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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내가 글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할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닐 것임을 나는, 어렴풋하게 안다. 마치 그 때의 사랑처럼. 


창백하게 지쳐가는 왼쪽 귀를 기울여 맥주병에서 투명한 유리잔으로, 그 유리잔이 맥주잔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듣는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음악은 오래되고 낡은 까페 안 장식물에 가 닿아 부서지고, 추억은 언어가 되어 내 앞에 앉아, "그녀들은 무엇을 하나요?"라고 묻는다. 그러게. 그녀들은 무엇을 할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할까. 콜드플레이가 왔다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이는 시간을 먹고 나는 청춘을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는 사이, 많은 것들을 잃고 얻었다. 노트 한 장을 찢어 길게 반으로 접어, 한 쪽에 내가 잃은 목록을, 한 쪽에 내가 얻은 목록을 적는 사이, 계절이 가고 계절이 오고, 너무 하얀, 그녀의 창백한 볼을 닮은 눈이 내린다. 반쯤 마신 맥주 잔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쌓인다. 쌓인 눈 위로 서로 손을 마주 잡은 그들이 잔 위로 걸어나와 대학로 거리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취해가던 금요일 밤, 다행히 나는 그녀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실은,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녀들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만날 수 없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 찬란하던 고통을 받지 않아도, 그렇게 투명하던 눈물도, 끝없는 저주의 언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볼 수 없을, 하얀 잔 위로 그 발자국처럼, 그 쓸쓸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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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가 이루어진 것도, 내 일생동안 이끌고 다녀온 이 권태에 처음으로 전염된 것도, 나의 고통이요 나의 쾌락인 이 슬픔에 물든 것도 콩부르의 숲에서였다. 그 곳에서 나는 내 가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다른 가슴을 찾아헤맸다. 그 그곳에서 나는 내 가족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 곳에 그의 이름이 복권되고 집안의 재산이 쌓이기를 바랐다. 시간과 혁명이 씻어간 또 하나의 악몽. 여섯 형제 중 남은 사람은 셋. 형과 쥘리와 뤼실은 이제 없고, 어머니는 고통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재는 무덤 속에서 파헤쳐졌다."


"혹 나의 작품들이 내 죽은 뒤에 남게 되고 내가 이름을 남기게 된다면 어느 날 <회고록>의 인도를 받아 어떤 여행자는 내가 그린 장소들을 찾아오리라. 그는 성(城)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거대한 숲은 찾아도 없을 것이다. 내 꿈의 요람은 사라져버렸다. 바위 위에 홀로 서 있는 성탑만이 그 종탑과 사귀고 폭풍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던 옛 친구들인 거대한 참나무 숲의 죽음을 울고 있으리라. 그 성탑처럼 홀로 남은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해주고 나를 보호해주던 내 가문이 내 곁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인생은,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낸 성탑들처럼 견고하게 땅 위에 지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그의 손으로 세운 성만큼 폭풍에 견디지 못한다." 

- 샤토브리앙(Francois-Rene de Chateaubriand) 


* * 


김화영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에서 인용된 샤토브리앙의 글이다.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대단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샤토브리앙이지만, 다른 나라로의 소개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듯 싶다. 그의 대표작인 <아탈라>, <르네>는 번역되었으나, 현재는 품절이고. 




아딸라 - 르네
샤또브리앙 저/신곽균 역

영역본을 찾아보았으나, 3권 정도 검색되었다.



 

- 샤토브리앙, <Atala / Rene>



-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로의 회상Memoirs from Beyond the Tomb>



읽고 싶은 건 역시, <무덤 너머로의 회상>이다. 학생 시절이었다면 어떻게든 불어로 읽으려고 했을 텐데, 돌이켜보니, 영어라도 제대로 해놓고 불어공부를 할 걸 하는 후회가 앞선다. 지금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역본을 찾아보고 있으니. 


프랑소와 르네 드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로의 회상>은 30년 걸쳐 씌여진 회고록이다. 소설가이자 외교관이었으며 1786년에 태어나 1848년에 죽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프랑스 귀족의 몰락, 프랑스 대혁명, 왕정복고, 나폴레옹 ... 격변기를 보냈고, 그 이야기들이 <무덤 너머로의 회상>에 담긴 것이다.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 샤토브리앙을 읽는 독자들은 많지 않다. 


위에서 소개한 책들 말고 국내 번역된 책들이 있으나, 발췌번역이거나 요약본이라 다소 부족해 보인다. 


* *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보게 된 정보 하나, 언어 사용인구로 따져, 한국어가 13위였는데, 순위에 민감한 사람들이 한국어의 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읽었는데, 실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어로 된 양질의 정보가 얼마나 많고 이 정보들에의 접근이 얼마나 쉽고 편리한가다. 따져보면 한국어로 구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는 많지 않다(영어와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긴 하나, 비교는 늘 최고와 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이 사회에 조금이나 기여한 게 있다면, 한국어로 된 정보에 이 블로그가 조금의 도움이 되었다는 것밖에 없는 듯해 좀 씁쓸해졌다. 


