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미술사 책을 읽기는 하나, 그건 일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한때 책을 내기도 했고 강의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십 수년 전 일이고, 마지막 잡지 기고를 한 것도 꽤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아내의 일로 커뮤니티 자치 활동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의 제안으로 한 차례 강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간단한 강의 개요다. 막상 적기는 쉽게 적었으나, ... 도판 찾는 게 일일 듯 싶다. 요즘은 워낙 온라인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어 쉽게 도판을 찾을 수 있으나, 정확하고 적절한 도판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지라, 꽤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동네에서의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공개적인 장소, 가령 북까페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하면 좋을 것같기도 하다. 이런 강의도 자주 해야 까먹지 않는데, ... 머리가 굳어져서 큰 일이다. 


*** 

 

미술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현대미술감상법 


우리의 마음과 예술의 경향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을 뿐이다’라고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첫 문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 뒤에 놓여진 예술가의 삶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때의 예술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중세 말의 고딕 성당을 알기 위해선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13세기의 유럽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현대의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당 대신 거리로 나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의 차이는 이와 비슷합니다. 신의 존재와 신앙의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마음과 태도도 그 시대의, 그 나라의 예술작품을 만듭니다. 





생-드니 성당. (1135 - 1144)



매너리즘과 현대 

예술사에서 매너리즘(마니에리즘)은 16세기 중후반의 지배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퇴보로 이해되었던 탓에, 이 양식의 명칭은 경멸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시대의 예술은 가장 현대적인 예술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예술 양식이 어떻게 경멸당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게 되는가 흥미로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됩니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예술은 크게 고전주의(고전적 예술)과 낭만주의(낭만적 예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식에서의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시대와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며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도 함께 탐구합니다.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 1505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 

서로 대립되는 양식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대립되는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외부 세계와 마주할 때 취하게 되는 양식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가 함께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품과 기하학주의 작품을 함께 비교해가며 예술가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봅니다. 


이집트, <사자의 서> 일부, BC.127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으로 보는 현대미술과 우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은 현대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 작품 안에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피고, 현대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론 뮤익, <침대에서>, 200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영어공부를 위해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를 편입했다. 그러나 영어 공부 대신 나는 영미시의 아름다움과 셰익스피어를 알게 되었다. 문학 전공자로서, 시 창작까지 공부했지만, 영미시의 아름다움을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건, 내가 다닌 학부 과정이 형편없었거나, 내 지적 역량이 떨어졌던 탓일 게다. 


셰익스피어는 매너리즘 후반과 바로크 전반기에 속한다. 근대에서 속하면서도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의 혼란스러움이 셰익스피어 극작품 속에 숨겨져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극중 인물들의 운명을 가로지르며 절정을 지나 결말에 이르게 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극작품들과 비교해 그 분량은 짧으며, 극적 완성도나 속도감은 최고다. 하나의 사건은 곧장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며 인물들의 감정도 마치 폭풍이 치는 해안가의 파도처럼 격정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들이 매너리즘적 속성이라 파악하고 이를 매너리즘 양식 속에서 해석하는 것을 방송통신대 영문학과 졸업 논문 주제로 정했다. 아래는 졸업논문계획서다. 바쁜 프로젝트 중에 겨우 시간을 내어 급하게 적어 제출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방송통신대 다니는 것은, 그냥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칠만한 일임을 휴학을 밥 먹듯 한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에 졸업할 수 있었으나, 결국 하지 못하고 올 1학기에 졸업한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자. 


*     *  

<<맥베스>>의 매너리즘적 성격에 대하여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은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기였다. 중세가 끝났지만, 중세의 여운이 남아 있었으며(<<맥베스>>에서는 세 명의 마녀들로 표현된다), 동시에 운명의 손(또는 기독교의 질서)을 벗어나 개인의 능력, 이성과 과학을 믿는 시대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친다. 그래서 한 손에는 종교를, 한 손에서는 이성을 들고 서로 갈등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셰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함께 매너리즘의 가장 위대한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모호함은,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이에 필자는 1)문학에서의 매너리즘 양식의 특성을 먼저 정의하며, 2)세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의 영국과 유럽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난 다음, 3)세익스피어의 <<맥베스>>가 가지는 매너리즘적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사이의 반동적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속하는 이들로는 말년의 미켈란젤로, 세르반테스, 마키아벨리, 엘 그레코 등이 있다. 이들은 다가오는 미래-이성의 시대인 근대-를 예감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적 질서에 대한 믿음(혹은 의심) 속에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갈등하는 세계를 공유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도덕적 수단까지도 용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하다고 말하면서 노골적인 폭로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즉 잘못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전도된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몽상(꿈)에 빠진 인물을 통해 시대착오적 현실-근대이지만 중세인-을 비아냥거리며 비판하고 절망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현실의 세계가 비현실적 요소(꿈, 유령, 마녀 등)로 영향 받고 흔들리며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극적 현실 속에 숨겨진 인간 군상의 진실을 보며, 그 앞에서 신의 세계에서 벗어난 인간의 개별성에 주목하게 된다. 매너리즘은 신의 세계를 떠나 인간의 세계로 가는 도정 상에 위치하면서 그 길 위에서 흔들리는 시대상을 대변하는 양식인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매너리즘적 세계가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구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구성이 그 당시 영국과 유럽의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게 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 베로니카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닦아 준다. 그리고 그 수건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다. 아래 작품은 그 기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이콘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비잔틴의 이콘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스 태생의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 후기(매너리즘)의 화풍을 배웠고 이후 스페인 톨레도로 가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는다. 




엘 그레코, <<수건을 든 베로니카>>, 캔버스에 유채, 84 cm * 91 cm, 1580년경, 톨레도, 산타쿠루즈 성당



슬픔에 젖은 베로니카가 수건을 펼쳐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줄 때, 어떤 비장미까지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수건과 뒤 배경 사이의 묘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보면 아래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 사진 한 장을 더 올린다. 무표정해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베로니카, 두 손 사이의 수건, 주름진 천 위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6세기 후반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엘 그레코. 이 작품은 보면 볼 수록 빨려든다고 할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http://www.metmuseum.org/collection/metcollects/feature 

http://www.metmuseum.org/collection/objects?pkgids=279&feature=nineteenth-century-exhibition-pistols 



사진 이미지를 확대해서 보면, 그 장식의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그런데 이는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 권총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전시 중인데, ~ 왜 요즘에는 이런 물건이 나오지 않는 걸까? 인건비 때문일까. 


하긴 이 권총을 주문하여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재력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라는 건 상상하고도 남을 일이긴 하지만. 





Roses

Vincent van Gogh (Dutch, 1853–1890)

1890



반 고흐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을 후벼파는 듯하다(했다). 그의 정신적 고통, 혼란이 고스란히 페인팅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반 고흐를 좋아하세요? 얼마나 좋아하세요?라고 묻곤, 아, 반 고흐 시대였다면 '당신은 정신병자예요'라고 말한다. 너무 잔인한가. 하지만 알 건 알아야 하니까.


