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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보편성이란 우리의 출신배경, 언어, 국적이 타자의 존재로부터 자주 우리에게 보호막이 되어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확실성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성은 또한 대외 정책이나 사회 정책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야기된 적의 침략에 대해 비난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 정부가 더 약한 집단을 침략할 때 똑같이 비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언행을 규정하는 어떠한 법칙도 알지 못한다. 세속적 지식인들에게는 확고한 인도자로서 경배하고 숭배해야 할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최유준 옮김, 마티) p. 11 


나이 들어 뒤늦게 알게 되는 학자가 있다면, 에드워드 사이드이다. 대학 시절엔 그저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만, 포스트모더니즘 열풍 속에서 읽혀진 학자들 중 한 명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그는 그런 유행과는 무관한 전통적인 인문주의자였다. 몇 년만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위 문단을 읽으면서 잠시 멈추었다. 


보편성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보수적인 느낌이 풍기지만, 21세기 한국에선 저 단어마저도 종북좌파로 오해될 것이다. 실은 권력의 지원을 받는 미디어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다는 단어들의 의미나 배경은 더럽혀졌다. 그렇게 더럽혀진 단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파되며 무비판적으로 이해되고 수용된다. 노무현 정부가 미디어와 대립각을 세우며 서방의 자유주의자들이 하듯 다양한 토론과 논쟁 속에서 보다 나은 방향을 나아가고자 하였다면(그러나 그 정부는 모든 미디어로부터 왕따 당했다, 심지어 진보적이라 불리던 한겨레나 프레시안으로부터도!), 그 이후 들어선 이명박 정부부터는 교묘하게 미디어를 장악했다, 그리고 미디어는 권력 앞에 아무 소리도 못했으며, 기자들은 자랑스럽게 '기레기'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선 그 어떤 질문도 못하는 **들이 야권의 대선 후보들 앞에선 기를 세우고 질문을 해댄다. 


'보편성이란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하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선 철없는 이상주의처럼 여겨진다. 나에겐 참 보수적으로 읽히는 저 문장이, 한국에선 참 좌파스럽게 이해될 것이라 생각하니, 참 슬프다. (아니면 내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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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은 사회적이다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박홍규.최유준 옮김/이다미디어



음악은 사회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박홍규, 최유준(옮김), 이다미디어


클래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이 채 몇 년 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니,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이라고 해봤자 몇 명 되지 않는 작곡가와 연주가들 뿐이다.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으니, 음악에 대한 내 지식은 보잘 것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귀라는 존재가 흥미로운 것인지, 좋은 연주을 곧잘 인지하는 것이다. 심지어 남들은 잠 오는 음악, 혹은 소음이라고 평가하는 음악(현대 음악)을 곧잘 듣고 심지어 감동까지 받는 지경이니,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를 지경이다. 좋은 말로 하자면, 음악에 대해서도 특유의 심미안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나쁜 말로 하지만 완전 겉멋과 착각에 빠져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대학시절 읽었으나,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았다. 하긴 수업 시간에 읽은 것도 아니고 누가 옆에서 어려운 내용을 설명해준 것도 아니니,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 채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영문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해왔고 줄리어드 음대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그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음악에 대한 그의 지식은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다.

이 책은 1985년 캘리포니아 대학 얼바인 캠버스에서 있었던 3차례의 강연을 옮긴 것이다. 그는 이 강연을 하면서 음악을 들려줘야 할 부분들은 직접 피아노를 쳐가며 설명을 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많은 악보들이 실려 있다. 아마 서점에서 이 책을 들춰보았을 많은 이들이 악보를 보고 기겁하지 않았을까. 

에드워드 사이드도 책에서 지적하듯이 현대 지식인들의 음악에 대한 무지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전통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클래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흐도 알고 모차르트도 알고 베토벤도 알겠지만,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니다. 연주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진득하게 앉아 감상하는 것도 아닌 그저 배경 음악일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음악은 사회적인 것임을 강조하게 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음악의 연주, 내용, 경험 등이 어떤 이유로 사회적인 것인가를 설명하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강조한다. 나같은 독자는 내가 들어본 곡이 나왔을 때나 꼼꼼히 읽었을 뿐이겠지만, 에드워드 사이드는 현대 철학, 현대 문학의 풍부한 인용을 통해 음악에 무지한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다. 그래서 책은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폴 드 만에 대한 지적은, 팔레스타인 출신인 그의 아픈 상처까지 투영되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지만, 어디 읽을 책이 이거 뿐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권할 수 있다면, 그것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졸리지 않게 된 이후에야 가능한 상황이 될 듯 싶다.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모든 예술은 먼저 경험해보아야 한다. 그것도 좋은 문학, 좋은 미술, 좋은 음악으로. 형편없는 문학, 미술, 음악을 수십 년 읽고 보고 들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형편없는 문학, 미술, 음악이 너무 많으니, 그리고 그것으로 몇 년 단련된 뒤에 좋은 문학, 좋은 미술, 좋은 음악을 아무리 권해도 먹히질 않는다. 그냥 그럴려니 하고 넘길 수 밖에. 


