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

어떤 아침 풍경

봄 바람이 차가웠다. 대기는 맑았다. 하늘은 높았다. 하얀 구름을 시샘하듯 파란 배경 위로 햇살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내 마음은 알몸인 듯 추웠고 쓸쓸했으며, 비에 젖은 스폰지마냥 몸은 무겁고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출근길은 길고 지루했으며 해야할 일들의 목록을 사랑의 주문을 외듯 되새기며 걸었다. 걷다가 살짝 삐져나온 보도블럭 모서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그렇게 넘어져 다쳐 응급실에 실려가는 걸 잠시 상상하다가, 말았다. 불길한 상상은 현실이 되고 행복한 상상은 언제나 상상으로만 머물었다. 그랬다. 마치 우리 젊은 날들을 슬프게 수놓았던 사랑의 흔적들처럼. 마치 공부하는 학생처럼 두꺼운 책 한 두권을 들고 다닌다. 오늘 들고 나온 책에 인용되었던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타이탄의 도구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Tools of Titans 팀 페리스(지음), 박선영, 정지현(옮김), 토네이도 나이가 든다고 해서 지혜로워지지도 않고 많이 알게 되지도 않고 도리어 체력이 약해지고 건강이 안 좋아지며 나이 든 위세만 챙기려 하면서도 눈치만 보게 된다. 나이 드신 부모님, 아내의 눈치나 아이의 눈치, 직장 동료나 부하직원의 눈치, 고객들의 눈치를 본다. 나이에 대한 오래된 비유는 지금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일찍 읽었다면 내 삶이, 내 일상이 조금 달라졌을까 생각했지만, 아마 달라지지 않았을 게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무렵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었지만, 재미없었고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흔을 넘기고 읽었더니, 구구절절 나에게 필요한 문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조금 늦..

내 젖은 구두 벗어 ...

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자 비가 와락!! 다 젖었다. .. 그리고 이문재의 시집이 떠올랐다. 오늘 해가 뜰려나. 오후는 내내 외근인데..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이 문재 그는 두꺼운 그늘로 옷을 짓는다 아침에 내가 입고 햇빛의 문 안으로 들어설 때 해가 바라보는 나의 초록빛 옷은 그가 만들어준 것이다 나의 커다란 옷은 주머니가 작다 그는 나보다 옷부터 미리 만들어놓았다 그러므로 내가 아닌 그 누가 생겨났다 하더라도 그는 서슴지 않고 이 초록빛 옷을 입히며 말 한마디 없이 아침에는 햇빛의 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저녁에 나의 초록빛 옷은 바래진다 그러면 나는 초록빛 옷을 저무는 해에게 보여주는데 그는 소리없이 햇빛의 문을 잠가버린다 어두운 곳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은 나를 좋아하는 경우가..

에너지와 레드불

커피를 두 번이나 내려 마시곤 결국 레드불을 사서 먹는다. 온 몸이 카페인화되고 심장 박동수는 빨라지고 피부가 팽창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내가 원했던 집중력 향상은 적응되지 않는 신체의 변화로 인해 도리어 산만해지고 말았다. 회사를 옮기고 나는 자주 밤샘을 하고 있다. 주로 고객사에 Web Strategy를 제안하기 위해서다. Contents를 어떻게 창조하여 보여줄 것인지, User Interface나 User Experience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Technology를 사용할 것인가를 구성한다.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인데, 그러다보니, 매번 제안서마다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에 대한 가치를 설득시키기란 쉽지 않은..

어느 아침의 일상

아침 일찍 일어나, 분유를 먹은 아이를 재우는 아내 옆을 나와, 아침밥을 올리고 서재로 와, 아주 오랜만에 턴테이블에 비틀즈의 '애비 로드'를 올린다. 그 때 창으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눈이 막막해지고 보이지 않는 몇 초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불만이 있고 그걸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 * 그리고 사무실. 어제 남기고 간 커피를, 1층 반대편 끝에 있는 화장실 세면대에 가 버리고 컵을 씻고 출근하는 직장인들 사이, 복도와 현관을 걸어 사무실로 돌아온다. 바쁜 21세기. 테일러식 모더니즘은 극단으로 치달아, '시간 관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현실 앞에서 몇 개의 노래와 커피는 사소한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구수한 로컬리티 보사노바는 올해 최고의..

아침

조금의 집중력이라도 남아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결국 책상 앞에 앉아만 있을 뿐, 아무 짓도 못했다. 어차피 내 인생이라는 게, 시도만 좋을 뿐, 결과는 참혹했으니까. 하지만 구름 뒤에서 끊임없이 구름을 태우는 태양처럼, 나도 그렇게 참혹한 결과를 밀어내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먼저 태워질 테니. 결국 '발악'인 셈이다. 베르디의 '레퀴엠'을 듣고 있다. 새벽에 일어났으나, 조금만 더 잘까 하는 안일함으로 늦잠을 자고 말았다. 영어학원 강사가 속으로 얼마나 욕을 할까. 다음 주 수요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간다.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칼스루헤에서 열리는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하기 위해서. 규모도 꽤 되고 유럽의 신생 아트페어들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아트페어로 알려져 있다. 어제는 작품 ..

아침

아침 Anycall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는 8시부터 시작된다. 얼마 전까지는 7시에 커지는 TV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TV는 아직도 어김없이 7시에 켜지고 있지만, 지친 어둠의 그림자, 한때 뮤즈들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살결이였던 그 그림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서른 살의 힘없는 청년을 벗어나게 하기엔 TV는 이미 그 능력을 상실했다. 실은 아침이라는 시간 위의 존재는 세상의 모든 알람들이 울릴 때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예전 닭이 울었던 일을 자명종 시계가, 인공지능 TV가, 삐삐, 핸드폰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종종 세상의 무능력함을 해결해주기 원하는 이들에 의해 창설된 보통교육 시스템, 이제는 세상의 무능력함에 의해 무능해진 보통교육 시스템, 그것이 선사하는 저주스런 폭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