리고 이해만 될 뿐이라면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난감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작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니나 카렐 개인전인 그런 종류의 전시였다. 마치 '현대 미술의 제 무덤 파기 프로젝트'로 여겨질 정도라고 할까. 


요점만 말하자면, 예술 작품은 본질적으로 '어떤 심리적 환기'를 가지고 와야 한다. 칸트는 이를 '쾌', '불쾌'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런데 나는 니나 카렐 작품 앞에서 멈칫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일종의 연구이긴 하지만, 그래서? 연구는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다. 마치 외계인의 언어처럼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난감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한 이번 전시 <새틴 이온>에서는 오늘날의 무선 인터넷과 같이 와이어리스의 세계의 기반이 되는 지하 매설 케이블에 관심을 두고, 서울 근교에서 수집한 재활용 케이블 덩어리들로 전시의 마지막 챕터를 구성한다. 오늘날 수많은 디지털 정보는 선이 없는(wireless) 상태를 지향하지만, 이는 사실 지하의 보다 많은 양의 케이블 증가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만들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관심에서 서울 근교의 케이블 재활용센터를 방문하여 녹아 내려 형태가 변화한 상태와 향후를 위해 재탄생되는 미래적 시간을 함의한 상태 사이에 놓여져 있는 케이블 덩어리들을 수집한다. 케이블의 심지가 빠지고 껍질만 남은 피복 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모양이 변형된 이 덩어리들은 수십 미터의 물리적인 길이가 '정보'의 송수신이라는 비물질적 거리를 드러내는 덩어리로 변모한 역설적인 상태를 암시한다. 

- 전시 팸플릿 중에서  




추상화된 디지털 정보는 물질적인 케이블에 의존한다? 그래서?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 혹은 디지털과 케이블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는 언어와 책의 관계와 같다. 말과 혀의 관계다. 즉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은 보이지는 것들을 매개로 한다. 표현되지 못한 우리의 생각이 우리 육체 속에 담겨져 있듯이. 마치 뭔가 대단한 연구인 양 포장하고 있지만, 늘 있던 어떤 물음의 동어반복일 뿐이다. 





니나 카넬은 물체의 성질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물성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의식한다. 서로 다른 재료와 물질이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작가의 조각은 이러한 인간의 시각에는 쉽게 포착되지 않지만 공간 내에 공존하는 비물질적인 영역의 항상성(consistency)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 전시 팸플릿 중에서  



시각적으로도 흥미롭지 못했고 주제의식도 또한 문제적이지 않았다. 더구나 작품들이 보여주는 미적 완결성은 형편없었다. 재미있지도 않았다. 대단한 테크놀러지가 담긴 것도 아니고 전자파 구덩이로 만든 것도 아니다. 솔직히 이 전시를 위해 내가 낸 세금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너무 안타까워서 전시 설명을 위해 서 있던 도슨트(혹은 큐레이터였는지도)에게 물어보았다. 작품이 마음에 드냐고? 아. 그녀는 마음에 든다고 했다. 현대 미술이 암울해지는 순간이다. 지금도 몇몇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현대 미술의 무덤을 파고 있는 중이다. 아주 열심히. 그리고 일군의 평론가들도 여기에 동참에 일반 대중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단어를 사용해가며 깊숙이 깊숙이 땅을 파고 있을 터이다. 








Comment +0

데페이즈망 - 벌어지는 도시 Depaysement - blooming the City
2011.6.15 - 7. 17. 아르코미술관(대학로)
(2011년 아르코미술관 기획공모전, 기획: 최재원, 김미경)





우리들 대부분은 도시에 살아갑니다. 서울이거나 부산, 혹은 광주이거나. 아니면 뉴욕이거나 런던이거나 LA이거나.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살아갑니다. 거기 어제가 아니라. 그런데 지금 여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쫓기는 듯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는 이 도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현재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 열리고 있는 ‘데페이즈망 ? 벌어지는 도시’는 지금 여기 이 도시에 대한 반성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전몽각, 경부고속도로29, 99.7x150cm, 1968 경,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우리의 도시는 식민 지배와 근대화, 서구와 전통이 혼재하는 삶 속에서 서구 근대의 도시형성 과정과는 매우 다른 복합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전시는 흥미롭게도 그 혼성적 특성을 ‘데페이즈망’이라는 말로 풀어낸다.

“수술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다운”이라는 로트레아몽의 말처럼, 낯익은 사물들이 낯선 장소에 놓일 때 일어나는 충격을 미학적으로 간주하는 말이 초현실주의 단어인 “데페이즈망”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상 우리의 도시도 “데페이즈망” 도시다. 도시의 물리적인 외형만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문화예술 모두가 “데페이즈망”이다.