이것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 


두 사진 이미지 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옮겨왔다. 

https://www.facebook.com/metmuseu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카메라 루시다는 하나의 광학 장치이며, 카메라 옵스큐라는 일종의 광학 현상을 이야기한다. 원래 이 글은 좀 길고 자세하게 적을 생각이었으나, 그럴 시간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터라, 대강 정리해보기로 한다. 


카메라 루시다는 광학자이면서 물리학자, 화학자 였던 윌리엄 하이드 울러스턴(William Hyde Wollaston)이 발명한 광학 장치이다. 일종의 드로잉 보조 도구로,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무척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장치다. 프리즘에 135도 각도의 반사면 두 개를 설치하여 비치는 이미지를 관찰자의 눈에 전달하는 장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실제로 그림의 초안을 잡거나 디테일한 부분들을 보다 정확하게 잡아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도구인지라, 어느 정도의 연습과 숙련이 필요했다. 아래 사진을 보라. 카메라 루시다를 활용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를. 이렇게 초안을 잡고 그 위에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드로잉과 페인팅을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실제 카메라 루시다의 모습이다. 지금도 구할 수 있다. 꽤 정교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출처: http://perspectiveresources.blogspot.kr/2012/03/how-to-use-camera-lucida.html  



카메라 루시다를 활용할 경우, 위 사진처럼 물체의 정확한 길이나 비례, 위치나 각도를 잡을 수 있다. 이것은 19세기 초에 발명되었고 상당히 많이 통용되었다. 그렇다면 카메라 루시다를 이용한 화가들와 그렇지 않은 화가들의 차이는? 큰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지금 사진기를 활용하는 화가와 그렇지 않은 화가를 구분지어 가치판단하려는 것과 동일하다. 위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 작품성을 결정짓는 것은 카메라 루시다를 모든 화가들이 사용했다고 해서 진짜 재능은 카메라 루시다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도 언급한 광학적 현상이다. 방을 어둡게 하고 창 틈의 작은 구멍으로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하면, 외부의 상이 거꾸로 벽면에 비치는 현상이다. 바로 아래처럼. 


abelardo morell : ‘camera obscura’ (photography)

The Chrysler Building in Hotel Room, Camera Obscura image

gelatin silver print, 1997 

website : http://www.abelardomorell.net/photography/cameraobsc_01/cameraobsc_01.html 



아, 이걸 사진 작품의 소재로 이용하는 사진가가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이건 카메라 루시다보다 더 사용하기 어려워서 대단한 인내를 요구했음에 분명하다. 아래 이미지를 한 번 보라. 




출처 : http://etc.usf.edu/



아휴, 이걸 어떻게 그리고 있을 것인가.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어두운 방 안에 있고 모델이나 그림의 소재가 되는 피사체는 밝은 바깥에 위치하여 아래와 같이 벽면에 비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당연히 벽면에 비치는 피사체는 거꾸로이고. 하지만 초상화라면 얼굴의 윤곽 - 눈, 코, 입, 턱선 등 - 만이라도 스케치해놓으면 작업은 매우 수월해진다. 



출처: http://blog.staedelmuseum.de/verschiedenes/techniken-der-fotografie-die-camera-obscura-teil-210 



그런데 이런 카메라 옵스큐라를 경험할 수 있는 도구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아, 이런 걸 왜 미술 시간에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했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아래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볼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법이다. 

출처: http://galleryhip.com/how-to-make-camera-obscura.html 



그리고 이건 실제로 만든 샘플. 



출처: http://galleryhip.com/how-to-make-camera-obscura.html  



카메라 루시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미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을 보면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도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위대한 예술가들은 달랐다는 점이다. 결국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카메라 루시다를 찾아보니, 아마존에서는 몇백불이면 구할 수 있다. 혹시 이런 도구를 통해 드로잉을 한다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진이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참고로, 인상주의 대가 끌로드 모네도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 



LUCY Drawing Tool: Another Camera Lucida from the Makers of LUCID-Art  (아마존으로 연결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 E. 흄(Hulme) 지음, 박상규 옮김, 현대미학사 





위대한 화가란 모든 사람들의 비젼이 되었고, 

또 장차 비젼이 될 어떤 사물의 비젼을 처음으로 가졌던 사람들이다. 

- 133쪽 


 


토마스 어네스트 흄(Thomas Ernest Hulme, 1883 - 1917)이라는 영국의 예술 비평가가 쓴 <<Speculation>>을 번역한 이 책은 다소 의외의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1980년대 초반 박상규 교수(홍익대)가 번역한 문고판 책을 현대미학사에서 관심을 가져 새로 낸 듯하지만,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책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꺼내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2000년대 초반에 구입하였으니,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간 읽지 않고 서가에 꽂아두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평가의 문장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예술론을 이야기하는 흄의 문장은 사색적이면서도 모호하기만 했다. 꼼꼼한 독서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여 얻는 건 이미 다 논의되었던 내용들이거나,  흄이 기대고 인용하는 저자들의 책을 직접 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분명 1900년대 초반에는 최신의 시각이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이 있다면, 보링거(Wilhelm Worringer)과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예술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추상과 감정이입>>이라는 저서로 미술사의 해석에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 보링거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흄은 이 책 전반에서 보링거의 태도 -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예술과 자연주의적이고 감정이입적인 예술의 대비 - 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더욱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베르그송의 충실한 번역자였으며, 베르그송의 추천을 받기도 한 흄은 이 책에서 베르그송 철학에 대한 탁월한 요약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예술론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보링거의 이론에 기대어 흄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예술에는,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종류가 있다. 첫째로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예술, 즉 희랍의 예술과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 예술이 있다. 이러한 예술에 있어서는 선은 부드럽고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이집트와 인도와 비잔티움의 예술과 같은 예술이 또 하나 있다. 이러한 예술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각을 형성한 경향이 있고, 곡선은 날카롭고 기하학적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예컨대, 인체의 표현은 때로는 아주 비생명적이고 비틀어져서 여러 종류의 딱딱한 선과 입체적인 형태에 알맞게 되어 있다. (79쪽) 



그들은 실존의 여러 가지 혼란과 변덕에도 불구하고 보링거가 말한느 일종의 정신적 '공간 기피'에 좌우되어 있다. 예술에 있어서는 이러한 정신상태는 어떤 추상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창조하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는 인내력이 강하고 영속성이 있으므로 외부 자연의 유동성과 비영속성의 비난처가 될 것이다. (82쪽) 



