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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맨지오니의 저 LP가 어디 있는가 찾다가 그만 두었다, 술에 취해. 몇 해 전 일이다. 혹시 결혼 전 일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에 취한 채 이 LP를 찾았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사이 나이가 든 탓에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 있다'서술어이 가지는 느낌은, 젊었을 때는 '가능성'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무너진 터널 앞에 서 있는 기차같다. '수도 있다'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무모하게 시도했다는 의미다. 가령, '그녀와 키스할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었는데', 혹은 '사랑하던 그를 붙잡을 수 있었는데' 따위의 표현들과 밀접한 연관를 갖는다.


결국 생명이란 생명의 지속과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그 시작은 작은 만남과 사랑으로 포장될 것이다.


 '수도 있다'는 서술어의 사용은, 아쉽다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건 가능한 일이었음을 주장하기 위한 첫 계단이다. 애초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무모한 시도)을 가능성의 회상으로 바뀌고 기적의 출현(열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결국 나는 LP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고 대신 다른 LP를 찾아 틀었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오역이지만, 그렇게 굳어진)의 '러브이데아'를 들으며 제니퍼 제이슨 리가 분한 트랄라를 떠올린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어떻게 어긋나는가를 하나하나둘 되새기며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되새기지도 않고 죽는 이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저녁, 몇 주 동안 계속된 치통과 함께 불안한 미래는 장막처럼 내 앞에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Feels So Good', 'So Go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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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21 05:04

    비밀댓글입니다

    • 지하련 2017.04.24 13:37 신고

      오랜만의 댓글. 감사합니다. 벌써 이십년 가까이 지난 영화지요. 음반도, OST도. 그렇게 ...



* 기사 출처: 비즈니스인사이더


뉴스레터를 보다, 이제 스트리밍은 음악 소비의 미래가 아니라 그냥 이제 다 스트리밍으로 소비한다(is the new normal)는 분석 기사를 읽었다. 하긴 나도 유튜브로 스트리밍으로 듣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편하게 느낀다. 하드웨어와 통신 인프라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음악 유통의 모습까지 변화시킨다. 유튜브의 새로운 서비스 '유튜브레드'도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유통/소비 형태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콘텐츠의 질과 성격까지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콘텐츠 창작자들이 주목해야 될 부분은 여기다. 


1.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음악 영상의 유통이 늘어날 것이다. (단순히 음원만 스트리밍하는 것보다) 

2. 기존 오프라인 유통 시장은 계속 줄어들다가 하이엔드 소비자들을 위한 비주류 시장이 될 것이다. 

3. 스트리밍 시장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다운로드 시장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1번은 어쩌면 뮤지션들에겐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고품질의 라이브 음악 실시간 스트리밍'도 등장하지 않을까. 가령 내가 요즘 빠져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밴드의 실황 음악을 서울에서 듣고 보고 실시간으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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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NYLOVE 2017.04.06 11:32 신고

    유형의 음악 시장이 사라지는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어떻게라도 살아 남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지하련 2017.04.07 11:24 신고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대신 많이 줄어들고 음반 사는 사람들이 소수가 되겠죠. ~~...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지음), 한승동(옮김), 창비 



한국과 일본은 참 멀리 있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서경식 교수의 유년시절과 내 유년시절을 비교해 보며, 문화적 토양이 이토록 차이 났을까 싶었다, 일본과 한국이. 


내가 살았던 시골, 혹은 지방 소도시의 유년은, 쓸쓸한 오후의 먼지 묻은 햇살과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 풍경이 전부였다. 책 속에서 이야기되었던 윤이상 선생의 통영에서의 유년 시절은 내가 겪었던 유년 시절과도 달랐다. 그가 통영에서 살았던 당시(20세기 중반) 보고 들었을 전통 문화라는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서양 신식 문화랄 것도 내 유년시절에는 없었다. 전통 문화와 신식 문화 사이에서 길게 획일화된 공교육과 책을 읽으면 안 되는 자율학습과 텔레비전, 라디오, 팝송이 있었다(이것들이 신식문화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쩌면 우리 세대는 진짜 팝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고 자라났지만, 그게 과연 좋을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학교 음악 시간에 클래식음악을 듣기도 한 것같으나, 그건 제대로 된 감상이라기보다는 꿈을 잃어가던 음악 선생님의 목소리 끝에 묻은 허전함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묻는다면,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학 시절 재즈 음악을 즐겨 듣다가,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서른 초반이었으니, 시간 상으로 불과 십년 남짓이고 이것도 그저 일년에 몇 장의 음반을 사는 것이 전부였으니, 믿을 수 없다. 지금은 몇몇 작곡가를 알고 그 중 몇몇은 아주 선호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클래식음악은 나와 꽤 멀리 있었던 존재였다. 그러니 뒤늦게 빠져든 이 취미를, 유년 시절부터 접해온 서경식 교수의 유년 시절은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지금도 유럽으로 연주회에 갈 수 있다는 여유는, 아마 그들 세대만이 가지는 어떤 것이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진다'는 건 그저 과거의 통념일 뿐, 21세기 초에 어울리는 문구는 아니다. 문화의 빈곤과 그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다. 이제 원하는 음악을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 들을 수 있지만, 접근의 편리함은 그 음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엇보다 윤이상 선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서경식 교수의 개인적 삶 - 그는 한국 현대 정치로 인한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왔다 - 속에서 묻어나오는 고통과 회한,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분투가 글 사이로 묻어나왔고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두 형, 서승서준식을 구하기 위해 그는 윤이상 선생을 여러 차례 만났지만, 윤이상 선생도 민주화된 고국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먼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 


<<나의 서양음악순례>>는 서양 음악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순례길일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말러를 지나 윤이상으로 이어지고 일본인 아내와 한국이 서로 만난다. 아픔은 음악이 되고 어느 새 아픔이 아문 자리만으로도 닥쳐올 불안에 대한 작은 위안이 된다. 책은 가볍지 않지만, 음악은 봄바람처럼 가볍게 날아와 우리 주위를 따뜻하게 비출 것이다. 