데페이즈망. 이건 그렇게 어려운 단어가 아닙니다. 혹시 어렸을 때 다녔던 초등학교에 놀러 간 적이 있다면,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를 보고 실망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예전엔 참 넓었던 곳인데, 이렇게 작았다는 것에 말이죠.

낯익은 사물이 시간 속에서 낯선 사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이 전시의 키포인트는 여기에 있습니다. 참여한 작가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도시를 낯선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는 관람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태범, Ambivalence-(파키스탄 폭탄테러), 120x180cm, 디아젝 프린트, 2010


원래 모더니즘의 ‘데페이즈망’, 혹은 낯설게 하기는 어떤 사물이나 존재를 낯선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서 미학적 충격이나 효과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시간 위에서 ‘데페이즈망’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도 말이죠.

잭슨홍, 순진하고 낙관적인, 39.5x26.2x22.7cm, 혼합재료(machined ABS plastic, plastic helmet, wood), 2010


이 전시에 놓인 작가들은 강국진, 김기영, 김기찬, 김형관, 박경근, 이제석, 임명진(임단), 전몽각, 잭슨홍, 주재환, 최병소, 하태범, 홍형숙입니다. 시각 이미지와 조형들로 배치된 전시 공간은 도시의 재해석, 시간 위의 데페이즈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열립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기찬, 서울 사근동 뚝방촌, 디지털프린트, 1969






*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계시다면, T스토어나 마켓에서 '올댓 주말미술여행'을 검색하셔서 다운로드 받으세요. 매주/매월 가서 볼만한 미술 전시정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술 정보를 업데이트합니다. ^^ 

위 QR코드를 찍으시면 바로 마켓으로 들어갑니다. ~ 






 

Comment +0

Sook Jin Jo 
A 20 Year Encounter with Abandoned Wood:
Selected Artworks from New York

아르코미술관. 8.31 - 9.30



만남이란 가슴 떨리는 신비다. 그 신비가 소란스런 대학로 한 가운데로 왔다. 흐트러진 질서와 무표정한 낡은 빛깔들로 채워진 나무들이 우리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조숙진의 작업은 세월의 파편 하나하나를 안고 쓰러져 시간의 먼지를 먹고 있던 나무 조각조각들 꺼내어 다시 구조화한다. 그런데 그 구조화는 ‘공간’(컨텍스트) 속에서의 ‘설치와 해체’(텍스트화) 속에서 이루어져, 가변성과 우연성을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열려있는 성격은 관객과의 참여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메타포를 지니게 된다.


나무의 상징은 복합적이다.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의미하기도 하고, 동양과 서양의 주술적 세계의 상징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때로는 종교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즉물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조숙진의 작업을 도리어 너무 난해하고 어렵게 만들 여지가 있다.

도리어 간단하게 한 때 찬란한 푸른 빛깔로 반짝였을 나무들이 이젠 낡고 버려진 채 세상의 구석진 곳을 떠돌다가, 우연찮게 조숙진의 손으로 들어가 다시 새로운 모습과 의미로 다시 사람들 앞에 섰다는 것. 만남이란 가슴 떨리는 신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ll Things Work Together, 2004, found wooden objects, site-specific installation: 12x 35x30 feet


사용자 삽입 이미지
All Things are Born of Being VI, 1998-99, mixed media on wood, 59x46 3/4x 9"




* 전시 관람을 추천합니다.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좋은 전시입니다.
* 이미지 출처: http://www.sookjinjo.com/  작가의 웹사이트입니다.
* 작품 이미지는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올린 것입니다. 이미지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바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Comment +0


문화예술, 2007년 봄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문화예술’ 2007년 봄호를 다 읽었다. 어제 출근길에서 차례대로 읽기 시작해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하이라이트는 1954년 대학신문에 실린 황산덕의 글이었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비판하는 글로써, 가상으로서의 소설과 현실로서의 사회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짤막한 인용문을 읽으면서 크게 웃었다.

어찌된 일인지 요사이 대학에 나가면 여기저기서 정비석 선생을 원망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목소리가 매일 들려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학교수가 불우한 족속들 중 하나라는 것을 정 선생도 모르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정 선생에 앞서 화제가 된 김모씨는 <<나는 너를 싫어한다>>라는 작품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 작품의 대상자는 당당한 고관이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가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부 고관에 대한 국민의 반감에 공명하는 바가 되어 이를 테면 성공적으로 유명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정비석 선생이 망신을 주고 있는 저희 대학교수들은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불쌍한 족속들입니다. 그런데 정 선생의 작품은 대학교수를 양공주 앞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 선생이 논쟁이 되는 작품을 써서 김모씨와 같은 센세이션을 다시 한번 일으켜서 유명해지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우한 처지에 있으니 기운을 내라고 격려는 못 해줄 망정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써 가면서 대학교수를 모욕하는 것입니까. 수억 인의 원성을 개의치 않고서 자기 고집을 부리던 스탈린의 흉내를 내면서 수백 명의 대학교수와 수천 명의 그 가족과 수만 명의 대학생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 전체의 비난쯤은 문제도 아니라는 배짱입니까. 배짱도 좋고 예술도 좋으나, 선생의 대작 <<홍길동전>>을 읽는 수십만 중학생을 생각해서라도 대학교수를 사회적으로 모욕하는 무의미한 소설만은 쓰지 말아 주시길 희망합니다.
- 황산덕, ‘자유부인 작가에게 드리는 말’, 대학신문, 54. 3. 1

