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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는 지도. 그래서 그 조각이나 파편들을 이어붙여 우리가 이해가능하거나 수용가능한 형태로 만들고자 하는 학문적/이론적 시도는 애체로 불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삶이나 그 삶 속의 사람들, 사건들, 이야기들을 분석하고 체계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그 조작과 파편들의 일부이거나, 그 일부를 묘사한 글이나 풍경이 전부이지 않을까. 그리고 기시 마사히코의 이 책,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주욱 늘어놓고, 그것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한 생각'(7쪽)으로 시작되지만, 그 생각은 정리되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하고 '원래 이렇지, 뭐' 식의 자조로 끝난다고 할까. 그런데 이 자조 앞에서 우리들은, 독자들은 이론적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무너진다. 기시 마사히코가 펼쳐놓는 사람들 앞에서, 사건들 앞에서, 이야기들 속에서 결국 마주하는 건 쓸쓸한 우리들이거나 어디로도 갈 곳 없고 공감받지 못하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기시 마사히코는 구술 조사를 주로 하는 사회학자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한 사람씩 찾아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 개인의 생활사를 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왔다. - 9쪽 



여기에는 다 쓸 수 없지만 구술 조사의 현장에서는 이렇듯,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수없이 일어난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은 구술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널려 있다. 사회학자로서는 실격인지 모르지만, 언젠간 '분석할 수 없는 것'만 모아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 13쪽 


이 책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대체로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호소력이 있으며 애잔하다. 


아버지는 수감되고 어머니는 증발되고 아이들은 보육시설에 맡겨졌으니 아무도 없는 방이 되었는데도, 악취와 해충에 대한 민원이 몇 번이나 되풀이해 들어왔다. 그래서 아파트 관리 회사의 입회 아래, 그 분이 여벌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곳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가구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텅 빈 깨끗한 방이었다고 했다. - 62쪽 


학문의 테두리 안으로 모이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우리 삶이며 일상이고, 우리가 길을 가며 마주치게 되는 이 도시의, 이 세계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딱히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냥 자신이 수행해왔던 사회학적 연구 속에서, 그 연구에 들어오진 못했지만, 저마다의 사연으로 누군가에게 알려지길, 읽히길, 그리고 읽혀졌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으로 이렇게 책으로 엮여져 나온 것일지도.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 가든 있을 곳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어디론가 가고 싶다. - 80쪽 


우리들은 '책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어떤 참여를 하게 된다. 소극적 형태의, 작은 공유이거나 공감이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다.  


네모진 종이책은 그대로 온전히 바깥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네모난 창이다. 따라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 실제로는 자기 집이나 거리 밖에 알지 못하면서도 여기에 없는 어딘가 '바깥'이 있고, 자유롭게 문을 열고 어디에라도 갈 수 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때가 오면 진정 창과 문을 열어젖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풀쩍 뛰어나가는 것이다. - 82쪽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타인에게 무신경한 현대의 우리들. 그렇다고 해서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타인에게 신경 써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이 좁은 지구에, 다 같이 모여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도,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저마다의 쓸쓸한 사연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아주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는 것이 고통 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름 아닌 바로 나에게만 시간이 흐르는 것'이라는 '구조'를, 우리는 일체의 감동이나 감정을 빼고, 서로 공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안에서 각자가 고독하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각자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라는 것을 조용하게 나눌 수 있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도 있다는 단적인 사실을, 서로 알고 있다. 그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 141쪽 


기시 마사히코(岸政彦)

사진 출처: http://www.hankookilbo.com/m/v/9716234b333841bb96d0651e0d0ad18a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 10점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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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부여의 기술
인터브랜드(지음), 엔트리



브랜드에 대한 짧지만, 탁월한 식견을 구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갑자기 자신이 담당한 브랜드가 막강해지거나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게 되는 건 아니다. 


이 책은 '인터브랜드 코리아 창립 20주년'을 맞아, 창립 이래 발간된 인터브랜드 <브랜드 레터> 중 가장 의미 있는 글들을 모은 결과물이다. - 표지 뒷날개 중에서 


다만 브랜드 개론서들을 읽은 이들에게 이 책은 일종의 다이제스트판이라고 할 수 있겠고, 브랜드 경영이나 브랜드 전략에 다소 생소한 이들에겐 브랜드에 대한 소개서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 


그동안 많은 브랜드 관련 책을 읽었고 브랜드 경영과 관련된 스터디도 여러 차례 진행했지만, 역시 직접 브랜드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고, 고객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브랜드과 관련된 서비스/상품 전체를 다룬다는 건 만만치 않는 작업임에 분명하다. 요즘같은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더욱더. 