내년에는 루이제 린저가 쓴 <<상처입은 용>>을 구해 읽어야겠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들도 챙겨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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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클래식 Dear Classic 

김순배(지음), 책읽는수요일




저자는 피아니스트다. 그런데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녀처럼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재주는 없는 것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금세 빨려들어가, 책 중반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며,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내는 저자가 부러웠다(그녀의 아버지는 김현승 시인이다. 시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내가 모르는 작곡가들과 그들의 음악, 그리고 내가 알고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음악에 대해 저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깊이 있는 내용까지 언급하며 독자를 안내한다. (내가 얼마 전에 올린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도 이 책에서 읽은 바를 옮긴 것이다)



1966년 초연된 이 작품은 펜데레츠키 특유의 극단적인 실험기법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청중은 강렬한 묘사와 극적인 표현이 주는 크나큰 충격을 체험합니다. 이 수난곡에는 무조성, 톤 클러스터, 음렬주의는 물론 소리 내지르기, 대사처럼 말하기, 중엉대기, 킥킥대기, 쉬쉬하기 등 다소 불온하고 이례적인 지시로 가득합니다. 

- 121쪽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인 펜데레츠키의 <성 누가 수난곡>에 대한 설명은, 마치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한다. 예전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는 들었으나, 그 땐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 책에서 다시 펜데레츠키에 듣게 된다. 


아마 이 책의 좋은 점은 현대 작곡가들에게 인색하지 않다는 점이며, 저자의 편애가 들어가 있긴 하나, 몇몇 작품들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이런 찬사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긴 하나, 비전문가인 나에겐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준다. 


참고: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과거와 미래는 공존한다', 객석 2014년 1월 


베토벤 소나타는 일종의 통합 음악입니다. 그 안에는 목소리, 드라마, 심포니, 앙상블 등 모든 조합 가능한 음악적 요소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 173쪽


저자는 베토벤 소나타에 높이 평가하며, 백건우의 연주를 최고로 쳤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베토벤 소나타를 들어야 하는 의무감같은 걸 느꼈다. 아, 그러나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집은 이미 품절이고, 중고가격이 어마어마하구나. 



'음악가 자신을 구원하고 마침내 음악 듣는 이들도 구원하는 클래식의 역사는 위로의 역사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라는 책 표지에 실린 메시지는 저자의 의견이겠지만, 나 또한 저 의견에 강력하게 동감한다. 자주 주위 사람들에게 책 읽기가 아닌 음악 듣기를 취미로 추천하는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음악만 집중해서 들었을 때의 위안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예전엔 듣고 싶은 클래식 음악이 있어도 바로 듣지 못했다. 클래식 라디오 방송에 신청하거나, 음반 자료실이 있는 도서관에 가 헤드폰을 끼고 듣거나, 아니면 대형 레코드점에서 구입하는 것 밖에.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유튜브만 뒤지면, 웬만한 클래식 음악들은 다 있다. 얼마나 좋은가. 손쉽게 궁금한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으니.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작은 오디오 하나 사서 PC나 스마트폰에 연결해 보다 좋은 음질로 편하게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도 있으니. 만만치 않은 돈을 지불하며 미니 오디오를 구입해 듣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경제적인 가격의 오디오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읽기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듣기 위한 책이다. 그리고 독자가 적극적으로 찾아 들으려고 할 때, 이 책은 더욱 가치를 발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책에서 언급된 이삭 알베니즈의 <이베리아>를 듣고 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알베니즈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음을 고백하면서. 그리고 메시앙도 이어 들을 것이다. 메시앙에 대해 나는 너무 소홀했다.  


"내 음악은 알 수 없는 향기, 쉴 새 없이 노래하는 새들, 교회 창문 스테인드 글라스의 음악, 다시 말하면 다채롭게 조용하고 보완하는 여러 빛깔, 즉 종교적 무지개"

- 올리비에 메시앙 (57쪽에서 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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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덕후 화영 2016.09.06 22:29 신고

    저도 이런 클래식에 대한 음악책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데 말이죠~ ^^ 막상 또 클래식을 들으면 잠오고 지겨워저셔... ㅋㅋ;;;

    • 지하련 2016.09.07 10:57 신고

      피아노 소나타나 현악 협주곡 같은 음악부터 먼저 시작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어느 정도 귀가 익숙해진 다음(들어도 졸리지 않은 상태 ^^)에는 좋아하는 작곡가가 생길 지도 몰라요. 클래식 음악 책을 읽는 것보다 음악에 익숙해지는 것이 더 좋아요. 실은 더 오래 걸리는 일이긴 하네요. 음악도, 미술도, ... 경험 쌓아 익숙해져야 하는 노고가 있어야 하니. 하지만 그게 익숙해지면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며 즐겨워할 수 있을 겁니다. ~



모차르트: 차이데; 아리아, Ruhe Sanft - 펠리시티 롯/ 모차르트: 레퀴엠, K626 - 아카데미 합창단/ 라즐로 헬타이 


집에 있는 아마데우스 OST LP를 듣지 않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예전, 2장의 레코드판으로 된 이 앨범을 꺼내 D면 첫 번째로 나오는 이 아리아를 즐겨 들었다. 모차르트는 그냥 천재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의 질투이 주 테마다. 그 위로 수놓아지는 음악들.


이 영화의 힘은 대단해서,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살리에르가 독살했다거나, 혹은 살리에르의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와 증오가 하늘을 찌를듯했다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이 스토리는 애초에 소문으로만 떠돌던(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나) 독살설을 푸쉬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라는 짧은 극시로 시작해 피터 쉐퍼(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자)의 희곡으로, 그리고 영화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살리에르는 의외로 괜찮은 작곡가였다. 가난했던 많은 작곡가들을 도와주었으며 베토벤, 체르니, 슈베르트, 리스트의 스승이었고 모차르트의 아들도 살리에르가 가르쳤다.


어쩌면 모차르트의 음악에 비한다면(비교라는 단어가 그렇긴 하지만), 보잘 것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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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절이라도 들으면 바로 빨려들어간다. 직감적으로 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걸. 어제 퇴근길 샌디에고 KPBS 클래식음악 라디오를 듣던 중, 이 노래를 들었다. 역시 아르보 페르트. 한동안 잊고 지내던, 내가 사랑하는 이름이다.


아르보 페르트 Arvo Part - Trio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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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쓸 일이 없다보니, 영어 실력은 늘 제 자리 걸음이다. 방통대 영문과도 휴학 상태이고. 겨우 영문을 읽는 속도만 조금 빨라진 것같다. 이제서야 영어 표현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 그 동안 시간 허비를 한 셈이다. 아니면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려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든가. 


요즘 잠시 쉬는 틈을 활용에 하루에 1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아졌더라. 


외국어는 무조건 많이 들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들을 수 없었다. 고작 AFKN(주한미군방송)이었는데, 이것도 주파수가 잡히는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 나머지는 그저 어학 테잎만 주구장천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엔 들어가면 온통 다 영어다. 커뮤니티에 들어가 영어로 댓글을 달거나 게시물을 올릴 수도 있다. 영어 채팅도 가능하고. 특히 Radio Station이나 Podcast는 그 활용도가 매우 높다. 특정 Podcast의 경우에는 홈페이지에서 원고도 제공해준다. 