정부 차원에서 한글 번역 - 여기에는 외국 서적에 대한 번역 뿐만 아니라 한문으로 된 국문학 서적에 대한 번역도 포함되어야 한다 - 에 대한 다양한 공적 사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늘어나야 한다,고 적어보지만, 그게 가능할까 싶다. 기업은 돈 되는 일에 매진하고 정부는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고 나중에도 돈이 되지 않으나,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기초 사업에 힘을 써야 한다,고 적어보지만, 이 나라 정부 관료나 정치인이 이런 이야기 한 적을 본 적도, 읽은 적도 없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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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연극론 
<원제: Theatre et son Double(연극과 그 이중)> 
앙토넹 아르토 Antonin Artaud 지음, 박형섭 옮김, 현대미학사 



이젠 1년에 연극 한 편 보기 어려워졌다. 연극이 아직 살아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 때 연극 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소설이 등장하기 수십 세기 전, 영화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 오직 서사시만이 구전으로 떠돌아 다닐 때, 그 때에도 연극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연극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거리가 먼가(아니면 우리 모두가 배우가 된 것일까? 나를 속이고 가족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가면을 쓴 배우가 된 것일까? 그래서 연극,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연극을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닐까?). 

앙토넹 아르토(1896 - 1948).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연출가, 연극이론가였다. 하지만 그는 연극 연출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가 죽은 후에야 연극 이론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의 연극이론을 한 단어로 옮기자면, '잔혹극'(Theatre of Cruelty)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연극 동영상을 잠시 보자. 


(* '미성년자 관람 불가'입니다. 다소 자극적이고 불쾌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르토가 쓴(혹은 연출했던) 작품인지 찾아보았으나,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잔혹극(Theatre of Cruelty)가 이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너무 자극적이긴 하네요.)



위 연극에서 아래 두 개의 지침이 반영되었는가? 글쎄다. 연극 연출에서 이해되는 바, '물질화'라든가 '말과 구별되는, 별도의 언어'가 무대 위에서 보여졌는가를 따져 묻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하지만 확연히 다른 이 연극. 아마 한국에선 실제로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 


1. 조형적이면서 시각적으로 말(parole)을 물질화하기.
2. 말과는 별도로 무대 위에서 발음되고 의미되는 모든 언어, 또는 공간에서 표현되는 모든 것 혹은 공간에 의해 해체되거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언어.
- 104쪽 
 

아르토가 이야기하는 바 잔혹극의 지침인데, 다소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이에 이 책의 역자인 박형섭 교수의 설명을 인용하는 편이 좋겠다.  


아르토가 ‘잔혹연극’이라고 명명하는 ‘연극’은 서구의 문학적 연극을 지양하고 동양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연극으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즉 희곡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극이 아니라 무대 연출에 중점을 둔 물질언어의 발명에 몰두하는 연극이다. 따라서 극작가보다는 무대 형상화에 종사하는 모든 연극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배우의 연기는 물론 연출가의 관점, 무대장식가의 미적 능력, 심지어는 극장의 구조까지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가령 배우는 매순간 창조의 상태에 놓여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살아있어야 하며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라야 한다. 고정된 언어의 반복적 구사가 아니라 울림과 생명이 용솟는 고함과 같은 활동적인 말표현이라야 한다. 그의 이중(double)의 개념은 여기서 비롯한다. 배우는 진정한 연극 속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역자 서문 중에서 



말(언어)에 대한 반감(혹은 반대)은 포스트모더니즘, 즉 20세기 후반의 산물이 아니다. 따지고 든다면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20세기 전반기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대한 반감/반대/한계에 대해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여기에 앙토넹 아르토도 포함될 것이다. 


문명인은 하나의 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행위가 생각과 일치되기는 커녕 오히려 행위에서 생각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조리한 상태로까지 확장된다. - 15쪽 


그는 문명, 서구문명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발리 연극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극작가가 쓴 희곡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 모든 것이 가지는 가능성을 극단까지 추구하며 극적인 순수함을 이끌어내는 연극, 이를 아르토는 잔혹극이라고 명명한다. 


'잔혹 연극'은 연극에 정열적이고 경련하는 듯한 삶의 개념을 주기 위해 창조되었다. 잔혹성은 강렬한 엄격함이나 무대적 요소들의 극단적인 응축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잔혹 연극은 잔혹성에 의존하는 연극인 것이다. 

