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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을 구독한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전에는 모바일 포털사이트나  Social Media,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이럴 경우 미디어 편식이 발생한다. 또한 예전이라면 스포츠신문을 읽어야만 볼 수 있는 기사만 읽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처럼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스포츠신문을 읽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을 통해선 그냥 스포츠신문만 읽는 느낌이다. 그만큼 엉망이 되었다. 더구나 제대로 된 기사문을 읽을 일이 줄어든 셈이다. 


다시 종이신문을 읽기 시작하자 여러 모로 장점들이 많아졌다. 다소 느리지만, 깊이있는 칼럼들을 읽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디지털 세대의 여론과는 다소 무관해 보인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을 지나 대중 일반의 정치적 이해와 판단능력을 마비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여기 블로그에 대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 듯하여, 아래 칼럼 읽기를 권한다. 지금 20대 이하 세대는 정말 힘든 시기를 살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치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관여해야 하는데, ... 너무 걱정스럽다. 


송호근 칼럼 - 한국 청년 잔혹사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41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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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생 2016.08.31 22:59 신고

    종이신문에 관해서 과제를 쓰려하는 학생입니다만, 2026년에는 한국에서 종이신문을 보기 힘들꺼라는 통계도 있길래 여기에 질문드려봅니다.
    종이신문이 없어질꺼라고 보시나요? 안없어진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종이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궁금한게 워낙많은데 질문드려봅니다 ㅎㅎ;

    • 지하련 2016.09.01 02:56 신고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심지어 학자들이나 전문가들까지도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주제예요. 그걸 덜컥, 저에게 물어보시면.. ㅜㅜ.

      아마 관련 자료를 찾으면 너무 많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어떤 주제는 너무 많은 자료 때문에 힘들고, 어떤 주제는 자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힘들죠. 그런데 이런 경우는 공부를 하던지, 직장 생활을 하던지, 반드시 겪게 되는 문제예요.

      몇 가지의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 읽어보세요. 그럼 나름대로의 해답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riss.kr 이라는 웹사이트에서는 학위논문들을 검색할 수 있으니, 이와 관련된 석사나 박사학위 논문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해당 주제에 대한 논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종이판을 내던 뉴스위크지는 아예 종이 주간지를 없애버렸습니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디지털화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인수한 위싱턴 포스트에 밀리는 인상을 주고 있죠. 영국의 가디언지도 디지털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한국의 중앙일보도 여기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 모노클 같은 잡지는 종이잡지로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어요. 국내에는 B 매거진이 대표적인 경우죠. 뭐, 신문은 아니지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은 너무 쉽게 하셨습니다. 그런 질문은 마치 '왜 살아야 하나요?'와 비슷한 류입니다. 다만 '왜 살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무한한 답이 있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종이신문에 대한 질문'의 답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고 여기에 대한 답은 자료를 찾아 읽어보시면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 그럼.

일이 바빠서 - 이것도 핑계일 지 모르겠지만 -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다 보니, 책읽기, 글쓰기가 형편 없어졌다. 며칠 사이로 좋은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다음에 링크를 달아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페이스북을 하다보니, 정리되지 않은 단상을 올리고 그것으로 끝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글의 길이가 짧아지고 깊이는 얕아졌다. 여튼 그런 단상들 중 일부를 아래와 같이 옮긴다. 여유가 된다면 관련된 책들도 몇 권 읽고 길게 정리하고 싶지만, ... 늘 생각에만 머물 뿐이다. 


*  *  


정치에 대한 글을 적었다. 야당의 모습을 보면서 한심해서 적은 글이다. 몇 주 전에 적은 글이라 시의성이 떨어진다. 얼마 전 원내대표가 된 이종걸 의원은 한순간 언론에서 자신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건 (너무 불행하고 슬펐던) 장자연 사건으로 모 신문사 대표를 공격하자 그 신문사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그 이후 자신의 기사는 그 어느 신문사에서도 보도되지 않았다고.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언론은 중요하다. 하지만 언론을 믿을 수 없다. 언론 기사들을 분석해 문재인 의원과 김무성 의원에 대한 우호적/부정적 기사를 나열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와 똑같이 여당과 야당도. 