내가 요즘 거의 끼고 사는 APP은 Public Radio & Podcast라는 앱이다. 영어 공부를 위해 웹 방송국을 찾는 경우에는 해당 방송국 App을 설치한다. 하지만 일일이 찾아 설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방송국 리스트가 있다면 좋을 텐데. 


Public Radio & Podcast은 수백개 이상의 웹 방송국 목록을 카테고리별로 제공해준다. BBC나 CBC는 별도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고, 그 외 클래식음악, 재즈/블루스, 뉴스와 좌담, 락, 그 외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방송국을 찾아 들을 수 있다. 아니면 자신이 직접 해당 방송국을 등록할 수도 있다. 


Podcast의 경우에는 분야별로 제공해주고 있다. Art&Life, Books, Business&Economy, Careers, Education, Food, Health, History, Kids&Family, Literature, Music, ... ... 등등. 


이 어플리케이션 하나면 거의 대부분의 라디오방송과 포드캐스팅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NPR를 주로 듣다가 요즘에는 CBS의 Radio One과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를 즐겨 듣고 있다. 영어 공부용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는 CBS를 듣고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거나 할 경우에는 클래식 전문 라디오를 듣는다. Capital Public Radio의 Classical 채널은 선곡이 무척 좋다. 그리고 말도 없이 음악만 계속 나온다. (누가 미국 라디오에는 음악 중간 짜르고 광고 나온다고 했던가!!)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포크락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WFDD - Wake Forest's Music이 좋다. 


나도 모든 채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서핑하듯 들어보고 결정해보길. ~ 






다운로드 :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nprpodcastplayer.app (google play) 



* * 


리뷰를 올리고 관련 APP 리뷰들을 찾아보니, 역시 이 APP이 최고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지금 듣고 있는 채널은 KPBS - Classical San Diego다. 샌디에고에 위치한 방송국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방송 중인 내용을 알려준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작곡가나 연주자, 작품명을 알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꽤 유용하다. 


KPBS http://www.kpb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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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rino Respighi 

- The Pines of Rome (Pini di Roma)

- The Birds (Gli uccelli)

- Fountains of Rome (Fontane di Roma) 


London Symphony Orchestra 

Istvan Kertesz 



이스트반 케르테츠 박스 세트에서 시디 한 장을 꺼내 듣는다. 어디선가 들어본 선율이라 여겼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다만 무척 극적(dramatic)이다라는 느낌. 부드러우면서도 굵은 선율의 흐름이 지나가며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아마존의 어떤 이는 그 스스로 레스피기의 팬이라면서, 이 앨범이 최고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하긴 나는 레스피기를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바로 이 음반에 빠져 며칠 째 이 음악만 듣고 있으니까. 



데카에서 나온 박스세트. 이스트반 케르테츠의 런던 필 시절 주요 음반들을 모아 낸 것이다. 한창 전성기였던 1973년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지휘자라, 아는 이들만 알지만, 20세기 후반 최고의 지휘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 


박스세트 10번째 시디에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http://www.bandinlunis.com/front/product/detailProduct.do?prodId=7474286 



아마존에서는 해당 음반을 구할 수 있다. 

http://www.amazon.com/dp/B000025UK9/ref=cm_sw_su_dp 



아래 유튜브는 본 음반에서 세 번째 연주된 <로마의 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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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앤세바스티안... the boy with the arab strap. ... 그들의 신보 나오는 것도 신경쓰지 못할만큼 늙었다. 둔해졌다. 흘렀다. 조용해졌고 약해졌다. 뜸해졌고 사라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타소리는, 드럼소리는, 시디 음반 안에서 시간 정지 중이었는데... 나는, 그는, 그녀는, 우리는 한 번 마주쳤던 따스한 눈길을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못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사랑도 식상해지기 마련인 어느 7월 여름밤... 문득 시디 속에 갇혀있던 사랑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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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놔노 2015.08.31 18:36 신고

    나도 이 앨범 좋아한다우.

    • 지하련 2015.09.01 23:41 신고

      팝 앨범 산 지도 몇 년이 지난 것같아요. 벨앤세바스티안 신보도 나오고 국내 공연까지 했다는데, 저는 알지 못했죠. 그런 소식 알려주던 사람들 다들 어디로 간 건지.. 크크.. 가을 가기 전에 술 한 잔 합시다. 저는 요즘 여의도에 서식 중인지라~ ㅎㅎ



하지만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며 인간의 이성적인 냉담함을 약화하는 힘으로 간주되어 왔던) 감상벽이 단숨에 가면을 벗고 증오 속에, 복수 속에, 피를 보는 승리의 환희 속에 항상 존재하는 "광포함의 상부구조"로 등장하는 순간이 (한 인간의 삶에서나 한 문명의 삶에서) 올 수 있다. 내게 음악이 감정의 폭음으로 들린 반면, 크세나키스의 곡에서 소음의 세계가 아름다움이 된 것은 바로 그런 때다. 그것은 감정의 더러움이 씻겨나간 아름다움이며 감상적인 야만이 빠진 아름다움이다. 

- 밀란 쿤데라, <<만남>>, 123쪽 









크세나키스Xenakis의 음악을 매일 같이 듣는 건 아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우연히 듣기 시작해 끝까지 듣는다. 솔직히 쉽지 않다. 밀란 쿤데라의 산문 속에서 크세나키스를 읽었고, 오늘 크세나키스 음반을 꺼낸다. 두 장으로 구성된크세나키스의 음반은 Naive의 "La Collection" 시리즈 중의 하나로 출시되었다.  


두 번째 시디의 두 번째 음악은 Tetora를 듣는다.  나에게도 밀란 쿤데라가 이야기하는 '아방가르드의 속물 근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본다. 




밀란 쿤데라는 '소음의 세계'라는 표현으로 소음에 가까운 크세나키스의 음악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일상의 소음은 그냥 시끄러울 뿐이지만,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더 시끄러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쇠사슬같은 소음이랄까. 무직하고 딱딱하며 두툼하게 각이 져서 귀를 무겁게 만든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크세나키스의 음악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이전 단계의 음악과 대립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유럽의 음악을, 유럽의 유산 전체를 우회한다. 그의 출발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의 출발점은 인간의 주관성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유리되었던 음이 내는 인위적인 소리 안이 아니라, 세상의 소리 안, 마음 속에서 분추로디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가 내리는 소리나 공장의 왁자지껄한 소리 또는 대중의 고함소리처럼 외부로부터 우리를 향해 도달하는 '음(音)의 덩어리' 안에 있다. 

