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2

봄 날을 가로지르는 어떤 기적을 기다리며

시간이 흐른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나이가 들고 상처 입고 죽는다. 이유없음은 저 실존주의자들의 가장 강력한 테마였지만, 그 무목적성 앞에서 그들도 무릎 꿇었다. 내던져진 존재.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살았다. 치열하게 부딪히며. 봄이 왔지만, 내 마음 속으로 봄은 깃들지 못한다. 봄꽃 날리는 거리를 걸었으나, 그 때의 봄이 아니다. 하긴 나에게 봄이 있었던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하지만 우리 삶은 기계론적 인과율이 지배하지 않는다. 이 생은 저 감당하기 힘든 우연성으로 포장된 어떤 것이니, 내가 기댈 곳은 어떤 기적 뿐. 그 기적 아래에서 싹트는 고백과 반성

어느 화요일 선릉역 인근

무관심한 듯 시선을 거두는 행인 A, B, C, ... 무수한 알파벳들은 실은 다른 알파벳들, 다른 숫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고 어떻게 평가할까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봐주고 평가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커피 위로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선릉역 인근 빌딩숲에서는 그 수를 세기 어려운 모기들이 가을 깊숙한 곳까지 진을 치고 있었다. 화요일이 왔고, 수요일이 올 것이고, 목요일, 금요일, ... 2013년이 지날 테지만, 우리에게 인생의 해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그녀는 연애를 포기했고 그 남자는 한국을 떠났다. A는 그림을 포기했고 B는 사업을 시작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세속적 가치, 뉴튼이 공표했고 데카르트가 뒷받침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