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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면도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Antonis Samarakis (지음), 최자영(옮김), 신서원, 1997 




전후 그리스 소설이 번역된 것이 드물었던 탓에 1997년에는 꽤 주목받았던 듯싶은데, 지금은 거의 읽히지 않는 듯 싶다. 번역자 또한 소설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이라가 아닌 탓에, 번역된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라키스를 한국에 소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찬사를 받아야 할 것이고 사라마키스의 소설은 다소 거친 번역 속에서도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왜 뒤늦게 이 소설을 읽었을까 하는 후화까지 하게 만든다. 


전후 그리스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그러나 그리스는 고대의 그리스가 아니다. 마치 이집트처럼. 서구 문명의 시작이었으나, 20세기 그리스는 격랑의 현대사 중심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채 침몰과 구조를 번갈아 가며 겨우겨우 버티고 서 있다. 그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고 이를 소설로 쓴 안토니스 사라마키스. 그는 20세기 초반 유럽을 비극적으로 물들인 전체주의를 극도로 혐호하며 문학의 가치와 자유의 중요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 <<면도>>의 초반 몇 편의 단편들보다 후반 단편들 -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하고 노골적인 - 이 훨씬 감동적이다. 아마 그의 생애 전반이 전체주의와 독재 정권과의 갈등과 싸움의 연속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리라. 


디미트리스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묻힌다. 모두들 달려들어 그를 에워쌌다. 그를 가슴으로 껴안는다. 먼저 그의 어머니 엘레니. 너무 꼭 껴앉은 탓에 저고리 단추 하나가 수갑에 끼어 떨어져 나갔다. 그 다음 모두들, 모두 같이, 어떤 이는 안고, 어떤 이는 입맞춤하고, 어떤 이는 말을 건넨다. 

"우리 디미트리스!"

기쁨이 가득한 이런 장면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환희에 찬 인생.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춤을 춘다. 모두들 무엇 때문에 오늘 저녁 여기 모였는지를 잊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 내 마지막 장례를 위해 이리로 왔다는 것을. 내 아들 디미트리스가 내 것을 훔쳐가 버렸다. 그런데 나도 나 자신을 잊어버린다. 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모두가 나누는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다. 육칠 미터 저만치 떨어진 곳. 저 쪽에 서서 그를 쓰다듬고, 웃고, 눈짓으로 가슴으로 말을 건넨다. ... 잘하는 일이다! 나는 괜찮다. 나 에브리피디스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주검일 뿐. 그러나 저기 저 디미트리스. 내 아들 디미트리스는 삶. 바로 그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이요, 희망이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더 나은 것으로 탈바꿈하고 조금이라도 덜 비인간적이 될 것이라는 희망. 

- 137쪽 ~ 138쪽 


반정부 투쟁을 하다가 잡혀들어간 아들. 그 아들이 수갑을 찬 채 뒤늦게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다. 아버지의 관 뚜껑은 닫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다리던 그 젊은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슬픔은 사라지고 미래의 희망이 싹튼다. 다시 구치소로 가게 될 터이지만, 디미트리스는 괜찮다. 이미 죽은 아버지는 그 아들을 보며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기뻐한다. 그가 삶이며 희망이라며. 짧은 단편의 한 부분이나, 사마라키스의 소설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쩌면 안토니스 사라마키스의 삶도, 문학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전후 그리스 소설가들 중에서 가장 널리 해외에 알려진 작가이기도 한 그는 현대 유럽의 참여 문학이 어떤 것이 알려준다. 실존주의 소설가들이 개인의 고독과 사색에 파묻혀 결국엔 누보로망으로 이어졌으나, 안토니스 사라마키스는 우리가 왜 사는지,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름없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드러낸다. 


그래서 그는 삶의 가치와 죽음에의 거부를 주장한다. 


"아무 가진 것이 없다 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당신은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아무도 아무것도 누구도 당신을 부정하지 못한다!"

