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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구토 - 10점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문예출판사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이휘영(옮김), 삼성출판사, 1982년(현재 구할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이 좋을 듯싶다.) 




그냥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다. 이휘영 교수의 번역으로 수십 년 전 출판된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다. 헌책방에서 외국 문학들만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적이 있었고, 그 때 사두었던 낡은 책이다. 요즘에도 좋은 소설들이 번역되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단지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뿐. 그래서 과거에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소설들도 꽤 존재한다.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이다. 실은 앙리 베르그송이 아니었다면, 그는 최고가 되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소설가적 문장 구사와 궁지에 몰린 철학의 돌파구로서의 새로운 단어 만들기에 여념 없었던 사상가들의 책보다는 도리어 우리 존재와 일상의 무의미함, 고독,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자유를 이야기한 사르트르가, 어쩌면 우리 미래를 꾸리는 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구분되는 이 작품 ‘구토’는, 글쎄 읽기를 권하기 망설여지는 작품이긴 하다.

나는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돌아보았다. 현재 뿐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현재 속에 들어박힌 가볍고 단단한 가구며, 탁자며, 침대며, 거울이 달린 양복장 - 그리고 나 자신. 현재의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 있었다. 존재하는 것 그것이 현재였다. 그리고 그 현재가 아닌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나의 과거가 나에게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중략)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것일 뿐이다. 그 <뒤>에는 ... ... 아무 것도 없다.
- 128쪽



실은 자신을 ‘여분의 존재’라고 여기는 주인공 로깡땡을 소개시켜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데카르트를 거부하고 존재를 부정한다. 더 정확히 말해 ‘존재의 의미 자체’를 부정한다. 그건 그냥 ‘없는 것’다. 아니면 ‘없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견딜 수 없는 <구토>를 느낀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왜 나는 생각하는가? 나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존재한다. 생각한다. 나는 ... ... 왜냐하면 ... ... 으윽! 나는 도망친다.
- 133쪽



 

존재는 물렁물렁하다. (중략) 존재는 떨어진 전락이다. (중략) 존재는 불완전한 것이다.
- 134쪽



 

존재는 기억이 없는 것들, 사라져 버린 것들이며, 존재는 아무 것도 - 추억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 172쪽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의 관찰과 사색이 대부분이고, 사건도 거의 없다.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 과거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안니의 역할도 제한적이다(아무런 영향력이 없고 소설의 중요한 구성도 아닌 셈이다).

결국 이 작품은 사르트르의 실존적 철학을 향한 일종의 관문이라고 할까. 그 정도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 작품을 소설로 인정하는 순간,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관찰과 사색을 통해 끊임없는 형이상학적 탐구를 계속하는 실험적 작품이 된다. 소설적 구성이 복잡하거나 난해한 것도 아니고, 일기를 통한 서술과 관찰과 사색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적 내용 또한 잘 어울리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꽤 드물다. 더구나 존재와 자유에 대한 탐구라니.


나는 자유롭다.나는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내가 애써 찾아낸 모든 이유들은 사라지고 다른 이유는 이미 생각할 수가 없다. (중략) 나는 마당과 마당 사이의 길 속에서 고독하다. 고독과 자유, 그러나 이 자유는 어딘지 죽음과 비슷하다.
- 200쪽



사르트르는 문학에서 시작해 철학과 실천으로 향했지만, 그의 프랑스 철학계 후배들은 실천적 철학에서 시작해 문학적 글쓰기와 예술적 가상(또는 개념)에 빠져들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20세기 전반부와 후반부는 이렇게 나누어지는데, 이는 철학 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다른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독서의 경험을 선물할 테지만, 일반 독자에게 추천하기에는 이 소설은 꽤나 지루하거나 너무 심각할테니, 고전이라고 무작정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프랑스 갈리마르사에서 나온 사르트르의 '구토' 표지. 사르트르는 1936년 32세의 나이로 '구토' 원고를 갈리마르사로 보내 출판을 의뢰하지만, 거절당한다. 그 다음해 갈리마르사가 출판하기로 결정하고 1938년에 출판되어, 무명의 사르트르는 일약 프랑스 문단의 신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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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현대 사회 - 10점
찰스 테일러 지음, 송영배 옮김/이학사



현대사회, 특히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를 매우 충실하면서 정직하게 담아내고 있는 책.
하지만 찰스 테일러에게서도 실망스러운 한 가지. 개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에 우린 너무 깊이 개인주의 속으로 들어와버렸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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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짧은 글은 몇 년 전에 노트해 둔 글이다. 이것만 올리면 성의 없어 보여 다시 몇 줄 더 넣었으나, 더 성의 없어 보였다. 그래서 기억이 나는대로 정리해본다.