- 밀란 쿤데라, <<만남>>, 125쪽



예전엔 라디오에서 듣거나 누군가에서 빌리지 않는 이상, 듣지 못했던 음악들도 Youtube에서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편리함 속에서 정작 내 주위엔 음악 듣는 이들이 사라졌다. 어쩌면 문화는 심심함 뿐만 아니라 어떤 불편함마저 필요한 것이 아닐지. 크세나키스가 어떤 불편함 속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그래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노력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 속물적 아방가르드가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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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말릭 벤젤룰 감독 

2012년. 스웨덴 



이젠 이런 기적 같은 일은 없겠지. 이 다큐멘터리의, 거짓말같은 이야기는, 편집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매력이 될 것이다. 


감동적이고 매력적인 음악 다큐멘터리는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좋을 영화다. 포크락은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고 번역된 가사들은 우리 삶을 어루만진다.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 로드리게즈는 빙빙 돌아 21세기의 우리에게 왔다. 미국에선 몇 장 팔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린 가수,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해적판으로만 수백만 장이 팔리는, 최고의 가수가 된 로드리게즈.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그 누구도 로드리게즈가 누구인지 모른다. 실은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장의 앨범을 내고 사라져버린 로드리게즈. 


이 영화는 이 로드리게즈를 찾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메라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로드게리즈의 음악에 빠져 사는 사람들과, 그 음악이 남아공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들이 이미 죽었다고 소문난 로드리게즈를 어떻게 찾는가, 뒤쫓기 시작한다. 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는 눈물 흘리게 하는 감동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찌 추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KBS에서 방영했던 빅토르 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빅토르 최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고 난 다음, 한국에는 그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 제작, 방영한 다큐멘터리. TV 다큐멘터리이니, <<서칭 포 슈가맨>> 수준은 아니었지만, 빅토르 최의 다양한 영상 자료들과 그와 그룹 '키노'의 음악으로 수놓아진 다큐멘터리는 이십대 였던 나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아마 KBS 안에서만 확인할 수 있을 듯 싶다)


음악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음악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간 중간 흐르는 음악 속에서 이야기가 들어오고 관객의 마음도 뒤섞인다. 그렇게 우리 모두 로드리게즈, 슈가맨을 찾는다. 


이번 주말 서칭 포 슈가맨을 보면 어떨까.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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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맛 2015.06.12 00:07 신고

    한국과 미국의 정서차이가 정말 분명하게 드러난 다큐이기도 했죠.

    지구 저편에서 최고의 스타였지만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못한채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점과 주인공의 실제 인생에 대한 철학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저작권과 지적재산권을 가장 성공적으로 자본화시킨 나라에 사는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쿨해서인지 제가 대신 조금은 아쉬워해줘야하는게 아닌가 ;;;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좋은 노래도 덤이고요 ㅎㅎ

    • 지하련 2015.06.13 00:56 신고

      로드리게즈라는 사람이 대단한 것같아요. 다만 미국에서는 그가 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흠흠.. 좀 어려웠을 것같네요. ~.. 포크락을 좋아하는 터라, 노래도 좋고 가사도 좋고... ㅎㅎ


마이클 잭슨의 동영상이다. 자막판도 있는데, 이는 페이스북에서만 확인했고 youtube에서는 찾지 못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모습인데, ... 세월이 흐른다는 걸 이 동영상을 보면서 느끼는 걸 보면, 나도 꽤 나이를 먹었다. 





미국의 팝스타들이 모여 'We are the world'를 노래하기 전에 영국의 팝스타들이 먼저 Band Aid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음반을 냈다. 집에 LP가 있는데, ...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려운 지경이니. 






이 음악들을 들으면서 추억에 잠긴다면, 당신도 나이 든 것이다. 


(일요일 밤에 술 마신 지도 정말 오래 되었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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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Guess Who.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벌써 9월말이라는 사실에 나는 놀라고 만다. 내 삶과 내 삶을 둘러싼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직, 내 감정만 시간과 관계 맺는다. 내 감정은 늙지 않고 상처 입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부메랑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그것의 궤도를 알지 못하고 그것의 속도를 모른다. 


어딘가로부터 돌아온 것들과 마주 하는 중년.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에게 상처 입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상처 입힐 땐, 자신만이 소중하니까 ... 그리고 상처 입을 때는 언젠가 다시 보복하리라 다짐하고 상처 입지 않으리라 여긴다. 


세상의 상처는 모두 부메랑이어서, 나에게 오지 않으면 내 아들과 딸에게, 혹은 그 후손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제한된 시간과 세상에서 그 부메랑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심지어 부메랑의 사용법 조차 알지 못한다.


어느 새 9월이고 또 다시 나는 한 해 늙어가고 있었다. 감각은 둔해지고 지식은 박제가 되어간다. 의사결정은 느려지고 사랑은 참 멀리 있다. 내가 아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올해가 가기 전에 몽테뉴를 읽어야겠구나. (그런데 나는 몽테뉴를 읽은 적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유의 리메이크는 다소 전략적인 컨셉. 프리다 골드는 무척 매력적이다. 정말 오랜 만에 듣는다. 

독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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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김경주 (지음), 문학과 지성사 







시인 김경주의 소문을 듣고 이 시집을 산 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이제서야 끝 페이지까지 읽었다. 실은 무수히 이 시집을 읽었고 그 때마다 첫 몇 페이지를 읽곤 숨이 턱턱 막혀와 더 이상 읽지 못했다. 그의 시적 상상력와 언어 구사는 탁월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런 이유로 다 읽지 않았지만, 그 동안 많은 이들에게 이 시집을 추천했다. 젊은 시인들 중에서(최근에 시집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가장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고, 내가 읽은 바 그의 첫 시집은 독창적인 시적 세계와 울림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래서 그런 걸까. 그의 시는 친절하지 않다. 그는 여러 겹의 은유들로 자신의 세계를 꾸미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음악으로, 한 쪽에서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한 쪽에서는 성적이고 육체적인 내밀함으로. 이 세 방향은 서로 어우러져 서로를 떼어낼 수 없다. 딱딱하기도 했고 물렁하기도 했다. 슬프고 우울하기도 했지만, 그 슬픔과 우울은 정상적인 형태가 아니어서 눈물을 흘리고 울어도 풀리지 않는 마음의 오래된 상처같았다. 