"당신은 스스로 죽을 권리가 없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는 당신을 삶으로 끌어낸다. 삶과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맺게 한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는 당신이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의지할 곳이다. 이 단 한 사람이야 말로 당신에게 살 가치를 부여하는 탯줄이다. 고통과 진부함, 걱정과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지금 이 곳의 일상 속에서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죽음을 택할 수가 없다! 죽음을 택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 두 사람만 있으면 삶은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만 있으면 [죽음을] '거부'할 가치가 있다."

-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거부>> 중에서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문학은 가치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문학의 내부로 침잠해 들어간 현대 문학의 주된 경향에 반발하고 전통적인 견지에서의 문학의 가치를 말한 보기 드문 소설가였던 셈이다. 그는 정치적 투쟁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삶을, 고통을, 미래를,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집의 어느 단편에서는 자살을 결심한 어떤 이가 끝내 자살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건물 바로 밑 거리를 가득 메운 반 정부 시위대 때문이기도 하고 그 아파트의 이웃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한 개인의 운명이 그 한 사람의 몫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연결된 어떤 것임을 사라마키스는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문학은 지고의 위안이다. 인간의 광기와 생존 경쟁의 거칠고 암담한 지평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진부한 일상과 사회생활의 혼선과 갈등 속에서 문학은 오로지 위안을 가져오고 신비로운 환희로 우리에게 용기를 심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사이에 깊디깊은 이해의 다리를 잇는 것이다. 독자듥돠 말이다. 문학은 대화의 시작이다.

가치있는 문학은 독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독자와의 연결고리다. 문학은 친구가 내미는 손이다. 따라서 응답 없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문학과 예술의 마력은 타신의 손, 독자의 손이 당신 손에 뜨거운 우애로 와닿을 때 나타난다. 문학은 밤의 메이라이며 암속 속에 외침이다. 메이라가 없으면 모든 것은 무의미하며 미완성일 뿐이다. 

- 234쪽 


책 말미에 실린 사라마키스의 자서전은 현대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문학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며, 우리 삶은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한 번 돌이켜보게 만드는 글이 될 것이다. 헌책으로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구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새로 출간된 신간으로도 구할 수 있다. 나 또한 사라마키스의 다른 소설들도 읽을 생각이니까. 




안토니스 사라마키스 기념 우표. (현대 그리스 문학에서의 사라마키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래 책은 역사 관련 학술서적을 전문적으로 내는 신서원에서 1997년에 전집 형태로 번역 출판된 이후 절판되었다. 그리고 2006년에 다시 <<손톱자국>>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글자라는 출판사를 통해 두 권으로 다시 출간되었고 지금도 새 책으로 구할 수 있다.  

면도 - 8점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지음, 최자영 옮김/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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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10점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민음사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칼 R. 포퍼(지음), 이한구(옮김), 민음사 




이 리뷰는 허술할 것이다. 읽은 지 1년이 지났고, 뭔가 독후감 같은 걸 남겨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허술한 이 글을 핑계삼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을 서가에 꽂을 생각이다. 


칼 포퍼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현대의 위대한 과학철학자이면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로서, 플라톤부터 마르크스까지 '중심(이데아)를 지향하는 어떤 체계'(또는 전체주의)를 극도로 싫어해서 끊임없이 반증을 제시해야 된다고 역설한 학자.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이데아를 이야기하는 고상한 플라톤 대신 현실적으로 이율배반적이며 학문적으로 전체주의적 세계관을 표현하는 플라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칼 포퍼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할 지도 모른다. 


아마 시대적 환경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적 환경을 변명삼기에 포퍼의 이론적 호소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학문의 세계에서 포퍼는 이상한 비주류에 속하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전투와 같은 삶을 영위하는 현실 세계에서는 포퍼만한 학자를 만나기 쉽지 않다. 조지 소로스가 포퍼리안이고, 블랙 스완을 쓴 나심 탈레브도 포퍼리안인 것을 생각한다면, 포퍼를 무시하는 인문학자들 옆에 포퍼를 추앙하는 현실주의자들의 모습은 흥미롭기만 한다. 


