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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80쪽) 



살아가면서 과거를 끄집어내는 일이 얼마나 될까. 삶은 고통스러워지고, 사랑은 이미 떠났으며, 매일매일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이 세상은 한때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빛깔을 잃어버렸음을. 감미로운 허위만이 우리 곁에 남아 우리 겉을 향기롭게 감싸며 근사하게 보이게 만들지만, 그것은 언젠간 밝혀질 시한부 비밀같은 것. 그럴 때 그 과거는, 어쩌면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낸 고통의 근원일까, 아니면 도망가고 싶은 이 세상 밖 어떤 곳일까. 


"토니, 이제 당신은 혼자야."라고 이혼한 아내 마거릿은 전화 속에서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아내의 목소리가 전화 속에서 사라져 버리지만, 토니는 별 반응이 없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나 아내 마거릿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 듯, 자신의 인생도 그런 궤적을 그리며 평범하며, 이혼했으나 세상에서 가장 잘 자신을 알고 있는 마거릿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혹은 착각한다, '우리 부부'라는 단어 속에서.  


늙어버린 토니 앞에 갑자기 등장한 과거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그저 과거일 뿐이며, 토니 밖에서, 사악한 질투심에 무너졌던 토니의 영향력 아래에서 어떤 우연이 만들어졌을 뿐, 토니는 토니이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마치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서로 만날 수 없는 행성들처럼.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그 밖에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나? (255쪽) 


과거 속에서 젊은 베로니카는 토니를 버렸고, 에이드리언은 그의 친구 토니를 버린 베로니카와 사랑을 나눈다. 그래서 뭘? 에이드리언은 질투심으로 눈이 먼 토니의 사악한 언어 앞에서 무너졌을까. 아니면 ... 


1부는 젊은 토니를, 2부는 늙은 토니가 화자로 나온다. 그리고 2부는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 포드 부인의 유언장과 자살한 에이드리언의 일기가 실마리가 되어, 토니의 기억을 새로 만들며, 인생의, 사소하지만 비극적인 우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쉴새 없이 우리의 마음을 때리지만, 결말을 짐작하긴 쉽지 않다.  


1부의 토니와 2부의 토니는 서로 경쟁하며 결말을 향해간다. 결국 과거는 편집되고 윤색되고 변경된다. 과거는 현재에서만 해석 가능한 어떤 이야기일 뿐, 과거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 서랍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어둠 속의 사진과 같은 것. 


의미는 해석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갑자기 등장한 과거의 숨겨진 이야기를 끝에 가서 드러내지만,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향해 모든 것들이 구성되어 있지만, 에이드리언의 자살을 설명하지 못한다. 실은 에이드리언의 자살이 도리어 살아남은 토니의 이기적인 평범함을 설명하게 되는 기묘한 이야기 구조는 도리어 악의적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지독히 냉소적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없는 토니들이고 늘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일 토니다. 사랑마저도 자기를 합리화해야 하는 것이고 그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조차 자신의 문제가 아닌 그/그녀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이래저래 상처 받기 마련이라고 여기지만, 상처마저 자신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것이라 믿는다, 이러저러하게. 


마거릿마저 토니를 향해 '당신은 혼자야'라고 말했을 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늙은 베로니카가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그래'라며 토니를 질책했을 때조차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소설이 끝날 때까지.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래한 혼란이 있다.(255쪽) 


소설은 이 마지막 문장으로 끝나지만, 책임은 혼란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사람들은 저 마다의 상처를 가진 채 홀로 서 있을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 시간은 한 개인의 삶에 무신경하고 나는 사랑하는 너에게 관심이 있으나, 끝내 너를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신비이니, 나는 너를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알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날 것이다. 에이드리언만이 과거 속에서 현재를 예감하고 미래에 절망했을 뿐이다. 토니의 내일에 대해 상상하지 말자. 그는 적당히 비관적으로 변할 테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급격한 변화를 겪거나 아픔을 겪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 점에선 베로니카의 견해가 옳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고 혼자였던 어떤 이가 갑자기 우리가 되지 못한다. '우리 부부'라는 단어만큼 어색한 표현도 없을 텐데, 토니는 ... 그래서 나는 참 악의적이다라고 적는 것이다. 