잔혹성은 필요한 경우 피를 부를 것이지만 체계적으로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결국 잔혹성의 의미는 무미건조한 정신적 순수함의 개념과 뒤섞여 있다. 이 정신적 순수함이란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가를 삶에 지불하는 일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순수함이다. 
- 181쪽 





출처 - https://theatrerun.wordpress.com/tag/antonin-artaud/  



아르토는 발리 연극에서 잔혹극의 단초를 발견한다. 


(...)발리 연극의 첫 공연은 춤, 노래, 판토마임, 음악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환영과 공포의 시각 하에서 연극을 자율적이고 순수한 창조적 차원으로 되돌려 놓았다. - 81쪽 



아래 영상은 발리 전통 연극의 일부다. 그가 찾으려고 했던 바가 무엇이었을까? 






정열의 '시간'(temps)에 관한 비밀을 체험하는 것, 조화로운 율동을 조절하는 어떤 음악적 '템포'(tempo)를 체험하는 것, 그러한 것들이 바로 연극적 양상이다. 

- 194쪽 



이 책을 전문적인 연극 이론 서적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마치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인류학 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전에 이 책은 탁월한 시적 산문집이며,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 대안을 찾는다는 점에서 문명 비평서로도 읽을 수 있다. <<슬픈 열대>>가 20세기 최고의 기행산문집들 중 한 권이듯이. 

아르토가 이 책에서 보여준 시적인 문장, 극적인 설득력, 그리고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읽히고 영감을 주는 이유가 될 것이다.    



연기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언어처럼 암호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동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운동은 하나의 리듬에 맞추어질 것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극단적으로 유형화됨으로써 그들의 제스처와 얼굴 표정, 의상 등은 조명과 같은 특징을 띨 것이다. 

- 145쪽 



2014년 봄부터 읽기 시작해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의외로 단단하고 압축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놓쳐 읽을 수 없었고 어떤 문장 앞에서는 한참을 서성거려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앙토넹 아르토의 시도가 20세기 후반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을까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몇 권 되지 않을 듯 싶다. 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잔혹연극론 - 10점
앙토넹 아르토 지음, 박형섭 옮김/현대미학사



별첨) 


아르토에 대한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 대한 평점도 제법 높다. 아래 youtube 동영상으로 영화의 도입부를 잠시 볼 수 있다. 



http://www.amazon.com/compagnie-dAntonin-v%C3%A9ritable-histoire-dArtaud/dp/B007KDA3B6

영화 정보 : http://www.imdb.com/title/tt0106810/ 






2) 아르토는 발리 연극에서 연극의 순수함을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고대 연극의 특징들 - 제의에서 시작했다는 점, 음악이 연극에 포함되었고 가면을 쓰고 나온다는 점 - 에서, 아르토가 이야기하는 바 잔혹극은 일종의 고대적 방식으로의 회귀, 혹은 언어 이전 시기로의 복귀 같은 게 아닐까 싶어 한 번 자료를 찾아보았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적 방식으로  연극 연출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아래 연극은 모든 부분에서 고대 그리스적 방식을 적용한 것은 아닌 듯싶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에서 재현한 영상물을 찾아보았으나, 없어 아래 연극 영상을 올린다. 하지만 아래 설명에도 있듯이,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다. 

(아마 한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연극이겠지. ㅡ_ㅡ;)




Filmed by the famed British actor/director Sir Tyrone Guthrie, this elegant version of Sophocles' important play adds a brilliant stroke--the actors wear masks just as the Greeks did in the playwright's day. The story of Oedipus' gradual discovery of his primal crime--killing his father and marrying his mother--has influenced many of the great plays, films and books of all time. When this landmark film production of one of the great dramas ever appeared, it was hailed from all corners: "Spectacular and awesome...this film is a jewel of great price!" raved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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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을 깼다. 메일을 확인하고 앞날에 대한 걱정을 잠시 했다. 나이가 들수록 걱정만 늘어난다. 이 시대 탓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면 원래 그런 건가, 내가 유독 그런 건가, 이런 잡념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잡은 책이 조중걸의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다. 나에겐 일종의 복습이고 반복이 되겠지만, 돌이켜보니, 서양미술의 역사에 빠져 공부하던 시절이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아리스토텔레스가 군사전문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를 '불구'라고 조롱하면서 전인적 인간을 이상으로 삼고,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다윈Charles Robert Darwin과 헉슬리Thomas Henry Huxley에게 야유와 경멸을 퍼부어대고, 현대의 강단 철학자들이 감상적이고 우아한 어구를 인용하며 학생들을 헛된 이념 속에 가둬두려 하는 것은 모두 그들이 기득권자이기 때문이고 또 자신들의 기득권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56쪽) 




몬드리안의 <구성>은 이러한 이념의 회화적 대응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재현적 요소도 없다. 그것은 단지 서로 다른 네모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추상적 창조물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어 모방으로써의 예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이제 창조로써의 예술만이 남게 되었다. (307쪽) 