"이 프로그램은 (중략) 힌데미트의 '제3소나타' 마지막 푸가 부분의 놀라운 유려함과 천재적인 해석의 연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Glenn Gould - Paul Hindemith , Piano Sonata No. 3 - Fu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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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섭 2008.12.09 21:38 신고

    감상1, 악기 다뤄 연주2, 음성으로 부르기3, 음악의 기초- 개념 필기시험4,
    학교 다닐때의 대략의 음악수업 진행과 평가 과정이 이러했던것 같습니다

    학교를 마치고도 혼자 이뤄가는 스스로의 평생공부에서도
    음악과목이 들어가는데
    특히 [하나의 악기 정도는 즐겨 다룰 수 있도록]이 진지한 '목표' 였고
    즐겨 좋아라 스스로 자연스레 진행하는 공부는 1번 감상이었고요,
    감상의 기본은 듣는 사람의 철학적 인문성에 있지 않나...합니다만,
    ...

    그 중에 인간들의 인위적인 음악보다
    자연 자체의 소리들에 한없이 한없이 심취하곤 합니다

    들판 한가운데 멈춰서서 혹은, 들판을 가로질러 나아가면서 후각과 청각과 시각이다 같이 듣는 음악감상으로 들판의 소리나
    역시 마찬가지로 산의 소리나
    바다와
    강가나 작은 시냇가 혹은 오랜 옛우물의 펌프질 물소리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생기어린 소란조차 하나의 음악이고
    허공의 바람 소리들이 내는 바람소리의 향연들도 그러하고
    달빛이 그윽한 대숲의 밤바람 소리와 낯바람 소리의 미묘한 차이성도 그렇고
    음악은 더 없는 축복 입니다

    ....

  • 리뷰 잘 읽었습니다.
    에드워드사이드가 피아노를 쳤었다니, 새로운 느낌.

    • 독서의 느낌으로 이야기하자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가 더 좋습니다. 여러 명의 작곡가들에 대해서 쓴 글도 있고요.
      감사합니다. : )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장호연 옮김/마티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장호연(옮김), 마티, 2008년


 

자네는 새로운 나라를, 또 다른 고향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거네.
이 도시가 항상 자네를 따라다닐 테니까.
자네는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동네에 살다가 나이를 먹고,
결국은 같은 집에서 늙어갈 테지.
자네는 이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네.
그러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펼칠 희망은 버리게.
자네를 실어다 줄 배는 없네, 자네에게 열린 길은 없어.
여기 이 좁은 모퉁이에서 이제까지 삶을 낭비했듯이,
세상 어디에 가든 마찬가지로 삶을 망칠 것이네.
-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도시> 중에서(205쪽 재인용)



이 시처럼, 어쩌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내 삶을 망쳐왔으니(내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앞으로도 망쳐갈 것이다. (참 무책임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 지구가 망쳐져 가는 것처럼. 터무니없게도 나는 내가 ‘세속적이고, 기지가 넘치고, 귀족적인 우아함이 있’기를 바랬지만, 이 바람은 거친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시대착오’적인 무산 계급의 실현 불가능한 대부분의 것들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런데 그 스스로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도르노 옆에 서서 시대착오적인 말년의 양식을 보여주었던 예술가들에 대해 분석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저작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도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예술가들의 말년 작품들을 연구했다는 점이다.)