세잔, <목욕하는 여자들>, 208 × 249 cm, 1906 (출처: 위키피디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세잔느의 최근의 그림의 하나인 <목욕하는 여자들>을 보라. 이 그림에서는 모든 선이 피라미드형으로 나란히 그려져 있고, 여자들은 이 모양에 알맞게 그려져 있다. 만일 하나의 그림에서 만족할 율동적인 구도를 항상 찾아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피라미드형의 구도에는 매력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싫증을 느낄 것이다. 그 형태가 아주 강렬하게 강조되어 있고, 기하학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그림은 '생명적인' 예술의 영역으로부터 추상적인 예술의 영역에로 끌어올려진 것이 된다. 그 형태는 르네상스의 예술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라벤나에 있는 (테오도라 황후) 비잔티움의 모자이크에서 보는 구도에 훨씬 더 흡사하다. (94쪽)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화 - 테오도라 황후와 시녀들.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베르그송의 철학과 예술론에 대한 논문들도 책에 실려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지성은 모든 물체란 완전히 분석되어서 개개로 분리될 수 있는 요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성은 결과로서 모든 변화를 이러한 분자의 단순한 위치의 변화에 귀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지성은 변화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변화를 설명한다. (168쪽) 



즉 그것들은 진정한 시간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은 '주어져' 있다. 진정한 창조는 없다. 그는, 생명의 모든 형태의 특징은 생명의 모든 형태가 뚜렷하게 지속성 속에 존재하여 있고, '시간'이 그것에 대하여 차이를 일으키게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그것을 '깨물고', 그리고 이빨의 흔적을 거기에 남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늙어간다. 그런데 물질은 결코 늙어 가지 않는다. 물질은 항상 '불변하는' 것이고, 항상 '동일한' 것이다. (178쪽) 



보링거와 베르그송의 예술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 소개 정도로 읽을 만하다. 다만 깊이 있는 연구 논문이라기 보다는 스케치에 가깝기 때문에 연구자들이라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맨 뒤에 실린 <잿더미>라는 글은 단상을 엮어놓은 짧은 노트이나, 두고 읽을만큼 좋다.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E.흡저 | 현대미학사 | 2002.09.1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미의 기준은 바뀌고 미의 대상도 바뀐다. 미소년에 대한 염모는,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18세기 후반, 시대는 로코코로 향하고 티에폴로는 바로크적 몸짓 속에 로코코적 염원을 담아낸다. 동성애적 갈망이 화폭에 담긴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즉 선미의식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선한 것이 아름다운 것. 그래서 고대에는 여성의 아름다움보다 남성의 아름다움이 더 추앙받았으며, 이는 근대에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는데, 예전 싸이월드에 올린 글들을 이렇게 옮긴다. 업무용으로 네이트온을 사용하다 보니, 쪽지로 예전에 올린 글들을 알려주고, 이를 다시 블로그에 올린다.) 





2003년 12월 3일에 쓰다.






The Death of Hyacinth

1752-53

Oil on canvas, 287 x 235 cm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Madrid



18세기 중엽의 지오바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작품이다. 시기적으로 로코코 시대에 속해 있으나, 프랑스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후기 바로크로 분류될 수 있겠다. 뭐, 후기 바로크가 로코코이기도 하니. 이 구분은 좀 애매한 감이 없지 않다. 


여하튼 이 작품은 아폴로와 히야신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폴로와 아름다운 소년인 히야신스가 원반 놀이를 하다가 히야신스가 그만 원반에 맞아 그 생명을 잃어버리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데, 저 누워있는 히야신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에로틱'이라는 표현보다 '농염하다'라는 표현이 더 와닿는 듯하다. 얼마 전에 르누와르의 <Young Boy with a Cat>을 올렸는데, 다들 미소년에 대한 관심들이 있는 듯해, 미소년 시리즈로 작품을 하나 더 올린다. 


요즘에도 미소년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일명 '동성애' 그러니 과거의 일은 아닌 셈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푸생과 바흐만큼 어울리는 짝도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한 명은 고전적 바로크 예술가이고 다른 한 명은 바로크 음악의 대가이다. 연주되는 음악 밑으로 깔리는 엄격한 작법은 마치 푸생의 고전적 태도를 엿보게 한다고 할까. 라이프니츠의 기하학 - 바흐의 변주 - 푸생의 고전주의를 연결지어 공부하면 참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책이나 잡지를 읽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으나, 정리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메모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그 메모들을 정리할까 하는데, 오늘 발견한 것은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의 이야기다. 


추상표현주의 대가 칸딘스키. 그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회화성'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 색채의 율동(리듬과 운동)으로만 구성된 일련의 작품들을 완성했다. 특히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초 추상 미술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Composition IV 

1913년도 작



"색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힘이다. 색은 건반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끈이 달린 피아노다. 예술가는 연주하는 손으로, 하나의 키 또는 다른 키를 두들겨서 영혼을 떨리게 만든다."

- 칸딘스키 





파울 클레, 또한 음악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고 공공연히 음악과 미술의 연관성, 그리고 회화가 가지는 음악성, 리듬, 선율을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말에 귀 기울였는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그의 의도와는 관련없이 파울 클레는 종종 색채, 색채 구성이 가지는 기하학적 형태가 더 많이 언급되곤 한다. 


실은 음악만큼 기하학적인 구조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중세 시대 내내 미술은 천대 받았지만, 음악은 천상의 구조를 그대로 현실 세계로 옮겨놓은 기하학적 유비로서 인정받았다는 걸 떠올린다면, 우리는 쉽게 파울 클레를 통해 현대 음악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Red Balloon, 1922, Oil on muslin primed with chalk, 31.8 x 31.1 cm.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나는 이 세상에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편안하게 머무는 곳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대개의 경우 창조의 핵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 

- 파울 클레 




* 도판 출처: 위키피디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프레데릭 다사스(지음), 시공디스커버리총서



“형태(형식)는 그것이 재료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다면, 정신의 관점(추상)에 불과하거나 이해하기 쉽게 기하학으로 표현된 영역에 대한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처럼, 예술은 결코 환상적인 기하학이나 그보다 더 복잡한 위상지리학이 아니다. 예술은 무게와 밀도와 빛과 색채와 연결된 그 무엇이다.”
- 앙리 포시옹, ‘형태들의 삶’, 1939년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으로 학고재에서 번역 출판되었음)





이 책은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시리즈들 중에서 제법 어려운, 하지만 바로크에 대해서 그 어느 책보다 충실한 내용을 가진 책이다. 프레데릭 다사스의 ‘바로크의 꿈’은 건축을 중심으로 바로크 양식이 가지는 특성과 지향했던 세계를 풍부한 도판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종종 책의 서술은 딱딱하지만 흥미롭고, 전문적이면서 아름답고 운동감으로 넘쳐 흐르는 바로크 건축에 대해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 여겨지는 바로크 양식에 대한 이해가 실은 대부분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음을 안다면, 이 작은 책은 매우 귀중한 역서가 될 것이다.

바로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오해와 짧은 식견으로 인해, 바로크 양식이 가지는 역동성, 충돌과 열정, 극적인 자연주의가 근대성(modernity)를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현대인)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아래 인용된 설명처럼 바로크 양식은 먼저 고대와 중세의 본격적인 단절과 극복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그 시작이라면.


