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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CANDID 레이블. 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레이블이 될 것이다. 집에 몇 장 있는데, 어디 꽂혀있는지, 나는 알 턱 없고. 결국 손이 가는 건, 역시 잡지 부록으로 나온 BEST COLLECTION이다. 레코드포럼, 매달 나오는 대로 사두었던 잡지, 그 잡지의 부록은 클래식 음반 1장, 재즈 음반 1장. 제법 좋았는데. 


유튜브가 좋아질 수록 음반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하기 힘들던 시절의 아련함은, 우연히 구하고 싶은 음반을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아는 이들을 불러모아 맥주 한 잔을 하며 낡은 영국제 앰프와 JBL 스피커로 밤새 음악을 듣던 시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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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내던 <<세계의 문학>>이 지난 겨울호로 '발행을 중단'했다, 혹은 폐간했다. 문학 잡지의 사소한 발행 중단이라고 하기엔 <<세계의 문학>>이라는 잡지가 가졌던 위상이나 내가 즐겨보던 잡지엿던 터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난 다음, 처음 샀던 문학잡지이기도 했던 <<세계의 문학>>. 그 해 박일문이 '하루키 패러디'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 나는 <<세계의 문학>>에 실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었다.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사회>>와 달리, 좀 더 문학주의적이라고 할까, 이론주의적이라고 할까. 그 때 내가 받았던 인상은 그랬다. 그동안 많은 여러 문학 잡지들이 발행을 중단했다. <<문학정신>>, <<외국문학>>, <<상상>> 등등. 세상이 변하면 문학도 변하고, 문학잡지도 변해야 한다. 가끔 들리는 공공 도서관에 비치된 문학잡지들을 보며, 누가 저 잡지들을 읽을까 언제나 궁금하다. 결국 학생이나 관계자, 또는 나같은 이들이 읽을테지만. (나 같은 이들이라, ... 적고 보니,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그래서 마지막 호를 샀다. 산 지 벌써 몇 달이 지났건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채, 이 글이나 적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소셜 미디어와 사람들 간의 소통 증가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소셜 미디어같은 것들의 등장과 활성화로 사람들이 자주 대화하고 소통이 늘어났다고 여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반대다. 


우리는 대화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서로 얼마나 닮았는가를,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그러나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향해 갈 뿐, 서로의 다른 점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다른 점들이 부각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차단한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비슷한 사람들을 서로 끌어당기고 결국 우리는 비슷한 끼리끼리 모여 섬을 이룬다. 


그렇게 문학도, 문학잡지도 섬이 된 것이 아닐까. 한 때 문학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대화할 기회 조차 없었던 이들을 이어주던 다리가 되었다면, 지금은 스스로 고립되어가는 섬이 되고 있다. 


<<세계의 문학>>이 발행을 중단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의 존재나 위상이 예전만 못하고 잡지도 그러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문학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가야하는 건 아닐까.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보면서 그녀의 수상보다 저들은 번역문학도 자신들의 문학 속으로 끌어당기는구나하며 부러웠다. 우리에게는 번역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비평 따윈 없다. 그리고 한국의 문학이 그것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가에 대해 돌아보지도 않는다.


제발트의 소설을 읽고 난 다음, 다큐멘터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 스스로 다큐라고 이야기했으니까. 그러다가 진짜 다큐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문학은 타자를 받아들이며 성장해간다. 아니, 예술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낯선 것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간다. <<세계의 문학>> 마지막 호 편집자 서문에 알레시예비치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세계에 대한 나의 비전, 즉 내 귀가 어떻게 삶을 듣고 또 내 눈이 어떻게 삶을 보는가를 전달하는 데 가장 잘 맞는 장르를 계속 찾아왔다.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본 후 결국 나는 인간의 목소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장르를 선택했다. 실제의 사람들은 내 책 속에서 전쟁이나 체르노빌 재난, 그리고 거대 제국의 몰락 등 시대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역사, 그들 공통의 역사에 대해 구술로써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들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말로 옮기고 있다. 오늘날처럼 사람과 세계가 매우 다면적이고 다양해진 상황에서 예술 속 다큐멘트는 점점 흥미로워지는 것에 반해, 그와 같은 예술은 종종 무기력해졌다. 다큐멘트는 그것이 원래의 상태를 포착하고 간직할 때의 리얼리티에 가깝게 우리를 데려다준다. 그 다큐멘트 자료들로 20년간 작업을 하고 그것으로 다섯 권의 책을 쓰고 난 후, 나는 예술이 사람들에 관해 많은 것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한다. 

- 영원한 인간을 찾아서 A Search for Eternal Man, 알렉시예비치. 