사람들은 언론을 믿는다. 나같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언론을 믿지 않고 아주 비판적으로 접근하지만, ....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한국 사회에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을 심정적으로 동의하게 되자, 절망적으로 변했다. ㅜ_ㅜ 


아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    * 


정당 정치 시스템이라는 게 있을 지 모르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쟁력은 10:1인 듯 싶다. 새누리당은 일 잘 하는 사람도 많고 컨셉도 잘 잡는다. 전략도 잘 세운다. 확실히 목적 지향적이다. 다만 그 목적이 국민 대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혹은 소수의 이들만을 위한다는 점. 보수를 표방하지만 전혀 보수스럽지 못하다는 점.\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나라 군대같다. 다양한 계파들이 존재하고 이들 간의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나온다. 끊임없이 친노가 공격 대상이 된다. 결국 대통령 탄핵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나. 열린우리당까지 가야 되나. 결국 형식적으로는 뭉쳤으나, 나머지 부분에선 뭉치지 못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에게는 시스템이라는 게 없다. 일 잘하는 젊은이들을 끌어당길 동력도 없고 새로운 컨셉도 제시하지 못한다. 더구나 너무 오만하다. 비난할 줄만 알지, 문제 해결에 대해선 빵점이다. 여당과 동의하면 비난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결정내리지 못한다고 내부에서 비판한다. 문재인 대표가 오만한 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최악의 행정과 정치를 하고 있으니, 무조건 이긴다고 믿고 있는 정치인들로만 모여 있고, 이런 정치인들의 모임의 대표가 문재인이니, 그도 오만한 사람이 된다. 


결국 차기 대선주자 1위를 공격해 끊임없이 끌어내리기를 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정당이다. 내가 보기엔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는 그 어떤 이보다 문재인의 살아온 행적이 나아보인다. 중도를 표방하지만, 보수스럽고 종종 과격한 발언까지 나온다는 점에서 정치적 컨셉을 찾기 어렵다. 부산의 모 의원은 과격 보수처럼 여겨진다. 결국 권한을 얻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이다. 늘 국민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은 말 뿐이다. 말이라도 해야, 능력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능력 있지만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능력이 없다. 더 큰 일은 새누리당은 끊임없이 젊은이들이 끌어당기지만(이준석이나 손수조),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직도 동교동계 이야기가 나온다. 헐~ 도대체 이들의 평균 나이는 몇 살인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헤쳐 모여야 된다. 강력한 리더십과 정당 시스템을 마련해야 된다. 결국 키는 문재인 대표일텐데, 그는 신중하나 결단력이 없고 쓸모없는 말을 하진 않으나, 모든 이들이 원하는 정치적 제스추어에는 약하다. 그리고 옆에서 코칭해줄 만한 능력자도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없거나, 아니면 도리어 너무 많은 것이다.


*  *  


정치적 제스추어에 있어선 이재명 성남시장이 단연코 최고다. 그의 정치적 감각은 탁월하다. 야당에 이런 감각을 가진 이가 2-3명만 더 있어도 기대해 보겠건만.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 시장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정치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열심히 투표하지만, 실제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질 때 그 정치의 실질적 혜택을 보게 될 이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세계는 조각나고 조각난 세계들은 서로의 세계에 무관심해질 것이기에. 


*  * 

인문학자들의 무책임함은 그들 특유의 비현실성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그들은 최신이론의 수입자 혹은 해석자로만 있을 뿐 지금 여기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하거나 할 생각이 없거나 하더라도 형편없는 글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한때 탈정치화를 이야기하던 일군의 학자들이 있었다. 탈정치화가 불러올 현실적 파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학문수입상으로서의 입장만 고수했다. 그들은 그 때도 대학교수이고 지금도 대학교수다. 그 때 나도 그런 류의 논문과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앞으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더라. 그 이후 대단한 연구서가 나온 것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학자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학문 수입상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리고 학생들을 닥달하고 자신의 무식함을 최신 수입 이론으로 가린다. 그들은 젊음 옆에 서서 젊음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인문학을 죽인다. 죽어가는 인문학은 인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 교수들의 문제이고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문제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닥힌 삶의 문제이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지도, 알 필요도 없다. 


