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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년 



몇 개의 논문은 읽을 만하다. 가령 최인진의 <사진 수용 단계에 있어서 다게레오타입의 전래 유무에 관한 연구>같은 논문은 이런 논문집이 아니곤 읽을 일이 거의 없다. 특히 3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 이경률의 <현대미술과 사진적 레디메이드>, 박주석의 <초현실주의 사진과 비평>, 최봉림의 <사진 초상에 있어서 은유와 환유>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대체로 재미없었다.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김승곤 선생 회갑 기념 논문집'이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가 실려 있기도 했다. 책의 출간년도가 2000년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의 사진 비평이나 이론의 수준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까. 한국 사진 이론의 변천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그 때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에게서 글을 받아 모은, 그냥 진짜 '기념 논문집'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구입한 이유가 있었는데, 어느 전시 평문에서 어떤 글을 읽고, 그 문장이 있던 이 책을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그 문장이 무엇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이 책도 구입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으니 ... ... 


사진 이론에 관심 있다면 이 책보다는 다른 책들이 더 나아보이는데, ... ... 아, 사진 이론 관련 책들이 뭐가 있나. 직업적 사진가나 사진 작가, 혹은 사진 애호가는 많지만, 사진에 대한 글/비평에 대해 관심 있는 이는 적거나 거의 없다(이는 문학을 제외한 모든 예술 분야가 똑같다). 그러니 이 책을 추천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다른 책에는 무엇이 있나 하는 생각에 예술 이론 분야에 한글로 된 책들의 부족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 6점
김승곤 외 지음/홍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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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종말 이후>>, 아서 단토(지음), 이성훈/김광우(옮김), 미술문화, 2004년
(Arthur C. Danto, After the end of Art – contemporary art and the pale of history)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다 읽고 난 다음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책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더구나 꽤 저명한 사람의 책이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거참, 한심하지.

예술의 종말이란 낯선 주제가 아냐. 이건 헤겔 미학의 주제야. 여기에서 ‘종말(End)’는 곧잘 근대성에 반대하는 후기 근대주의자들의 어투이기도 해. 그런데 여기에서 약간 유머러스한 건 단토는 헤겔을 끔직하게 좋아하는데, 후기 근대주의자들 대부분이 지독하게 헤겔을 싫어한다는 점이지. 대체로 프랑스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후기 근대주의가 실은 코제브의 헤겔 해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야.

이 책의 결론은 단순해. 바자리식의 미술 이해의 역사가 끝났고 그린버그식의 미술 이해도 끝났다, 그러니 이제 기존 방식으로 이해되던 예술은 끝났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아무리 읽어도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좋아하는 라캉이라면 ‘대문자 A의 예술의 종말’이라고 이야기했을 꺼야. 여기에 대해서 단토의 주장이 틀렸다고 보는 건 아냐.

애초부터 예술은 진보하는 게 아니었거든.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변화한다고 할까. 우리 삶같이. 여하튼 단토는 이런 식으로 기존 방식으로 이해되던 예술은 종말을 고했고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예술이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지.

문제는 이게 다라는 데 있어. 뒤라스의 마지막 책 제목을 흉내 내려고 한 건 아니야. 그런데 정말 C’est Tout야. 내가 보기엔 아서 단토는 그가 이야기하는 ‘탈역사적 미술’에 대해서 좀더 충실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게 무엇인지 말이지. 왜 말레비치의 사각형과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해주어야만 했어. 그런데 그런 설명은 없거든. 또는 이런 식의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을 해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는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모방의 시대에서 모던의 시대로의 이행에서 일어난 단절이나 모던의 시대에서 포스트모던의 시대로의 이행에서 일어난 단절이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양식에서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양식의 이행에서 일어난 변화와 어떻게 틀린가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가 전자의 두 이행을 ‘단절’이라고 파악한다면, 전성기 르네상스와 후기 르네상스도 ‘단절’이라고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거든.