그렇게 시는 얇은 꽃잎같은 성벽에 둘러싸인 채,  때이르게 찾아온 초여름 더위 속에서 만발한 꽃들의 향기 속으로 독자를 초대하고, 금세 내 오감은 시에 취해 흔들거렸지만, 때로(혹은 자주) 시를 읽는 내 마음과는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고 계절의 향기만 가득한 것일지도. 


그래도 이 시집은 참 좋다. 세상과 참 멀리 있는 듯한 풍경을 언어로 수놓고 있는 탓에, 여행가는 듯한 기분을 우리에게 전해주며, 서가에 꽂아두고 오래 읽을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시집이다.  


시집을 읽으면서 메모 해둔 몇몇 구절을 옮긴다.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 보는 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중에서



무명(無名)의 별에서 별 한 채가 날아옵니다 그 빛의 세월이 내 눈까지 날아오는 데 걸리는 음악의 생은 또한 얼마나 고독해야 하는가요 외로운 사람은 눈을 감고 걷고, 눈이 외로운 사람은 강심(江心)에 그 눈의 음(音)을 숨겨야 하는 밤입니다

- <아우라지> 중에서



속으로 뜨겁게 뒤집었던 시간을 열어보이며

몸의 열을 다 비우고 나서야

말라가는 생이 있다

봄날은 방에서 혼자 끓고 있는

밥물의 희미한 쪽이다

- <눈 내리는 내재율> 중에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김경주저 | 문학과지성사 | 2012.11.3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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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14 14:06

    비밀댓글입니다

  2. 킨푸 2014.06.16 11:09 신고

    제가 줄 그은 문장과 정확히 일치하네요. 정말 이 시집은 놀라워요. 읽기는 힘들지만;

    • 지하련 2014.06.16 20:02 신고

      저에게도 읽기는 힘들지만(!) 참 좋은 시집이었습니다. ^^ ~ ㅎㅎ 댓글 고맙습니다. : )

  3. 2014.08.27 15:29

    비밀댓글입니다

  4. 2014.08.27 15:29

    비밀댓글입니다






슈베르트 8번 미완성 교향곡의 시작은 우아하면서도 격조있는 애잔함으로 시작한다. 참 오래만에 듣는다. 잊고 있었던 선율을 다시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구나. 


바렌보임의 지휘 대신 첼리비다케의 지휘 음향을 공유한다. 바렌보임의 지휘보다 좀 더 긴장감이 더 있다고 할까. 그런데 슈베르트스럽지 못한 느낌이다. 낭만주의적이어야 하는데, 첼리비다케는 각이 잡혀 있는 고전적인 스타일이다. 다행히 바렌보임은 그렇지 않다.  


어느새 책도 예전만큼 읽지 못하고 음악도 예전만큼 듣지 못하는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시절이 나에게 닥쳤고 그럴 만한 나이가 되었을 뿐이다. 오늘 오후와 저녁은 슈베르트와 함께 보내야겠다. 



 




찾아보니, 이런 게 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이 연주한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 그런데 지금 구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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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신선한 사과에 묻은 누런 빛깔 먼지 같았다. 그래서 그 사과가 누런 흙 알갱이로 가득했던 맑은 하늘 아래의, 어느 과수원에서 익숙한 손길의, 적당히 성의 없이 포장되어 배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스테인리스 특유의 무심한 빛깔을 뽐내는 주방 앞의 아내 손길에 그 먼지는 씻겨져 흘러 내려갔다. 그렇게 어떤 기억들은 사라졌다.


문득 내가 나이 들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15세기 중세 서유럽이었으면, 이미 죽었을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한 편으론 감사하고 한 편으론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만한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하지만 어떤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그저 시간의 틈에 끼어 오래되어 지쳐 잠들 뿐이다.그 잠든 모습을 스스로는 돌이켜보지 못하는 탓에, 예상치 못하는 사건들, 가령 거대한 도심의 새벽 거리에서 1980년대 후반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맡았던, 낡은 먼지 냄새같은 걸 느끼게 될 때, 불현듯 떠올라, 그 사이 힘들게 먹어온 나이를 무색케 만든다. 


너무 많은 생각은 정해져있는 일상의 행동마저 더디게 하고, 앞만 보고 향하던, 몇 분 전만 해도 냉정하게 빛나던 두 눈을 둔하게 하며, 축축하게 하며, 멍하게 만든다. 이 세상은, 저 우주는 내 앞에서 침묵으로 강요하고, 할 말 많던 나는 그 말들의 미로 속에 갇혀 혀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어느 목요일이 지나고, 라틴 풍으로 몸 단장을 한 '춘천 가는 기차'를 듣는다. 


아주 사소한 위안이 될테지. 혼자 술 마신 지도 참 오래 되었어. 음악 들으며... 



 나희경 - 춘천 가는 기차



나희경 - 흩어진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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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느티 2015.06.11 21:20 신고

    존 버거를 아시겠지요? 벤투의 스케치북이랑 책을 읽다가 안토넬로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검색하다가 여기에 닿았 습니다. 비슷한 시대를 비슷한 책을 읽으며 비슷한 음악을 들으며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읽던 책 놓아 두고 여러 글들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희경의 음악들에서 그만 왔다 간 것을 들키기로 합니다. 그대 내 맘에 들어 오면은, 나희경이 부른 그 노래. 강물처럼 그대 곁에 흐르리, 그 부분의 가사와 음색.
    세상에 진 게 아니라 세상 같은 거 더러워서 버린다고 했던 백석처럼 저는 십오년 전에 서울을 버리고 산골로 들어 왔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나니 살기 위해 또 다른 무엇을 선택해야 하긴 했지만 자본주의에 나를 상품으로 팔면서 사는 것보단 낫다고 아직은 제 선택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재미나게 읽을 글들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몇 몇 책들은 주문해 두었습니다. 이것 역시 감사!

    • 지하련 2015.06.13 00:52 신고

      '나를 상품으로' 만들어 팔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요. 한 때 '사람은 상품이 아니다'라며 경멸하던 터라, ... 나이 들수록 세상의 무서움과 세상 사람들의 무책임함과 무관심함에 경악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럴 수록 세상에 무슨 미련을 가진 것인지, 더 악착같아지는 제 자신이 놀랍고 때로는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나희경, ... 보싸다방 노래를 듣고 찾아 링크를 걸어두었는데, 잊고 있던 이름이었네요. 요즘엔 1년이 수만년같고 어제 만난 사람도 기억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도시에서의 나이 들어감은, 나빠지는 건강만큼 핑계가 늘고 정겨운 술자리는 반대로 줄어드는 듯하여 슬프기만 합니다. 하긴 이런 거대한 도시에서 인간이 얼마나 오래 살았다고 익숙해지길 바라는 제 자신이 이상한 것이겠지요. 한국사람들은 이제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는걸요. 댓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긴 댓글이 달리고 산골로 들어간 느티님을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버릴 수 있을 때 확실히 버려야 하는데, 저는 그러질 못했네요. ㅎㅎ ~


얇게,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 비가 내리고 우리들의 일상은, 놀랍도록 조용히 흘러간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나는 간밤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밟았다. 사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지나치게 되는 어느 중학교 뒷편은 고요했고 무채색 아파트 벽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어제 어쩌다가 보니, 시를 읽게 되었다. 알지 못하는 시인이었지만, 오래, 어떤 손이 가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우리 삶도 그치테지만, 어떤 시들의 여운은 문명의 끝까지 가면 좋으리라. 