고대의 유산인 건축의 오더는 무엇보다도 비례 체계라 할 수 있다. (중략) 오더의 비율은 인간 신체의 비율을 반영한다. 오더의 인간 형체는 오더의 미가 지닌 신성하고 절대적인 성격과 특히 오더가 구성하고 있는 건물의 조화를 보증한다. 또한 오더는 장식 체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한하고 미묘한 변화가 가능하며, 건축가에 따라 그 질이 좌우되는 조각 부분 - 쇠시리 장식 - 에 큰 중요성이 부여되기도 한다. 오더는 운율론에서 보면 12음절 시행의 구조에, 그리고 고전음악의 협화음에서 나타나는 음계법의 체계와 비교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는 조화와 표현의 체계인 것이다.
- 46쪽 ~ 47쪽



 

17세기 후반부터 오더는 비틀림, 중단된 회전, 늘임, 병렬 등 지나친 변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오더에 대한 조작 범위가 체계적으로 연구되면서 오더의 완전성 자체가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 48쪽




고대 건축의 오더 양식
출처 http://blog.naver.com/archmys/30106190006



출처
http://www.romasegreta.it/scarlo_alle_quattro_fontane.html 
보로미니의 산카를로알레콰트로폰타네 파사드.

[작품설명] 고대 건축에서 오더는 기하학적이며 규범적이었지만, 바로크에서의 오더는 건축의 일부로 들어가며, 도리어 건축 외형에 있어 방해가 되는 것이 되었다. 보로미니의 위 건축물은 바로크 건축의 시작을 알린 건축물들 중의 하나로, 건축물 외벽에 운동성을 표현한 최초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예술 양식의 역사에서 르네상스 - 매너리즘 - 바로크로 이어지지만,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은 것은 바로크이다 (마치 르네상스 미술의 철학적 반영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듯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매너리즘은 반-르네상스 운동이며, 후기 중세(고딕)적이며, 종종 반-근대적으로, 후기 근대적(postmodern)으로 해석된다. 이를 다시 이야기하자면, 고대와 중세를 벗어나기 위한 근대인의 운동은 비로소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와서야 그 꽃을 피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정확하기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뉴턴의 시대와 일치한다.

바로크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은 고대의 영향 속에서도 고대와 다른 이상을 열망하였으며, 신의 세계(중세)에서 벗어나 인간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건축을 하나의 감각적인 체험으로 만들고자 열망했던 건축가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들인 빛과 공간에 대한 탐구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시각적 효과에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수단들을 그에 집중시켰으며, 채색되거나 조각된 장식을 건축과 융합하는 놀랄 만한 대담성을 보여 주었다.
- 75쪽




바이에른의 비스(Wies) 교회
[작품설명] '연극성'은 바로크 전반을 물들이는 하나의 기조였다. 이는 건축 내부에서도 반영되는데, 비스 교회도 여기에 포함된다.



인간의 세계에 충실했던 그들은 감각적 체험을 우위에 둔 시각 세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경험론 우위의 자연관이 시작된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이 바로크 양식의 다양성을 표현한다면, 바로크 이후의 양식들은 경험론의 우위를 공공연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로코코는 바로크 후기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극적인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인간적 범속함을 채용하기도 하였다. 가령 성적인 표현들.) 

이 책에 담긴 바로크 양식에 대한 충실한 설명은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양식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 뿐만 아니라 17세기 서양 예술 전반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흥미로운 한 부분을 옮긴다. 이는 정원 양식에 대한 것이다. 요리가 예술이듯이 정원도 예술 장르 중의 하나다. 이 점에서 예술의 역사에서 정원도 한 부분을 차지해야겠지만, 시간에 종속된 정원은 오직 현재성만을 드러내는 까닭에 역사적 서술이 어렵다. 아래는 르네상스 이후 정원 양식의 변화를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Picturesque Garden이라고도 한다)의 대비은 언제나 흥미롭다.


르네상스식 정원은 테라스, 동굴, 폭포를 설치할 수 있는 경사진 땅을 선호하며 풍부한 물놀이가 구성되어 있고 녹음이 중요시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녹음의 아래로는 기하학적으로 정돈된 화단 옆에 놀라움을 선사하는 설치물과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동굴이 있는 길이 나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프랑스 정원은 기복이 별로 없는 토지에 적응해야 한다는 조건과, 그늘이나 시원한 동굴에 관심을 두지 않는 탁 트인 성격으로 인해, 건물을 ‘안뜰과 정원’ 사이에 영지 입구를 설치했다는 점에서 다른 양식과 구별되었다.

풍경화식 정원을 형성하는 근원으로의 회귀는 1720년대에 영국에서 등장하는데,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식 궁전의 공간과 대립된다. 이것은 지식인의 인본주의적 성찰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자 전통적인 정원 양식을 거부하는 정원 형식 상 혁명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정원의 건축가들은 전세기에 푸생, 로렌 또는 네덜란드의 풍경주의 화가들이 그린 이상적인 풍경 속에서 영감을 얻었다.
- 28쪽 ~ 29쪽







르네상스식 정원
The Villa Lante di Bagnaia

출처: http://www.gardenaesthetics.com/italian.html



프랑스식 정원
출처: http://blog.aladin.co.kr/stella09/501079 (베르사이유 궁 정원)

영국식 정원
출처: http://www.telegraph.co.uk/gardening/4389731/Britains-gardens-A-private-passion-and-a-public-disgrace.html


* 참조할만한 링크: 정원의 역사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gardening 
*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들 중 예술 양식이나 예술가에 대한 책은 적극 추천할 만하다. 나머지 시리즈들도 풍부한 도판과 알찬 설명으로 명성이 있지만.
 



[그 외 바로크에 대한 글들]
화려한 바로크 양식, 멜크 베네틱트 수도원 Melk Abbey   http://intempus.tistory.com/1389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http://intempus.tistory.com/716
바로크 예술 http://intempus.tistory.com/186
(* 검색에서 '바로크'로 검색하면 그 외 많은 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의 꿈 : 1600-1750년 사이의 건축 - 10점
프레데릭 다사스 지음/시공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 10점
조중걸 지음/프로네시스(웅진)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조중걸(지음), 프로네시스

 

키치’(Kitsch)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키치’를 ‘이발소 그림’으로 이해하는 것은 키치를 설명하기에 구체적인 스타일이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어떤 인식론적 태도라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카르스텐 해리스도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저자들은 키치를 이발소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인식론적 태도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키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영국 경험론을 이야기하고 현대 물리학과 현대의 추상 미술의 기원을 탐구해야만 한다. 이를 다 설명해야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실은 이 설명을 듣고 있는 (지적으로 무능하거나 성실하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의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교수나 강사도 드물다. 

이 책은 ‘키치’라는 단어에 대해 적고 있지만, 실은 우리 마음 속에 숨어있는 ‘허위’에 대한 집요하고도 논리적인 공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키치라는 단어 대신 ‘불행하다고 여기는 현대인들이 행복을 가지기 위해 받아들이는 허위적 태도’로 표기해도 무방할 정도다. '키치'라는 단어가 일반 독자의 귀에 솔깃하고 흥미로워 보이겠지만, '키치'와 '키치가 뜻하는 바' 사이에는 소쉬르의 의견대로, 자의적 관계가 있을 뿐이다. 아무런 필연적 연관 관계도 없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키치'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다. 몇몇 독자들은 쉽게 이해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정신과 삶 전반에서 키치적 것들을 다 몰아내고 한순간이라도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 분투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본 이가 있을까?   

