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 3

에라스무스 분위기

1. 발터 쾰러Walther Kohler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은 "에라스무스-분위기Erasmus-atmosphere"에서 더욱 자유롭게 숨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에라스무스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대신 군중 속에 흩어져 있었다. 그의 메시지 자체는 실용적 의미가 거의 없었으며, 그의 메시지가 낳은 것은 운동이 아니라 분위기, 한밤 중의 순간적 불빛같이 막연하고 요정의 약속 같이 막연한 분위기였다. 루터파는 있었지만 에라스뮈스파는 없었다. -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 28쪽(문학동네) 2.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안다고, 바른 생각을 하는 것도, 옳은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에서 정착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크라카우어의 생각처럼, 그저 어떤 막연한 분위기 속에 있을 뿐..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윌리엄 L. 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푸른 역사, 2001 우리는 종종 우리가 역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역사적으로 평가받고 우리가 역사의 주체이며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잊고 시간이 지나고 감정적인 편린들이 사라지고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역사의 세계’ 속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현재의 시간이 그 생생함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역사의 세계’가 시작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편린들의 사라짐과 객관적인 시각의 확보는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한 것이다. 단적인 예로 박노자의 (한겨레신문사)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읽어낸 보기 드문 책에 ..

에라스무스, 슈테판 츠바이크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아롬미디어 에라스무스 - 위대한 인문주의자의 승리와 비극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하나의 세계관이 여기 있다. 하지만 이 세계관은 사람을 유혹하지도 선동하지도 그렇다고 뜨거운 열정을 내뿜지도 않는다. 언제나 차갑고 건조하다. 늘 조용하고 방관자의 시선을 가진 듯하면서도 예리하게 문제를 지적해내어 보는 이를 찬탄케 만들지만 곧바로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는 그런 세계관이다. 그래서인지 이 세계관은 다른 편에 서서 보면 늘 우유부단하며 지나치게 신중하고 너무 이상주의적이다. 더구나 언제나 교육의 중요함을 설파하며 교양을 강조하고 문명화된 인간을 요구한다. “현재의 제 모습, 저를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