할아버지 토니는 20대 토니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베로니카를 향해서도, 에이드리언을 향해서도, 마거릿을 향해서도. 결국 혼자인 토니는, 혼자 거리를 걸으면서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었나' 스스로에게 묻겠지만, 금방 잊고 말 것이다. 





* 2017년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The Sense of an Ending : http://www.imdb.com/title/tt4827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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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2012.10.25 - 2013.2.8 

삼성미술관 Leeum 





황량한 현대 미술의 첨단에 카푸어가 불과 몇 명의 위대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우뚝 서 있음은 하나의 구원이다. 시각의 초월적인 기능, 아트의 건전한 엘레멘트의 구사, 풍요로운 표현방식, 긍정적인 미지의 암시 등으로, 그 환기력의 유효성을 정면에서 입증해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이우환 


* * 



(리움에서 출간된 아니쉬 카푸어 도록. 잘 만든 도록이다)



전시를 본 것은 일 여년 전이지만, 아니쉬 카푸어는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상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아니쉬 카푸어의 도록 탓도 있었지만, 전시 공간 안에서 보여주는 놀라움과 경이는 현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도록 - 아니쉬 카푸어는 리움(Leeum)에서 낸 도록을 직접 감수하며 사진하나하나 손수 골랐다고 전해들었다 - 을 펼치며 그의 작품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호미 바바의 말대로, 내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제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카푸어의 작업은 기존에 되풀이 되어온 비평 방식으로 종종 다루어졌는데, 이는 그의 작업을 이미 만들어진 초월적 형이상학의 틀 속에 넣어버림으로써 독창성을 제한해 버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허, 암흑을 절개하는 거울, 아득한, 잊혀진 풍경처럼 수집된, 채색된 꿈의 오브제들, 카푸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같은 특징들은 '동양적인' 성스러움이나 '서양적인' 숭고 같은 낡아빠진 어휘들에 너무 쉬이 흡수돼 버린다. 초월성에 치우친 담론은 개념미술에 문화적인 강령과 해석적인 코드를 교묘하게 부과한다. - 호미 바바 



이렇듯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들은 우리가 가진 언어적 세계 너머를 향한다. 그리고 작품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혹은 행복하게 강요당하는) 신비한 몰입은 현대 예술의 한 극점을 보여주었다.


카푸어의 고향, 인도를 제외하곤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었으며, 아마 그 규모의 개인전은 한국에서는 꽤 오래동안 힘들 것이다(아니면 없을 것이다). 아래 이미지들은 구글링을 통해 구한 작품 사진들이다. 레비아탄의 경우에는 리움에서 전시되지 않았으며, 2012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보여주었던 작품이다(이우환은 이 작품을 그랑팔레에서 보았던 놀라움을 도록에 실린 글에서 표현하고 있었다).


*  * 


아니쉬 카푸어에 대한 상당수의 글들이 호미 바바가 지적한 대로의 비평적 방향을 그대로 수용하고, 나 또한 그렇게 해석하려고 했다. 도리어 호미 바바의 글 - 규정하기 어려운 오브제들: 아니쉬 카푸어의 분열적 예술(Elusive Objects: Anish Kapoor's Fissionary Art) - 은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또한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기존 사고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 속에서 씌어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강박증이야 말로 기존 틀을 벗어나 혼란 속으로 들어가, 미래를, 새로운 공간을 여는 행위로 유도하는 촉매제다. 


아니쉬 카푸어와 호미 바바는 같은 인도 출신이며, 호미 바바는 아니쉬 카푸어에 대해 다수의 글을 썼다. 아니쉬 카푸어에 대한 글을 통해, 나는 이제서야 호미 바바를 읽었는데, 그의 책을 한 권 사서 읽어야겠다. 