오지 않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공은 불이 꺼진 무대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너무 아찔하지 않은가? 같은 침대에 누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의 입술이 실은 거짓말이라고 탄로난다면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신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신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할수록 저 뾰족한 고딕 성당의 첨탑처럼, 공중 부벽처럼, 두터운 벽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처럼 기괴하고 현란하며 경련적으로 변하게 된다면? 고흐가 미쳐갈 때, 세잔은 자신의 내부에 견고한 기하학의 성을 쌓고 외부세계로 나가지 않는다. 고흐의 터치와 색상이 자신의 삶을 포기했을 때 나오는 것이라면, 세잔의 고전적인 기하학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영혼을 저 불가해한 현실 세계 속에서 지키고자 했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예술가 모두 이 세계 속에서는 이방인이었으며, 침묵했다.

정말로 이 세계에는 아무런 질서도, 원리도 없는 것일까?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으며, 그저 우연하게 왔다가 무의미하게 살다가 죽는 것일까?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끊임없이 그것을 반복하며, 현대의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그렇게 여겼으며, 철저하게 그들의 학문과 예술에 매진했음을 강조한다. 그 앞에서 우리는 그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현대의 고전주의자들인 모더니스트들이 자신의 내부에 견고한 성을 짓고 고전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가들은 그마저도 거짓과 허위라며 부정해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한다. 이러한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은 도리어 자본주의와 흥미로운 결탁을 만들어내며, 거짓된 이미지들을 소비하는 어떤 양식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 예술의 문제 의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거짓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예술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예술과 세계에 대해 궁금해지듯이, 우리의 정신적 방황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나에게 서양 미술사를 가르쳐 준 분이기도 한) 저자는 지성사(특히 철학과 역사)를 바탕으로 예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대 철학(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과 데카르트를 구분짓는 방식으로 기하학을 이용한다. 좌표 평면 상에서의 직선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면서 근대에 있어서의 ‘운동’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과 바로크 예술의 연관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아르놀트 하우저가 인상주의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베르그송의 철학과 드뷔시의 음악, 프루스트의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지성사적 이해에 기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우저는 철저하게 유물론적 입장에 서있었기 때문에 고딕 양식이나 르네상스 고전주의에 대해서는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조중걸의 말대로 ‘예술은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예술의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의욕’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예술에 대한 기술은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면, 기술은 철저히 인과적 관계 위에서 예술을 설명할 수 있지만, 예술의욕은 인과적 관계를 무시하며 그 당시의 사람들의 심성, 일상적 삶, 학문과 역사 등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먼저 요구한다. 이 책에서 미술과 문학을 넘나들고 철학과 과학을 가로지르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여러 번 읽기를 권한다. 적어도 현대 예술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그래야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최소한 진실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를 쓰기 전에 적어놓은 노트입니다. 바로크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로크: 근대성Modernity의 시작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일까?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꼭 이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든가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특징을 부각시켜서 말하거나 아예 이 물음에 대한 답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 실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단어들,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은 것의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17세기 서구사회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17세기와 2004년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 같은 철학자가 구상하였고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같은 예술가들이 재현하였던 그 당시의 세계와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한적한 일요일 오후에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몇 가지의 규칙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신호등이라는 교통시스템만 지키면 도로가 연결되어있는 원하는 목적지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동 속에서 자동차 안과 밖은 명확하게 구분된 공간이라는 점. 밖이 아무리 춥더라도 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 최초의 기획들은 기계론이다. 인과율적 체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그 기틀을 명확히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드디어 시계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시간과의 싸움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이 때 미래는 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신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신의 질서와 자연과학의 질서가 등가적 관계를 이루게 되고 이 사이를 예술가가 자리잡게 된다. 이것이 르네상스적 세계관이자 미학관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적 세계관은 얼마 뒤 매너리즘적 세계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데, 우리들의 삶이나 현실은 신적이지도, 자연과학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매너리즘에서는 나와 너, 이상과 현실, 어제와 오늘이 분열하게 된다. 고딕적 분열의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종종 겪게 되는 분열을 이미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분열은 바로크 시대에서 극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그 해소의 방법은 생각하는 나를 중심으로, 이상 대신 현실을, 어제 대신 오늘, 그리고 내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대성(Modernity)는 이 시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세계. 인간들이 만든 규칙이 신의 규칙과 똑 같은 위상과 가치를 지니게 되는 세계. 유한한 세계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세계. 아니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세계. 이제 무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는 끝이 나고 유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드디어 세속적이며 경험적인 세계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에 들어서 고딕적 분열 양상은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중심으로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완전한 해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살아가면서 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해소로도 바로크 예술가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긍정하는 시대였다.

바로크는 절대왕정의 시대이면서 과학혁명의 시기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시대이면서 우리들의 약점들이 무수한 장점들로 가려져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에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 바흐,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 1685-1759), 카라바지오, 베르니니,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 1599-1660),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렘브란트, 베르미르(Jan Vermeer, 1632-1675), 푸생,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 1600-1682)이 속하며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과 라신느(Jean-Baptiste Racine, 1639-1699),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1684), 몰리에르(Moliere, 1622-1673) 등의 프랑스의 극작가들, 그리고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여기에 속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Rene Descartes
Frans HALS, c. 1649
Oil on panel, 19 x 14 cm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2.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인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먼저 이야기했지만,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에 와서 비로소 논쟁거리가 된 '지동설'은 인간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당시 천문학의 발전은 이 우주에는 끝이 없으며 끝 없는 우주에서 인간은 그저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천동설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신(무한자)과 가까이 있었으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것은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동설의 세계 속에서 지구는 우주의 변방이며 인간은 신(무한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었다. 즉 드디어 인간은 신과 무관한 어떤 존재, 심지어 신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파스칼에게서 두드러지며 바로크 양식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내며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확실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티끌 같고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불안은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뭔가를 할 수 있고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과 자만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정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데, 서구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전제군주제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되었다는 점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신화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세계의 안정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많은 것을 포기한 구교와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를 부여 받은 개신교 사이의 분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rtrait of Louis XIV
Hyacinthe Rigaud, 1701
Oil on canvas, 279 x 190 cm
Musee du Louvre, Paris



바로크의 세계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행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의 회화 속에서는 '진리를 잡기 위해서 운동하는 나' 즉, 데카르트적 자아가 있으며 그 운동이 모아지는 빛나는 중심으로 삶의 격정, 활력이 흘러나온다. 드디어 어둠 속에 묻어두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적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물은 유전한다. 한 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다시 담글 수 없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한 번 담그는 그 강물 속에서 강물의 본질을 잡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진다.