1권, 2권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1권은 플라톤 중심의 시대를, 2권은 마르크스 중심의 시대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등 다수의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세계관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인가를 포퍼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독자는 여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고 도리어 자기 스스로 포퍼리안이 되어간다는 사실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강력하게 추천하지만, 글쎄, 이 책을 읽으라고 선뜻 이야기하기엔 책은 두껍고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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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은 지 1년이 지났다면 다시 한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ㅎ 더 자세한 리뷰 기대해보겠습니다~

    • 기대를 해주신다고 하니... 흠... 2권 읽고, 포퍼 해설서 한 권 더 읽고 난 다음 한 번 도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noi 2013.01.31 19:43 신고

    포퍼도 알고봤더니 빈의 유대인 집안 출신이더군요.. 그 시대의 철학적 거목들, 아니 문화계 지성계 전반의 주요 인물들 가운데 빈 출신 유대인들이 얼마나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는지 정말 놀라워요.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제와서 막 자랑스러워 하지만, 자기들이 나치에 협조했던 과거 때문에 이 학자들이 전 세계로 떠돌아야 했던 건 잊고 싶어하죠.. 얄밉다는..^^;;

    • 지금 그 곳에서도 유대인을 만나는 일은 없으신지요?
      빈 뿐만 아니라 구미 각국에 똑똑한 유대인들이 고루 퍼져 있는 듯해요.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 빈의 유대인 지식인들이 20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긴 했죠.
      민족성이 있기 보다는 지역성이나 문화적 배경을 더 믿는 편인데, 유대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으면 민족성(혈연적인)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유대인에 대한 호의가 사라지고 있고요. 가령 유대인들은 계산에 너무 밝다 든가, 유대인들은 폐쇄적이다 든가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더라고요. ㅎ

    • 아. 그리고 중앙선데이라는 주간신문에서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라는 칼럼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sunday.joins.com에 가서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로 검색해보시면, 20세기를 풍미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걱, 유대인' 하시게 될 지도.. ^^;;

    • noi 2013.02.01 20:28 신고

      알려주신대로 검색해서 목록을 죽 훑어봤는데 알던 사람도 있고 유대인인줄 미처 몰랐던 사람도 있고, 정말 대단한 리스트네요. 슬슬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일상생활이나 모임에서 접하는 현지인들이야 스스로 유대인임을 밝히지 않으면 잘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의 생활구역이었던 빈 2구를 가면 지금도 검정 전통적인 의상을 입은 정통파(orthodox) 유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2구를 비롯해 빈애 살던 유대인들은 2차대전 중에 거의 몰살당하고, 살아남은 소수는 미국과 이스라엘로 거의 다 떠나버리긴 했는데 전후 새로 동유럽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유입된 유대인 인구가 꽤 됩니다. 근데 이들이 옛날 서구화됐던 빈 유대인들과는 달리 많이 보수적이고 말씀대로 '폐쇄적'이어서 문화적 충돌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오스트리아인들이 자기들이 지은 죄가 있으니까 잘 해주려고 노력하지요.



4월 11일, 나는 르몽드디플로마크 한국판 2009년 9월호를 꺼내 읽었다. 르몽드디플로마크를 매월 사서 읽다 요즘 주춤하는데, 이 월간지는 의외로 '정밀한 읽기'를 요구하는 터라, 번번히 다 읽지 못한 채 다음 호를 사야만 하기 때문이다. 

(* 르몽드 디플로마크. 영국의 가디언(Guardian), 미국의 먼트리리뷰(Monthly Review) 등과 함께 대표적인 진보매체들 중의 하나지만, 내 주위에도 이 잡지를 읽는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자신이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잡지를 사서 읽기를 권한다.)


2009년 9월 르몽드디플로마크, 자크 부브레스의 '지식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꼼꼼하게 읽는다. 


"그들(지식인)은 대자본을 상대로는 말을 아끼지만, 사회 밑바닥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뭔가를 가르치려고 한다." 


아!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한국도 자크 부브레스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한때 진보적이고 현실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 중 대부분이 이런 식의 지식인이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크 부브레스는 이들을 '미디어 지식인'라고 말하며,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은 지식인이 되었고, 여론 형성이나 정치적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의 펜과 입은 일반 대중을 향해 있다고 지적한다. 정작 충고와 조언이 필요한 것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재벌들이나 정치인들, 고위 공무원들인데도 말이다. 