손의 의미 

 

  

박서영 

 


 

기타를 잘 치는 긴 손가락을 갖기 위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

그러고 보면 호미를 쥐는 손은 호미에 맞게

펜을 쥐는 손은 펜에 맞게 점점 변해가는 것 같다

그건 자신의 울음에 알맞은 손을 가지려는 것

자신이 만져야 할 색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음악의 육체에서 고양이가 울고, 음악은 점점 자란다

시간과 공기의 색을 찢으며 

사자의 음악과 치타의 음악과 표범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악기들은 때때로

코끼리, 하마, 기린의 울음을 연주하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에는 겁에 질린 소녀의 색이 있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문을 흥얼거린다

기타를 잘 치는 손가락을 갖기 위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이 있다

그가 오늘은 어린 사자새끼를 연주하고 있다

울음이 길어지면 손가락도 점점 자랄 것이다

 

 

계간 [시에] 2011,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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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장을 입었다. 타이를 매고 흰 색 셔츠를 입고도 어색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내 스스로가 낯설어졌다. 하긴 지하철에 빼곡히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절망감에 휩싸였던 20대를 보낸 나로선, 지금의 내가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내 마음 속 또 다른 나 자신에게. 

며칠 만에 제안서를 끝내고 프리젠테이션까지 했다. 작년 초에 한 번 하고 거의 1년 만이다. 누군가 앞에서 나서서 뭔가를 하는 것을 지독히 싫어했는데, 이제 내가 책임을 지고 뭔가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 왔다. 

며칠 전 TV를 보는데, 김기덕 감독의 거처가 나오고 김기덕 감독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그걸 보던 아내가 날 보더니, '당신도 저렇게 살고 싶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나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저 정도로 지저분하게 해놓고 지내진 않아'라고 말하곤, 잠시 후 약간의 후회를 했다. 하루 종일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림 보고 글 쓰며 살고 싶은 건 사실이긴 해도, 가족이 있다는 건 그것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Villa-Lobos의 음악을 듣는다. 라틴의 슬픈 음악에는 ... 뭐랄까, 쓸쓸한 바다 내음이 난다. 그 전날 데낄라를 잔뜩 마시고 취해 해변에 쓰러져 자다가 일어난 새벽,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끝없는 수평선의 바다만 펼쳐져 있을 때 들리는 음악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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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RT_IBK 2012.09.19 16:02 신고

    직장인의 하루.. 웬지 씁씁하지만 책임감을 느낍니다^^

    • 지하련 2012.09.19 17:18 신고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을 넓게 보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책임감은 무척 중요한 것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책임감이야말로 우리를 지탱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ㅋ.



푸생과 바흐만큼 어울리는 짝도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한 명은 고전적 바로크 예술가이고 다른 한 명은 바로크 음악의 대가이다. 연주되는 음악 밑으로 깔리는 엄격한 작법은 마치 푸생의 고전적 태도를 엿보게 한다고 할까. 라이프니츠의 기하학 - 바흐의 변주 - 푸생의 고전주의를 연결지어 공부하면 참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책이나 잡지를 읽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으나, 정리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메모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그 메모들을 정리할까 하는데, 오늘 발견한 것은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의 이야기다. 


추상표현주의 대가 칸딘스키. 그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회화성'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 색채의 율동(리듬과 운동)으로만 구성된 일련의 작품들을 완성했다. 특히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초 추상 미술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Composition IV 

1913년도 작



"색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힘이다. 색은 건반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끈이 달린 피아노다. 예술가는 연주하는 손으로, 하나의 키 또는 다른 키를 두들겨서 영혼을 떨리게 만든다."

- 칸딘스키 





파울 클레, 또한 음악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고 공공연히 음악과 미술의 연관성, 그리고 회화가 가지는 음악성, 리듬, 선율을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말에 귀 기울였는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그의 의도와는 관련없이 파울 클레는 종종 색채, 색채 구성이 가지는 기하학적 형태가 더 많이 언급되곤 한다. 


실은 음악만큼 기하학적인 구조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중세 시대 내내 미술은 천대 받았지만, 음악은 천상의 구조를 그대로 현실 세계로 옮겨놓은 기하학적 유비로서 인정받았다는 걸 떠올린다면, 우리는 쉽게 파울 클레를 통해 현대 음악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Red Balloon, 1922, Oil on muslin primed with chalk, 31.8 x 31.1 cm.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나는 이 세상에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편안하게 머무는 곳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대개의 경우 창조의 핵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 

- 파울 클레 




* 도판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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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est Show on Earth - "Magic Woman Touch"



1970년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The Greatest Show on Earth의 앨범. 고맙게도 이 노래를 Youtube에 올린 이가 있네.... 지나간 내 몇 개의 계절들을 지켜준 노래. Magic Woman Touc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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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도 많고 정리해야 할 것도 많고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 ... 그리고 술도 마셔야 하고 ... ... 사무실에서 회의가 끝나고 난 다음 Competitive Strategy와 Strategic Innovation에 대해 팀원들에게 설명하면서 매우 우울해져 버렸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 전략 실행과 조직 관리, 또는 리더십... 무수한 고민들이 장기판 위로 떨어져 내리는데, 그 어느 것 하나 뾰족하게 나에게 해답을 주지 못한다. 돌아돌아 다시 제 자리로 온 느낌이랄까. 그나마 조금 성장한 것같으니, 그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요즘은 밤 10시만 되면 졸린다. 그리고 잠을 청한다. 

