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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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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1시에 퇴근하곤 오늘 8시에 프로젝트 사무실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 혼자 저녁을 먹고 서점에서 두 권의 수필집을 산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굳어졌고 프로젝트 걱정, 미래에 대한 염려, 세상에 대한 불안, 가족에 대한 책임,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젠 잠마저 쉬이 들지 못하는 중년의 초가을. 장석주의 <일요일의 인문학>, 헬렌 맥도널드의 <메이블 이야기>을 충동적으로 사선 내 마음이 물렁해지고 내 몸이 사랑으로 물들고 세상으로부터 온전한 내 전부가 자유로워지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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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삼각지로 걸어가다 문득 마주친 대도시의 오후






상아색의 구름 한 떼가 지는 해를 감싸면서 하늘 꼭대기에서 땅 밑까지 노을이 가득 차고, 거대한 고독이 이미 식어버린 채 퍼져나가는 시간이다(조르주 베르나노스). 느리게 숨죽여 있던 무채색 건물이 숨을 쉬고 우리들의 숨겨진 영혼이 노래하는 순간이다. 태양이 사라지더라도 태양을 기다리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 속 노을가 근처에서 막걸리 중이다. 그의 삼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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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노트에 옮겨적었다. 선물받은 라미 만년필은, 사용한지 꽤 되었는데, 아직까지 필기감이 좋지 않다. 비슷한 유형의 로트링 만년필은 필기감이 매우 훌륭했는데 말이지. 당분간 라미 만년필을 사용하면서 펜을 길들일 예정이다. 


오늘에서야 수전 케인의 '콰어이트'를 다 읽었다.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으로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성격의 문화'가 가져다 준 영향, 그리고 아시아와 서구 사회를 비교하면서 자녀 양육으로 끝나는 책이었다. 그러나 명성에 비해 책은 얇다. 4시간이면 넉넉하게 다 읽을 수 있다.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책 읽는 재미는 무척 좋다. 내용도 훌륭하다. 깔끔한 정리는 아메리카 쪽 저자들의 특징이기도 한 듯 싶다. 하지만 책의 깊이는 유럽 쪽 저자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건 내가 그 쪽 편향적이기 때문일까.  


이 책도 내가 활동하고 있는 독서 모임 활동 탓에 부랴부랴 읽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모임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신경 쓰는 모임이 있다면, '독서모임'이다. 다만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않아, 반성 중이다. 내가 너무 내 스타일대로 한 건 아닌가 하고. 


사진은 수전 케인의 책을 다 읽고 밑줄 친 부분들을 노트에 옮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옮겨적기도 힘들만큼 여유 없는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낯설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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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는 창원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건 내 나이 탓일까, 아니면 내가 처하게 되는 환경 탓일까.


집 밖을 나오면 멀리 뒷 산들이 보이는 풍경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건, 너무 오래 서울 생활을 했다는 뜻일 게다. 하긴 지금 살고 있는 노량진 인근 아파트 창으론 여의도가 한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연휴 때 나온 사무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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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곤한 봄날 오후가 이어졌다. 마음은 적당하게 쓸쓸하고 불안하고 기쁘고 초조했다. 잔뜩 밀린 일들은 저 깊은 업무의 터널 속을 가득 메우고 그 어떤 공기의 흐름도 용납하지 않았다. 피곤함과 스트레스로 사각형의 책상과 사각형의 모니터와 사각형의 문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얇게 열린 창으로 봄바람이 밀려들었다. 다시 봄이 왔다.




다시 봄이 왔다



이성복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동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 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면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며 아우성치며 울고불고 머리칼 쥐어뜯고 몸부림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죽이며 가슴엔 윤기 나는 석탄층(石炭層)이 깊었다.





오랜만에 읽는 이성복의 시는 아름다웠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이 내 오래된 서가에서 먼지를 먹고 있는 동안, 나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나이를 먹었구나.