선거는 야당의 패배로 끝나고,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은 여당을 지지하지 않았기에 선거 결과는 상당히 의외였다(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야당의 모습이 실망적이라는 사실에는 공감하지만, 여당 지지자들이 이렇게 많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크 부브레스의 지적처럼 지식인의 몰락, 반-지식인으로서의 미디어 지식인의 등장 탓일까.  


선거가 끝나고 대단히 실망적인 결과를 손에 쥐고 난 다음, 나는 서가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고, 한 권의 책을 서점에서 구입했다.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 그리고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는 1965년 루이 알튀세르와 '자본론을 읽다'(Lire le Cpital) 집필에 참가한 후 바로 그와 결별하였고, 1974년 알튀세르의 방법론을 비판하는 '알튀세르의 교훈'(La Lecon d'Althusser)를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4월 11일 총선 이후 이 두 명의 각기 다른 2권의 책은 우리에게 풍부한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솔, 1996년 보급판 3판)에는 그의 유명한 논문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 짧은 글을 통해 '억압적 국가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구분하고 "우리가 알기로는 어떠한 계급도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 위로, 그리고 동시에 그 속에 그들의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국가 권력을 보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는 아래와 같다. 


- 종교 AIE(다양한 교회들의 체계)

- 교육 AIE(공적, 사적인 다양한 '학교들'의 체계)

- 가족 AIE

- 법률 AIE

- 정치 AIE(다양한 정당들을 포함하는 정치적 체계)

- 조합 AIE

- 커뮤니케이션 AIE(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등)

- 문화 AIE(문학, 예술, 스포츠 등) 



'억압적 국가 장치' - 검찰, 군대, 경찰 등 - 과 함께 정치적 지배의 수단으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현재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듯하지 않은가. 


언젠가 '대중들을 가르쳐야 된다'는, 혹은 이와 비슷한 유형의 말을 했다가 면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무슨 시대착오적인 계몽주의냐'며. 


그런데, 잘못된 생각 - 정권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국민은 범죄자이므로 사찰하여 구속시켜거나 일상을 파괴해야 된다 - 을 가진 정부가 억압적 국가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다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일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제 대부분의 대중들은, 그들 스스로 무식하지 않다고 여기며, 스스로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는 요즘, 그들의 무식하지 않음과 비판적 의식은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교묘한 호명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경우,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속에서 대중 스스로 사리분별을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그들에게 정확하고 비판적인 현실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방법이란 존재하기라도 하는 걸까? 


자크 랑시에르는 알튀세르와는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므로,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통치 불능의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이나 비판 속에는 결국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는 통치되어야 할 사회도 아니고, 한 사회의 통치체제도 아니다. 그것은 통치 불가능 자체이며, 이러한 통치 불가능성에서 모든 통치 행위가 그 기초를 찾아야 하는 그런 것이다. 

- 111쪽 



어제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고결한 것, 전체주의는 무시무시한 것'이 공식적인 담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이상주의자들은 앞으로 도래할 실질적 민주주의를 꿈꾸며 전체주의의 공포를 부정하고 있었다. 이제 이 시대는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서방의 한 정부는 무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수출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의 지식인들은 '민주적 개인주의'의 불길한 징조와 '평등주의'가 야기하고 있는 사회적 파탄을 공-사 모든 영역에서 발견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들이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체주의를 잉태하면서 인류를 자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변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단지 국제화된 자본의 지배에 두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민(民)에 의한 통치'가 보여주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정치 상황을 다시 분석하고 동시에 민주주의, 정치, 공화국, 대의제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파악해 보아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어제의 미지근한 애정과 오늘의 범람하는 증오를 뒤로 하고, 항상 위협받으면서도 역동적인 민주주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어 원서 표지 뒷면에 실린 글. 



