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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지음), 이용숙(옮김), 예담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경우를. 채 30분도 되기 전에 다 읽은 이 소설집.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금방 끝나버리는 소설. 그리고 누구나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짧은 소설들. 하지만 페터 빅셀은 이 소설들을 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지금 여기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주인공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자라는 사실이다. 정서적으로 유연한 여성들에 비해 남자들은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회와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경우가 더 흔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젊은 작가 빅셀이 고집 세고 편협한 이런 노인들을 더 없이 따뜻하고 이해가 충만한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지구가 둥근지 확인하려고 떠난 노인을 날마다 기다리는 작가, 또 요도크 밖에 아무 것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애정으로 감싸는 작가의 태도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작가적 사명감의 표현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101쪽


고집 세고 편협한 이런 노인들을 만난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할까? 따뜻하고 이해가 충만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면 고집 세고 편협한 젊은이들을 만난다면? 과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회와의 소통이 어려워진다면, 그건 그/그녀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문제인가. 


작가적 사명감은 이미 일어난 문제를 감싸 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페터 빅셀의 한계는 여기에 존재한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동화적 시선으로 현대의 문제를 바라보고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이다. 


다시 묻자. 당신 앞에 어버이연합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면서 싸우려고 든다면? 엄마부대 봉사단의 할머니가 나타나 편협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논리로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일베에 빠져 당신의 의견에 대해 사사건건 반박하며 과격한 논리로 공격을 일삼는다면? 


이 소설은 이 지점에서 무너져내린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읽고 자신의 잘못, 소외되고 편협한 사고와 언어를 가지게 된 이들에 대해 무정하게 대했다는 것을 후회하고 반성한다면, 그건 잘한 일일까? 


글쎄다. 내가 읽은 이 소설집은 좀 형편없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했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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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지음), 예담 





연애의 기억일까, 아니면 사랑의 기억일까. 딱 세 명만 나오는 이 소설은 일종의 연애 편지이며,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배경 삽화에 머물고 그저 흘러갈 뿐이다. 말줄임표가 유독 많은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연애라고 할 만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고,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결국 모든 것은 죽어 사라지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남긴 흔적이라는 건 우리 마음의 위로를 위한 변명거리일 뿐이다. 


소설은 못 생긴 여자를 향한 사랑을 담고 있다지만, 실제로 그녀를 만나지 못한 나는 그녀가 못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도리어 내 경험 상 못 생긴 여자가 클래식 음악과 미술에 조예 깊은 경우를 보지 못했다. 반대로 문화적 깊이를 가진 이들 모두 예쁜 여자가 아닐까 하는 편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 나온 그녀는 못 생기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못 생긴 여자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너무 진지한 소설만 읽은 탓일까. 독자들은 이런 소설을 읽을 것이고 소설가들은 이런 소설을 쓸 것이다. 나의 문제다. 세상은 시간이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사랑도 피폐해져 진심어린 사랑 따윈 부서진 개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요즘, 사랑 이야기가 뭘까 싶다. 나의 문제다. 사랑은 없고 현실만 남은 내 문제다. 아마 살아남은 그들에게도 사랑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게 될 것이지만, 소설가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실은 그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 거친 현실 속에서 지쳐 죽어갈 때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서 남는 건 사랑’뿐이더라고. 


이 소설을 선뜻 권할 마음은 없다. 몇 년 전 내가 이 책을 서점에서 구입한 것은 대학 선배의 소설이면서 책 뒤에 시디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디는 수 백장 시디 더미 속에서 길을 잃었고 나는 현실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으니, 거참. 


박민규의 다른 소설을 읽은 바 없으니, 소설에 대해서 평하기도 그렇다. 다만 연애 소설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는 해피엔딩이니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저 | 예담 | 2009.07.2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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