3. 정지에서 운동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Embarkation of St Paula Romana at Ostia
Claude Lorrain, 1637-39
Oil on canvas, 211 x 145 cm
Museo del Prado, Madrid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고전주의이다. 그것은 기하학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이 세계 속에서는 운동이나 생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크는 반대로 운동이나 생성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들의 생각을 전개시킨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 세계 속에서 나는 내 가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드디어 진리를 향한 삶의 성실성이 요구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의 포기는 경험적 세계 속에 있는 유한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t Matthew and the Angel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32 x 183 cm
Formerly Kaiser-Friedrich-Museum, Berlin
(* 현재는 소실되어 없으며 그 당시 불경하다는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92 x 186 cm
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하나는 교회로부터 거절당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작품이고 하나는 교회에 걸렸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작품이다. 카라바지오만큼 바로크 시대에 걸맞은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난봉꾼에 일자 무식에 매일 사고만 치는 건달이었지만, 그는 예술가였다. 드디어 지적 교양을 가진 예술가에서 지적 교양 없이도 예술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의 시대로 변해온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적 영감을 중요시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은 바로 한 발짝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자연과학적 태도는 신의 질서를 자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술의 세계 속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매너리즘 예술가인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이 태도는 실제 있었던 그것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변화하였으며 바로크에 이르는 그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카라바지오의 세계에서 성 마태와 천사는 한 쌍의 연인처럼 붙어있는 것이다. 신의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고독한 성인과 그 고독을 위로해주는 천사로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지오의 세계는 교회로부터도 거부당했고 그 당시의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거부당했다. 아마 21세기에서도 카라바지오의 작품이 불경하다고 여기는 기독교도가 있을 것이니, 17세기 때의 기독교도라면 그 거부는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4. 경험적 세계 속으로

우리 앞에서 지금 두 개의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멸하며 경건하고 신성한 신의 세계이며 하나는 경험적이며 유한하고 언젠가는 죽게 될 인간의 세속적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세계이며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이다. 하나는 정지된 공간의 세계이며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는 시간의 세계이다. 그리고 바로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게 그 가치를 두는 양식이다.

베르니니에게 신과의 교감은 인간적인 그 어떤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즉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도리어 그의 경험이 신과의 교감과 비슷한 유형이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을 수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Ecstasy of Saint Therese
Bernini, 1647-52
Marble Cappella Cornaro,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은 수치이거나 불경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한 치의 주저함이나 물러남 없이 자신의 모습이 왜소해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는 것. 이제서야 인간적인 것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세계이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더니티의 핵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elf-Portrait
Rembrandt, 1627
Oil on wood, 23,5 x 17 cm
Staatliche Museen, Kassel
 


사용자 삽입 이미지

Self-Portrait
Rembrandt, 1668-69
Oil on canvas, 82,5 x 65 cm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어쩌면 예수도 늙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인 뒤러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치 예수처럼 그렸듯이 렘브란트는 그도 늙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 드디어 변화한다는 것이 가치를 가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운동이며 생성의 세계, 경험적 세계를 뜻한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바로크 예술가들에게 이것은 훈장과도 같았던 것은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의 파사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 로마
 

건축에 도입된 유려한 곡선은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하던 이전의 건축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건축 속에서 도입된 이러한 운동감은 조각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pollo and Daphne
Bernini, 1622-25
Marble, height 243 cm
Galleria Borghese, Rome
 


조각에서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베르니니만큼 잘 구현했을 만한 조각가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아폴론과 이 사랑을 거부하는 다프네가 올리브 나무로 변해가는 순간을 표현한 이 조각에서 바로크 시대의 사랑을, 바로크적 비극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이제 드디어 언젠가는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이 누군가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세속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 Lady at the Virginals with a Gentleman
Vermeer, 1662-65
Oil on canvas, 73,3 x 64,5 cm
Buckingham Palace, London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 옆에 한 남자가 서서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 빠져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서 그 사랑을 거절당하지 않을까. 이건 이 작품에 대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제 세속의 사랑, 불경하면서 비도덕적인 사랑도 예술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종교적인 그림을 그려지는 작업실에서 동시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5. 두 개의 바로크들


매너리즘이 전유럽적 양식이었다면, 바로크는 그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는 양식 상으로는 지역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전시실에 나란히 푸생의 'Et in Arcadia Ego, 루벤스의 Raising of the Cross, 베르미르의 Woman Holding a Balance가 걸려있다면, 이 세 작품이 같은 시대의 양식이라고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푸생은 확실히 고전적이다. 어떤 이는 푸생의 작품들을 두고 '바로크 고전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한한 세계 속에서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그래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바로크적 신념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며 푸생은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이 기하학적이길 원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고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t in Arcadia Ego
Poussin, 1637-39
Oil on canvas, 185 x 121 cm
Musee du Louvre, Paris
 

하지만 바로크는 고전주의가 될 수 없는 시대였다. 바로크의 예술가들이 잡으려고 노력했던 바 진리는 시간과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변하는 진리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 속에서도 나는 있다는 말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속에서도 죽음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이상향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그래서 우리는 늙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여인을 크로노스(시간의 여신)이라고 해석한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라는 말이기 보다는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알고 살아있는 동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till-Life
Pieter Claesz, 1633
Oil on oakwood, 38 x 53 cm
Staatliche Kunstsammlungen, Kassel
 

푸생이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이에 비해 루벤스는 색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같다. 이는 이후에 푸생주의와 루벤스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 격정적이며 회화 속에서 바로크적 운동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격정적인 색채감은 와토나 부셰, 프라고나르 등의 로코코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Raising of the Cross
Rubens, 1610
Oil on panel, 460 x 340 cm (centre panel), 460 x 150 cm (wings)
O.-L. Vrouwekathedraal, Antwerp
 

루벤스가 궁정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렘브란트와 베르미르는 시민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특히 베르미르는 수수한 색채 속의 개신교적이며 시민적인 바로크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이러한 양식의 바로크는 개신교적 성격과 초기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의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Woman Holding a Balance
Vermeer, 1662-63
Oil on canvas, 42,5 x 38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네덜란드의 시민계급들이 좋아했던 것은 풍경화였다. 이러한 풍경화는 끌로드 로렌의 풍경화와는 틀리다. 이러한 풍경화 양식의 차이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비교해보면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의 풍경화는 화려하면서도 인상주의적 면모를 보여주지만, 네덜란드는 정적이면서 소박한다. 이러한 소박함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겸손으로 이어져 여러 바로크 정물화에서는 유한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현실 세계에 보다 충실히 복무하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게 된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치품들을 정물화의 소재로 이용함으로써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축적한 부를 자랑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Landscape with a View of Haarlem
Ruisdael, 1670-75
Oil on canvas, 52 x 65 cm
Staatliche Museen, Berlin




 

신고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르네상스

폴 존슨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간결하면서 압축적이다. 단점이 있다면 도판이 없다는 것인데, 조금의 성의가 있다면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찾아볼 수 있겠다.

역사와 경제적 배경, 문학과 학문의 르네상스, 르네상스 조각의 분석, 르네상스의 건축, 르네상스 회화의 사도적인 계승, 르네상스의 확산과 쇠퇴로 구성된 이 책은 르네상스에 대한 짧은 요약서로 읽힌다. 더구나 르네상스의 확산과 쇠퇴는 최근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하지만 중세와 르네상스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13세기말은 아직 고딕 시대였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의 기운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딕 자연주의와 르네상스는 서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설명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요약서로 손색이 없는 책이다.