최근에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생계를 핑계로 무책임한 기사들을 쓰고 있다. 이 사회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이들이 언론이 되고 있다. 한 때 나락에 빠진 한국 사회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발 벗고 나선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으니 ... .... 


실은 모든 이들이 월급을 핑계로 사소하지만 거대하게 무책임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그게 모여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책임한 투표 탓에 우리는 한국 사회가 전형적인 후진국적 사건사고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무언가에 대해 책임 지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알아야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대처할 수 있다. 즉 모르니 대처할 수 없고, 그러니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그 파장이 큰 것일수록 리더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하물며 작은 회사의 팀장이 지는 책임, 대표가 지는 책임의 무게도 가볍지 않은데, 한국은 큰 조직의 리더가 될수록 무책임해지고 무식해진다. 이것이 한국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요즘 한국 사회도 이렇고 나도 이렇구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기분... 언제쯤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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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주도권싸움 2015.06.05 09:11 신고

    모 주도권싸움이죠. 서로간의 앙금이 있는 상태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뭉친거라서...
    문재인은 대권을 잡을수 있는 두번의 기회를 날려버린거죠. 당대표를 박지원에게 양보안한것
    선거에 진후 바로 사퇴안한것 두가지를 모두 거부하고 호남여론이 나빠진다는걸 예측못했다면 정말 정치력이 없다는 증거고 예측하고도 그리했다면 대권보다는 친노의공천이중요하다고 생각한거죠
    현재 문재인 지지율은 계속 하락중이고 끝났다고 봐요
    이재명 안철수 박원순 반기문 손학규정도가 대권후보인데 총선은 망할게 확실시 돼고 일말의 희망이 있는게 대권인데 정말 희박하네요
    어차피 이리된거 차라리 분당하는것도 야권쪽에서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정책연대나 대권연대만 하면돼지 굳이 같은 당에서 니꺼니 내꺼니 싸울 필요가 없죠

    • 지하련 2015.06.07 07:57 신고

      정치력 부재가 큰 일인 듯합니다. 정치력이 부족하면 서로 대화를 해서 풀어나가는 지혜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없고요. 저도 차라리 분당해라는 쪽으로 기울더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옮긴다. 어제 아침 CNN에 올라온 기사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언론, TV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날이 멀다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시국선언을 하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다. 


언론과 관련된 교과서에는 '비판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그런 언론을 찾기 어렵다. 


이 나라의 미래는 이렇게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화살은 지금 침묵하는 언론들에게, 그 침묵을 강요하는 정부와 여당으로, 그 옆 무능력하기 이를 데 없는 야당에게까지 돌려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정치적 지형에 대해 알 생각도, 알아도 침묵하는 국민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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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나는 르몽드디플로마크 한국판 2009년 9월호를 꺼내 읽었다. 르몽드디플로마크를 매월 사서 읽다 요즘 주춤하는데, 이 월간지는 의외로 '정밀한 읽기'를 요구하는 터라, 번번히 다 읽지 못한 채 다음 호를 사야만 하기 때문이다. 

(* 르몽드 디플로마크. 영국의 가디언(Guardian), 미국의 먼트리리뷰(Monthly Review) 등과 함께 대표적인 진보매체들 중의 하나지만, 내 주위에도 이 잡지를 읽는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자신이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잡지를 사서 읽기를 권한다.)


2009년 9월 르몽드디플로마크, 자크 부브레스의 '지식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꼼꼼하게 읽는다. 


"그들(지식인)은 대자본을 상대로는 말을 아끼지만, 사회 밑바닥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뭔가를 가르치려고 한다." 


아!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한국도 자크 부브레스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한때 진보적이고 현실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 중 대부분이 이런 식의 지식인이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크 부브레스는 이들을 '미디어 지식인'라고 말하며,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은 지식인이 되었고, 여론 형성이나 정치적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의 펜과 입은 일반 대중을 향해 있다고 지적한다. 정작 충고와 조언이 필요한 것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재벌들이나 정치인들, 고위 공무원들인데도 말이다. 


