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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부른다

-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디일까?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야만일까? 그러나 레비-스토스의 생각은 다른 듯 싶다. 


"계몽시대의 철학이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사회를 비판하며 합리적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상대주의는 하나의 문화가 권위를 앞세워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거부했다. 몽테뉴 이후로, 그의 선례를 따라 많은 철학자가 이런 모순에서 탈출할 출구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하지만 이 상대주의가 우리의 일상에선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대체로 우리 주변 대부분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바 상대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더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선택받은) 문명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들과 다른) 이방인들은 야만의 세계에 속한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바 야만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 문명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보여준다. 가령 장신구 문화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야만의 형태다. 이제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나, 애초에 주술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루비는 유해한 기운을 물리치며, 사파이어는 진통효과를 지니고, 터키옥은 위험을 미리 알려주며, 자수정은 그리스어 '아메두스토스'의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술기운을 쫓아낸다고 수 세기 전까지 믿었기 때문에 그런 보석들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비싸게 거래되었다는 것을 요즘에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91쪽 


장신구는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더구나 그 부분은 내가 '야생의 사고pense'e sauvage'라고 칭했던 것이 생생하게 지속되는 부분이다. 우리 시대의 여성도 귀걸이를 착용한다. 그런 여성이나,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남자도 불멸의 물질로 소멸하는 몸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장신구가 물렁물렁한 곳을 딱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 93쪽 


이와 반대로 우리 스스로 야만적 형태, 주술적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꽤 당혹스러운 방식이어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곤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반문하기까지 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산타클로스가 디종 성당 앞 광장에서 불태워졌다. - 디종, 1951년 12월 24일

- 12쪽 


일종의 화형식이었는데, 보수적인 가톨릭의 입장에서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의 문화였으며 천박한 자본주의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종교 당국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신화를 대중의 머릿 속에 심어주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불순하게 '이교도화'하려는 시도를 신랄하게 규탄했다. 

-11쪽 


확실히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적이고 지독히 상업적이다. 그것에는 종교적인 것은 없다. 산타클로스를 두고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당국(프랑스 가톨릭)의 입장은 이해되고 당연해보이긴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이 행위가 얼마나 고대적이며 주술적인 것인가를 드러낸다. 


식인풍습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식인풍습이 일종의 약탈이나 살인 행위의 일종일 것이라 여겼던 나에게, 실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으로서의 식인 풍습은 매우 의외였다. 내 생각은 더 나아가 성경에서 언급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이것이 내 살과 피라고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이어졌다(<<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 성경의 일부 이야기들은 얼마나 닮아있는가).


민족학자들은 그 지역에 들어가 다른 가정 하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를 받기 전에, 구루병이 만연한 부족사회의 식인 풍습이 있었다. 가까운 친척의 시신을 먹는 것이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한 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고인의 살과 내장 및 뇌를 익혀 먹었고  빻은 뼈를 채소와 함께 조리해 먹었다. 여성이 시신을 잘라내서 조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까닭에, 시신으로 여성이 감염된 뇌를 다루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것이고, 신체적 접촉으로 인해 어린 아이에게도 옮겼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 123쪽 

(* 구루병 - 우리에겐 광우병으로 잘 알려진 '크로이츠 펠트야코프 병'을 의미함. 양의 경우에는 '진정병scrapie'라고 함. 지연성 바이러스로 인한 퇴행성 질환이며, 식인 풍습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식인풍습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알게 된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먹다'와 '성교하다'라는 단어가 문명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언어에서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는 것이나. 모권제 사회에 대한 추측은 잘못된 정보라는 언급은 기억해둘만 했다. 


민족학 연구가 발전하면서, 한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모권제의 환상에 종지부가 찍어졌다. 부권제 아래에서는 당연하지만 모권제 아래에서도 권력은 남성의 몫이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권제에서는 어머니의 남자 형제들이 권력을 행사했고, 부권제에서는 남편이 권력을 생사한다는 게 유일한 차이였다.

- 154쪽 


이 책에 실린 레비-스트로스의 글은 대부분 저널에 실렸던 것이라 그 길이가 짧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무척 시사적이면서도 그 소재나 주제가 흥미로워 추천할 만하다. 


내 경우엔 이 책을 다소 급하게 읽긴 했으나, 오귀스트 콩트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언급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 콩트의 책을 읽지 않았고 그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가 없었으나, 콩트의 실증주의적 태도가 후대 학문에 꽤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콩트가 이야기했던 그 이론들이 지금도 유의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아래는 니콜라 푸생의 <에코와 나르시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 메모해둔다. 