결국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고, '언어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비트겐슈타인)이니, 추상적 기호 이외에 남는 건 없었다. 사랑도 그랬고, 그녀도 그랬던 셈이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가 실재를 압도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어쩌면 내가 지금 진짜라고 믿는 것들은 다 시뮬라크르인지도 모르겠다. 실은 내가 나비였고, 인간이 된 꿈을 꾸는 것일게다.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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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망각 - 10점
모리스 블랑쇼 지음, 박준상 옮김/그린비



기다림 망각 L'attente L'oubli 
모리스 블랑쇼(지음), 박준상(옮김), 그린비 



장르가 불분명한 이 책은 모리스 블랑쇼의 일종의 에세이다. 일종의 연애담으로 읽어도 될 것이며, 문학론으로 읽어도 되고, 인생에 대한 태도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차피 모리스 블랑쇼 연구자가 될 턱 만무하고 어려운 철학 용어나 문예 이론을 들이민다고 해서 이해될 리도 없다. 이 책 속의 그도 그녀를 향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그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죽고 사라져야만 비로소 의미가 드러나는 법이다. 망각. 
그리고 그 드러나는 의미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언어이거나 문학이거나 예술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와 그녀를 통해, 모리스 블랑쇼가 마주 했던 언어와 문학에 대한 일종의 고백이자, 연애담, 그리고 이론적 방향에 대한 개요이다. 그래서 연구자에겐 꽤나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것이고 일반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문장들로 이루어진 연애 아포리즘이 될 수 있다. 

책은 읽기 편하고 내용은 어렵지 않다. 연구자에겐 어려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리스 블랑쇼가 궁금했던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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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리더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존 F. 케네디는 "함께 별을 탐험하고, 사막을 정복하며, 질병을 뿌리 봅고, 해저 깊이 탐색하고, 예술과 상업을 장려합시다"와 같이 탐사, 별, 사막, 해저 등과 같은 이미지 중심의 단어를 사용한다. 반면 낮은 리더십 평가를 받은 지미 카터는 "최근 우리의 실수를 기회로 국가의 기초 원칙으로 되돌아가 헌신하는 기회로 삼도록 합시다. 우리가 정부를 경멸하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와 같이 거의 개념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연구팀은위대한 리더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리더의 비전을 자신의 마음에 그릴 수 있도록 소통하며, 따라서 이미지 중심의 단어를 더 많은 사용한다고 결론지었다. 

- 김호(더랩에이치 대표), '개념중심의 단어 Vs. 이미지 중심의 단어' 

(살림출판사에서 나오는 매거진 1/N 창간호 중에서 인용)  



확실히 이미지 중심의 단어로 묶어 이야기할 때, 호소력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비유나 사례를 들어 전달하곤 하지만, 실은 그렇게 이야기할 기회란 거의 없다. 왜냐면 실제 업무에서 생기는 대부분 경우는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호 대표의 저 언급은 관리자 급 이상이라면, 늘 마음 속에 두고 새겨야 할 것이다. 일을 시키기란 쉬워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더구나 마음을 얻고 동기 부여를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본은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이야기하는가이다. 





* PT의 달인, 스티브 잡스도 여기에 능했다. 

2012/01/16 - [Business Thinking/조직/리더십] - 조직에서의 언어의 중요성: 스티브 잡스의 탁월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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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상냥한 오월의 바람이 녹색 이파리 끝에 닿자, 이미 무성해진 아카시아 잎들이 놀라며, 스치는 바람에게 지금 칠월이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반팔 차림의 행인은 영 어색하고 고민스러운 땀을 연신 손등으로 닦아내며, 건조한 거리를 배회하고, 길가의 주점은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며, 다가올 어지러운 마음의 밤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이야기했지만,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12년 5월 어느 날, 그 누구도 듣지 않고 말만 했다. 말하는 위안이 지구를 뒤덮었다. 


아스팔트 아래 아카시아 나무 뿌리가 바람에 이야기를 건네었지만, 땅 위와 아래는 서로 교통이 금지되었고, 학자들은 그것을 모더니티로 담론화시켰다. 


 


(이제서야 로르카의 시가 읽히다니... 1996년도에 산 시집인데..)




연 가 





내 입맞춤은

깊이 틈새 벌린 석류,

네 입술은 

종이 장미였다네.


눈 덮인 들녘 땅.


내 양손은 

모루를 향한 무쇠;

네 육신은 

종소리 울리는 낙조였다네.


눈 덮인 들녘 땅.


구멍난 푸른 빛 해골 속에

종유석은 

사랑하는 당신 모습을 만들었다네.


눈 덮인 들녘 땅.