Sky Mirror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Sky_Mirror




Yellow 

출처 http://openhousebcn.wordpress.com/2012/01/27/good-morning-yellow-anish-kapoor-openhouse-barcelona-art/ 




출처 http://www.omnilexica.com/







1000 Names 

출처 http://www.designyearbook.com/2010/06/1000-names-by-anish-kapoor.html




My Red Homeland 

출처 http://chincha.co.uk/2012/11/anish-kapoor-exhibition-review/ 




Leviathan

출처 http://videoinstallationperformanceliupost.wordpress.com/20-2/sung-bok/installation-sung-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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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 E. 흄(Hulme) 지음, 박상규 옮김, 현대미학사 





위대한 화가란 모든 사람들의 비젼이 되었고, 

또 장차 비젼이 될 어떤 사물의 비젼을 처음으로 가졌던 사람들이다. 

- 133쪽 


 


토마스 어네스트 흄(Thomas Ernest Hulme, 1883 - 1917)이라는 영국의 예술 비평가가 쓴 <<Speculation>>을 번역한 이 책은 다소 의외의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1980년대 초반 박상규 교수(홍익대)가 번역한 문고판 책을 현대미학사에서 관심을 가져 새로 낸 듯하지만,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책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꺼내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2000년대 초반에 구입하였으니,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간 읽지 않고 서가에 꽂아두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평가의 문장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예술론을 이야기하는 흄의 문장은 사색적이면서도 모호하기만 했다. 꼼꼼한 독서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여 얻는 건 이미 다 논의되었던 내용들이거나,  흄이 기대고 인용하는 저자들의 책을 직접 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분명 1900년대 초반에는 최신의 시각이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이 있다면, 보링거(Wilhelm Worringer)과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예술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추상과 감정이입>>이라는 저서로 미술사의 해석에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 보링거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흄은 이 책 전반에서 보링거의 태도 -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예술과 자연주의적이고 감정이입적인 예술의 대비 - 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더욱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베르그송의 충실한 번역자였으며, 베르그송의 추천을 받기도 한 흄은 이 책에서 베르그송 철학에 대한 탁월한 요약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예술론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보링거의 이론에 기대어 흄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예술에는,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종류가 있다. 첫째로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예술, 즉 희랍의 예술과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 예술이 있다. 이러한 예술에 있어서는 선은 부드럽고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이집트와 인도와 비잔티움의 예술과 같은 예술이 또 하나 있다. 이러한 예술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각을 형성한 경향이 있고, 곡선은 날카롭고 기하학적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예컨대, 인체의 표현은 때로는 아주 비생명적이고 비틀어져서 여러 종류의 딱딱한 선과 입체적인 형태에 알맞게 되어 있다. (79쪽) 



그들은 실존의 여러 가지 혼란과 변덕에도 불구하고 보링거가 말한느 일종의 정신적 '공간 기피'에 좌우되어 있다. 예술에 있어서는 이러한 정신상태는 어떤 추상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창조하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는 인내력이 강하고 영속성이 있으므로 외부 자연의 유동성과 비영속성의 비난처가 될 것이다. (82쪽) 



세잔, <목욕하는 여자들>, 208 × 249 cm, 1906 (출처: 위키피디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세잔느의 최근의 그림의 하나인 <목욕하는 여자들>을 보라. 이 그림에서는 모든 선이 피라미드형으로 나란히 그려져 있고, 여자들은 이 모양에 알맞게 그려져 있다. 만일 하나의 그림에서 만족할 율동적인 구도를 항상 찾아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피라미드형의 구도에는 매력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싫증을 느낄 것이다. 그 형태가 아주 강렬하게 강조되어 있고, 기하학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그림은 '생명적인' 예술의 영역으로부터 추상적인 예술의 영역에로 끌어올려진 것이 된다. 그 형태는 르네상스의 예술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라벤나에 있는 (테오도라 황후) 비잔티움의 모자이크에서 보는 구도에 훨씬 더 흡사하다. (94쪽)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화 - 테오도라 황후와 시녀들.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베르그송의 철학과 예술론에 대한 논문들도 책에 실려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지성은 모든 물체란 완전히 분석되어서 개개로 분리될 수 있는 요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성은 결과로서 모든 변화를 이러한 분자의 단순한 위치의 변화에 귀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지성은 변화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변화를 설명한다. (168쪽) 