내일은 좋은 일이, 다음 달에는 좋은 일이, 내년에는 좋은 일이, 나와 우리 가족, 이 나라, 전 세계, 그리고 이 은하계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Coldplay의 Trouble을 들으며,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셔왔던가. 그런데 왜 그 때가 그리운 거지. 돌이켜보면 나는 다시 지금 이때를 그리워하게 될까... 세월은 수수께기처럼 우리를 스치고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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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31 01:54

    비밀댓글입니다

    • 지하련 2014.11.03 12:44 신고

      아.. Coldplay 시디가 어디에 있는지 ~~ 모르겟어요. 한때 열심히 들었죠. ㅎㅎ


몇 자 적다가 지우고 만다. 오랜만에 포티쉐드Portishead를 듣는다. LP도 있는데, 듣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밤, 구석진 까페, 옆 자리의 끊이지 않고 허공을 채우는 담배 연기 속에서 맥주 한 병 마시는 것도, 지친 인생의 대단한 위안이 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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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 루빈스타인, 차이코프스키와 에밀 길레스가 언급된 몇 개의 포스팅을 적고 수정했지만, 예약으로 걸어둔다. 오늘 너무 많은 포스팅을 올리게 되기에(이제 나도 그런 걸 신경써야 할 때가 왔다).

어느 새 일요일 오후이고 쓸쓸하다는 기분에 잠긴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연주를 듣는다. 20세기 피아노 연주의 낮을 지배했다는 루빈스타인과 밤을 지배했다는 호로비츠의 연주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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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시작되었고 하루하루 지났다. 세상은 각자의 관점 속에서 완성될 것이고 라이프니츠가 말했듯 그것은 모나드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모나드는 동일하지 않아서 어떤 이들의 모나드는 덩치가 있거나 어떤 이의 모나드는 금이 가 있거나 하는 식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이를 '모나드'monad로 명명하면 안 되겠지.

흄의 문제(귀납법적 문제) 앞에서 경험되는 정보를 무한대로 쌓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론(진리, 혹은 이데아)의 근사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000일 동안의 우호적인 세상 속에서 우리는 결코 1001일 째 되는 날의 비우호적인 세상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IMF 이전과 IMF 이후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이 비극적인 블랙 스완 앞에서 무수한 비정상적인 일들이 정상적인 일들로 포장되었고 그 이후는 아무렇게 일어나는 일이 되었다.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들 수시로 직원을 구조조정하게 되었고 헤드헌팅 시장이 본격화되었다. 셀러던트가 시작되었고 정체 불명의 학위였던 MBA가 각광받는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이 되었다. 내가 대학을 들어간 지 꼭 20년이 되었다. 전공은 문예창작이었지만, 미학과 비평을 좋아했고 직업은 IT 서비스 기획과 비즈니스 컨설팅으로 시작했다. 몇 번의, 아름답지만 무모했던 문화예술로의 일탈을 했으나, 결과는 현실 적대적이었던 관계로, 나는 다시 IT 기획과 Online에 기반한 Marketing 전반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로 인해 만나는 전문가들 대부분은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았고(단지 그들은 내가 다 아는 이야기를 상대방은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양 이야기하는 데 매우 능숙했다), 도대체 나는 이 자리에서 뭐하고 있나 하는 뜬금없는 질문을 하곤 했다. 결국 나는 내 자신을 포장하고 알리는 데 놀랍도록 게으른 사람이었고, 그렇게 지내왔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한동안 회사의 모든 문제는 사람들로 인해 생긴다고 여겼고 사람들 문제만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면 잘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기본이었고 그 다음에는 전략이었다. 결국 Human에서 Strategy로 내 관심사가 옮겨갔다. 그리고 Strategy 다음에는 Execution, 실행이 될 것이다. 인사 문제의 여러 가지 해결책 중의 하나에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Time)'도 포함된다면, Strategy는 확실히 반시간적이다. 시간이 지체될 수록 기회는 반비례하여 사라지고 결국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Strategy는 Executive-dependent여서 중간 관리자인 내 입장에서 종종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리고 몇 번 이야기해보고 난 다음 바뀌지 않으면 그냥 그 수준에서 수습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니다. 결국 Execution은 내가 하고 Execution의 방향 대부분은 Executive-dependent인 관계로(내가 Strategy Setting을 하게 되면, 가끔 협업을 해야 될 타부서 관리자들과 충돌이 발생하게 되기도 하고)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데 이건 모든 회사의 중간 관리자들이 느끼는, 고질적인 문제이지 않을까.

2012년 초 문득 이런 것들까지도 허심탄회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비현실적인 바람일까. 

Latte E Miele를 듣는다. 멜론에서 다운로드 받았더니, 내가 가지고 있는 LP들과는 다른 순서에 잘못된 곡들까지도 포함되기도 했더라. 24살-5살 때 거의 매일 같이 들었던 음악이었다. 이번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온 신입의 나이가 24살이니...  나는 얼마나 늙은 것인가!

조만간 서재에 세팅된 스피커, 앰프, 턴테이블을 보여주겠다. 1차, 가지고 있던 오디오 시스템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2차, 첫 번째 구입 시도는, 구입할 수 없는 모델들 상당수 포함되었던 관계로 실패, 1-2주 동안 다시 견적 작성하여 의뢰할 계획이다. 니체의 말대로 이 세상에 음악이 없었다면! 






요즘 다시 듣기 시작한 벨라 바르톡!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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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전에 적다가 ... 이런저런 일상들로 인해 이제서야 정리해 올리는 글.



어제(토요일) 읽다가 펼쳐놓은 책, 정확하게 378페이지를 가리키고 있다. 그 페이지의 한 구절은 이렇다. '여러 의사결정에 집단의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실패의 원인을 규정하는 것에도 집단적인 거리낌이 있다. 조직들은 지난 일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회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제프리 페퍼Jeffrery Pfeffer의 1992년도 저서, Managing with Power: Politics and Influence in Organizations를 번역한 이 책의 제목은 '권력의 경영', 내가 이번 주 내내 들고 있는 책이다.

어제 내려 놓은 이디오피아 모카하라 드립커피는 식은 채 책상 한 모서리에 위치해 있고, 낡은 만년필은 굳게 입술을 닫힌 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식은 커피 속에서 커피향이 진하게 퍼져 나왔다. 어느 해의 1월, 두 번째 일요일 아침, 창틈으로 차가운 겨울 대기가 스며드는 서재.

사용하던 오디오를 처분해야 되는데, 계속 미루고 있다. 오래된 JBL X40 Speaker와 A&R Cambridge Inti-Amp, 그리고 낡은 파이오니아 턴테이블. 합쳐서 40만원에 팔면 팔릴까. 아침에 일어나 벨라 바르톡의 피아노를 듣는다. 요즘 그가 좋다.