철없던 내 꿈들은

곰팡이가 가득 피고,

솔로몬 같은 내 고통은

달에까지 사무쳤다네.


눈 덮인 들녘 땅.


지금 나는 나의

사랑과 나의 꿈을

정상을 향하며

신중히 길들이네

(눈 없는 어린 말들)


눈 덮인 들녘 땅. 


- 가르시아 로르카, 1921년 (김현창 옮김, 청하,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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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페퍼의 <<권력의 경영>>(지식노마드, 2008)를 다 읽었다. 이 책에서 제프리 페퍼는, 사람들이 직접 드러내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주제 ‘권력Power’에 대해 흥미로운 시각과 통찰을 선사한다. 나 또한 '권력'이나 '정치'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책에게 소중한 독서 경험을 주었다. 

권력의 경영
제프리 페퍼 저/배현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따로 올리기로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예로 등장한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애플Apple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며칠 전 나는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렇게 적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1992년도에 출판된 제프리 페퍼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자주 사례로 등장하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 1980년대 잡스의 창의성과 리더십은 제대로 먹히지 못했다. 그런데 2000년대 그의 창의성과 리더십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약 20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 그렇다. 그 사이 세상이 변했고 사람들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잡스가 변한 것일까. 누군가가 여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스티브 잡스에 대한 매니아적 일방적 찬사가 아니라 말이다. 이 책에서는 자주 존 스컬리John Scully와의 권력 게임에서 패배한 스티브 잡스에 대한 내용이 전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성공적인 사례로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사례를 한 번 옮겨볼까 한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아래 사례는 그의 연설 스타일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 책의 15장 ‘상징적 행위: 언어, 행사, 배경’에서 스티브 잡스가 가지는 탁월함을 보여주는 한 예가 있어, 인용하고자 한다.


그 무렵, 미 대륙 저편의 회사에서도 언어의 중요성과 위력을 보여주었다. 1983년의 가을은 애플컴퓨터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그해 9월 마지막 주 <비즈니스 위크> 커버스토리는 IBM을 퍼스널 컴퓨터 전쟁의 승자로 선포했다. 애플 III는 실패했고, 리사는 잘 나가지 않았으며, 심지어 애플II도 판매량이 떨어졌다. IBM이 피넛을 - 나중에 피시주니어로 이름이 바뀐다 - 출시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영업 조직은 걱정에 휩싸였고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더욱이 컴퓨터 판매에서는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기 마련인데, 이는 신뢰 상실이 판매 감소로 이어지고, 판매 감소가 더 큰 손실로 이어지며, 더 큰 손실은 신뢰 하락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순환이 사업 전반을 하수구로 물이 흘러 내려가듯 만들기” 때문이다. 가을 영업 총회에서는 영업 조직과 독립 배급업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잡스와 머레이는 건물 바깥쪽 복도에 엎드린 채 잡스의 연설문을 작성했다. … 매킨토시는 전자를 엄격한 논리 법칙에 따라 조작하도록 설계된 실리콘과 철의 인공적 결합물이다. 그것의 호소력은 논리를 초월했고, 잡스의 강렬한 연설도 마찬가지였다. 잡스는 이렇게 설파했다. 매킨토시는 단순한 ‘생산도구’가 아니라 인간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기계이다. …… 이것은 신화적 체험이다. 당신이 그것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 당신이 거기에 ‘반응’하는 데 필요한 것은 - 오직 당신 자신의 직관 뿐이다. 또한 그것을 팔기 위해, 잡스가 할 일이란 오직 감정을 갖고 노는 것뿐이었다.


매킨토시를 소개한 1984년 1월의 연례 회의에서도 반복된 잡스의 연설은 IBM이 저지른 실수, 제로그래피 즉 건식 전자복사의 특허권을 사들이지 않은 것, 미니 컴퓨터나 퍼스널 컴퓨터 둘 중 아무 것도 진지하게 여기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연설문은 퍼스널 컴퓨터 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맞았는데도, IBM이 독식하려는 야욕을 품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빅 블루가 정보 시대를 통째로 지배할까요?” 잡스가 마침내 외쳤다. “조지 오웰이 결국 ‘옳다는’ 말입니까?”
“아니요!” 사람들이 소리쳤다. … … 사람들이 그러고 있던 와중에, 천장에서 거대한 스크린이 내려왔다. 60초 짜리 단편 블록버스터(유명한 ‘1984년’ 매킨토시 광고)에서 드라마가 펼쳐졌다. … … 바로 그 순간 영업 총회는 일변했다. 온갖 패배주의는 사라지고 행복감이 자리를 잡았다.