선거는 야당의 패배로 끝나고,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은 여당을 지지하지 않았기에 선거 결과는 상당히 의외였다(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야당의 모습이 실망적이라는 사실에는 공감하지만, 여당 지지자들이 이렇게 많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크 부브레스의 지적처럼 지식인의 몰락, 반-지식인으로서의 미디어 지식인의 등장 탓일까.  


선거가 끝나고 대단히 실망적인 결과를 손에 쥐고 난 다음, 나는 서가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고, 한 권의 책을 서점에서 구입했다.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 그리고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는 1965년 루이 알튀세르와 '자본론을 읽다'(Lire le Cpital) 집필에 참가한 후 바로 그와 결별하였고, 1974년 알튀세르의 방법론을 비판하는 '알튀세르의 교훈'(La Lecon d'Althusser)를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4월 11일 총선 이후 이 두 명의 각기 다른 2권의 책은 우리에게 풍부한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솔, 1996년 보급판 3판)에는 그의 유명한 논문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 짧은 글을 통해 '억압적 국가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구분하고 "우리가 알기로는 어떠한 계급도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 위로, 그리고 동시에 그 속에 그들의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국가 권력을 보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는 아래와 같다. 


- 종교 AIE(다양한 교회들의 체계)

- 교육 AIE(공적, 사적인 다양한 '학교들'의 체계)

- 가족 AIE

- 법률 AIE

- 정치 AIE(다양한 정당들을 포함하는 정치적 체계)

- 조합 AIE

- 커뮤니케이션 AIE(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등)

- 문화 AIE(문학, 예술, 스포츠 등) 



'억압적 국가 장치' - 검찰, 군대, 경찰 등 - 과 함께 정치적 지배의 수단으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현재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듯하지 않은가. 


언젠가 '대중들을 가르쳐야 된다'는, 혹은 이와 비슷한 유형의 말을 했다가 면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무슨 시대착오적인 계몽주의냐'며. 


그런데, 잘못된 생각 - 정권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국민은 범죄자이므로 사찰하여 구속시켜거나 일상을 파괴해야 된다 - 을 가진 정부가 억압적 국가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다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일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제 대부분의 대중들은, 그들 스스로 무식하지 않다고 여기며, 스스로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는 요즘, 그들의 무식하지 않음과 비판적 의식은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교묘한 호명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경우,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속에서 대중 스스로 사리분별을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그들에게 정확하고 비판적인 현실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방법이란 존재하기라도 하는 걸까? 


자크 랑시에르는 알튀세르와는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므로,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통치 불능의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이나 비판 속에는 결국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는 통치되어야 할 사회도 아니고, 한 사회의 통치체제도 아니다. 그것은 통치 불가능 자체이며, 이러한 통치 불가능성에서 모든 통치 행위가 그 기초를 찾아야 하는 그런 것이다. 

- 111쪽 



어제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고결한 것, 전체주의는 무시무시한 것'이 공식적인 담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이상주의자들은 앞으로 도래할 실질적 민주주의를 꿈꾸며 전체주의의 공포를 부정하고 있었다. 이제 이 시대는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서방의 한 정부는 무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수출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의 지식인들은 '민주적 개인주의'의 불길한 징조와 '평등주의'가 야기하고 있는 사회적 파탄을 공-사 모든 영역에서 발견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들이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체주의를 잉태하면서 인류를 자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변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단지 국제화된 자본의 지배에 두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민(民)에 의한 통치'가 보여주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정치 상황을 다시 분석하고 동시에 민주주의, 정치, 공화국, 대의제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파악해 보아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어제의 미지근한 애정과 오늘의 범람하는 증오를 뒤로 하고, 항상 위협받으면서도 역동적인 민주주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어 원서 표지 뒷면에 실린 글. 