(* 이 때 황산덕 교수는 서울대 법대에 재직하고 있었으며, 이후 법무부 장관,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9년 타계하였다. 웹 인물 검색으로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훗날 황산덕 교수는 ‘자유부인’보다 더 심각해진 세태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까뮈의 ‘이방인’을 프랑스의 학교에서는 ‘윤리’ 교재로 이용한다며, 씁쓰리해 하던 로브-그리예의 말이 떠오른다. 아마 황산덕 교수는 극단적으로 시니컬해지지 않았을까. 그냥 그렇게 추측해본다.

황유진의 '모자이크 혹은 데코파주'는 재미있는 글이다. 그가 쓴 글이 아니라 조합해 만든 글이지만, 그 시대를 적절히 반영하면서 현재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 다음 나의 시선을 끈 글은 윤지관 교수의 언급이었다.  

결과는 스스로도 놀라웠습니다. 충실성과 가독성을 상당히 많이 살려 원작을 대체해 읽을 만한 번역서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전체의 10% 밖에 안 됐습니다. 셰익스피어 등은 전문가가 해서 나았지만, <<테스>>나 <<허클베리핀>> 등 널리 읽히는 소설작품만 따졌을 때 전체 6% 정도만 제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추천하기 힘든 결과가 나왔습니다. 종별로 제대로 된 것이 한 권씩이나마 있으면 했는데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유명 소설의 경우 한 편 정도 있는 게 전체의 3분의 2 정도, 3분의 1은 한 편도 없었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든가 <<무기여 잘 있거라>>같은 작품은 30여 종으로 번역돼 나왔지만, 우리가 평가하기로는 그 중 한 편도 추천할 것이 없을 정도로 번역의 질이 낮았습니다. 현재 우리 전체 번역문화나 풍토나 현실이 겉으로는 굉장히 풍성해 보입니다만 내용을 알고 보면 풍요 속의 빈곤이었던 거죠.
- 윤지관, ‘번역의 문화, 문화의 번역’ 대담 중에서.


'번역의 문화, 문화의 번역'이라는 대담은 그냥 교수 3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는데에 의미를 둘 뿐, 그냥 현상을 진단에 그치고 만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만 나열해 놓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에 대해선 그 어떤 언급도 없다.

그런 면에서 풍석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를 번역하는 이들에 대한 소개 글인 김문태의 '시대와.텍스트를.넘어,지향점을.찾는다'는 우리 번역 현실에서 구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번역사업이 이 정도까지 진행될 수 있는 세 축은 육억 원을 쾌척하신 송오현 영어전문학원 원장님과 출판을 약속해주신 김경희 지식산업사 사장님, 그리고 이 팀을 이끌고 있는 저를 포함한 번역연구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 축이 만날 수 있는 것은 우리 문화의 저력이 표면에 드러난 것이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전 <<임원경제지>> 번역을 추진할 때, 여러 가지를 재지 않고 다만 우리 사회에 미칠 긍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했습니다. 젊음이 있기에 모험을 즐기고, 끊임없이 도전하려 합니다. 저희는 여러 방면의 전공자들이 펼치는 지식의 교류로서만 가능한 번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 했습니다. 이 번역서가 고전 번역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길 바랍니다.
- 정명현(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수료)


백원담 교수의 글은 참 오랜만에 읽는다. 대학 시절 기억남는 선생 중의 한 분이셨다. 이 글을 읽으니, 다소 위축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긴 '한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자본주의 산물인 '문화산업'이 앞서나가는 모습 앞에서 순수문학, 또는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는 세상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차갑지 못한 분이다.

최열의 글은 좋다. 추사 김정희와 오윤을 비교하며 쓴 글은 그의 해박함과 미술에 대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책을 구입도서목록에 올려놓아야 겠다.

Comment +0

보르헤스 씨의 정원

일러스트: 메테오 페리코니 보르헤스 씨의 정원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꼴레타 인근의 어느 집에는 이중의 특권을 가진 창문이 있다. 그 창문에서는 한 눈에 하늘이 들어오고, 이웃한.....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메시Messy, 팀 하포드

메시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지음), 윤영삼(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확실히 기존 통념을 깨뜨린다. Messy라는 제목 그대로, 무질서와 혼.....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

맑스주의와 형식, 프레드릭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일요일 오후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