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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응급실 +1



1. 

봄날이 간다. 여름이 온다. 비가 온다는 예보 뒤로 자동차들이 한산한 주말의 거리를 달리고 수줍은 소년은 저 먼 발치에서 소녀의 그림자를 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그 사이로 커피향이 올라오고 내 어깨에 매달린 가방의 무게를 잰다. 내 나이를 잰다. 내 남은 하루, 하루들을 세다가 만다. 포기한다. 


2.

포기해도 별 수 없는 탓에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게 된다. 포기해도 된다면, 포기가 좋다. 내려놓든가, 아니면 그냥 믿는다. 포기를 해도 남겨진 삶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포기는 그저 단어일 뿐, 행동은 아니다.  




3. 

비가 내리는 날 저녁 황급히 들어간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저녁 식사의 수선스러움을 기억한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일상. 그런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4. 

방문 열쇠가 빠지지 않았다. 차키가 빠지지 않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손에서 일시적으로 모든 힘들이 다 빠져나간 것일까. 여전히 어깨에는 가방을 맨 채로 고속버스를 타고 종일 헤맸다. 


5. 

응급실 풍경은 늘 낯설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선 우는 소리가 들렸다. 교통사고로 다친 아이가 응급실에 온 지 2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강제된 부재는 그 동안 쌓아온 것들을 천천히 갉아먹을 것이다. 그리고 슬픔마저도. 


6.

몇 주째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시집을 들고 다녔지만, 읽지 못했다. 오늘도 읽지 못했다. 이 사무실에서 나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잠시 블로그에 들어와 단상을 남긴다. 봄날 대기도 어수선하고 내 마음도 어수선하고 책상 위도 어수선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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