그런데 불완전한 민주주의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민주적 개인주의'의 불길한 징조와 '평등주의'에 대해 한국의 보수적 지식인들과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믿는) 일반 대중들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실은 박정희 시대의 개발 독재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 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놀라운 형태의 전체주의적 사회 지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거가 끝나고 머리는 복잡해지고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참 슬프다. 이 짧은 글은 내 불길함을 루이 알튀세르와 자크 랑시에르에 기대어 푸념처럼 적은 것이니, ... ...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푸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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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esoo 2012.04.14 19:52 신고

    일단. 컴으로 쓰는게 아니라 이야기를 길게 쓸 수는 없고. 그 담으로 나는 진보적 지식인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또 글을 다 읽지 못한 상황에서 댓글을 다는 게 심히 조심스럽지마는.
    선거 끝나고 한겨레에서 경남 구미 등지에서 일하는 20대 노동자들 몇명과 인터뷰한 기사(제목은 열의 아홉은 나꼼수 모를걸요 뭐 이런거였음)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노동자계급에게 충고(?표현이 잘 기억이 안나는데)하고 오히려 지배층이나 대자본에 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나싶어요. 몇십년전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브레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서도. 느낌은 갈 수록 지식인이라는 사람들과 노동자는 멀어지고 있달까. 몇십년 동안 지식인은 자기들의 논리만 헤집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예전과 다른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니 과거의 방식은 어닐진대 소통하는 창구가 너무 없는 건 아닌가 싶네요. 인터넷에서는 내가 원하는 정보만 얻을 수 있으니 나만의 생각에 갇히기도 쉬운듯 하고. 그녕 두서없이 첫머리 글 읽다가 답 달아봅니다.

    • 지하련 2012.04.16 12:59 신고

      한국 사회에서는 '지식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새롭게 정의내려야할 듯해요. 4년제 대학을 나왔다고 지식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석사나 박사 학위 가지고 있다고 지식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최근 국회의원 된 이는 학위 논문 베껴서 학위를 받았으니), 도대체 지식인이란 뭘까요? 그리고 바람직한 지식인이란 또 뭘까요? ... 문제는 지식인의 자격이 없는 이들이 지식인처럼 매스미디어에 나온다는 게 큰 일이죠. 그리고 정작 지식인의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은 너무 소극적이거나 조용하거나 대중 소통 채널을 가지지 못했으니..



가끔 외국의 대도시에 나가게 되면, 그 도시의 어느 쪽에는 되도록이면 나가지 마라는 주의를 듣곤 합니다. 심한 빈부격차나 인종 차별로 인해 지역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분위기(경제적 능력이나 문화자본 등으로 형성되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서울은? 이를 시간적인 연대로 나누어, 70년대에는 어떠했고, 80년대에는 어떠했고, 90년대, 2000년대에는 어떠했을까요?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 포털에 올라온 기사 리스트를 보다가 다소 황당한 기사를 읽고 이런 글을 올립니다.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하면서 상임위 단계에서 책정한 영·유아 예방접종비 예산 400억원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도 0원으로 책정돼 저소득층 아동들이 당장 밥을 굶을 판이다.

소아과 전문의 하정훈씨는 9일 “국회에서 아가들의 필수예방접종 예산을 몽땅 다 삭감해 버렸습니다. 저출산으로 국가가 비상사태라는데 정작 아이 키우는 데 비용은 국가가 책임질 수 없다니 놀랍습니다. 우리보다 후진국도 아이들 접종은 무료로 해주는 나라가 많다는데….”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원래 400억원 정도만 추가로 예산을 잡으면 수많은 아가들이 필수예방접종을 무료 또는 저렴하게 접종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덧붙였다.

(중략)

한편 내년도 예산안에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도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010년도 예산안을 짤 때에도 전년도 541억원이던 결식아동 급식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285억원으로 편성한 바 있다.

서울신문. 12월 10일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1210008011 


다소 황당한 내용입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은 계속 하면서, 꼭 필요한 복지 예산은 날려버렸네요.

최근 들어 자주 노무현 정부 때가 떠오릅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정부에서 뭔가를 하려면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아가며 반대부터 하던 야당(지금은 여당이죠)과 언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들의 나라 대한민국과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언론에서는 현직 대통령 지지율을 보여줍니다. 제 기억으로는 5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2명 중 1명은 지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나라에는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나라 대한민국은 지금 여기에 없고, 우리들의 50% 이상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들의 나라가 우리들의 나라라고 믿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이미 이 나라는 마음으로는 조각 났습니다. 종교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빈부로 인해 그 갈등은 심해지고 이제 지역적으로 나누어져 마치 유럽의 어느 나라처럼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지역 간의 갈등이 생겨날 것이며, 분리 독립 운동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입니다.