(http://alexievich.info/indexEN.html)



내가 형식의 문제나 작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알레시예비치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 살고 구체적인 사건을 겪는 구체적인 사람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인간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영원의 떨림을. 사람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는 그것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역,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중에서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 의미있는 문학인가 판단하기 위해 범주와 장르를 따르는 것은 좋은 문학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즉 그 목소리와 내용으로, 그 영혼과 긴박함으로, 그 진실과 그리고 무엇보다 지혜로서 우리의 세계와 존재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확장하는 글쓰기로써 삶과 죽음에 반응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필립 구레비치Philip Gourevitch, 논픽션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Nonfiction deserves a Nobel, <<Newyorker>> 2014. 10. 9 



<<세계의 문학>> 창간호다. 1976년에 태어난 이들도 이젠 40대인가.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세상이 변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호메로스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음을, 플라톤이 저 이데아의 세계를 이야기했던 그 비극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글이 두서없고 뜬금없다. 문학이라, ... 참 오랜만에 생각해보게 된다.  



출처: http://myungworry.khan.kr/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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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 조너선 콧(지음), 김선형(옮김), 마음산책 




1978년 '롤링스톤'지와의 인터뷰를 그대로 옮긴 책이다. 약 12시간에 걸친 인터뷰 중 일부만 '롤링스톤'에 실렸고 지난 2013년에서야 인터뷰 전문이 이 책을 통해 공개되었다. 책의 원제는 <<Susan Sontag: The Complete Rolling Stone Interview>>.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팬들에게야 반가운 책이 되겠지만, 이 책은 매우 밀도가 떨어진다. 도리어 인터뷰를 하는 '롤링스톤'의 조너선 콧이 두드러져 보일 정도다. 


이 책에 대한 가디언의 기사 댓글에서처럼, 그녀는 다소 과대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다. 수전 손택은 감각적인 평론가다(이론가나 철학자가 아니라). 하지만 그 감각이란 깊이 있는 사색이나 통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재료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에 있다. 그녀의 평론들이 한결같이 흥미로운데, 그것은 정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접근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을 알고 싶다면, 이 책 말고 다른 책들, <<은유로서의 질병>>이나 <<해석에 반대한다>>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그리고 이 책들을 읽고 수전 손택에게 흥미를 느낀 이들에게도 이 책, <<수전 손택의 말>>을 권하진 않겠다. 조금 읽다가 건성으로 읽고 말았다. 잡지의 특성 탓일지도 모르겠다.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전 손택의 여러 저서들과 신변 잡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다양한 문학, 영화, 예술 작품들이 언급되지만, 정말 '언급'만 될 뿐이다. 


그리고 1978년의 인터뷰인지라, 지금 읽기엔 흥미롭지도 않다. 도리어 수전 손택의 한계를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알게 된다고 할까. 다시 말해 그녀는 시대를 가로지르기보다는 그 당시의 문화예술 트렌드를 읽고 정리하고 해석하는 평론가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할까. 도대체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뭔가 시사적인 내용을 찾기 어려운 인터뷰라니... 실망스러웠다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수전 손택의 말 - 6점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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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ntemporary Art를 '동시대 미술'로 옮겨야 하나? 이전에는 현대 미술로 옮겼는데, 이 잡지에 실린 정형탁 편집장의 글을 읽고 난 다음, 고민에 빠졌다. 


아서 단토A.Danto가 정의한 '예술의 종말' 이후 생긴 '컨템포러리'는 이제 더 이상 미술작품은 어떠해야 한다는 특수한 존재방식에 방점을 찍은 거다. 예술이 미학의 집으로 편입되었을 때 이미 이런 현상은 예견되었는지 모르겠다. 팝아트의 등장으로 미술의 고유한 가치를 찾으려는 목표는 허망한 것이 되었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노력들이 생겨났다. (정형탁, '자살, 자본의 메타모프로시스' 중에서, 65쪽) 


(솔직히 정이 가지 않는) 미술 이론가 아서 단토를 인용하며, 그는 컨템포러리의 의미를 구한다. 굳이 저토록 진지해질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다시 이야기해서 동시대 미술의 예술의 진지함, 심각함, 이론에의 집중을 벗어나고자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과 반대로 평론가들은 더 진지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은 '컨템포러리'의 의미를 구하고 있고, 도리어 '모든 게 예술이고 모두가 예술가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는가? 현실은 여전히 공고하게 시스템의 언어 속에서 작동한다'고 지적하며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바 '특수한 존재방식'이 있음에 저항해야 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긴 하다. 


그가 인용하는 알랭 바디우는 '다문화주의란, "화폐만을 통해 보편화되는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문화주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결국 돈이 문제인가? 


2.

이 잡지 - Contemporary Art Journal 2011년 Vol.7'도 거의 2년만에 읽었다. 올해 읽은 책 수를 세어보니 잡지를 포함해도 20권이 되지 않았다. 일상이 바빠지니, 독서나 전시 관람에 쏟는 시간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그런데 이 줄어드는 시간만큼 내 관심사는 더 넓어지니, 이를 어쩌면 좋으랴. 


3. 