또한 종말은 너무 식상한 방식이야. 그리고 단토의 이해는 너무 표면적이고. 그는 그저 기존의 역사는 끝났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예술이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식인데, 뽈 발레리가 생각나는군. 뽈 발레리가 <<드가, 춤, 데생>>이라는 뛰어난 책에서 ‘회화만큼 지적인 예술을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했던 거 말이야. 발레리가 보기에도 회화는 지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고 지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했거든. 실은 오래 전부터 예술은 철학의 문제를 고민해왔다고 할 수 있어. 결국 단토의 생각은 시작부터 끝까지 다 식상한 것들의 반복인 셈이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대단한지 난 잘 모르겠거든. 누가 나에게 설명해줄 사람 없을까. 단토의 다른 글이나 책을 읽어볼까, 하긴 단토가 여기저기 인용되고 인정을 받는 것에는 무슨 이유가 숨어있겠지. 아마. 다시 단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책은 사지 말고 뒤에 실린 역자의 해설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단토의 글보다 역자의 해설이 더 이해하기도 쉽고 단토의 생각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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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즐리의 미학사(이론과실천)을 읽고 요약한 글입니다. 오래된 글이네요.)


제 6장 르네상스



비어즐리는 르네상스를 15세기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탄생부터 16세기말 지오다노 브루노의 사망까지로 잡는다. 매우 의미심장한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쿠자누스는 철학사에서는 중세 말기의 철학자로 구분되나, 실제 그가 살았던 시대는 고딕 후기, 또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여기에서 고딕과 르네상스의 시대 구분이 문제로 떠오르는데, 지역적으로 그 사정이 틀리다. 이탈리아의 경우 15세기면 르네상스 중기이고 북유럽의 경우에는 고딕 후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학자들마다 어느 것에 무게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 구분이 제각각이며 읽는 이가 알아서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이나 사상에 있어서 시대 구분은 몇 년부터 몇 년까지 확정적으로 나누는 것은 이해의 편의를 그러는 것일 뿐, 정확하게 말한다면 도리어 대략 몇 년 즈음 정도로 말할 수 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경우 스콜라철학의 후퇴가 분명한 사실이었고 이를 대신해 신플라톤주의가 유행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많은 영향을 준 이가 Marsilio Ficino였다. 그는 플로티누스를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플라톤도 번역하였다.

그는 신이 창조한 세계, 즉 "모든 형상과 이데아들의 이 합성체를 라틴어로는 mundus, 희랍어로는 cosmos, 즉 조화체라 부른다. 이 조화체의 매력이 미이다." 이 때 사랑(eros)은 '미에 대한 갈망'으로 정의된다. 사랑은 미의 상 아래에서 선에 끌리는 데 있다. 이제 미의 매력은 여러 요소들의 조화에서, 즉 정신에서는 여러 덕목들의 조화에서, 가시적인 것에서는 색채와 선의 조화에서, 음악에서는 음조의 조화에서 발견된다. "정신의 미는 마음에 의해 지각되고, 육체의 미는 눈에 의해, 소리의 미는 오직 귀에 의해 지각된다."

또한 "비례를 잘 갖춘 사람의 그 외모와 자태가, 만물의 창조주로부터 우리 정신이 포착해 가지고 있는 저 인간 개념과 아주 명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마음 속의 '인간의 참된 이데아'라는 플라톤적 형상이 있어서, 그것이 현실과 맞아 떨어지고 그래서 그 현실에서 식별되게 된다는 것이다.

지오다노 브루노의 <<영웅적 광신자들에 관하여>>(The Heroic Enthusiasts)도 중요한 책인데, 그는 이 책에서 "감각적 미와 순수 절대적 미 간의 대조를 반영하였고 전자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후자로부터 멀어지고 위험, 저급한 미에 접근하더라도 올바른 정신만 있으면 고차의 미를 사랑하는 디딤돌로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술가는 규칙을 뛰어넘는 특유한 천재, 자유와 활동의 기회를 필요로 하는 영웅으로서 상위의 인간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는 자기의 작품에 스스로의 개성을 각인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혹은 주로) 그의 작품을 그의 것이기 때문에 흥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회화론이 발달하는데, 알베르티, 다 빈치, 뒤러를 통해서 이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으니,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회화는 원래 재현적이라는 개념이 전통적인 데 반해, 알베르티는 시각적 유사성(verisimilitude, 양감과 깊이)을 강조하고 어떤 고차의 상징적 목표에 집착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는데, 새로운 르네상스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즉 그에게는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대변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 11세기에 지오토, 마사초 같은 화가가 나타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마녀사냥을 당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현대의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이렇게 정리한다. "중세기 동안 그림은 삼차원적 대상의 징표나 상징으로 해석되어져야 할 선이나 색채로 덮인 불투명한 이차원적 평면으로 인식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 그림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를 인용하면, '가시적 세계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보는창'으로 인식되었다."