통일이라뇨?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우리는 아직도 국회 의사당 안에서 '통일'을 이야기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된 정치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의라뇨? 날치기로 통과된 예산안에 대해 정의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무식한 대담함이 놀랍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가 믿는 정의와 그들이 믿는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맞는 표현일 지도 모르겠네요. 정의란 결국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마이클 샌델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나라를 찾아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떠났던 사람들은 결국 우리들의 나라들을 찾지도 만들지도 못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에서 사라지질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던 그들은 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에게 대해선 모르고 있습니다.

수십년이 지나 몇 번의 대형 홍수와 오염사태를 겪고 난 다음 다소 현명해진 척 하는 사람들은 4대강 복원 사업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꼬불꼬불한 강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대형 토목 공사를 벌이게 될 것입니다. 아마 그 때쯤에는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겠죠. 만일 그 때까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우리들의 나라로 남아있다면 말이죠.

그건 그렇고,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대형 토목 공사 하나 줄이고 복지 예산을 책정하는 일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우리들의 상식과 우리들의 정의로는 도대체 납득되지 않는 일이기에, 정치적인 일에 대해선 거의 포스팅하지 않던 제가 이런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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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tch 2010.12.11 19:26 신고

    더 무서운 것은 그 정부와 정치인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지하련 2010.12.15 16:49 신고

      어차피 의견이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하고 이야기를 통해 뭔가를 해결하려고 해야 하는데, 아직 그것이 많이 부족한 것같습니다. 나이드신 이들 중에는 무조건 밀어붙여야 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인 것같아요. ~.. 좀 나아져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도통 글을 쓸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회사 업무가 갑자기 늘어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고(프로젝트 예측 실패도 한 몫 했지만), 9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다음 독서모임 텍스트로 잡은 것도 화근이었다. 또한 두 세 권의 책을 번갈아 읽는 습관 탓에, ‘16세기 문화혁명을 읽는 동안 2권의 다른 책을 읽었다. 이번 주에 온라인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주문하고 싶어 안달이 난 터라, 걱정이다. 안 그래도 안 읽은 책이 쌓여있는데
 

1.


그 동안 읽은 책/저널들 중에서 몇 문장 옮겨본다. 단연코 포이어바흐의 말이 기억에 남지만(오래 전에 어디선가 읽었을 것이 분명한), 더 이상의 설명을 하긴 싫다. 다시 포이어바흐를 읽어야겠다.

불완전한 인간일수록 완전한 신을 갖는다’ – 포이어바흐

 


정말 그런 것 같다.
 

2.


과학자들이 연구개발비를 따려면 미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연구라고 말해야 돈을 줍니다. 일본은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하면 주고, 한국은 무조건 돈 된다고 해야 주죠. 이 때문에 학술원이 과학 정책과 연구를 주도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관료들이 나서서 하게 되고, 자연히 과학자들이 공무원에게 아부하게 되는 거죠.

- 이상묵 교수(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휠체어에 타서 강의하는 이상묵 교수의 저 지적은 비단 자연과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젠 인문학도 돈이 되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했다(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최근에는 인문학 전공자들의 창의성이 기업이나 비즈니스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참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돈 되는 창의성이지, 돈 안 되는 창의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 되는 창의성과 돈 안 되는 창의성의 구분법은 무엇일까? 창의성이란 돈과는 무관하거나, 도리어 돈 안 되는 종류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IT 기업에서만 10년 가까이 경력을 쌓았고, 미술 비즈니스를 하였으며, 문학과 예술사를 공부하고, 비즈니스 컨설팅 업무까지 한 나 같은 종류의 인간은?