근데 사실 '스칼라 마인드Scholar mind'와 '크리틱 마인드Critic mind'는 구별된다고 보거든요. 스칼라 마인드는 가치 중립이거든요. 크리틱 마인드가 되려면 어떤 것을 그래도 선호해야 됩니다.자기가 보는 전형이 있어야 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그것 때문에 많이 고민했어요. 그 당시에도 고민했고. 지금에서야 어떠냐 하면은 둘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김복영, 대담 중에서, 15쪽 


4.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한국 사회에서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외부의 충격이 한국 사람들이 견디어 내기 힘들만큼 크거나, 아니면 외부의 충격이 크지는 않지만 한국 사람들의 내부가 취약하거나 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자살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 역시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외부의 충격이 점점 더 강해지거나, 한국 사람들의 내부가 점점 더 취약하거나 이다. 

- 이홍균, '자살의 사회적 원인' 중에서, 41쪽 


5. 

이제는 화가도 필요 없다. 작가도 필요 없다. 음악가도 필요 없다. 조각가도 필요 없다. 종교도 필요 없다. 공화당도 필요없다. 왕당파도 필요 없다. 제국주의도 필요 없다. 무정부주의자도 필요 없다. 사회주의자도 필요 없다. 볼셰비키도 필요 없다. 정치가도 필요 없다. 프롤레타리아도 필요 없다. 민주주의자도 필요 없다. 군대도 필요 없다. 경찰도 필요 없다. 민족도 필요 없다. 이 모든 천치들은 필요 없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아무 것도. 아무 것도. 그리하여 새로움이라는 것도 결국엔, 지금 우리가 원치 않는 그 모든 것들, 똑같은 것으로 변하겠지만, 우리는 다만 그것이 덜 썩어 빠진 것이 되기를 바라며, 너무 빨리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1920년 2월 5일, 다다 제 2선언. (정형탁의 글 중에서 재인용, 66쪽) 


6. 

1917년 뒤샹이 변기를 출품한 앙데팡당전에 강사로 초빙받은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아르튀르 크라방Arthur Cravant은 예술적 제스처로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 정형탁, '자살, 자본의 메타모르포시스' 중에서, 67쪽 


7.

장 - 루이 뿌아트뱅의 '자살: 불가능한 매뉴얼'이라는 아티클은 주의 깊게 읽어볼만 했으나, 한편으로는 끔찍하기도 했다. 자살을 직접적으로 예술 작품의 소재나 주제, 더 나아가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다룬 여러 사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잡지야 전문가들이 읽을 터이지만, 이 공개된 공간에서 인용하기에는 끔찍하기만 하다. 몇 사례는 너무 끔찍한 탓에, 크리스 버든 Chris Burden의 초기 작품인 Shoot은 애교스러울 정도이다. 






이와 같은 자살에 관한 접근 중 가장 의미 있는 예시들은 60년대 말 비엔나 출신의 2명의 예술가, 귄터 브루스Gunter Brus와 루돌프 슈바르츠코글러Rudolph Schwarzkogler에 의해 주도된 활동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당시 슈바르츠코글러는 공개적으로 퍼포먼스를 펼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진 시리즈를 위해서만 퍼포먼스를 한 유일한 아티스트였다. (...) 실제로 그는 29살의 나이에 창문에서 뛰어내림으로서 다른 인생, 앙토닌 아르토Antonin Artaud가 주목한 '익명의 삶과 우주에 연결된 신체', 그리고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명명한 '기관 없는 신체le corps sans organe'에 대한 사색의 행위와 통찰을 끝내버렸다. 

- 82쪽


자살은 도덕이나 재현과 관련된 존재의 경계만을 밝히는 미학의 주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내밀한 결합, 내면과 심리, 상상 속에 판타즘과 실천 가능한 행동의 주제가 되었다. 

- 82쪽


자살을 예술과 삶의 영역에서 다룰 때 야기되는 한계는 항상 같은 것이다. : 우리는 자살을 보여줄 수 없고, 단지 이것에 대한 준비와 결과만을 보여줄 수 있다. 아직 어떤 작가도 자신의 자살을 연출하거나 사진, 비디오로 촬영하지는 않았다. 

- 83쪽 



9. 

그 외 읽을만한 글이 많았다. 이제 작업을 하는 이들과 술 한 잔 할 여유마저도 사라져 버렸지만, 가끔 읽는 이런 잡지도 사소한 위안을 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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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들은 자살조차도 예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자살할만큼 힘들어 하는 사람과 자살로 인해 고통받는 남은 사람들을 보면 어디까지가 한계인가하는 질문이 생길 것 같아요. 아니면 그 질문조차 의미없는 것일까요?

    • 위의 사례로 등장한 것은 자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지점으로 몰린 우리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어 심리적 해소를 기대하고 있다고 할까.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살에 이르는 어떤 감정이나 태도에 대해 위로하고 치유하려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살에 몰린 사람들을 위한 예술 참여 치료가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할 것 같고요. ... 뭐랄까, ... 위 내용과는 무관한 것이지만, 저는 한국 사회,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자살로 몰고 가는 것같아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자신의 가족을 채찍질하고 ... 안 되면 남 탓, 사회 탓을 하고는 결국 극단적인 시도를 하는 ... 뭔가 나라 전체적으로 잘못되어 있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요즘 자주 하게 됩니다. ㅜㅜ;;





회사에서 정기구독해서 읽고 있는 동아비즈니스리뷰 82호에 흥미로운 인터뷰가 실렸다. 영국의 종이잡지 모노클(Monocle)의 대표이자 편집장인 타일러 브륄레와의 대담. 

