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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쳤다. 결국 감행했다. 그리고 책을 버렸다. 백 권 넘는 책들을 버렸다. 어떤 책은 지금 구할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책은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한 것이다. 책마다 사연이 있고 내 손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인집 할머니의, 폐기물 사업을 하는 지인이 가지고 가기로 하였으나, 몇 주 동안 그대로 있길래 동네 헌책방 아저씨를 불렀다. 아침 일찍 아저씨는 작은 자동차를 끌고 와서 책을 살펴보았다. 권당 만원씩으로만 따져도 백만원치였지만, 아저씨는 나에게 삼만원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요즘에도 이렇게 책을 읽는 이가 있구나 하는 혼잣말을 했다. 


그 옆에 서서 삼만원을 들고 서 있던 나... 버릴 예정이었으니, 삼만원도 큰 돈이다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일이 너무 많아,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술을 마실 시간도 없다. 결국 나를 위해 쓸 시간은 제로다. 그런 시간마저도 이런저런 일들이 끼어들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젊을 때 여유롭게 살아야 된다는 것일까. 그것도 최대한? 


아직 서재 정리 중이고 앰프, 스피커, 턴테이블, 시디플레이어 등 오디오기기들은 아예 연결하지도 못했다. 결국 이 덩치 큰 오디오들도 중고로 내다팔고 더 작은 것으로 바꿀 예정이다. 작은 집으로 이사왔으니, 모든 걸 작게 줄여야 한다. 하나 둘 씩 버리고 줄이고, 그 끝에 나도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한 때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사랑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부, 애초부터 없었어도 무방한 것임을 나이 들수록 깨닫게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새벽까지 을지로 어딘가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풍경, 살짝 이국적이었다. 이제 이런 풍경을 가진 도심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은 변하는 것이고, 변하는 것에 대해 애처로워할 필요도 없다. 원래 변하는 것이다. 다만 너무 빨리 변해 나이듦이 이젠 지혜를 나누어주는 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변한 세상을 이해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하는 이가 되어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배우고 더 부딪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까. 


그런데 그게 가능이나 할련지, 문득 술을 마시다 늙어가는 나를 마주한다. 



Comment +2

  • 2018.11.19 19:05

    비밀댓글입니다

    • 댓글 감사합니다. 해당 서적은 원서로 읽기를 권합니다. 번역이 아주 엉망이어서 미술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선 제대로 읽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 책을 이사 중에 어떻게 하였는지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ㅡㅡ;;

      알라딘 외국도서에서 검색이 되네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293751

      감사합니다.



벌거벗은 CEO (CEO: The Low Down on the Top Job)

케빈 켈리(지음), 이건(옮김), 세종서적, 2010년 




일반적인 궤도를 그린 직장 생활이라기 보다는 중구난방으로 부딪히며 이 일 저 일 해온 탓에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접었다. 나만의 사업을 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종류의 일임을 새삼 깨닫은 탓이기도 하고 살짝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류의 책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탑 레벨에서의 의사결정 구조나 리더십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만 조직 생활이 가능하고 중간 관리자로서의 모범을 보일 수 있다. 


글로벌 헤드헌팅 회사의 CEO인 케빈 켈리는 자신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CEO들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 CEO란 누구이고 CEO는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막상 읽어보면 여느 경영 서적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CEO를 꿈꾸는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은 될 듯 싶다. 


물론 CEO의 역할에 대한 편견이 반영되어있을 수도 있다. 이 중 첫 번째는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오해가 발생하기 쉽지만, 그래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요소이다. 두 번째는 보상이다. 금전적인 보상에 그치지 않고 모든 직원에게 긍지를 심어주어 매일 아침 업무 의욕을 느끼게 해야 한다. (... ...) 변화 역시 중요한 주제이다. 찰스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힘센 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고, 가장 똑똑한 종이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용하는 종이 생존한다."

결국 변화를 관리하고 맞서며 소통하는 방법이 관건이다. (10쪽 ~ 11쪽) 


새로 CEO가 되고 CEO로서 어떤 역할을 중요하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취임 초기 단계에 CEO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다음 여섯 가지이다. 

1. 사기 진작 Mastering morale: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한다. 

2. 대화 Talking the talk: 끊임없이 세심하게 의사소통한다.

3. 최고 경영팀 구성 Assembling the team: 리더십은 팀워크이다. 

4. 실행 Action: 직중에서는 실행이 중요하다. 그러나 집중하라. 단지 실행을 위한 실행보다는 신중한 실행이 낫다. 

5. 일화 만들기 Writing your own legend: 상징적 행동을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6. 기업문화 바꾸기 Culture check and change: 먼저 기업 문화를 이해한 다음에 바꾸어야 한다.