르네상스 - 10점
폴 존슨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신고

Comment +0


며칠 동안 미술사 책만 봤다. 4-5 년 전 공부 한참 할 때, 정리해놓았던 노트를 새로 꺼내어 보는데, 역시 예술사는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그리스 예술을 정리했는데, 그리스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대한 개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 고전주의를 이해하려면 그것 뿐만 아니라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를 알아야하고 헤라클레이토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사 문학의 대표작들도 읽어봐야되고 기초적인 건축 지식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수히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어떤 양식을 보여주었는가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후대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는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공부하다 보면 끝도 없다. 그러나 해야 한다. 그래야 예술작품을 이야기할 때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니깐 미술 관련 책만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미술에 대해서 정통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차라리 서양사나 문화사를 제대로 전공한 이의 설명이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

보통 그리스 고전주의를 이야기할 때 '전형', '카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조각상이 8등신이 되어야한다는 엉터리 소리를 하곤 한다. 실제 이 개념은 후대에 나오고 그리스 고전주의 작품들 중에 정확한 8등신은 없다. 비트리비우스가 그리스 고전주의 전성기 몇 세기 후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나라의 어떤 책들을 보면 카논에 대해서 길게 적은 책들도 있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는 아예 예술에 있어서 전형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전형적'인 작품은 중요하지만 '전형'에 딱 부합해버리는 순간, 우습게도 그 예술작품은 작품의 생동성을 잃고 보는 이를 사로잡지도 못한다. 즉 고전주의 작품들 중에서 우리를 매혹시키는 작품들은 '전형'을 약간씩 벗어나 자리를 잡는다. 그러니깐, '이건 전형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이건 전형적이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술사를 좀 어지러운 학문으로 이해하는 폐단이 생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자끄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그러한 예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작품을 신고전주의의 걸작으로 여러 저서에 실려있으나, 실제로 이 작품을 지탱하는 힘은 낭만적 정신이다. 자끄 루이 다비드의 다른 작품들과 이 작품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느 작품에 깊은 어둠을 그려넣었는가. 장 폴 마라의 얼굴에는 고전주의적 신념에 보이는 듯 하나, 그것은 죽음으로 사라져버린 것. 그리고 이제 어둠이 밀어닥치기 시작한다. 눈을 감은 마라 위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러갔다. 여하튼 며칠 정신없이 책만 보다 오늘 잠시 꽤 많이 빈둥거렸는데, 더 정신이 없어진 듯 몽롱하다.

이제 베트벤 마지막 교향곡만 들으면 된다. 다 들었다. 역시 교향곡이다. 교향곡을 듣기 위해 준비한 게 한 이 년 정도는 된 것같다. 처음 들으면 감당하기 힘든 게 교향곡인 것같다.
신고

Comment +0



우리는 종종 최근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경향의 작품을 보면서 경탄해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Painting을 곧잘 사진과 비교해가며 대단하다는 표현을 금하지 못합니다. 아직까지도 Painting에 ‘발전’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바의 ‘사실적(realistic)’인, 그 어떤 것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인상주의의 등장이 사진술의 등장과 발달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때 리글이 말하는 바의 ‘예술의욕’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진보와 퇴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비슷하게 말한 바 있듯이 ‘그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표현양식을 찾기 마련’입니다. 리글이 미술사 저술에 있어서 현대적인 기틀이 마련하였고 이후 대부분의 미술사가들이 리글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사건의 주체를 인간으로 보지만 더 이상 역사의 흘러가는 목표를 파악하지 않으며 단 그 흐름의 법칙성만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류의 역사가 어떤 목적점을 향해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역사의 흐름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동시에 의미에 대한 문제가 오직 미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미술사 저술의 모범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리글이 말하는 바 ‘예술의욕’은 무엇일까요? 실은 리글은 그의 여러 저서 속에서 ‘예술의욕’을 확실하게 정의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 영어번역본 제목)에서 인용해보겠습니다.(* 참고했던 미술사 서적(<<미술사학의 이해>>(헤르만 바우어 지음, 홍진경 옮김, 시공사)의 번역이 리글이 쓴 저서의 내용과 차이가 있어 제가 다시 번역해보았습니다만 엉망이군요. 그래도 참고한 서적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듯하여 옮깁니다.)


“그러한 모든 인간의 의욕(Wollen)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만족을 향해 있다(말에 대한 가장 폭넓은 감각 속에서 인간 존재가 외적으로, 내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처럼). 창조적인 예술의욕(Kunstwollen)은 인간과 인간의 감각을 통해 인지하게 되는 대상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다(regulate).; 이것은 우리가 항상 사물로부터 형태와 색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꼭 우리가 시작품 속에서 예술의욕(Kunstwollen)을 통해 그것을 시각화시키듯이). 그럼에도 인간은 (수동적으로) 그의 감각을 통해 한정적으로 인지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욕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내적 추동력(국가, 장소, 시대에 의해 변해질 수 있는)에 따라 쉽게 인지되어진 세계를 해석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의욕(Wollen)의 성격은 (용어에 대한 폭넓은 감각 속에서) 주어진 시대(Weltanschauung)에서의 세계에 대한 개념(conception)이 무엇이라고 불려지는가에 따라, 즉 종교, 철학, 과학 뿐만 아니라 보통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해지는 하나 이상의 어떤 형태들, 정부, 법률 등에 의해 항상 결정되어진다.”

- Alois Riegl, 중에서(<* The Art of Art History : A Critical Anthology> ed. Donald Preziosi, Oxford University Press, p.174)


이러한 예술 의욕으로부터 한 시대를 특징짓는 양식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의 변화에는 ‘진보와 퇴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이집트의 예술 양식에서 그들이 자연주의적 표현 방식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리글 이후 뛰어난 미술사가들 한 명으로 인정 받고 있는 한스 제들마이어의 경우에는 리글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라는 개념은 알로이 리글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막스 드보르작과 한스 제들마이어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라는 개념을 사용한 제들마이어는 알로이 리글의 ‘예술의욕’의 한계를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그리고 아래의 주장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 미술은 다른 것으로부터 파생될 수도 또 대체될 수도 없는 인간의 자율적인 표현수단이라는 이론. 실제 리글은 미술을 일종의 ‘수반현상(Epiphanomen)’이라 파악하고 있다.