사무실 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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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 사이의 어느 오후香이 서울 변두리 빌라 옥상에 조금, 서른 중반의 사내가 사는 4층 베란다에 조금, 흐릿한 대기들 위의 구름 위에 조금, 그 외, 이 곳, 저 곳, 띄엄띄엄  산개해 있었다. 사이먼 래틀과 빈 필이 연주한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듣고 난 다음 정경화가 협연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다. 별로다. 집에 있는 다른 앨범. 레너드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이 연주한 베토벤 5번이 훨씬 좋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나쁘지 않았으나, 정경화의 진짜 연주를 듣기에 곡 선정이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썩 신통치 못한 듯 하다. 그리고 그 다음. 아르보 페르트의 ‘PASSIO.’ 기독교적 파토스(Pathos). 하지만 불교적 파토스나 이슬람교적 파토스는 왠지 어색하다. 유비쿼터스 사회를 향해가는 20세기, 21세기에 미사곡을 작곡하고 있는 아르보 페르트. 아르보 페르트의 음악은 언제나 날 휩쓸고 지나간다. 아르보 페르트 다음은 페르골레지의 ‘Marian Vespers’다. 역시 기독교적 테마는 극적이고 비장하다. 다른 종교의 양식은 그 힘이 떨어진다.(이것도 편견인가?)

얼마 전 포르투갈로 나가는 이의 환송회를 하면서 와인 몇 병을 사서 마셨다. 그리고 그 와인들의 맛은 너무 형편없었다. 역시 까페 같은 곳에서 마실 때는 무조건 십 만 원 이상 줘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집에서 벗들과 함께 마시는 편이 나을 듯싶다. 어제 이마트에 가서 와인 두 병을 사 왔다. 주로 프랑스 메독산 와인을 마시는데, 오랜만에 다른 지역의 와인 한 병을 샀다. 다른 한 병은 독일 와인인데, 포도는 프랑스에서 재배하여 독일에서 만드는 와인이다. Blue Nun. 2004. cabernet sauvignon. 상쾌한 와인이다. 그냥 먹기에는 깊은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식사와 함께 하면 무척 좋을 듯싶다. 특히 집에서 삼겹살 먹으면서 이 와인 마시면 정말 좋을 듯싶다. 까페에서 와인 사먹지 말고 대형할인매장이나 와인전문매장에서 2-3만 원대 와인을 사서 먹는 것이 좋다. 여러 번 까페에서 와인을 마셨지만, 그 때마다 엉망이었다. 그리고 까페에서 맛있는 와인 먹으려면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

오랜만에 시집을 샀다. 장석남의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별로다. 오늘 오후 송재학의 ‘푸른 빛과 싸우다’를 읽어야겠다. 오후의 햇살이 부서진다. 부서지는 햇살들 사이의 내 몸이 떠오른다. 차갑게 식어있는 내 몸 위의 드리워지는 뜨거운 시선. 하지만 그 시선마저 차갑게 식어갈 것임을 나는 안다.

슬픔이라든가 외로움이라든가 고독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단단한 껍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존립이 가능한 상태로 오래 지속되었으면 한다. 포도주를 마시고 나니, 술 기운이 확 달아오른다. 일요일 오후. 혼자 포도주 반 병 이상을 마시고 취해 있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다. 어느 새 아르보 페르트는 끝나고 페르골레지로 옮겨와 있다. 바로크적 비장함은 언제나 날 매혹시킨다.





그냥 주말 가족 식사 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 이마트에서 9,900원으로 구입할 수 있음)


홍대 까페에서 먹은 와인. 카르멘 리저브. 맛, 꽝이다.


몬테스 알파. 맛? 꽝이다. 


원두커피. 늦겨울 일요일 오후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
(* 프랑스에서 가지고 온 원두커피. 가격 모름)


어제 이마트에서 산 에스프레소 커피 메이커. 대단한 파워를 자랑한다. ; )
(* 이마트에서 만사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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