그만큼 브랜드에 기반한 비즈니스 수행은 어렵다. 브랜드만 있으면 될 것이라 여기지만, 만들어진 브랜드를 유지하는 건 더욱 고된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 상당부분은 고객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며,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유지하고 서비스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혁신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내용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글과 목소리를 통해 꽤 설득력있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결국 브랜드란 서비스 / 상품 그 자체이면서 기업 자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모여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를 유지, 관리하며 브랜드를 이용한다. 경쟁 속에서 브랜드는 보이지 않는 경쟁 우위를 만들어 주며 지속 경영을 가능하게 해준다.



'앱솔루트는 보드카지만, '술 브랜드'라고 커뮤니케이션하지 않고 앱솔루트라는 브랜드로 커뮤니케이션 해왔기 때문에 다른 주류 브랜드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벤치마킹하지 않는다. 앱솔루트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자 혁신적인 브랜드를 추구하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이나 혁신과 관계있는 모든 브랜드를 관심있게 살펴보고 있다. 

- 158쪽 



앱솔루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막강한 브랜드는 기존 시장 경쟁 구도까지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는 브랜드 경험의 일관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브랜드 내면의 핵심이 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시각적 아이덴티티의 일관성, 베이식 로고와 어플리케이션 디자인의 일관성, 고객이 브랜드를 만나는 모든 접점의 아이템에 적용되는 디자인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그렇게 구축한 아이덴티티를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전략이다. 

- 147쪽 




기업의 전략 파트나 마케팅 파트 담당자가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책의 분량이나 내용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면서도 깊이있는 의견까지도 구할 수 있다. 





의미부여의 기술 - 8점
인터브랜드 지음/엔트리(메가북스)


**


인터넷서점에서 아래 이미지를 구했다. 책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이미지로 일목요연하게 나온 듯하지만, 이렇게 거창하지 않다. ㅡ_ㅡ; 더구나 책을 읽어나가는 것과 아래 이미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책은 아래 이미지와 달리 매우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이 방향으로 향한다. 그래서 도리어 읽을 만한 책이다. (그런데 왜 이 이미지를? 아, 그건 아래 순서가 목차다.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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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와 너무 깔끔한 정리네요 ! ㅎㅎㅎ 네이버 블로그가 아니라 이웃추가 못하는게 아쉬워요 ㅠㅠ 잘보고 갑니다!! 나중에 도움 구하고 싶을 정도로 감탄하구 가요 ㅎㅎ

    • ㅎㅎ 감사합니다. 하지만 밑의 이미지는 인터브랜드에서 만든 것이예요. ~ 문구는 멋지지만, 실제 내용이 문구만큼 대단하진 않아요. : )

  • 오! 의미부여의 기술이라는 책 저도 잘 읽었는데
    많은 인사이트와 의미를 부여해주더군요.
    이번에 인터브랜드 신간이 또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기대되요 ㅎㅎ



<<드래곤플라이 이펙트>>의 저자인 제니퍼 아커(Jennifer Aaker)와 앤디 스미스(Andy Smith)가 맥킨지쿼털리(Mckinsey Quarterly)와 인터뷰한 글을 읽었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왔는데,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번역에도 다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은 소셜미디어에 대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확산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스토리에 대한 내용이며, 그런 스토리가 소셜 미디어를 만나 그 강력한 효과를 가지게 된다고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인터뷰 중에 기억해둘만한 내용을 옮긴다. 



engagement = truly making people feel emotionally connected to helping you achieve your goals through storytelling, authenticity, and establishing a personal connection. 