이제 말년의 예술과 반대 방향으로 노화의 길에 접어든 현대 음악은 그저 “악보만 복잡할 뿐 사실상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하고 들뜬 여행”(아도르노, <<음악에세이>> 중에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말년의 양식에는 부르주아의 노화를 두고 보지 않고 계속 거리두기와 망명과 시대착오의 감각 - 말년의 양식은 바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더 중요하게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사용한다 - 을 고집하려는 긴장이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다.
- 41쪽

 

아도르노는 일차적으로 에세이스트였고, 에세이란 그에 따르면 “대상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것에 관심을 두는” 형식이며, “내밀한 형식적 법칙은 이단이다.” 아도르노의 의미로 볼 때 에세이스트라는 존재는 당대에 유행하는 모든 것에 영원히 맞서 싸우고 화해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보통 “에세이가 당대에 갖는 의미는 시대착오에 있다”고 말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시대착오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월트 디즈니의 <판타지아>나 호세 이투르비와 오스카 레반트가 출연하여 멋지게 연주하는 할리우드 뮤지컬 등으로 음악 산업이 거대화되어 가는 시대에 여전히 고전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다.
- 141쪽



사이드가 주목하는 말년의 양식은 거리두기, 망명, 시대 착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표범>>과 원작소설인 람페두사의 <<표범>>을 교차시키면서 영화와 소설 사이에서, ‘귀족출신이면서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두 인재가 이렇게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그가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그 당시 충분한 비평적 지지와 (커다란 성공은 아닐지라도)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거리를 두었으며, 혹은 망명을 선택하거나 종종 과거의 양식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였다. 도리어 그들이 받은 비평적 지지와 대중적 인기도 낯선 것에 가깝다.


모더니즘 문학은 조이스와 T.S. 엘리어트 같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시대를 떠나 신화와 서사시, 고대 종교 의식 같은 옛 형식들로 돌아가려 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말년의 양식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은 역설적이게도 명칭과 달리 새로움을 내세운 운동이라기보다 늙어감, 종말의 운동이 된 것이다.
- 194쪽



'옛 형식으로 돌아가려는 태도'은 한국의 비평가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조로(早老)'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도리어 늙어가는 예술에 대한 반기에 가깝다. 미술도, 음악도, 문학도 늙어가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고 새로운 것이 있다고 한들, 우리 삶은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에 비롯된 것이다. 이럴 때일 수록 사이드가 말하는 바의 '말년의 양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차르트는 다 폰테와 함께 작업하면서 속죄나 변명의 기회가 아예 없는 세상, 유일한 법은 방탕함과 조작의 힘으로 표현되는 이동과 불안정이며, 죽음에 의해서만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을 제시하려 했는데, 이렇게 잠재적으로 끔찍한 견해에 <코시 판 투테>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 작품은 결코 쓰지 못했다. 모차르트가 이 오페라에서 독보적인 솜씨를 발휘하여 이룩한 것은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음악과 그토록 부주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이야기의 결합이다.
- 110쪽


로코코 예술가 모차르트의 유쾌하고 발랄한 단음계 속에 숨겨진 음울하고 허무주의적인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 모차르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야말로 '말년의 양식'에 속한다. 꼭 장 완트완 와토의 세계처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8세기로 돌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18세기 로코코 자체가 바로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상승하는 부르조아 계급 앞에서 성직자와 귀족들은 계속 고개를 뒤로 돌리며서 거리를 두고 망명하고 옛 노래만, 옛 문화만 향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우울하고 유쾌하지만 슬픈 예술 양식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 스스로도 '시대착오'이면서 '시대착오'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사용해 왔다. '시대착오'라는 단어에 대한 새로운 의미 하나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년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문학비평가로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철학, 음악, 문학을 가로지르며 폭 넓고 깊이 있는 비평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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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의식적으로 '말년'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말련' 혹은 '시대착오'라는 단어가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도 이 책을 읽고 몇 가지 단어에 대해서 새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간만에 읽은 좋은 책이었습니다. ^^

  • noi 2008.06.22 17:14 신고

    어마 깜딱이야.. 안그래도 친구가 얼마전에 이 책을 보내줬답니다 ^^ 현재 절반 읽었어요.. 사이드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다는.. 코지판투테를 유튜브에서 찾아 틀어놓고 덧글 씀다 ^^

    • 아도르노가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듯이, 에드워드 사이드도 클래식 음악에 대단한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저도 기회 닿으면 피아노를 배울 생각입니다. ^^ ㅎㅎ

  • 2008.06.23 20:41

    비밀댓글입니다

  • 이분 글 읽어보려했는데, 미리 좋은 정보 주시네요.
    큰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

  • 몰시간성 anachronie 좋아하죠. 덕분에 사이드의 이 책도 한번 보겠습니다.

    •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말년의 양식이 가지는 특징을 탁월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거침없이 앞을 향해 가는 시대 속에서 고개를 뒤로 올리는 양식이라고 해야 하나...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저도 덕분에 좋은 책 읽었어요.^^
    간만에 설레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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