알베르티는 특히 istoria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극적인 주제 혹은 장면'을 뜻하는 단어로 "화가의 가장 위대한 작업은 istoria - 행위, 표현된 정서, 그 과정에 내포된 테마 - 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화가는 다양한 인문 지식이 요구되었으며 동시에 실제로는 깊이가 없는 곳에서 깊이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대단히 어렵고 특별한 작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화가는 수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이는 선형 원근법과 비례론으로 연결된다.

알베르티는 '그 본성 상 사물을 아름답게 해 주는 특질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아래와 같이 답했을 것이다.

"수, 그리고 내가 마무리와 배열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밖에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다른 부분들의 접속과 결합에서 생겨나서 전체에 미와 우아함을 부여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조화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는 우아하고 멋진 모든 것들의 원형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조화의 임무는 그 본성이 서로 다른 구성원들을, 하나의 아름다운 전체를 형성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함께 배치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러한 구성이 시각을 통하든 다른 감각을 통하든 우리 마음에 제공될 때마다, 우리는 이 조화를 즉각적으로 지각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예술가이다. 그에게 회화는 학문이었다. 왜냐하면 1. 재현원리는 체계적 정식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며, 2. "회화는 신체의 동작과 행동의 신속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3. 그것은 "명암의 비례 뿐만 아니라 모든 연속적인 양(量)을 다룬다"는 점에서 수학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뿐만 아니라 질까지도 포함하므로 산수와 기하학보다 더 훌륭하기조차 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자연에서 태어나고, 회화는 이 사물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회화를 자연의 손자며 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부르는 것이 옳다." 혹은 화가를 '신의 손자'라 부를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다 빈치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 당시 위대한 예술가를 바라보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가는 장인의 단계를 지나 학자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이는 위대한 천재로서, 신의 영광을 재현하는 이로서 추앙 받았다.

뒤러는, 자신의 두 연구 분야에서 추구하는 수학적 법칙이 회화의 두 가지 근본적 요구, 즉 재현의 정확성과 시각적 질서나 조화 간의 화해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미가 양극단 사이의 중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용성은 미의 일부이며", "어떤 것과 다른 것의 조화는 아름답고 따라서 조화가 결여되면 아름답지 않다. 진정한 조화는 서로 다른 사물들을 결합시킨다."라고 말한다.

“16세기 이래로 음악이 그 영감을 끌어들여 온 두 가지 주요 관념, 즉 표현으로서의, 즉 음의 회화로서의 음악과, 테마에 바탕을 둔 구조로서의 음악이라고 하는 이 두 관념은 르네상스에 그 기원을 두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 시와 음악이 긴밀하게 협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 개인이 이 두 예술을 결합해서 구사했다는 사실, 그리고 가사와 선율이 합쳐 있는 뮤지케mousike(아우구스티누스의 musika 개념과 유사한)라는 개념이 있었다.

르네상스 음악에서 중요한 미학적 관심사들 중 하나가 음악에 요청되는 정서적, 윤리적 효과가 어떻게 산출될 수 있는가 였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한 가지 방법으로 음악적 자원을 증가시키는 것. 즉 보다 풍부한 화성적 언어, 음계의 혼합, 한 음계에서 다른 음계로의 전조, 보다 넓은 음역을 지닌 새로운 악기의 도입 등이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방법은 음악을 그 텍스트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요세프 짜를리노(Gioseffe Zarlino)의 <>를 인용해보자면, “설명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모방에 의한 것이든 간에 (가사에는 항용이 두 가지가 함께 있다) 가사에서 유쾌하거나 슬픈 제재, 엄숙하거나 엄숙하지 않은 제재, 혹은 점잖거나 음란한 제재가 다루어진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비례에 맞게 결합하여 목적에 부합하는 어떤 멜로디를 산출하기 위하여 그 발화에 담겨진 제재들의 성격에 유사한 어떤 화음과 리듬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의 형식적 특성보다는 그 내용을 형성하는 시에 담겨져 있었다. 이는 알베르티가 istoria를 강조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인 셈이다.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이후 예술 양식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관점들 중 하나이다. (* 철학의 분과학문으로서의 미학에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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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Irving Penn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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