Social-media engagement 

- tell a story 

- empathize with your audience

- emphasize authenticity

- match the media with the message




Good stories have three components: a strong beginning, a strong end, and a point of tension. ... a good story takes Y, the middle part of the story, and creates tension or conflict where the reader or the audience is drawn into the story, what's going to happen next. (Jennifer Aaker)


The story is the most important thing. You don't have to be famous to tell a good story. Where it really does come back to the storyteller is authenticity. People have to believe you. And you have to believe in the story yourself in order to be effective. (Andy Smith)


All four wings of the dragonfly act in concert. The first wing is focus. (...) The second wing is grabbing attention, making people look. (...)  The third wing is engagement, tell the story, which also has been important in the past. But how do you enable action on the part of employees and customers? That is very new to the social-media (Jennifer Aaker)




 Mckinsey Quarterly 원문 "The power of storytelling" 







드래곤플라이 이펙트

제니퍼 아커, 앤디 스미스저 | 김재연역 | 랜덤하우스 | 2011.04.12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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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Women Who Run With the Wolves 

클라리사 에스테스(지음), 손영미(옮김), 이루 















이 책을 꺼내 들었을 때, 나는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가 떠올랐다. 그녀는 현재 늑대 보호 운동을 하고 있다. 미모의 피아니스트와 늑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것은 우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라는 책을 통해 나는 여성과 늑대 사이의 공통점, 그리고 여성의 잃어버린 야성, 숨겨진 본성을 알게 되었으니, 엘렌 그리모가 늑대에게 끌렸던 것은 사소한 동정심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엘렌 그리모



시인이자 융 심리분석 전문가인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내가 최근에 읽은 책들 중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초판이 1992년이 나왔지만, 이미 여성 심리학에 있어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 책은, 여성 심리에 대한 신화적 분석이면서, 여성의 마음을 자극하고 여걸이라고 이름 붙여진 숨겨진 야성을 찾게 도와주며 전 세계의 신화, 민담, 설화 등 오래된 이야기들에서 여성 마음의 원형을 읽어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잠재력을 깨우친다. 그리고 저자는 여성의 모습을 늑대와 비교하면서, 잃어버린 야성을 찾기를 호소한다.  



건강한 늑대와 여성은 심리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예민하고, 장난스럽고, 희생정신이 강하다. 천성적으로 남들과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호기심이 강하며, 엄청난 힘과 지구력이 있다. 또 매우 직관적이고, 자식과 배우자 등 가족이 끔찍이도 아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할 뿐 아니라, 매우 씩씩하고 용감하다. 

- 저자 서문 중에서, 10쪽 



하지만 저자는 ‘여성의 잠재의식이 파괴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우리는 모두 야성을 원하지만 우리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이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는 그런 욕망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긴 머리카락으로 감추고 살아왔다. 그러나 여걸의 그림자는 밤낮으로 우리 뒤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가 무엇이든, 우리 뒤에 걸어오는 그림자는 분명 네 발 달린 짐승이다’라고 말한다. 


여걸(wild woman)에 대한 이해는 종교가 아니라 실천이고, 진정한 의미의 심리학이다. 여걸은 영혼 자체이고, 혹은 영혼에 대한 지식이다. 여걸이 없는 여성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나 내면의 리듬을 인식할 능력이 없고, 어떤 시커먼 손이 내면의 귀를 막아버린다. 그 결과 권태와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반쯤 마비된 상태로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 

- 17쪽 


원형으로서의 여걸은 인간에 대한 무수한 개념과 이미지와 특징을 말해주는,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할 엄청난 힘이다. 

- 48쪽 



책은 각 챕터마다 각기 다른 설화, 민담, 전설 등의 이야기들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숨겨진 내용을 담고 있다. 가령 책 초반에 나오는, ‘여자를 밝히는 거인, 푸른 수염 이야기’는 순진한 여성이 자주 겪게 되는 성장의 모험을 담고 있는가 하면, 책 후반의 ‘손 없는 아가씨의 파란만장한 모험’은 여성의 인내가 가지는 가치, 한 번 하강할 때마다 상실과 희생과 깨달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하는 야성의 재생을 보여준다. 이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현대 여성들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도와주며, 야성을 회복한 여성에 대한 은유이고 모자이크화인 셈이다. 그리고 독자 - 여성이라면 특히! - 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심리적 열쇠에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일과 삶 전반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그런 질문을 던진 여성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진짜 정체를 알아내는 늑대처럼 가장 깊고 어두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괴롭혀온 힘을 반대로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여성이 바로 여걸이다. 

- 88쪽





‘미운 오리 새끼’는 지역의 문화적 배경이나 이야기꾼의 입담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바뀌어 세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요점은 미운 오리 새끼가 야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야성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견뎌내는 힘이다. 야성적인 여성이 지닌 최고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지구력이다.