사족을 달자면, 잡스는 파란색 로고로 상징되는 IBM의 별명 ‘빅 블루’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한데 엮어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이다. 영업 총회와 쿠퍼티노에서 열린 연례 회의에서 잡스가 그토록 대가답게 사용한 상징 관리로 인해 애플의 시장 지위나 테크놀로지, 실질적인 은행 잔고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정작 변한 것은 조직이었다. 직원들, 그리고 경쟁자들과 잠재 고객들이 조직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 제프리 페퍼Jeffrery Pfeffer, <<권력의 경영 Managing with Power>>, 배현 옮김, ㈜지식노마드, 2008년, pp 409 - 411



위 인용된 내용 중에 다시 인용된 부분(흰 색 박스)의 책은 아래와 같다.

- Frank Rose, West of Eden: The End of Innocence at Apple Computer (New York: Viking Penguin, 1982)



프랭크 로즈Frank Rose는  Wired의 객원편집자로, 최근 <<콘텐츠의 미래 The Art of Immersion: How the Digital Generation Is Remaking Hollywood, Madison Avenue, and the Way We Tell Stories >> (최완규 옮김, 책읽는수요일)라는 책이 번역되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 애플 컴퓨터의 '1984년' 광고 



* 아래 링크는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 대한 아주 좋은 아티클이다. 일독을 권한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경고:함부로 따라 하다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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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뒤에야 김경주라는 시인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하긴 대학 졸업하고 난 뒤, 직장생활을 하고 난 뒤, 시집을 샀던 적이 몇 번 되지 않았을 테니... 요즘 나오는 시인이나 소설가에겐 흥미를 잃은 지 오래... 그러다가 읽게 된 김경주. 

아래 글은 얼마 전 휴간으로 들어간 브뤼트 마지막 호에 실렸다. 예전부터 한 번 블로그에 옮기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올린다. 이런 글 참 오래만이었다.  

언어는 폐허 위에서 생겨난다. 언어의 폐허로부터 시는 태어난다. 시는 자신의 폐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는 폐허의 속살이다. 시는 언어와 폐허가 교미한 흔적이다. 시는 언어의 폐허를 채운다. 언어는 인간의 폐허를 망각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가서 발화된다. 한 인간의 사랑이 된다. 혁명이 된다. 시가 된다. 언어는 지상의 폐허를 목격하고 증언하지만 폐허를 바꿀 수 없다. 언어는 폐허의 잔해이기 때문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폐허 또한 누군가의 입안에서 흘러나와 누군가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폐허를 감추기 위해 시를 쓰기도 하지만 폐허 뒤에 숨어서 언어를 남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폐허에 숨어 살며 수많은 언어로 귀향을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때로 그것이 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언어 뒤에 숨어있는 폐허를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 폐허는 스스로의 언어를 찾아 시가 되기 때문이다. 시가 되려거든 타인의 폐허를 함부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 시가 되려거든 자신의 폐허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세상의 곁으로 가서, 폐허가 새로운 지상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다리 없는 새가 폐허 위에 내려앉아 시가 된다. 
- 김경주, '폐허의 복화술', 2011년 7월 브뤼트(B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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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추장스러운 퇴근.길. 먼 길을 돌아 강남 교보문고에 들려, 노트를 사려고 했다. 몇 권의 빈 노트를 뒤적이다가 그냥 나왔다. 노트 한 권의 부담을 익히 아는 탓에, 또 다시 나를 궁지로 몰고 싶진 않았다. 

토요일에는 비가 내렸고 일요일은 맑았다. 지난 주 세 번의 술자리가 있었고, 오랜만의 술자리는 내 육체를 바닥나게 했다. 늘 그렇듯이 회사에서의 내 일상은 스트레스와 갈등 한 복판에 서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고, 내가 느끼는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만, 그럴 형편도 되지 못했다. (다만 지금 내 경험이 시간 흐른 후에 내 능력의 일부로 남길 바랄 뿐)

모든 이야기는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텍스트는 없고 컨텍스트만 있을 뿐이라고들 하지만, 결국엔 텍스트만 있고 컨텍스트란 없다. 포스트모던의 끄트머리에서 우리는 모나드로 남을 텍스트가 자기 자신임을 확인하게 된다.
 
스트레스는 내 건강을 위협하고 내 영혼을 힘들게 한다. 언어의 휴식처는 이젠 없고 캔버스 속 색채의 유혹은 이젠 아무런 호소력을 가지지 못한 2011년의 가을.

지난 날의 추억은 거리의 어둠 속 술 자리 안주만도 못하고 ... 오직 불투명한 오늘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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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이제이북스



이제 책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도 잘 찾지 않는 책인지, 서고로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언어가 소리없이 죽어가는 현대 세계에 대한 경고장과도 같았다.

"한 언어의 어휘는 세상을 이해하고 지역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한 문화가 이야기하고 분류하는 사물들의 목록이다."