Echo and Narcissus

Nicolas Poussin(1594-1665), oil on canvas, 74 cm* 100 cm, 1630, Louvre Museum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무엇보다 그림의 구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선이 분산되며 서로 멀어진다. 나르키소스의 두 다리는 오른쪽을 향해 벌어졌고, 두 팔은 서로 반대방향을 향한다. 다른 두 인물, 즉 숲의 요정인 에코와 장례의 횃불을 쥐고 잇는 푸토의 몸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분산은 그림에서 윗부분을 차지한 나뭇가지에서도 반복된다. 이런 분산 방향은 메아리(숲의 요정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거절당하자 슬픔으로 몸은 없어지고 메아리가 되었다 - 옮긴이)의 청각적 현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메아리는 소리의 원점에서 점점 멀어지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가. 보들레르의 유명한 시가 그렇듯이, 감각적 자료들 간에 연상되는 이런 조응(correspondance)으로 푸생의 그림에서는 멜랑콜리, 즉 일정한 배색 효과로 강조된 회상에 젖은 서글픔이 느껴진다.

- 144 ~ 5쪽 



푸생의 그림에서 주조를 이룬듯한 분산이 온갖 모습으로 나타난다. 멍청한 듯 하면서도 기막히게 놀라운 일을 해내는 메아리의 물리적 현상에 내재된 분산이다. 따라서 메아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산책자와 여행자를 유혹한다. 푸생의 그림이 요정 에코와 초자연적 세계의 작은 특사(푸토)가 취한 상반된 방향을 강조함으로써 명백하게 드러낸 분산이기도 하다. 에코는 일관된 단조로운 색조로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바위의 형상으로 땅을 향하고 있다. 이런 대비가 구도와 색이란 상보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에코 요정의 헛된 회상과 나르키소스의 숙명적인 오해, 그리고 메아리의 무익함과 전능함을 하나의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 152쪽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 10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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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지음), 김운찬(옮김), 열린책들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레스프레소L'espresso>>라는 이탈리아 주간지에 실었던 <미네르바 성냥갑> 칼럼을 모아 낸 책이다. 칼럼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1년 전에 읽었던 도정일 교수의 칼럼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과 묘하게 비교된다. 어떤 이는 이 '비교'가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나도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책 구입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독자로서, 도정일 교수의 칼럼집에 대해선 돈이 아까웠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칼럼집에 대해선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낄 뿐(그런데 이것은 저자가 신경 쓸 부분이라기 보다는 출판사 관계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집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이 책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에코의 인문학적 재치는 유머스러하면서도 그 특유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가령 <왜 시인은 게을러야 하는가> 같은 칼럼에서. 


책과 예술, 인터넷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다양한 칼럼들로 채워진 이 책은 책상에 앉아 정독하면, 도리어 재미없어진다. 스마트폰에 정신 팔린 사람들도 가득찬 소란스러운 지하철이나 버스, 독서는 안중에도 없이 영어 공부방이 되어버린 커피숍 등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최고의 선택이다. 


나도 거의 십수년만에 움베르토 에코의 칼럼집을 읽었다. 예전에 사두었던 에코의 칼럼집 한 두 권이 서가 어딘가에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이여, 안심하시라. 열 권의 책을 읽든 같은 책을 열번 읽든, 똑같이 교양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단지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나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 32쪽 



책을 읽다고 교양 있는 사람이 될 것같진 않고, 다만 요즘 같은 시절의 한국에서 책을 읽다는 것이 얼마나 유별난 습관인지, 깨닫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 그래도 움베르토 에코 같은 이에게서 위안을 얻어야 할 것이다. 


* 움베르토 에코 사이트 : http://www.umbertoeco.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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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가령 부자와 빈자가 있다고 칩시다. 돈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지적인 부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 불러보자고. 이 경우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전 총리)는 가난하지. 나는 부자고(웃음). 내가 보기에 TV는 지적 빈자를 돕고, 반대로 인터넷은 지적 부자를 도왔어. TV는 오지에 사는 이들에겐 문화적 혜택을 주지만 지적인 부자들에게는 바보상자에 불과해. 음악회에 갈 수도 있고, 도서관을 갈 수도 있는데 직접적 문화적 경험 대신 TV만 보면서 바보가 되어가잖소. 반면 인터넷은 지적인 부자들을 도와요. 나만 해도 정보의 검색이나 여러 차원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 하지만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지적인 빈자들에게는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미쳐요. 이럴 때 인터넷은 위험이야. 특히 블로그에 글 쓰는 거나 e북으로 개인이 책을 내는 자가 출판(Self Publishing)은 더욱 문제요. 종이책과 달리 여과장치가 없어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선별과 여과의 긴 과정이오. 특히 쓰레기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지적 빈자들에게는 이 폐해가 더 크지. 인터넷의 역설이오."

-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인터넷도 사라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 조선일보. 2012년 7월 6일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 현재 있는 것을 부정하면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텐데. 


종이책과 전자책은 대결하는 것일까? 실은 그렇지 않다. 종이책 읽는 사람은 전자책도 읽는다. 똑같이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과 인터넷을 보는 사람은? 


이건 좀 다르다. 책과 인터넷은 확연히 다르고, 이 둘은 똑같은 기준에서 비교하기도 어렵다. 도리어 전자책(e북)이 좀 나을 텐데, 내가 앞서 언급했듯이 이 둘 또한 본질적인 측면에서 대결 구도로 보기엔 문제가 있는 듯하다. 도리어 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건 일종의 마케팅이 아닐까. 불편하고 값비싼 LP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듯, 종이책도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단지 생산량이 줄긴 할테지만. 