- 189쪽



가령 ‘미운 오리 새끼’는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 이야기는, 하지만 여성에 대한 풍부한 상징과 은유로 가득차 있었다. 이렇듯 이 책을 가득채우고 있는 이 이야기들이 가진 힘은 대단한 것이어서, 어떤 이야기는 며칠이 지나도록 머리 속을 빙빙 맴돌며 나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은유와 교훈은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요즘 사람들이 자주 읽게 되는 자기계발 서적들보다 도리어 더 현실적이며, 실천적이며, 감동적이었다.

(남성 독자인 나에게도 이 책은 충분한 독서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는데, 여성 독자가 읽는다면 그 가치는 배가 될 것이다)



몸매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여성이 자신을 숨기고 위장된 삶을 살게 된다. 

-213쪽 



저자는 자신 속에 숨겨진 여걸을 찾으라고 이야기하며, 그것은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어쩌면서 너무 교훈적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다소 식상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걸을 되찾고 싶거든 덫을 피하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도록 본능을 단련하고, 마음껏 뛰고, 소리치고, 원하는 것을 차지하라. 또 그것에 대해 모든 걸 알아내고, 눈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모든 걸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빨간 신을 신고 춤을 추라. 단, 그 빨간 신은 반드시 직접 만든 신발이어야 한다. 

- 250쪽 



몇 주에 걸쳐 이 책을 다 읽은 결론을 말하자면, 남성 독자에게는 이 책은 여성의 심리를 알게 해주는 부분적인 안내자이며(그러나 너무 재미있는), 여성 독자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이 책은 인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그 분류가 무색할 정도로 여성 독자들에게는 매우 실천적이며 호소력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외국의 어느 여성 독자는 'Woman's Bibl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시간만 버리기 일쑤인 자기계발서들 - 특히 여성독자들을 타겟으로 하는 - 을 읽는 것보다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충분한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더구나 내용마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P. 에스테스저 | 손영미역 | 이루 | 2013.09.28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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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집권 초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초기, 모든 사람들이 대통령을 비난했다. 전방위적 비판이 이루어졌다. 경제 상황부터 정치 상황까지 비판했다. 그리고 여당과 야당은 대통령 탄핵까지 결의하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되어있는 상황이었고 국회의원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탄핵까지 몰고 가게 된 것이다. 그 때, 대통령은 완전 동네 북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대통령을 비판하라고 하면, 조목조목, 한 두 시간은 쉽게 비판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다 보면, 어김없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노무현 대통령 집권 때보다 경제 상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상황이다. 소리 소문 없이 문 닫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거의 모든 기업들이 구조조정 중이다. 가게도 장사 안 되고 사람들도 주머니 사정이 안 좋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 세상이 무섭다.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지금 나라가 매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듯도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없다. 실은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표현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를 싶어도,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 표현을 알지 못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모든 언론과 미디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세웠다. 조선, 중앙, 동아 뿐만 아니라 방송에서도 떠들었으며, 대통령과 정부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리고 그 비판의 표현들은 사람들은 읽고 듣고 보았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비판할 수 있는 표현과 정보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것을 가진 채, 회사에서, 가정에서, 술집에서, 거리에서 서로 이야기 나누고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인터넷 여론은 찻 잔 속의 폭풍우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촛불 집회 이후 인터넷 속에서도 패배주의가 늘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한 황당 시추에이션이었지만, 결국 미네르바는 구속되었고, 얼마 전에는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같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실은 말을 하고 싶지만, 사실(fact)만 주어질 뿐, 그 사실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표현이나 문장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여론'이라고 일컬어지는 담론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나같은 이야, 책도 읽고 인터넷도 하고 심지어 외국 저널의 기사까지 가끔씩 읽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렇지 않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책을 읽지 않고, 읽는다고 하더라도 실용서나 소설 위주이지, 내가 요즘 탐독하고 있는 '달러 - 사악한 화폐의 탄생과 금융 몰락의 진실' 같은 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신문도 잘 읽지 않고 읽는다고 하더라도 '조중동'이나 '스포츠신문', 혹은 지하철 역 앞에서 나누어주는 무료 신문 정도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객관적인 사실만 전달받을 뿐이다. 그리고 도리어 이 나라가 (좀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돌아가고 있으며,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들에 대한 단어, 문장, 표현들만 익히는 것은 아닐까. 즉 현 단계의 나라 상황에 대한 일종의 변명에 가까운 단어, 문장, 표현들만 듣고 읽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사람들의 상황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신문이나 저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람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 표현들이 아니다. 더구나 한 두 번 노출된다고 해서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고 할 것이다. 실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신문이나 저널은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식인들을 위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지금 세상이 무섭다.