그리고 이 목록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실은 언어의 죽음은 근대화(혹은 계몽)이라는 미명 아래 강제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죽음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고, 이 책은 종종 가슴 아픈 풍경을 담담하게 적어 나간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 일은 비생산적이고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일이다. 소수의 사람들 - 몇 명에서 몇 천명, 몇 만명이 사용하는 언어을 보존하자고? 가령 제주 방언을 비롯한 한국의 사투리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고 있는데 말이다. 여기에서 표준어 정책의 폭력성이 드러난다. 왜 사투리로 뉴스 방송을 하면 안 되는가?

그리고 특히 전세계적으로 영어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지만, 이를 누가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식인들 조차도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키우자고 말하지만, 실은 현대 문명은 다양하다거나 창의적이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문명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언어라는 거울을 통해 현대 문명의 폭력성을 기록하는 보고서와도 같다.
 


[관련 글]
2011/08/17 - [예술의 우주/비평] - 사라지는 언어, 사라지는 세계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8점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이제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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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과연 이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걸까?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인간은 맨 먼저 무엇을 할까?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우리 인간은 그 새로운 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설명한다. 그러다가 그 설명하기에서 막히면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만들어 붙인다. 즉 이 세상은 우리의 언어와 같이 보이고 표현되고 구성되어 있다. 이 세계는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을 위시한 현대 철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보고 경험한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고 옮긴다. 딱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만큼만 옮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는 없는 세계이다. 종종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가령 누군가가 오백년 전에 '아파트'와 같은 주거 시설을 생각했을 수 있다. 그 때는 '아파트'라는 단어가 없었으므로,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에 설명을 붙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표현할 수 있는 세계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단어나 개념, 표현의 창시는 주로 예술가의 몫이다. 그들의 주도로 이 세상은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진다. 또는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는 푸른 색도 있고 푸르딩딩한 색도, 푸르스름한 색도 있지만, 이런 단어가 없는 나라에서는 없는 색이다. 이와 반대로 그 나라에는 있지만, 우리 나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하나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 말에서 다른 말로의 완벽한 번역이란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에 다른 문화를, 다른 삶의 태도를, 다른 가치관을 가진다. 그리고 다르게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심지어 동물 울음소리도 다르게 듣고 다르게 표현하지 않는가.

각각의 언어마다 그 언어에 대응하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는 다른 나라와 겹치지 않는 특별한 영역이 존재한다. 그 영역은 우리 인류가 확장할 수 있었던 세계 인식의 한 극점을 이루고 있다. 사용하고 있는 언어만큼만 세계를 바라보고 그렇게 살아간다. 

고유한 언어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언어를 보존해야 하고 그 언어를 계속 사용하고, 뛰어난 예술가들이 나와서 그 언어로 새롭고 창조적인 언어적 구조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단일 언어로 향해 가는 듯 싶다. 그러면서 우리 인류는 전체적으로 한 발 한 발 뒤로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순간에서 우리는 한 때 알고 만지고 느낄 수 있던, 경험했던 어떤 세계를, 어떤 영역을 잃어버리고 있다. 

딸기님의 <기후 변화로 언어가 사라진다>는 그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그런 예는 역사적으로 무수하게 많았다. 이에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는 <언어의 죽음>이 있다. 이 외에 언어의 생성, 소멸에 대한 책들은 여러 권 나와있다.


언어의 죽음
데이비드 크리스털 저/권루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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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어의 죽음 쌓아두고 못 보고 있어요... ㅠ.ㅠ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인가, 그 책도 아주 좋아요.

    • <사라져가는 목소리들>도 한 번 찾아봐야겠군요. 저도 쌓여있는 책들.. ㅜㅜ.. ...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은 이미 절판되었네요. 쩝... 거참, 절판된 책 reprint하는 서비스나 ebook 재판매 서비스가 필요할 때입니다.


세상 속에 자리할 수 없는 불가능성들이 존재하는 황야에서의 고독.
문학은 우리를 그러한 황야로 이끈다. 문학은 언제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한다.
- 레비나스


한참 머뭇거렸다. 마치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와 내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를 담아낸 듯한 저 문장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사물들을 말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존재로 하여금 메아리가 울리는 근원적인 언어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일 게다. 사물들의 존재는 작품 속에 명명된 것이 아니라 말하여지는 것이며, 말들은 사물들의 부재를 가리킨다.
- 레비나스


그렇다면 한국어 문학 중에 그런 문학이 있었던 걸까?

오늘 잠시 들른 서점에서 모리스 블랑쇼 선집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기분이 묘했다.
블랑쇼.
매혹적이면서 기묘한 고유명사이다.
 