작은 스피커로 물결치듯 방 안으로 흘러가는 피아노 소리. 오늘, 일요일, 아무런 계획도 없다. 하지만 할 일은 산더미 같고 이제 마흔이라는 나이가 실감난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 벨라 바르톡, 여전히 그는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 없는 작곡가들 중의 한 명이었다. 이번 주, 그의 음반 하나를 더 사야겠다. 아, 혹시 내 오디오를 사 갈 사람이 어디 없을까. 조만간 상세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봐야 겠다. 창 틈으로 일요일 아침의 찬 바람이 들어온다. 새로운 해의 바람이다. (하지만 불과 백 여년 전만 해도, 아직 새해가 오지 않는 12월이지만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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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전 잠시 일 층으로 내려가, 일 층 한 모서리를 삼백 육십 오 일 이십사 시간 내내,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 초라한 뿌연 빛깔을 내는 형광등 불을 켜두고 있을 듯한 편의점에서, 따뜻하게 데운, 조각난 치킨들과 캔맥주를 마시고 올라왔다. 편의점 창 밖으로 어느 새 겨울 어둠이 내렸고, 눈발이 날렸고, 헤트라이트를 켠 검정색 차가 지나고, 이름 모를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추린 채 길을 걸어갔다. 검고  흰 젖은 길을.

그 순간 내 입술은 닫혔고 내 혀는 금방 스쳐지나간 맥주향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잠시 지나간 이천십일년과 결혼과 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편의점 치킨과 캔맥주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무실 책상은 쌓인 실패들과 꿈들과 계획들로 어수선했고, 음악은, 그 보잘 것 없는 음악은 최신 스마트폰에 갇혀 나를 위로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귀에 끼인 작은 독일제 이어폰에.


몽라 Monla - 트랄라 Tral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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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래빈의 CD가 어떤 이유로 나에게 있는지 알 턱이 없지만, 어제 오늘 나는 마이클 래빈의 음악만 들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오디오 탓에, 노트북에 시디를 올려놓고 작은 스피커로 들었지만... 마이클 래빈의 연주는 1950년대 후반의 실황 녹음이었고 ... 음질이나 음향을 떠나, 그의 연주는 로맨틱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연주자로 알려져 있으나, 음반이 많지 않고 일찍 죽은 탓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져가고 있지만 ... 그의 연주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1950년이면 그가 십대 중반이었을 무렵이니, 이 음반 속의 연주는 놀랍다고 할까.

"Rabin was known to be a perfectionist in matters of pitch,bowing, and finger control, and yet he was not simply a fastidious technician; his performances radiate genuine warmth and inner feeling and energy. Rabin was a true romantic violinist" (CD 해설에서)



[수입] 마이클 라빈 미발매 레코딩 1950-1965 - 10점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작곡, 래빈 (Michael Rabin) 연/Tah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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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트롤즈를 듣는 월요일 아침이다. 갑자기 쌀쌀해진 가을. 사람들은 두터운 옷을 입고 출근길을 재촉했다. 바람에 나뭇잎이 날렸다. 그들은 지난 여름의 폭우와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 그리고 위대한 현인들이 이야기했다는 의지력이나 이상(꿈)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2.
뉴트롤즈를 듣는 월요일 저녁이다. 갑자기 쌀쌀해진 가을. 사람들은 무거운 옷을 다시 입으며, 퇴근을 고민한다. 하지만 입 끝에는 쓸쓸한 알콜 향이 맵돈다. 작은 술잔 안으로 밀려드는 기세가 마치 8월의 소용돌이 구름 아래의 파도와 같은 ... 투명한 소주가 가을 저녁에, 뉴트롤즈를 듣는다. 이제 아무도 이십여년 전 그 때처럼 뉴트롤즈를 찾지 않고 그들의 전설은 이탈리아 반도 어딘가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처럼 우리 일상도 어둠에 묻히는 가을 저녁이다.






New Trolls - Concerto Grosso Per 1-2
New Tro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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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이트퀸 2011.11.25 16:43 신고

    반가운 이름이네요. 저도 최근에 뉴트롤즈를 들었어요. 최근 출시된 2장짜리 베스트 앨범이 꽤 쓸만한 것 같아요. ^^

    • 지하련 2011.11.26 08:33 신고

      뉴트롤즈.. 추억의 이름이죠. 성음이었나, 딱 한 장 라이센스로 나오고 나머지는 빽판으로만 유통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땐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음악 듣던 시절이었습니다. ㅎㅎ 음반 있는 집을 찾아가서 음악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ㅋㅋ 이십년 전이죠. ㅎ~



슬픈 중세주의는 현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세기의 낭만적 중세는 거침없는 산업화 속에서 사라지고 20세기, 21세기의 중세주의는 학문 연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진지한 동경, 숙고, 찬미로 바뀌고 있다. 마치 12세기 르네상스론이 지속적으로 이야기되듯.

그 사이로 에스토니아 출신의 아르보 페르트가 있다. 미니멀리즘과 중세적 성스러움 속에서 그는 미사곡과 성가곡을 작곡한다. 그의 음악은 슬프고 그리운 중세를 닮아있다. 불가능함을 불가능함으로 받아들이고 자연과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아가던 중세를...

오늘 아르보 페르트의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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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하늘 너머, 마치 어떤 이가 황금빛 바가지 가득 물을 담아 아래로 붓는 듯, 세차게 긴 비가 내렸다. 2011년, 미지의 칠월이다. 끝없이 모래의 대지가 펼쳐진 서남아시아에서 넘어와, 어떤 우여곡절 끝에 검고 딱딱하게 변한 아스팔트는 단단했고 중국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져 서울까지 운반된 우산은 튼튼했다.

방송통신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공부란 늘 그렇듯 끊김 없는 시간과 여유로운 집중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장인 내가 이것이라도 하고 있음이리라.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과연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다.)

세차게 비가 내렸다. 남청 색 신발이 빗물에 젖었다. 빗소리에 가려, 차소리, 걸음소리, 숨소리, … … 모든 일상의 소리가 묻혔다.

비 속에서 수지 개블릭의 ‘르네 마그리트’를 꺼냈다. 그리고 필립 글라스의 ‘Forgetting’을 들었다. Forgetting, Forgetting, …


“…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하여 의지할 만한 것을 원한다. 안전하게 매달릴 만한 것을 원하고 그렇게 하여 공허함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다.”
- 르네 마그리트



비 속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기는 어느 남자.
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 근처, 젖은 도로 위, 혹은 얇은 수면 위.

마그리트의 말대로, 우리는 의지하기 위해 의미를 찾는다. 기대기 위해 의미를 구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그 어떤 독립성도 없는 것일까.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의미를 구하지 말고, 의미에게서 멀리 달아나야 하는 것일까.

세차게 비가 내렸다. 2011년, 미지의 칠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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