결국 대중은 무식하고 일군의 계몽주의자가 있어야 된다는 식의 귀결이 되지 않을까. 실은 이 귀결은 정말 싫다. 인터넷에는 온통 현 정부에 대한 비판글로 도배되지만, 이것은 어떤 사실에 대한 풍부한 단어, 표현, 문장들에 자주 노출된 일부 네티즌에게만 해당 되는 상황일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서로 자신만의 시각으로 판단내릴 수 있는 단어, 문장, 표현들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익힌 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매우 이상하고 낯설다. 어딘가 크게 잘못 되고 있다. 나는 그 잘못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세상이 무섭다. 정말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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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트라테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에게 정치참여의 기회를 주기때문에 정치의 질이 떨어진다. 정치의 질이 떨어지면 사회 전체의 질이 떨어진다. 뭐 이 말에 동의 하지 않지만, 전 정치의 질이 떨어지면 사회 전체의 질이 떨어진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민중이 무지해서 정치 수준이 낮은 것도 물론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정치가 개판이라 민중을 갈수록 무지몽매한 무색무취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 입니다. 말씀하신 조중동이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죠.

    해결길이 있다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사실 희망이 안보이죠.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다고 포기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짜 절망이 아니겠습니까.

    • 다만 사람들이 불과 5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입니다. 그렇게 욕을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욕을 하지 않더군요. 특히 나이 드신 분들 중에서.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들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뭔가 하기는 해야 할텐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크~.




일렬로 늘어선 아파트들 위로 나즈막하게 몰려든 회색 빛 구름들이, 스스로의 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려는 찰라, 무슨 까닭이었을까. 이름지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생긴 구름 뭉치들이 네모반듯한 벽돌 모양으로 쪼개지더니, 아파트 단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실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한 구름의 무게가 늙어가면서 허공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다는 것쯤은 사랑에 빠지지 않은 이들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네모난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십년동안 클럽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구입한 상아 건반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네모', '네모','네모'라고 중얼거린다. 실은 네모난 건 너무 많다. 빨리 달려야만 지나갈 수 있다는 고속도로의 이정표들도 네모이고 그 곳을 지나가는 차들의 번호판도 네모이고 운전자가 가진 운전면허증도, 신분증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진 그들의 영혼마저도 네모일 지도 모른다.

실은 피아니스트가 문제였다. 네모난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네모난 의자에 앉아 네모난 건반응 두드렸을 때, 네모난 것들의 세계가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무런 향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율동도 없는 세계에 네모난 소리들이 뛰쳐나오게 되었을 때, 세상은 변신을 준비한다.

익히 알려져 있는 잠자의 변신이 20세기적 주제라면, 생물학의 시대이면서 생명에 대해 경멸했던 이들이 지배했던 시대의, 매우 시의적절한 주제였다. 이는 카프카 선생의 식습관에서 유래했다. 이를 선생의 여러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연관시킨다면, 매우 대단한 착오를 저지르는 일이다.

식습관 이야기가 나와 잠시 덧붙이자면, 네모난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의 입모양도 네모났다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존재, 혹은 한 예술가의 명확한 세계 인식은 입모양과 식습관에서 유래한다. 또는 기인한다.

실은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 병원에 갔더니, 심장이 네모랗게 변하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명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말투와 손짓과 눈빛과 사랑의 행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러 번 티브이뉴스와 잡지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설마 나에게 걸릴 것이라곤 미처 알지 못했다. 동그렇게 변하는 병은 없나요? 라고 의사에게 물어보았지만, 손톱을 네모랗게 성형수술을 한 여의사는, 난 당신의 팬이예요라면서 다리를 벌려보였다.

난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녀는 다리를 오무렸다. 나도 팔을 오므렸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다리를 벌렸다. 난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녀는 다리를 오무렸다. 나도 팔을 오므렸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다리를 벌렸다. 난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녀는 다리를 오무렸다. 나도 팔을 오므렸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다리를 벌렸다. 난 팔을 오므린 채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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