즉 그것들은 진정한 시간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은 '주어져' 있다. 진정한 창조는 없다. 그는, 생명의 모든 형태의 특징은 생명의 모든 형태가 뚜렷하게 지속성 속에 존재하여 있고, '시간'이 그것에 대하여 차이를 일으키게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그것을 '깨물고', 그리고 이빨의 흔적을 거기에 남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늙어간다. 그런데 물질은 결코 늙어 가지 않는다. 물질은 항상 '불변하는' 것이고, 항상 '동일한' 것이다. (178쪽) 



보링거와 베르그송의 예술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 소개 정도로 읽을 만하다. 다만 깊이 있는 연구 논문이라기 보다는 스케치에 가깝기 때문에 연구자들이라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맨 뒤에 실린 <잿더미>라는 글은 단상을 엮어놓은 짧은 노트이나, 두고 읽을만큼 좋다.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E.흡저 | 현대미학사 | 2002.09.1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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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Bigger Trees Near Warter

2013. 9. 3 - 2014. 2. 28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 




(각 나라의 국립미술관끼리는 소장 작품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협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료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작품을 전시하는 비용보다 작품 운송/전시 과정에 들어가는 보험료가 더 비싸 한국의 국립 미술관들은 이런 협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전시를 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보험료를 내기 위해 국립 미술관의 예산을 늘여야 된다고 이야기하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화예술 관련 예산은 턱없이 모자라기만 하고, 결국 공공을 위해 존재하는 국공립 예술 기관들이 수익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익 목적의 과도한 수익 사업은 그 기관의 공익성을 해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고. 하긴 예술 기관들의 재정적 위축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닐 것이다. 다만 국공립 예술 기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여하튼 그래서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경화는 2008년 파리 피악Fiac에 최초로 봤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이니, 당연 놀라운 감동적인 작품들로만 가득찼을 그 곳에서 내 눈을 사로 잡은 몇 개 되지 않는 작품들 중 최고가 바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어떤 풍경화였다. 피악에 나오는 갤러리나 그 갤러리가 가지고 나오는 작품들은 일반적으로(한국의 여느 갤러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독보성은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풍경화들 중의 한 작품이, 그것도 50개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거대한 작품이 한국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아, 아래 이미지로는 이 작품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아니 아주 작은 일부도 느낄 수 없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부디 부탁하건대,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에 가서 데이비드 호크니를 만나고 오길 바란다. 그가 왜 현존하는 작가들 중 최고인지 느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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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근작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다. 높이가 4.5m, 길이가 약 12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총 50개의 캔버스가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호크니가 자신의 고향 요크셔로 돌아왔을 때 크게 감동을 받은 풍경으로 브리들링턴 서쪽, 와터 근처의 봄이 오기 직전, 나무에 새순이 솟아나는 그 때의 풍경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전경에는 키가 큰 나무들과 만개한 수선화들이 피어 있는 모습이 자리하고 있고 화면 구성 상 중심에는 가지를 뻗은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있다. 전경의 잡목림 뒤쪽으로는 분홍빛이 도는 또 다른 작은 관목숲이 배경으로 있다. 화면의 왼쪽에는 곡선을 그리며 멀어져가는 열린 길이 있고 오른 쪽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듯한 집 두 채가 있다. 그림의 상단부는 나무의 크고 작은수많은 가지들이 얽히고 설킨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그 규모로 인해 앞에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마치 실제 나무 숲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보는 이들은 이제 호크니가 말하는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 그 한복판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 전시 설명 중에서 



호크니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 




데이비드 호크니와 관련된 이전 포스팅. 


2012/07/10 - [예술의 우주/예술가] -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경화

2008/10/30 - [예술의 우주/예술마케팅] - 파리의 미술축제, FIAC에 가다.

2006/06/02 - [예술의 우주/예술가] -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by David Hockney 데이빗 호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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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주드 1 - 10점
토마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민음사


이름 없는 주드 2 - 10점
토마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민음사




소년이여, 꿈 꾸지 마라.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해라.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자신이 자란 마을을, 그대의 부모와 가문을. 만일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더라도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라. 그리고 절대로 자신의 고통스런 가난을 저주하지 말며, 타인들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 것이며, 자주 견디기 힘들고 쓸쓸할 지라도 그 일상을 소중하게 여겨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드는 늘 다른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어떤 미래를 향해 서 있었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의 평온한 삶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의 일상을 꿈꾸었으며, 사촌인 수와의 사랑을 지키며, 사촌과의 결혼을 원했다.