브륄레는 이렇게 말한다.


“모노클은 성장하는 프린트 제품(print product)이다. 우리는 저널리즘에 투자하고, 시장에 도전(challenge market)한다” - 타일러 브륄레



잡지, 아니 종이 콘텐츠 시장의 거대한 흐름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향해가는 - 을 거슬러는 듯한 그의 인터뷰는 디지털적 삶 속에서 아날로그적 취향을 가진 나를 자극했다. 활자는 종이로 읽어야 제 맛이라고 믿는 나로선 타일러 브륄레의 인터뷰을 읽는 내내, '맞아, 맞아, 이래야 해' 라며 공감했다. 


 

“생동감 있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디지털과 싸워 이기려면, 종이 매체를 통한 경험(print experience)을 선사해야 한다. 즉 넘겨읽는 손맛이 느껴지고(tactible), 재미있고(exciting),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collectible) 한다.” - 타일러 브륄레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종이 매체와 디지털 매체의 대립각을 세우고, 종이 매체는 죽고 디지털 매체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덜 떨어진 디지털주의자와 논쟁을 벌일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면 종이 매체가 주는 경험과 디지털 매체가 주는 경험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종이 매체가 좋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 매체는 공간적 존재다.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또한 그것은 시간 속의 매체이다. 세월이 지나간다는 것을 손 때 묻은 페이지와 구겨진 종이, 그리고 그 특유의 종이 썩는 냄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디지털 매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며, 가질려고 하지도 않을 속성이다.

종이 매체는 디지털 매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속성,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다른 매체다. 마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소설과 영화를 경쟁 구도로 파악하고 소설의 죽음을 이야기했던 덜 떨어진 문학 평론가들처럼 되지 말자.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도 이들의 덜 떨어진 견해로 인해 한국 문학은 최소 10년 이상 퇴보했다는 이상한 편견에 휩싸여 있다.) 

결국 디지털 매체는 접근 용이성과 생산 용이성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 넘쳐나는 자극적이고 쓰레기 같은 콘텐츠들 속에서 스스로의 방향을 잃지 않을까. 디지털 매체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면, 매우 신중해져야만 할 것이다. 디지털 매체로 전환한다고 해서 잡지 생산 비용이 눈에 띌 정도로 절감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콘텐츠 생산에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고 디지털 매체로 전환하는 경우, 디지털 매체에 맞는 또다른 방식의 인터페이스(UI) 개발에 예상치 못한 금액이 나가게 될 것이다. 결국 종이냐, 디지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잡지냐의 문제다.

여튼, 모노클의 타일러 브륄레의 인터뷰를 읽고 모노클을 주문했다. 그리고 어제 주문한 모노클(Monocle) 10월호가 오늘 아침에 왔다.


 

“양질의 퀄리티로 사람들이 수집할 만한(collectible) 매거진을 펴내면 사람들은 그 매거진을 집어들 것”
- 타일러 브륄레


대학 시절 잡지를 만들었고, 얼마 전에도 잡지를 만들었던 나는 아직도 잡지 욕심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에 잡지 고민을 심각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 필진들을 모을 수 있는 단계까지 갔으나, 역시 생산비는 ...

그렇다면 모노클 10월호는 나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흥미롭다.





잡지를 펼치면 위와 같다. 저 빽빽한 활자들을 보라. 마치 1980년대 잡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런 잡지가 한국에도 있었다. '샘이 깊은 물'... 하지만, 지금은 나오지 않고...

모노클 10월호. 정기구독 신청을 하기 전에 미리 한 권만 주문했다. 안 그래도 읽을 페이지들이 쌓여있는데, 이 잡지까지 들어오면 직장 생활 이 외의 나머지 시간은 읽는 데에만 보내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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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주 흐름이 있으면 그 흐름을 거스르는 역트렌드가 등장하는 것 같아요. 물론 라디오나 tv가 나올 때부터 종이책에 대한 종말론은 계속되어왔지만, 만질 수 있고, 소장할 수 있는 정제된 것이라면 종이잡지만큼 좋은 미디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디지털잡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두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은 있습니다만. ^^

    • 종이잡지가 좋죠. ~ ^^ iPad로 보는 잡지도 좋아요. 대신 종이를 버리고 디지털로 변환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여기는 디지털주의자들에게 모노클은 무척 흥미로운 잡지인 것같아요. 여튼 재미있는 잡지입니다. 모노클 - 글로벌 댄디 잡지입니다. ㅎㅎ

  • CD를 지나 SACD까지 그리고 바로 다운로드해서 음원을 구입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LP를 즐기고 또 구준히 LP를 생산해내는 것을 보면 종이책이나 종이잡지가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모노클 흥미로운 잡지네요. 아마존에 찾아보니 없네요. 회사에서 직접 구매해야하나 봅니다.