(79쪽)


그러고 보면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모든 의사결정에 다 관여하거나 책임을 지면서 이사회나 대주주와의 정치적 우호 관계로 제대로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CEO가 되면 맞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들과 해결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평면적이거나 예상되었던 문제이거나 해결책이기 때문에 다소 독서의 긴장이 떨어지기도 한다. 더구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디디'와 '고고'를 매춘부로 옮긴 건 치명적이다.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편집 과정 상의 실수는 책 전체적인 질이나 분위기까지 망친다. 그럼에 불구하고 리더십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워렌 베니스의 '핵심성과지표'는 리더가 조직을 운영할 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요소를 한 눈에 정리하고 있어, 옮겨본다. 



워렌 베니스의 핵심성과지표 Key performance indicators 

1. 조직이 잘 정렬되어 있는가? 이는 직원 전체가 성공의 기준을 동일하게 생각하느냐는 뜻이다. 

2. 적응력이 있는가? 다시 말해서 복원력이 있는가? 미래를 내다보면서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해야 하며, 거듭된 성공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3. 재무실적이 있는가? 시가총액이든 투자수익률이든, 기업 인수나 매각의 성패는 상관없다. 재무 실적의 척도로 무엇을 사용하는,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4. 미래의 리더 집단을 양성하고 있는가? 멘토제도mentoring system를 유지하고 있는가? 

5. 직원들이 의욕적이고 활기차며 업무에 몰입하고 권한은 있는가? 

6. 조직이 투명하고 개방적인가

7.연구개발에 자원을 얼마나 투입하는가? 

(87쪽 ~ 88쪽) 



전체적으로 서술은 평이하고 쉽다.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읽기 부담 없다. CEO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번 읽어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벌거벗은 CEO - 8점
케빈 켈리 지음, 이건 옮김/세종서적

Comment +0




이사를 했다. 늘 나에게 이사는 ... 힘들다.
첫 번째는 많은 LP와 시디 때문이고
두 번째는 책들 때문이다.

(갤럭시S로 찍었는데, 영~화질이~..)

다행히 서재 창 밖 풍경이 좋다.




수백장의 시디는 책상과 서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수 백장의 LP는 창고로 들어가고
책들도 서가 여기저기 쌓아두고 ...

이제 천천히 정리를 해야 한다.




베란다 창밖으로 가을은 깊어가, 겨울을 향하는 듯하다.



Comment +4

  • ㅎㅎㅎ 저도 책이 점점 늘어나는데...ㅠㅠ 집에서 책 사지 말래요...ㅠㅠㅠ

    • 수시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책들을 버리는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하더군요. 계속 새 책은 서재로 들어오기 마련이고 ... 어느 순간 책이 들어갈 공간은 사라지는 법이니, 버리는 (하지만 너무 잔인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ㅜㅜ..

  • 한남동으로 이사오신 건가요?

    • 아~..한남동으로 이사가고 싶어요. ... 다음 이사 때는 한남동으로 가야겠군요! 지금은 노량진입니다. 노량진-상도동 언덕 위의 아파트라 반대편 풍경은 나름 ... 삭막합니다. 사진 몇 장 올려볼께요. ㅎㅎ


2010년의 가을이 오자, 사무실 이사를 했다. 다행이다. 직장생활에 뭔가 변화가 필요했고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진 않지만, 좀 더 넓은 사무실로 옮겼다.

강남구 삼성2동. 강남구청역에서 내려 높은 아파트들을 지나 근사한 빌라촌을 지나 있는 어느 흰 빌딩.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10월 초의 어느 날.

몇 해 전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텔런트 고 장자연의 소속사가 있던 건물 근처다. 그 건물 앞을 지나칠 때마다 사람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체계에 갇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혹은 치유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결국엔 세월이 약이라고들 이야기하겠지.

안 좋은 일이나 사건이 지나고 난 다음, 사람들은 곧잘 세월이 약이라고들 하지. 그런데 세월이 약일까.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문득 박인환의 시를 떠올렸다. 적절한 감상주의로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듯한 이 시는 1956년도에 이런 시를 쓸 수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움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그래,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다. 

마치 19세기 영국에 때아닌 고딕의 바람을 붙었던 것처럼,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 채, 옛날을 더듬는다. 세월이 약이 아니라, 놀랍게도 우리를 아프게 했던 사건을 잊어버린 채, 과거를 더듬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은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지지 못했다는 상실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 (혹은 그 반대이거나) 

명확하지 못한 반대항보다 명확한 반대항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그런 이유로 올림픽이 시작되었고 정치적 안정은 종종 스포츠의 활성화와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과거 회귀란 우리의 상실감 속에서 싹트고 자신도 모른 채 십 년 전, 이십 년 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퇴보란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새 우리 행동도 보수적으로, 과거 회귀적으로, 시대 착오적으로 변해있는 것이다. 마치 사랑을 잃어버린 채, 그 어느 사랑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자기 혼자만 상처 입었다는 마음을 가진 채... 

사랑은 가고 옛날이 우리의 마음을 물들이지만, 우리는 내일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더라. 나이가 들어갈 수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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