그러나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아선 안 된다. 이 오랜 격언은 주드가 속했던 19세기도 합당했으며, 그 이전 과거의 어느 시대나 지금, 21세기 한국에서도 마땅한 격언이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한두 번 이상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곤 한다. 그 중 몇 명은 오르지 못할 나무로 올라가곤 한다. 그리고 시도했던 대부분의 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절망하고 포기하고 쓸쓸하게 죽어간다. 마치 주드처럼.

주드는 세속의 천박함과 용감스러운 무지로 가득 찬 아라벨라의 결혼 생활이 견디기 힘들 지라도 만족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이는 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필롯슨과의 결혼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용납하기 힘든 불합리를 견디는 것, 자신의 순결한 영혼과 안타까운 사랑을 숨기고 거짓된 세속의 때를 묻히며 거짓된 사랑으로 살아가며 견디는 것.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자 노하우이며, 어느 시대에야 요구되는 세속의 법칙이다. 헛된 희망보다 빠른 포기가 나은 법이다. 주드의 비극은 꿈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빨리 파악하여, 적당한 시도와 적절한 포기를 섞어가며 살아야만 했다.

혹시 꿈꾸고 있진 않은가. 누군가와의 사랑을, 어떤 희망이나 바람을. 우리가 바라는 어떤 꿈들이 가을날 석양에 걸린 나뭇잎이 매섭게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듯,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속적 환경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불합리하고 거짓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침묵을 지키며 견뎌야만 할 것이다.

주드의 비극이 주드의 잘못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화석화된 전통과 규범을 지키며,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천박한 욕망이나 타인의 목소리에 더 기울이는 그 시대, 그 시대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여긴다고 해서, 주드의 비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처절한 비극으로 끝이 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현대의 주드와 수가 있을 것이니, 주드와 수에게 공감한다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세상 사람들의 무지와 허위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세속의 무지와 허위를 벗어던지고 도시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을 오늘날의 주드와 수의 친구가 되는 것임을.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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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작가 중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로 꼽히는 대미언 허스트(43.영국)가 세계 미술경매사에 새 기록을 경신했다.

허스트는 15일(현지시각) 오후 7시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개최한 단독경매에서 하루 저녁에 7054만5100파운드(수수료 포함금액, 한화 약1383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기염을 토했다. 이같은 낙찰액은 단일작가 경매로는 사상 초유의 금액이다.

소더비 런던 관계자는 “지난 1993년 피카소의 작품 88점을 경매에 부쳐 총 6230만파운드(약1277억원)의 낙찰액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허스트 작품은 어제 경매에서 56점에 불과했는 데도 이를 가뿐히 경신했다”고 전했다.

헤럴드경제: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09/16/200809160196.asp 


뭐, 딱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말하기 시작하면 길어질 것같다. 미술 시장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지만, 힘 없는 미술 시장 관계자가 나서서 이야기해봤자, 푸념 밖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대미언 허스트의 탁월한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감각은 놀랍다. 하지만 그것에 맞장구를 쳐주는 콜렉터들은 더 놀랍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 대미언 허스트의 놀랍고 기괴하며, 때론 충격적이고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이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리고 집에 오는 손님들한테 연신 자랑을 해댈 것이다. 아마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3~4년 전의 나라면 전혀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것이었다. 묵묵히 성실하게 고전적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름없는 가난한 전 세계의 예술가들을 떠올린다면, 다소 불쾌하고 다소 끔찍한 현실이지만, 이런 일들은 고대 로마에도 있었고, 고딕 시대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온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서,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용기를 얻기 보다는 현대에 대한 자조 섞인 푸념만 늘고 우울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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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uspymd 2008.09.17 03:55 신고

    데미안 허스트가
    지 똥을 내다 팔아도,

    100억원은 훌쩍 넘지 않을까 하네요.