레기오몬타누스가 사망한 뒤 발터는 스승의 유지를 이어 천체관측을 계속했다. 그가 천체관측에서 이뤄낸 최대의 개혁은 장기간에 걸쳐 체계적인 관측을 계속했다는 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통 하지나 동지, 춘분이나 추분과 같은 특정 시점에 산발적인 관측만 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이는 1세기 뒤에 나온 티코 브라헤의 업적에 앞서는 것이었다. 발터보다 43년 뒤에 태어난 코페르니스쿠스도 주의 깊게 제작된 장치를 사용해 몇 년에 걸쳐 행성을 추적하는 작업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며, 이를 통해서만 행성의 정확한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 '16세기 문화혁명', 508



티코 브라헤는 관측 정밀도의 극한적 향상이라는 근대 정밀 자연과학의 전제가 되는 과제를 처음으로 현실적 과제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를 위해 관측 기기를 부단히 개량하는 데 노력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일매일 꾸준한 관측을 30여 년간 지속했다. 당시에는 베르나르트 발터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는 직인의 수작업 및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다.
-  '16세기 문화혁명', 545



16세기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가며 티코 브라헤는 30여 년간 관측을 기록하였고 기존 관측 기록의 오차를 수정하였다. 한 마디로 돈 안 되는 짓을 지속했다. 그리고 이 기록으로 케플러와 뉴턴이 나올 수 있었다.

비즈니스 혁신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중퇴하고 빠진 것이 폰트font’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진정 창의성을 원한다면, 돈 안 되는 짓을 자유스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된다는 것이다. 한 때 내가 다녔던 대학은 돈 되는 학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던데, 얼마나 황당한 짓인지, 한국 사회의 근시안적 태도는 1,000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3.

각 정부는 골드만삭스(미국), 도이체방크(독일), BNP파리바(프랑스) 등 자국의 은행을 살리기 위해 도를 넘어서는 공적 자금을 쏟아부은 탓에 지금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제 은행들의 도산은 교묘하게 유보됐으나, 이번에는 예산 부족과 수익성이라는 이름 아래 각 정부의 공공 예산들이 대폭 축소되고 있다. , 경제 위기로 더욱 무거워진 부채 비중이 이번에도 사회복지와 공익 사업 폐기의 구실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르주 알리미(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크발행인), 2009 12월호.


지자체의 부채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고, 중앙정부의 부채도 심각하다고 이야기들 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더 큰 문제는 이런 심각함과 투표와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세르주 알리미의 저 의견은 한국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호소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긴 정치와 일상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정치가 잘 되던, 잘 되지 않던 우리의 일상은 어제처럼 오늘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서서히 올라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에 사람들을 깨닫기 시작하겠지만, 이미 주위는 난장판이 된 이후가 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차가운 물이 담긴 냄비 일 때부터 우리는 이 냄비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떠드는 사람이 있다면, ‘선동가, ‘미친 놈이니, 혹은 그러면 돈 돼?’라고 물어보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 뒤 문제가 현실화되고 심각해졌을 때, 냄비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말했던 이들을 비난하고 공격했던 그 대다수는 책임 지지 않는 선량하고 무지한 대다수로 변해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문제를 아는 이들은 침묵을 선택하게 되고 우리들의 사이에는 비난과 의심, 그리고 무기력만 남게 될 것이 뻔하다.


몇 자 적는다는 것이 길어졌다. 말 많은 세상인데, 말 하는 사람만 말하고, 말 하지 않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사회 구조적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보기 드물게 종교 간 갈등이 없던 나라에 심지어 종교 간 갈등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지금 보이지 않는 ,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기업에서는 글로벌을 강조하면서 진짜 글로벌이 뭔지 모르고, 사회 전반적으로 창의성을 이야기하지만, 창의성의 기본은 부단한 탐구와 관철, 장인적 수고, 그리고 수평적인 대화와 다양성에의 존중임을 알지 못하며, 정치권과 정부는 근시안적 태도에 사로잡혀 잘못 나아가는 국가를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대중적 인기와 멀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들을 고쳐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서로 번갈아가며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종종 암담해지고 실의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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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콩세알 2010.08.03 14:17 신고

    책이 900페이지나 되는군요. 왠지 꽤 많이 읽었는데도 '발터'밖에 안지났더라구요. ^^;; 연산식 같은 것은 휙휙 넘겨버린 탓에 시간은 그렇게까지 많이 걸리진 않았지만요.

    • 지하련 2010.08.04 10:10 신고

      '16세 문화혁명'에 나오는 수학에 대해선 따로 한 번 정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같아요. ~.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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