침묵은 언어를 낳고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낳는다. 그리고 그 곳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 영혼의 심연. 그리고 어두움. 내가 꿈꾸는 언어가 있다면 밝혀지지 않은 어두움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지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
에마누엘 레비나스 저/박규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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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이 있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보면 참 대단해요. 전 평생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런건 타고 나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부끄럽지 않은 소설 하나 쓰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요.

    •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소설 하나 쓰는 목표를 가지고 노년을 향하는 것도 꽤 멋진 소망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런 마음(꿈)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 그걸 하고 있지 않을까요.~






잠시 철길 너머 맞은 산등성이를 바라 보았다. 낮게 내려온 흰 구름은 금방까지 내렸던 굵은 빗줄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창원에 내려갔다 왔다. 주말에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 제사라고 해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토요일 아침에 내려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는 동안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나는 멈춰 있고,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하는 것 같다. 에고이스트여서 그런 걸까.

아내는 시댁 분위기에 한결 적응한 모습이었고, 어머니께선 며느리가 마음에 드시는 듯하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여동생 내외가 간밤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나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 이야기 사이로 언어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찔아찔하던 감정적 혼란도 한결 줄어들었다.

하지만 감정적인 어떤 것들은 소화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쌓이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세상은 강요된 평화스러운 침묵과 가까워져 있고 나도 그런 침묵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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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 책세상


1.
1년 전의 메모를 꺼내 읽는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두 세 번 읽어야 할 책이었으나, 한 번 읽었고 읽은 것을 정리하다가 그만 두었다. 결국 그 정리는 포기하고 읽은 지 1년 만에 간단하게 읽은 바를 적어본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로, 현상학에 있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특히 그의 예술론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는 그 메모의 일부분이다. 내가 쓴 것보다 인용한 것이 많다. 원래는 더 많았다. 퐁티의 글이 짧고 압축된 것이라, 어설픈 리뷰도, 상세한 설명도 어려웠다.

2.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다는 것, 느낀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의식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의식은 내가 경험한 세계를 다만 정리하고 배치해서 ‘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의식하기에 앞서서 세계에의 체험과 감각이 있고 우리의 실존은 ‘생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이며, 매순간적인 체험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서서 이미 존재하는 세계 속에 사는 ‘나’는 의식과 반성의 결과로 나타난 의미와 관념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정확한 범위 내에 이루어지는 ‘학문의 세계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세계 속의 ‘나’는 바로 신체를 가진 나로서, 몸 전체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메를로 퐁티는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순수 의식 대신에 신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체적 실존을 말하며, 신체가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세계를 ‘지각된 세계’라고 부른다.
신체는 감각을 통해서 외부에 있는 것들을 지각하고 세계와 교류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에 따르면 신체는 세계를 향한 통로이며, 지각은 곧 세계와의 소통 방식이다.
- '철학 용어 용례 사전', 박해용, 심옥숙 지음, 돌기둥출판사, 2004. 176-177.



3.
책에서 몇 문장을 옮긴다.

사유라는 것은, 사유에 적합한 단어를 찾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문장이 옮기려고 애쓰는 일종의 관념적인 텍스트로 존재하고 있다. (23쪽)

언어는 기호와 의미 간의 대조표를 전제하지 않고 세상의 어린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비밀들을 드러내어 가르쳐주는, 완전한 드러냄monstration이다. 언어의 애매함, 집요한 자기 지시, 스스로를 향한 방향 전환과 회귀 등은 언어에 정신적인 힘을 불어넣어준다. 언어는 차례로 사물을 의미로 바꾼 후, 그 안에 사물이 머물 수 있도록 하나의 우주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표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될 것이고, 결국 모든 언어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소위 침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25쪽)

왜냐하면 기호는 자신의 의미가 드러남과 동시에 사라질 것이고, 사유는 사유들 - 기호를 통해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유와, 지극히 명확한 언어로 형성하려는 사유 - 외에는 다른 어떤 것과도 만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6쪽)

회화처럼 인간과 세계와의 생생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를 무언으로 표현하고, 수많은 해석을 내포해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지 못하는 침묵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19쪽)



4.

이 짧은 책은 퐁티 철학에 대한 충분한 개론서이면서 퐁티의 예술론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한 번 읽기에는 부적합한 책이었으며, 두 세 번 읽고 노트해야 하는 책이었다.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 10점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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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were silent for a while.
"Beautiful day," she then said through a sigh


숨쉬기 조차 힘든,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더위와 땀, 거친 숨소리와 낯선 화장품 향과 향수 내음이 실내 에어콘 소리와 뒤범벅이 된 지하철 2호선 객차 안에서 서서, 소설을 읽다가 한참을 중얼거렸다.

내 기묘한 일상이 너무 어색한 요즘이다.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환상 소설의 한 토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낯선 언어의 쓸쓸한 반어는 내 시선에서 한참을 머문 후, 다음 페이지로 향했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어느 수요일의 정오는 슬프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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