    다만 냄새가 심할테니
    냉동 처리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포름 알데히드는 사양하렵니다.
    똥하곤 상극일 것 같거든요.

    • 똥을 팔지는 않을 것같아요. 왜냐면 이미 똥을 판 작가들이 있거든요. ㅡ_ㅡ;; 몇 십년 전에 길버트&조지가 전시 중에 캔에 담긴 똥을 몇 파운드에 팔았어요. 아마 사간 관람객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크~. 그래도 데미안 허스트가 똥을 내다 놓으면 분명 팔릴 겁니다. 쩝.

사용자 삽입 이미지The Singing Butler by Jack Vettriano


잭 베트리아노, 꽤 흥미로운 화가이다. 간단하게 잭 베트리아노를 정리해 보았다.

* * *
 

한 남자가 있다. 1951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16살 무렵 더 이상 학업을 지속시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이후 광산에 들어가 기술자로 일하게 된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그가 21살이 되던 날, 곱게 포장된 생일선물 하나를 여자친구로부터 받는다. 그것은 작은 수채물감 한 세트. 이후 혼자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던 그는 마흔이 다 되었을 무렵, 폭발적인 인기로 영국 미술계에 등장한다.

현재 그는 살아있는 미술가들 중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몇 명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이들 중에는 잭 니콜슨(영화배우), 알렉스 퍼거슨(축구감독), 마돈나(가수) 등이 있으며, 그의 대표작인 ‘The Singing Butler’는 13억 원에 가까운 금액에 팔리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대중적인 인기와는 반대로, 미술 비평가들은 그를 예외적인 인물로 취급하며 높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 비평계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잭 베트리나노의 작품은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릿하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바로 당기며, 한 때 열정을 불태웠던,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을 더듬는 듯, 애잔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극적인 색채의 대비와 인물들의 동적인 움직임이 녹아있는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이들과의 시선을 맞춘 채, 미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평온한 위로를 건넨다. 

* * *

잭 베트리아노의 작품을 한정적으로 캔버스에 프린팅한 작품을 가지고 있어서, 얼마 전까지 은행에서 전시했다. 위 글은 전시할 때의 설명문이다. 꽤 낯간지런 글을 적어 좀 쑥스럽긴 하지만.

잭 베트리아노는 대단한 예술성을 가지고 있거나, 실험적이거나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잭 베트리아노는 '딱 그만큼'인 화가이다. 나는 이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는 대중화가이다. 그는 시장에서 팔리는 화가이고, 그의 작품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포스터를 계속 찍어낸다. 캔버스에 프린팅된 작품은 멀리서 보면 원화처럼 보일 정도다.

그의 작품은 키치가 아니라 대중 예술이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현대적 정직함'의 표현이 아닐까. 솔직히 잭 베트리아노의 작품을 계속 보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다.

미투(
http://me2day.net) 친구 pink-lotus님께서 이 작품을 선호하셔서 아래와 같이 사무실에 있는 잭 베트리아노의 작품을 찍어 올린다. (* 한정 수량으로 제작된 캔버스 프린팅 작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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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nk-lotus 2008.02.23 01:42 신고

    "Dance Me to the End of Love"와 더불어 탱고를 배우고 싶게 하는 그림들이예요.
    그 사람의 다른 그림들은 이 두 점의 그림만한 감흥은 없는 것 같지만, 대작은 아니라해도 늘 바닷가의 춤추는 남녀의 그림이 오래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로망과도 연결되어 있어서도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잘 감상합니다. 고마와요. :)


라파엘전파 - 8점
팀 베린저 지음, 권행가 옮김/예경

팀 베린저(지음), 권행가(옮김), <<라파엘전파>>, 예경, 2002년(초판)