그런데 불완전한 민주주의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민주적 개인주의'의 불길한 징조와 '평등주의'에 대해 한국의 보수적 지식인들과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믿는) 일반 대중들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실은 박정희 시대의 개발 독재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 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놀라운 형태의 전체주의적 사회 지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거가 끝나고 머리는 복잡해지고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참 슬프다. 이 짧은 글은 내 불길함을 루이 알튀세르와 자크 랑시에르에 기대어 푸념처럼 적은 것이니, ... ...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푸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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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esoo 2012.04.14 19:52 신고

    일단. 컴으로 쓰는게 아니라 이야기를 길게 쓸 수는 없고. 그 담으로 나는 진보적 지식인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또 글을 다 읽지 못한 상황에서 댓글을 다는 게 심히 조심스럽지마는.
    선거 끝나고 한겨레에서 경남 구미 등지에서 일하는 20대 노동자들 몇명과 인터뷰한 기사(제목은 열의 아홉은 나꼼수 모를걸요 뭐 이런거였음)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노동자계급에게 충고(?표현이 잘 기억이 안나는데)하고 오히려 지배층이나 대자본에 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나싶어요. 몇십년전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브레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서도. 느낌은 갈 수록 지식인이라는 사람들과 노동자는 멀어지고 있달까. 몇십년 동안 지식인은 자기들의 논리만 헤집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예전과 다른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니 과거의 방식은 어닐진대 소통하는 창구가 너무 없는 건 아닌가 싶네요. 인터넷에서는 내가 원하는 정보만 얻을 수 있으니 나만의 생각에 갇히기도 쉬운듯 하고. 그녕 두서없이 첫머리 글 읽다가 답 달아봅니다.

    • 한국 사회에서는 '지식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새롭게 정의내려야할 듯해요. 4년제 대학을 나왔다고 지식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석사나 박사 학위 가지고 있다고 지식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최근 국회의원 된 이는 학위 논문 베껴서 학위를 받았으니), 도대체 지식인이란 뭘까요? 그리고 바람직한 지식인이란 또 뭘까요? ... 문제는 지식인의 자격이 없는 이들이 지식인처럼 매스미디어에 나온다는 게 큰 일이죠. 그리고 정작 지식인의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은 너무 소극적이거나 조용하거나 대중 소통 채널을 가지지 못했으니..


인간의 조건 - 10점
한나 아렌트 지음/한길사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지음), 한길사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는 잡지의 칼럼이나 신문 기사에서 종종 접하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책은?

솔직히 말해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나 아렌트. 젊은 시절 하이데거의 연인이었으며, 미국으로 넘어간 유태인, 여성 철학자,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면서 학문적 주목보다는 센세이션과 거부감을 더 불러일으킨 학자.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학문적, 지적 명성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근대적 인간의 오래된 소외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전체주의'가 가지는 비극성, 그것이 어떻게 근대와 현대의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철학적인 견지에서 탐구하고 분석해 낸다. 특히 고대 철학과 정치적 환경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논의는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일관성과 통찰력은 종종 놀라움을 선사할 정도이다.


*    * 

한 달에 한 권을 선정해 읽는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제대로 읽은 것은 아니다.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읽을 생각이다. 오랜만에 너무 빡빡한 책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철학책을 1~2년 만에 읽는 듯한 생각이 든다.

회사 일이 바빠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읽은 책도 제대로 서평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읽었으나 서평을 쓰지 못한 책이 벌써 열 여권에 이른다. 이를 어쩌면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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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 아렌트의 파워에 대한 그녀에 생각에 관심이 있었는데, 한 번 읽어 봐야 겠네요^^

    • 한나 아렌트의 저작을 읽고 난 다음,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했습니다. 바쁜 직장 생활 와중에 읽었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천천히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실은 제가 쓴 리뷰도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쓸 시간이 없어 '무책임하게' 올려버렸네요.)

보르헤스 씨의 정원

일러스트: 메테오 페리코니 보르헤스 씨의 정원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꼴레타 인근의 어느 집에는 이중의 특권을 가진 창문이 있다. 그 창문에서는 한 눈에 하늘이 들어오고, 이웃한.....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메시Messy, 팀 하포드

메시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지음), 윤영삼(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확실히 기존 통념을 깨뜨린다. Messy라는 제목 그대로, 무질서와 혼.....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

맑스주의와 형식, 프레드릭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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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