  • 그레이트 2011.11.16 20:13 신고

    파운드라는잡지가있어뇨


이제 내년이면 내 나이도 마흔이니, 중년의 시작이다. 여러 번의 도전, 그리고 실패, 새로운 영역을 향한 모험으로, 다들 평온한 직장 생활로 보내는 30대를 질풍노도와 같이 보내고 이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 기여해야 될 시간이라 여기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험했다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그 제약 조건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만 늘고 이것도 내가 못하는 거구나 하는 자괴감만 늘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회사 업무에,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글이라면 빠짐없이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으니…



그런데 얼마 전에 읽은 이 잡지, ‘IGM Business Review’,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내용이 좋다. 계간으로 발행되는 이 잡지는 IGM 세계경영연구원에서 발간한 것으로, 잡지 치고 다소 비싼 가격(권 당 25,000원)에 비슷한 잡지(동아비즈니스리뷰)를 이미 정기 구독하여 읽는 것이 있어, 서점에서 잠시 뒤져볼 뿐, 구입하여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 권 사서 읽었고, 이렇게 리뷰까지 올리게 된 것이다.

이번 봄호의 특집은 ‘죽어있는 데이터를 돈으로 바꿔라’이다. 최근 이슈가 되는 Big Data에 대한 최근 동향과 경영 시사점에 대한 글들이다. 비즈니스 Data에 대한 중요성은 IT의 발달과 함께 끊임없이 이야기되어 온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Data 수집에 포커스가 맞추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Data 수집에 중심을 둔 CRM으로 진화하였지만, Data 수집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이제 Data 수집에 대해 그 누구도 흥분하여 말하지 않는다. 이제는 기업 내의 수집된 Data는 넘쳐나기 때문이다. 도리어 수집된 Data를 어떻게 분석하고 가치 있는 정보로 만들고, 이를 실제 경영과 비즈니스 현장에 어떻게 반영하고 실행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Data는 일반적인 수준의 기업 비즈니스 Data를 벗어나, 도대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대한 데이터를 의미한다.

기존 자연언어 분석과 문법에 의한 번역은 비슷한 어족끼리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한국어와 영어처럼 상이한 언어의 번역에서는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초 IBM은 아예 인간이 번역한 문서를 통계적으로 비교해 의미가 비슷한 문장과 어구를 대응해 번역 결과를 내는 방법을 시도한다. IBM은 여기에 영어와 프랑스어로 함께 작성되는 캐나다 의회의 공문 수백만 장을 이용해 이 서비스를 시도했다. 그러나 수백만 장으로는 유의한 번역이 불가능했다. 반면 2000년대 들어 구글은 유럽연합(EU)에서 유럽 20여 개 언어로 함께 작성되는 공문과 각종 번역 작품에서 추출한 수십억 건의 문서를 활용해 이를 다시 시도했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이 성공적인 번역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빅 데이터에 따라 전혀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 채승병(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지금 기업이 ‘빅 데이터’를 챙겨야 하는 5가지 이유, 24쪽



구글의 번역 서비스 탄생 배경에는 ‘빅 데이터’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빅 데이터에 대한 접근, 분석, 활용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Data 분석과 활용에 기반한 경영을 분석 경영Business Analytics이라고 한다.

분석 경영 프로세스 3단계
  1. 데이터 수집과 분석
  2. 데이터의 정보화
  3. 실행 및 검증과 개선
- 김지유(IGM 주임연구원), 괜히 카지노 1위가 아니다 - 하라스의 데이터 경영, 28쪽



분석 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Data의 수집과 분석이다. 분석 경영을 하기 위해 기업 내에 수집된 Data를 분석해보면, 의외로 필요없는 Data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은 구체적으로 어떤 Data가 어떻게 필요한지에 대한 정의 없이 무차별적으로 수집된 Data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집된 Data들이다 보니, 두 번째 단계인 Data의 정보화까지도 나가지 못하기 일쑤다. 따라서 많은 Data가 아니더라도 작지만 구체적인 Data 수집, 즉 목적을 가지고 Data 수집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Data를 가지고 분석하여 경영 시사점이 있는 정보로 가공하여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에 도입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분석 경영 전문가인 토머스 데이븐포터(국내에는 ‘관심의 경제학’이라는 저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은 분석 경영에 대한 주저, ‘Competing on Analytics’, ‘Analytics at work’를 가지고 있다)의 “리더가 직접 챙겨야 할 분석 경영 5계명”는 새겨 들을만 하다.

1. 데이터에 왜곡이 없도록 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하라. (Accessible High Quality Data)
2. 중앙으로 통합되지 않은 데이터는 쓸모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Enterprise Oritentation)
3. 리더의 분석적 역량을 먼저 높여라. (Analytical Leadership)
4. 막연하게 ‘분석 경영하자’ 구호는 No! 구체적인 과제 해결을 목표로 하라. (Think Big, start in the middle)
5. 최고의 분석가 군단을 만들어 최고로 대우하라 (Care of Analysts)
- 정문원(IGM 객원연구원), 리더가 챙겨야 할 분석 경영 5계명’, 34쪽 ~ 35쪽





‘청소 경영’이라는 기사도 눈길을 끈다.