2. 천부적인 재능, 어느 개인, 혹은 예술가가 제1차적인 주체라고 하는 관찰. 이와 같은 관찰로 리글은 자신의 집단적 의욕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인간의 본성과 이성이 통일성과 불변성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 왜냐하면 인간정신은 사실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미술가는 항상 그대로 남아있는 자연을 꾸며진 것으로 모방하거나 양식화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제들마이어에게 현대미술(Modern Art)는 ‘타락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는 ‘코키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라는 표현을 써가며 조목조목 따집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제들마이어가 그렇게 주장했던 이유는 미술사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 시대의 미술을 유전학적으로 해석함에 있어서 신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따라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는 구체적으로 보자면 종교사로서의 미술사로 이해될 수 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에 놓인 핵심은 ‘숭배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Kultgeschichte)’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신에 대한 관계가 진지해질 때 숭배의 표현이 생기기 때문이다. …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의 초기 과정에 놓인 특성은 그 방법론이 바로 완성되고 있는 단계에서 멈춘 것이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가 내놓으려 했던 것은 ‘세계관(Weltanshauung)’의 역사로 본 미술사였다. 세계관의 개념은 학문사의 과정에서 일종의 유행어가 되어버렸는데, 이는 그 개념이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아무 것에나 쉽게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사로서의 미술사에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의 비중이 확대되자 그 개념은 곧 종교적 특성 혹은 ‘종교적 사상’의 역사에 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 H. Sedlmayr, “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1949) (* 헤르만 바우어, <<미술사학의 이해 Kunst-Historik>>, p.125에서 재인용)


이런 식으로 제들마이어는 ‘정신’이 놓였던 자리에 ‘신’을 대체시키기 시작하면서 그의 미술사는 미술신학의 자리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러한 제들마이어가 보기에 현대미술이 제대로 평가 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원래 그의 스승 막스 드보르작에게 있어서의 미술사는 절대성을 향한 인간의 정신적 발전이라기 보다는 부르크하르트의 문화사적인 관념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고

Comment +0

바로크(Baroque)와 로코코(Rococo)를 분리된 예술사조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면 로코코는 자신감 넘치던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을 예술가 스스로가 깨닫게 된 것에 불과하니깐. 그리고 예술사에서도 흔히 로코코를 바로크 예술의 후기 경향으로 분류한다.



바로크 예술가로는 바흐, 베르니니,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 베르미르 등등이 속한다. 음악에서는 통저음과 변주의 형식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는 인간적인 면모의 강조와 빛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형식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적 화풍은 확고한 질서 속에 대상들을 위치시키길 원하지만 바로크는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이 세상의 우연 속에다 대상들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 병들어 죽는 풍경을 자신만만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수녀의 표정이 꼭 오르가즘에 빠진 여인네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고, 칼로 목을 베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하드보일드’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이 세상의 진리를 포착하겠다는 예술가적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점에 이른 바로크를 ‘바로크적 고전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다보면 어떻게 되는가를 로코코의 예술가들은 보여주고 있다. 즉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고 난 다음 남는 것이 섹스에 대한 공허한 갈망이듯이 로코코 예술가들은 그것을 진실하게 보여준다. 


Fragonard의 <그네>라는 작품을 보면 바로크가 어떻게 로코코로 향해갔는가를 알 수 있다. 운동과 빛에 대한 배려가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관능성이 지나쳐 지극히 퇴폐적이다. 그리고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의 치마 속을 상상해 본다면 로코코의 퇴폐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음증환자 처럼 그네 바로 아래 한 남자가 올려다 보고 있다. 바로크의 빛과 운동은 그네를 타는 한 여인의 치마 속을 향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로코코는 와또와 모짜르트에게 와서 끝도 없는 유미주의로 빠져버리고 만다. 와또가 화려한 색채로 그의 그림을 꾸미는 이유는 여인의 치마 속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로크적이고 매우 건강했던 사랑이 희미해지자 사랑을 지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관능이 등장하고 그 관능이 생의 거짓된 안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꾸며놓은 작품 속에 자신의 꿈을 새겨넣는다. 즉 로코코는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인 셈이다.



현대는 매너리즘의 시대이면서 군데군데 로코코적 장식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수지나 나스타샤 킨스키같은 여자들이 인기를 독차지 했던 시대가 로코코 시대였다. 바로크에서는 건강한 여자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그 건강성도 로코코에 와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현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넌 사랑을 믿니? 훗, 난 섹스를 믿어. 한 번 하자’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섹스를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자는 말 속에는(* 지극히 예술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퇴폐를 숨기기 위한 거짓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편이 훨씬 진실된 모습이다.


*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가 프랭클린 보머의 『유럽 근현대 지성사』(현대사상사)인데, 위의 글과 관련된 언급을 하려고 한다.


푸생은 1642년에 친구에게 “나는 기질상 혼잡함을 피하고 잘 정돈된 사물을 찾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고 썼다. 또한 프랑스의 모든 화가 중에서 가장 ‘고전주의적’이고 가장 지적인 이 화가는 특히 생애 중반에 그린 풍경화에서 - 케네스 클라크의 말에 따르면 - 자연에게다 “질서와 영속성이라는 풍채”를 부여하고자 시도하였다. <포키온의 장례식>(1648)과 같은 그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자연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평선적 요소와 수직선적 요소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푸생은 이런 균형을 얻기 위하여, 주로 고대양식에 따른 건축물과 신전 등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이상(理想)과 영원함에 대한 감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63쪽)


-- 보머의 시각은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푸생과 브왈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유럽 대륙의 예술적 경향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프랑스는 ‘고전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17세기는 바로크의 시대였지만, 프랑스 문학에서는 라신느, 꼬르네이유, 몰리에르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문학이 휩쓸고 지나간다. 이 불일치에 그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보머가 지적하고 있듯이 17세기의 사람들은 “새로운 항구적인 사물체계”를 원하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이 시기의 고전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고전’을 통해서 질서를 파악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을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포착할 수 있다는 예술적 자신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이야말로 ‘근대인’을 특징짓는 성격들 중의 하나이다.


* 제르맹 바쟁의 『바로크와 로코코』(시공사)은 꼭 자료집같다는 느낌 때문에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만 읽고서는 바로크가 무엇이며 로코코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서문에 뵐플린을 빌어 고전적 미술과 바로크적 미술을 설명한 문장은 깔끔하다. : 


“고전적인 미술은 자연에 등을 돌리지 않으므로 관찰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현상의 무질서함을 넘어서 세상의 질서 이면에 놓여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구성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구성의 각 부분들은 제각기 독립적이다. 또한 정적이며 틀 안에서 폐쇄된 형태를 하고 있다. 반대로 바로크 미술가들은 다채로운 현상에 참여하고자 하며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사물의 유동성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구성은 역동적이며 개방되어 있고 틀을 깨고 외부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구성을 이루는 형태들은 하나의 유기적인 행위 안에 서로 연관되어서 따로 따로 분리될 수 없다. 바로크 미술가들은 확장하고자 하는 기질로 인해 정적이며 육중한 형태보다도 ‘유동하는 형태’를 선호하였으며, 고전주의자들이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였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파토스를 선호하여 고통과 감정, 삶과 죽음의 모습을 가장 격렬한 형태로 묘사하였다.”(6쪽에서 7쪽)




신고

Comment +0

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미래의 소비자들, 마틴 레이먼드
정유재란 1597, 국립진주박물관
정유재란 1597, 국립진주박물관
정유재란 1597, 국립진주박물관
정유재란 1597, 국립진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