종이책의 생산량이 주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게 e북 때문이라고 하면 뻔한 거짓말일테고. 첫 번째 이유로는 책을 읽는 사람의 절대 수가 줄고 있다(이것은 세 번째 이유와 겹친다). 두 번째는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책이 지닌 가치가 많이 희석되고 있다(예전엔 미디어의 한정적이었으나, 지금은 '정보를 얻기 위한 책'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한다) . 세 번째는 책 대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늘고 있다. 영화를 본다든가, TV를 본다든가 하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첫째 책을 읽기 위해선 최소한 몇 십분 이상 집중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21세기적 삶에서 이런 시간을 구하기란 참으로 어려우므로), 둘째 하나의 지식을 단편적 정보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를 갖춘 지식 꾸러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셋째 지속적인 독서는 논리적 체계나 구조를, 언어를 통해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에코가 지적하는 바는,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인터넷을 통한 지식 습득은 단편적 정보를 얻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 내 앞에 단답형 문제가 있다고 하자. 그 문제의 답을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것은 책도, 백과사전도 아닌 인터넷이다(확실하게!). 하지만 그것이 주관식이라면, 그것도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이러면 사정은 달라진다. 


종종 인터넷은 무수한 하이퍼링크를 통해 체계를 가진다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질서를 가진 가치 체계가 아닌, 가치가 무너진 수평적이고 균등한 체계이며, 그것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의 몫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터넷 초창기에는 이를 새로운 혁명 공간으로 인식하고 열정적인 이론가들과 실천가들이 인터넷을 통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아직도 인터넷에 그러한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다시 부언하자면, 어느 것이 중요한 정보이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 정보인지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에코가 인터넷은 지적 부자를 돕지, 지적 빈자에게는 해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 전에 책을 읽어야 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종이책이 더 좋다고 하겠지만, 전자책으로 읽는 것에 대해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의 키워드가 있고 그 키워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 인터넷은 너무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쏟아낸다. 그 때 우리는 그 많은 정보들 중에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하고 중요한 정보를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목을 기르는 것, 그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책이 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다. 



* 자기 전에 그냥 노트해본다. 예전에 나는 종이책에 대한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다. 



2009/11/08 - [책들의 우주] - 종이책의 미래를 지켜라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사무 자동화가 되면서 종이 사용량이 줄었다고 여기겠지만, 실은 더 늘어났다. 아무리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밝은 날 종이로 보고 읽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모노클이라는 잡지가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나도 근사한 종이 잡지 하나 창간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2011/09/27 - [책들의 우주/문학] - 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는 종이잡지, 모노클(MONO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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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의 상실 - 6점
한스 제들마이어 지음, 박래경 옮김/문예출판사



제들마이어는 중세의 낙오병으로 그보다 훨씬 민감하고 환상을 보는 데에 도통한 점쟁이들을 모방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논의가 이처럼 코기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의 정말 탁월한 실례가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암시적이고 이해를 갈망하는 듯한 태도 때문인데, 그는 어떤 기호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우리를 팔꿈치로 슬쩍 찌르며 윙크를 한 다음 "당신에게도 보이죠?"라고 말한다.
- 움베르코 에코, '철학의 위안'(새물결, 조형준 옮김), 116쪽


이 책은 한스 제들마이어라는 독일의 미술사학자가, 1948년도에 썼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낯설고 기묘하며, 반-현대적이며, 도덕적인 교설과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대 예술은 예술의 혼란이며, 반-휴머니즘이고, 반-인간적이며, 결국 중심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그는 세잔에 대해서, '그의 회화는 그의 내면적 의도에 따라서 가시적인 세계의 모든 지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의 혼합으로부터 순화된 순수한 시각을 발견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다. 순수한 시각을 갖기 위한 이 같은 투쟁은 그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징후'(230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은 죽어 있고, 낯설며, 인간은 그저 외적인 것만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정신 생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세계는 불안정한 것이 되어가기 시작한다.'(235쪽)

제들마이어의 시각에서 모든 근-현대 미술은 인간성의 상실을 뜻하며,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치료해야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 처방은 새로운 상태 안에서 인간의 영원한 상을 확립해 재형성시키는 것이다. (465쪽) 


다소 황당한 결론을 향해 가는 이 책은 매우 난삽해서, 많은 미술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들이 있지만, 한 번 읽어서는 책의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서술의 시작에서 기대되는 내용과 서술의 끝에서 읽게 되는 내용은 종종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기도 하다. 마치 고집불통 노인이 젊은 날의 방황을 아름답게 노래하다가 그 방황이야말로 내 인생의 과오였으며, 치명적인 비도덕이며, 잘못이었다라는 말로 끝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런 논리적 허점을 움베르토 에코는 '코기토 인터룹투스'라고 평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사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이 책을 통해 다양하고 많은 미술사의 정보들과 논평들을 확보할 수 있으며, 현대 미술에 대해서 시대착오적 도덕주의의 시각에서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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