예쁜 그림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라파엘전파. 대다수의 미술사가들이 그 가치를 폄하하고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미술, 그래서 '위선과 기만'의 시대로 알려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미술 양식.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라파엘 전파 화가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 어쩔 수 없이 그 가치를 인정해주기에는 그들의 작품들이 그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서술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를 시작으로 존 에버릿 밀레이, 번 존스, 매독스 브라운 등의 일군의 예술가들이 그려낸 세계를 그 당시 영국 미술계를 주름잡았던 비평가 러스킨의 세계를 비교해가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3장 근대생활에서는 라파엘 전파가 20세기 후반의 미술사학자들에게 흥미로운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는 의미 있는 챕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사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 책을 굳이 사서 읽을 필요는 없을 듯싶다. 차라리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알 수 있는 역사책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아래는 이 책을 참조하면서 라파엘 전파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한 글입니다. 이 책의 저자와는 다른 시각에서 쓰려고 노력한 글이므로 부분부분 책의 내용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라파엘전파(The Pre-Raphaelites)는 1949년 스무 살의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가 자신의 작품에 PRB(Rre-Raphaelites Brotherhood)라는 이니셜로부터 시작된다. 다분히 그 당시 영국 미술계에 대한 반항의 몸짓이었고 그가 보기에 회화는 라파엘 이전의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나 후기 고딕의 미술 양식으로 돌아가야 되었다. 그래서 그를 반동적인 화가로, 라파엘 전파를 반동적이며 혁명적인 화파로 이해할 수 있으나, 실은 그렇지 못한다.

그들이 공공연히 내세웠던 주제의식은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것들 중의 하나이며 그들의 작품이 고딕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 또한 19세기 복고적 낭만주의의 한 유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복고적인 낭만주의는 공장제 산업의 발달로 인한 여러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퓨진(Augustus Welby Northmore Pugin, 1812-52)은 1440년의 카톨릭 마을과 1840년의 같은 마을을 비교하면서 근대 도시가 퇴보하였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일련의 고딕적 경향은 라파엘 전파에게도 이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WN Pugin, 'Contrasts', showing the same town in Victorian and middles ages'.
http://www.pugin.com/ : 퓨진 소개 웹사이트. 19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따라서 라파엘 전파를 혁신적인 미술 양식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인 셈이다. 에드워드 번 존스는 아예 스태인드 글라스를 제작하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Wedding of Sir Tristram, 1862, stained glass designed by Burne-Jones for the music room at Harden Grange, Bingley

그리고 이러한 고딕적 경향은 라파엘 전파 특유의 유미주의적 경향,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가진 여성을 드러내어 자기 파괴적 경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19세기 후반의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La Ghirlandata, 1873, oil, Guildhall Art Gallery at London
Dante Gabriel Rossetti(1828-1882)


라파엘 전파에 속했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긴 이로는 포드 매독스 브라운일 것이다. 그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과 가족에 대한 위선적 태도를 캔버스를 통해 드러냄으로서 다른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과 차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래의 그림 속에서 아내는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지만, 이미 아이는 죽은 듯 표현되어 있고 화면은 어둡고 불길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ord Madox Brown (1821 - 1893)
'Waiting: an English fireside of 1854-5'
1851 - 55
Oil on panel, 30.5 x 20cm


아예 이 작품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여성의 머리 뒤로 보이는 거울은 그녀를 성모 마리아처럼 보이게 하고 아기를 아기 예수로 보이게 한다. 다분히 반종교적인 그림은 그 당시 문란했던 성 풍습과 사생아 문제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동시에 남성들에게는 일종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ord Madox Brown (1821 - 1893)
`Take your Son, Sir', 1851-92(?)
Oil on canvas
705 x 381 mm
painting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대표적인 작품인 <수태고지>에서도 성모 마리아는 소극적이며 다소 주눅이 들어있는 여성처럼, 천사 가브리엘은 적극적인 구애를 표현하는 남성처럼 표현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cce Ancilla Domini! (The Annunciation), 1849-50, oil, Tate Gallery in London.


라파엘 전파에 속했던 화가들의 작품들이 고딕적 낭만주의를 이어받고 있으며 종종 낭만주의의 병적인 태도까지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과 기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빅토리아 시대 속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시대 속에서 종교 속으로, 유미주의 속으로 자신의 세계를 옮겨가지만, 그 속에서도 안주하지 못하고 자기 파괴적 경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분히 후퇴적인 미술 양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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