“부자의 책상과 빈자의 책상을 보라. 부자의 책상엔 절대로 너저분한 서류 더미가 없다.” ? 브라이언 트레이스
- 최미림(선임연구원), 청소 경영<개인편>, 55쪽



청소나 정리정돈에는 젬병인 탓에 나는 늘 정리 정돈에 대한 글은, 사소한 글일지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곤 한다. 최미림 연구원의 ‘청소경영’에서는 기업이나 조직에서 청소가 사소해 보이더라도 실은 매우 중요한 기업 문화의 기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몇몇 국내외 기업의 사례와 함께 일본 마츠시다 정경숙에서도 ‘청소’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글들이 실려있으니,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거나 중간 관리자급 이상의 직장인이라면, 이 잡지는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글 일부를 옮긴다. 애플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과 애플을 비교하여 왜 애플과 삼성이 뛰어난가를 이야기하는 보기 드문 글이었다(‘왜 삼성은 애플이 될 수 없는가’라는 관점이 대부분인데 반해).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전략. 이것이 미래를 장악하는 핵심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최근에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마저 애플의 뒤를 쫓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한 2등 전략이다. 1등을 연구해 1등이 제시한 제품의 질적 표준을 준수하되 대신 차별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공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없다. 애플이 잘 나간다고 그들의 사업 방식을 똑같이 쫓아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차별화가 중요하다. 애플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좋다. 삼성은 자체적으로 부품을 생산하고 하드웨어 제조에 뛰어나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제품을 양산하는 능력이 있다. 갤럭시탭을 통해 삼성은 그들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의 추구하는 방향과 장점이 다른 만큼 혁신의 애플과 제조의 삼성이 시장에서 승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설프게 애플을 흉내냈던 회사들은 애플과 삼성 사이에서 샌드위치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 김정남(IT칼럼리스트), 쫓는 삼성과 쫓기는 애플이 던져주는 교훈?, 167쪽




* 정리정돈에 대한 책으로, 이 기사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스테파니 윈스턴의 ‘성공하는 CEO들의 일하는 방법’(http://intempus.tistory.com/768)을 추천한다. 정리정돈의 중요성은 이제 직장을 넘어 가정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정리 컨설턴트’라는 신종 직업이 등장했다. 한 정리 컨설턴트의 블로그를 방문해보면, 청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정돈 컨설턴트 나영주 : http://blog.naver.com/soldi365
관련 기사: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388985


IGM Business Review 2011.봄 - 10점
IGM Business Review 편집부 엮음/IGM세계경영연구원(월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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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질 듯, 무너질 듯, 일상을 지탱해온 것 같다. 아내를 직장으로 보내고, 집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주 짧은 휴식을 취해보지만, 습관은 늘 그렇듯 활자로 나를 이끌었다. 활자 속의 삶.


대학시절, 글 쓰던 친구들은 시집이나 소설을 읽을 때 늘 작가의 등단 연도를 찾았다. 몇 년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몇 살 때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어, 당연하게도 20대 초반 만에 등단하는 작가는 많지 않았으니, 가끔 김인숙이나 구광본처럼 대학 심지어 그 이전에 등단한 작가를 만나면 책을 휙 던지며 말 한 마디 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그 짓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시들해져갔다. 보기는 하지만, 나는 대기만성형이야, 라고 주절거리는 횟수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를 보라며, 작품은 인생 경험이 있어야 쓰는 거지 어린 것들이 뭘 아냐고, 그러다 그것마저 초라해지면, 더 이상 약력을 들춰보지 않고 아니 더 이상은 아티스트가 될 꿈을 버리며 서서히 뒤편으로 물러나곤 했다.
- 김봉석, 편집자의 글 중에서, 브뤼트 2011년 6월


브뤼트 2011년 6월호

편집자의 글


사무실로 날아온 ‘브뤼트’에 실린 편집자의 글을 보며 피식 웃으며, 나도 저랬지, 하고 회상에 잠기는 것도 잠시, 쉴 새 없이 어둠은 내리고 바람은 불고 시간을 흘러갔다. 약간의 공포가 날 에워쌌다.


토요일 오후를 지탱한 힘, 혹은 가식과 허위의 미장센


하늘은 높고 토요일의 시간은 쉼 없이 흐른다. 며칠 전 심하게 마신 술은 아직까지도 여파가 있는 듯, 나를 쉽게 피곤에 지치게 한다. 종이 잡지를 뒤적거릴 좋은 시간이다. 몇 개의 잡지를 책상 위에 놓고 노트를 펼친다. 돈 벌이와는 무관하거나 거의 보이지 않을 도움을 주는 취미를 지탱하는 건 뒤편으로 물러나기 싫은 어떤 반항심과 관련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루이지 피란델로는 나이 쉰이 거의 다 되어 최초의 글을 출판했고, 결국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내가 아는 등단한 친구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요즘 습작하는 친구들도 등단에 목을 맬까. 별의별 생각이 주절주절 머리카락처럼 자라나기 시작하는 오후다.