가라타진 고진의 <<탐구>> 첫 머리에 '독아론(Solipsism)'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쉽게 말해서 '나만 있고 외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데카르트와 같은 대륙의 합리론자들은 나만 있는 세계에서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외부 세계를 정립해나간다면, 영국의 경험론에서는 외부 세계는 감각의 일부이며, 그 감각은 신뢰할 수 있는가가 첨예한 문제로 대두된다. 그래서 몇몇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오직 나만 남고, 외부 세계란 내 감각이 만드는 어떤 것으로 귀결된다.

현대에서 이 문제는 '자기반영성'이나 '자기 진실성'으로 이야기된다. 끊임없는 외부 세계와의 대화 속에서, 중국에는 상처만 입게 되는 현대인들이 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에게만 솔직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게 되는 것이다.

찰스 테일러는 현대인의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 태도를 비교적 차분하게, 하지만 설득력 있고 매우 감동적으로 서술해내고 있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각수의 꿈'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머리 속에 남게되었을 때, 그것이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찰스 테일러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것이 가지는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소설은 모더니즘 소설들이 가지는 일련의 '자기 반영적 소설'의 맨 뒤에, 그것도 대중적 양식을 가지고 등장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란, 그만큼 불안하고 각각의 개인들은 외부 세계와 적대시하며 자기 속으로 침잠해들어가 결국에는 모나드처럼 웅크리게 될 것이라는 비극적인 전망을 나오게 된다. 이 비극적인 전망에 대한 극복이 언급되고 있으나, 감동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현대 문명과 그 문명 속의 개인들이 가지는 비극성을 매우 정확하게 관찰하고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탁월한 저서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실제로 처한 일상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사상의 세계 속에서 트렌디한 주제와 소재를 쫓아, 흥미로운 언어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일군의 철학자들의 책 대신 찰스 테일러의 책은 매우 호소력이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킨 듯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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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 10점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김효정 옮김/문학과지성사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Uno, nessuno e centomila>>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926.(김효정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9)





살아가는 게 버겁다. 소박하고 순수하던 고대의 풍습은 시간의 바람 속에서 먼지가 되고 훗날 그 먼지들을 모아 새로운 성(城)을 쌓지만 그 성은 우리가 지어,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당하는 곳으로 남겨진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선량한 우리, 아벨에게서 왔지만 그가 가졌던 양들은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고 그 몇 천년 동안 푸른 언덕이며 깊은 호수며 그 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와 물고기들은 몇 미터의 높이로 쌓인 먼지들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아,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모스카르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그 거울 속에 누군가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아닌, 낯선 이방인. '나를 보여지게 할 수는 있지만 나를 볼 수 없는' 어떤 이방인.

그 순간 책을 읽던 나도 책을 덮고 거울 앞으로 간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그런데 과연 거울 속의 나는 나일까. 나란 도대체 무얼까? 나, I, Je, 我, ... ...

진지한 학문과 예술은 참된 어떤 것을 찾아가면서 거짓되고 허상인 것들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러다가, 아뿔싸! 거짓과 허상의 중심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현대인에게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제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없다. 나란 없는 자(nobody).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은 아주 사소한 계기.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서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은 무엇이고 ... ... 이런 자질구레하고 매우 일상적이지만, 때때로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있어 극히 치명적인 질문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주제인 '주체의 분열'이란 실제로는 모더니즘의 것이다. 그건 현대(Modern)의 학문과 예술이 19세기말부터 의문시해온 어떤 근본적인 반성과 관련되어 있다. 모스카르다의 정신 나간 듯한 말투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치명적인 자화상과 마주한다. 나를 찾기 위해서 방황하고 노력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고립당하는 우리 자신들과.

'주체의 분열'이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모더니즘적 방식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분열 이후'다.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 무수한 위험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가능할까?

"그것은 묘비명, 즉 이름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죽은 자들에게 편리한 것이다.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은 이름을 모른다. 이 나무는 새로 난 나뭇잎이 흔들릴 때 호흡한다. 나는 나무다. 나무이자 구름이다. 내일은 책이나 바람이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읽는 책. 내가 마시는 바람이 된다. 그 모든 것이 외부에서 방랑한다."(240쪽)

덧붙임 : 자신의 삶을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 의지하기 말기를 바란다. 그들의 뛰어난 재능은 우리에게 어떤 실마리를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그들은 실패한 자들임을.








Comment +2

  • 2018.01.12 23:59 신고

    혹시 책 가지고 계신가요?

    • 가지고 있습니다. 피란델로는 최고의 작가입니다. 국내 독자에겐 희곡 작가로 더 알려져있지만요.

      이 소설의 영어번역본은 ebook 파일로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국역본은 도서관에서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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