브뤼트에 실린 알렉산더 메퀸 기사




브뤼트 BRuT 2011.6 - 10점
브뤼트 편집부 엮음/오니트(월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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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31 02:01

    비밀댓글입니다

    • ㅎㅎ 이 잡지는 없어졌어요. KT&G 지원을 받아 나오던 잡지였는데, 지원이 중단되자 나오지 못하게 되었죠. 정기구독 신청한 지 2달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ㅜㅜ;;


빠른 독서(讀書)와 느린 독서



반복과 속도

혹시 ‘포드주의(Fordism)’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자신의 자동차 공장에 적용한 노동 체계를 뜻하는 단어로, 컨베이어벨트 양 옆으로 노동자를 배치하고 생산 과정을 분업화시켜, 각 노동자가 동일한 업무만을 반복하여 해당 업무 처리 속도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을 뜻한다. 그 당시 한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한 곳에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헨리 포드가 이를 혁신한 것이다. 경영의 관점에서는 ‘혁신’(innovation)이지만,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자의 비인격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는 이와 관련된 영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자동차에 대해선 딱 한 부분(또는 몇 부분)만 전문적으로 알 뿐,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반복된 작업은 결과적으로 빠른 속도를 낸다는 것이다. 이는 독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빠른 속도만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는다. 내 책 읽기의 시작은 소설이었으나, 지금은 책이라는 건 다 읽는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정기적으로 읽는 잡지만 봐도 그렇다. 르몽드 디플로마크 한글판(월간), 동아비즈니스리뷰(반월간), 미술잡지(월간 - 월간미술, 아트인컬쳐, 미술세계 중 택일), 주간지 한 종, 그 외 계간지 두서너 종을 읽는다. 일간 신문은 다 읽는 것이니, 빼둔다. 여기에다 이메일 뉴스레터도 읽으니, 일주일에 읽는 페이지수로만 보자면 족히 백 페이지를 넘긴다. 여기에 일 주일에 책도 한 권 이상 읽으니, 일주일에 오백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책도 잡지와 비슷하여, 책의 형태를 지닌 것이라면 무조건 손을 댄다.)

하지만 나는 직장인이고 퇴근 후에는 약속 있는 날이 많으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읽을 수 있는가 궁금해 한다.

책 읽기의 방법

대학시절 내가 책 읽는 방법은 단순했다. 무슨 책이든 책 옆에 무조건 빈 노트를 두고 읽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잡지를 읽다가, 신문을 읽다가 기억해두어야 할 단어나 문장이 나오면 어김없이 적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리뷰(감상문)를 썼다. 방식이 이러니, 일반적인 독서보다 2배 이상 느렸다.

내 책 읽기의 시작은 2배 이상 느린 독서였다. 실은 지금 나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렇게 책을 읽고 싶다. 이미 경험적으로 나는 빠른 독서는 좋은 책 읽기가 아님을 안다. 속독(速讀)은 좋은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학부모가 있다면, 절대로 아이에게 ‘속독법’을 가르치지 말기를. 단어 하나하나와 한 문장, 한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는 느리고 신중한 독서가 깊은 생각, 좋은 글의 시작이다.

내가 책을 옆에 두고 살아온 지도 20년이 넘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뒷전이었고 책이나 잡지 읽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는 대학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 자주 책을 읽다가 이미 읽었던 단어나 문장이 종종 만나게 된다. 익숙해진 것이다. 요즘같이 가로쓰기에, 큰 활자에, 심지어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가는 베스트셀러 실용서 같은 것은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이런 책이 아니다. 반대로 나에게 긴 시간을 요구하며, 문장을 기억하길 강요하고, 한 페이지를 함부로 넘기지 못하게 만드는 책이다. 대표적인 것이 ‘교과서’라고 불리는 개론서들이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빠른 독서를 원한다면, 먼저 개론서(두툼한 책)를 느리게 읽기를 바란다.

개론서와 잡지

어느 특정 분야의 책을 빨리 읽기를 원한다면, 먼저 읽기 어려운 책을 집어 들고 오랜 시간 동안 읽어야 한다. 옆에 노트까지 해가며. 이를 통해 특정한 단어나 문구, 또한 문장이나 표현에 익숙해져야 한다. 아마 한 권을 읽는데, 몇 주나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친 후, 이 분야에 대한 다른 책을 읽을 때는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독서가 반복되면 될수록 책 읽기의 속도는 빨라진다. 아는 부분이 나올 때는 띄어 넘고 읽을 수도 있게 된다.

잡지 읽기도 권한다. 손쉽게 단편적인 정보를 얻기에는 전문 잡지만한 것도 없다. 이 점에서 한국은 매우 열악한 잡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잡지의 종류도 얼마 되지 않고 그 잡지의 수준도 낮기 일쑤다. 잡지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단편적인 정보를 축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된 정보들은 책을 읽을 때, 책의 흥미를 높일 수 있다. 종종 아는 정보를 만나게 해주며, 몰입도를 높여주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또한 새로운 정보를 빨리 접하게 해준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책 읽기의 양이 아니라 책 읽기의 질이 핵심

내가 싫어하는 책 중의 하나가 장정일의 ‘독서읽기’이다. 나는 일 권만 읽고 이후는 읽지 않았으나, 내 기억으로는 그 이후 여러 권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책이 좋았다거나 나빴다 정도만 반복적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책이 자신의 세계관이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혹은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책의 가치나 영향력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그는 다독가이기는 하지만, 그는 마치 잡지 읽듯이 책을 읽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책이 가진 진정한 가치나 내용을 알기 전에 장정일은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책을 얼마나 많이, 빨리 읽는가를 자랑하는 듯 읽혔다.

종종 나는 이런 비유를 든다. 십 만 권의 책을 읽은 사람보다 백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 더 깊고 명징한 사유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문제는 십 만 권의 책과 백 권의 책이 서로 다른 종류이며, 서로 다른 책 읽기를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빠른 책 읽기로, 건성건성 읽는다면, 그 책의 진가를 알지 못할 것이고, 아무리 많은 책을 읽더라도 그 책들이 한결같이 쉽게 읽히는 대중 소설이나 실용서라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울 지 모르나, 자신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빠른 책 읽기(速讀)란 없다

공병호의 책 읽기는 책 좋아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빠른 책 읽기란 없다고 적긴 했지만, 정보 취득이 목적인 독서일 경우엔 가능할 것이다. 이는 필요한 정보만 읽고 나머지는 버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도 두툼한 책들을 읽은 사람에게 권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이라곤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이제 책을 읽기는 해야겠는데, 시간이 없으니 실용적인 독서를 해야겠다고 필요한 곳만 읽고선 책 다 읽었다고 버린다면, 황당하다고 할 수 밖에.

힘들어도 느리게 읽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작은 활자에, 두툼한 책을 읽어야 된다. 그림 하나 없는 책부터 읽어야 된다. 이렇게 읽지 않고 빠른 책 읽기로 넘어간다면, 책이란 없고 깊이 있는 생각이나 통찰은 기대할 수 없다. 하긴 가벼움이 넘쳐나는 시대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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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HP 2009.10.11 13:41 신고

    잘 읽었습니다.

  • 티스토리 메인에서 보고 클릭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문장이 가득하여 읽고 나니 뿌듯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 잘 읽었습니다.
    책읽기는 정도가 없는것 같아요.
    정독을 하자니 시간을 잃고 속독을 하자니 내용을 잃고..
    편안한 주말 오후되시길..

  • 빌리 2009.10.15 13:27 신고

    뒤늦게 책읽기가 하나의 예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지우 2009.10.31 01:25 신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영혼이 많이 살찔것 같으네요~
    종종 들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날씨가 많이 추워진다고 하네요. 현대적 삶에선 영혼보다 먼저 육체적 건강이 먼저인 것같아요. ㅎㅎ.. 감기 조심요.

  • 학생시절 가장 싫어했던 책이 '현대소설 100선' 이런식으로 몇백권의 책을 한권에 zip(ㅋ) 해놓은 책이었죠. 허겁지겁 먹어치우다 보니, 여기저기 체한 사람, 헛배부른 사람, 설X하는 사람 등 많이 보이는거 같습니다. 어느새 저도 허겁지겁 쫓기고 있던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 자본주의 세계가 '속도'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속도'가 지배하는 듯 합니다. 특히 압축 성장을 한 한국의 경우에는 너무 심하고요. 그런데 공부와 독서에도 이것이 강요되고 있는 듯합니다. 실은 느리고 깊게 책 읽는 여유, 정말 좋거든요. ^^

  • 잘 봤습니다. 난독증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군요 :)

    • 천천히 뭔가를 즐기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특히 물질적 환경이 그것을 더 심화시키는 것같고요.
      감사합니다. ^^

  • 콩세알 2009.12.14 09:52 신고

    잘 읽었구요. 글 좀 퍼가겠습니다. 그냥 독서토론회 모임에서 같이 읽어보려구요. 출처는 밝히겠습니다.

  • 빌리 2010.07.06 15:05 신고

    님의 글 덕분에 다시 용기를 얻어 이기적 유전자 읽었습니다.'
    여기서 읽었다고 함은 글자인 상태로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봤다는 뜻이죠 ㅎㅎ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지만 그래도 내 손바닥에 가까스로 남아 언뜻 보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같은 유리 조각이 몇개 남았습니다.

    • 쉬운 책들을 여러 권 읽는 것보다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좋습니다. ^^ 리처드 도킨스 류의 책을 좋아하시면 관련 책을 여러 권 읽고 난 다음 다시 읽으면 훨씬 더 잘 읽힐 겁니다. 저도 수년 전에 읽다가 포기한 책을 다시 읽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잘 읽히거든요. 나이와 경험에 따라 책에 씌여진 언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폭도 달라는 듯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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