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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유감이다

조지수(지음), 지혜정원



어쩌면 나도, 이 책도, 이 세상도 유감일지도 모르겠구나. 다행스럽게도 책읽기는, 늘 그렇듯이 지루하지 않고 정신없이 이리저리 밀리는 일상을 견디게 하는 약이 되었다. 하지만 책 읽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나는 이제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날 일 조차 없이 사무실과 집만 오간다. 주말이면 의무적으로 가족나들이를 하고 온전하게 나를 위한 시간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이젠 그런 고민마저 사치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건 그만큼 미래가 불안하고 현재가 아픈 탓이다. 


근대는 "주체적 인간"이라는 이념으로 중세를 벗어났다. 현대는 "가면의 인간"에 의해 근대를 극복한다. 우리의 새로운 삶은 가면에 의해 운명의 노예라는 비극을 극복한다. 가면이 새로운 주체적 운명이다. (26쪽) 


Masks Mocking Death

James Ensor 

100.3 x 81.3 cm, Oil on canvas

1888, Staatsgalerie Stuttgart, Germany 



'가면'은 현대를 특징짓는 몇 되지 않는 단어라 생각하지만, 학자들은 '가면'이라는 단어 대신 '정체성(identity)'를 사용한다. 시뮬라크르와 정체성이 결합되면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이 결합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하지만, 비극적이라 여기는 건 나같은 근대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지도. 


거짓은 삶의 본래적인 양상이다. 문명과 문화는 허영과 기만을 자양분으로 성장한다. (26쪽) 


이십대 후반, 태어나 처음으로 자살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내 생의 모토를 '진정성'으로 삼았을 때, 나는 현대 문명과 문화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그 이후 내 마음대로 살았으니, 나에게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철이 없었다. 세계는 벽으로 둘러쳐져 있었으나, 나에게 벽이 없었다. 하지만 가면을 집어드는 순간, 벽에 손이 닿는 순간, 나는 사라지고 외부세계만 눈에 보였다. 


내적 사색과 사회적 조회가 좋은 삶의 조건이다. (135쪽) 


나는 내적 사색만 추구하는 인간이다. 사회적 조화? 그걸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뒤늦게 사회적 조화를 찾으려고 하니, 마치 수영을 하지 못하는 노인이 강을 건너기 위해 강물에 뛰어드는 꼴이라고 할까. 한 마디로 '찌질이'인 셈이다. 이 책의 부제가 '세상의 모든 찌질이들에게 바치는 헛소리 모음집'이니, 이 글도, 이 책도 헛소리의 한 종류로 구분될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하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에밀 시오랑이 자신의 태어남을 저주하였듯이, 나도 내 존재 자체를 저주하게 될까. 모를 일이다. 



* 관련 리뷰 * 

2003/01/25 - [책들의 우주/문학] - 내 생일날의 고독, 에밀 시오랑

2008/12/24 - [책들의 우주/문학] - 나스타샤, 조지수

2015/02/28 - [책들의 우주/문학] - 원 맨즈 독, 조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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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맨즈 독
조지수(지음), 지혜정원 


매우 적절했다. 아니 탁월했다는 표현이 좋을까. 산문집을 좋아하지만, 그건 문장이나 표현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은 그게 전부다. 하지만 진짜 산문집은 그런 게 아니다. 적절한 유머와 위트, 허를 찌르는 반전, 비판적 허무주의, 혹은 시니컬함, 그러면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혹은 의지. 그리고 지적이면서 동시에 풍부한 감성으로 물드는 문장. 


<원 맨즈 독>은 그런 산문집이다. 읽으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인터넷 서점의 리뷰들을 보았는데, 온통 찬사 일색이라 무안해졌다. 


대자적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 인간의 독특한 조건이다. 지성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세계와 나를 가른다. 나는 자연에 뿌리 내리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다. 그러고는 나의 존재 의의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자유와 의문은 동전의 양면이다.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낙원에서 나오는 순간 자유가 얻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된 존재로서의 나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인간은 독립의 대가로 실존적 고뇌를 겪는다. - 100쪽 


이런 문장은 철학책에서나 나올 법한데... 하긴 이런 문장이 나오는 철학책을 본 적도 없었다. 자신의 산문에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거의 보기 드물 테니 말이다. 


영국이 가장 먼저 근대 국가로 진입하여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동기는 그들에게 정치적 지혜가 있었고 이것은 당시에 영국시민 계급과 귀족들이 상당히 지성적이었던 덕분이었다. 볼테르가 본 바 영국에서는 지붕 수리공도 이미 하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무식하고 무교양하면 어리석게도 양보를 모르고 고집 불통이 되고 만다. 공동체에는 자기와 동일하게 생존과 번성에의 요구를 가진 상대편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만다. - 215쪽 


볼테르의 영국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한국적 상황을 꼬집는다. 좌우를 막론하고(내가 보기엔 좌도 없고 우도 없고, 우왕좌왕만 있는 듯하지만), 무식과 무교양으로 뒤집어쓰고 있는 한국은 17-8세기 영국보다 못한 거다. 책을 읽으면서 연신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지적인 비꼼이라고 할까. 그러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아마 근사한 독서가 될 것이다. 무릇 산문집은 이래야 된다. 



원 맨즈 독 One Man's Dog - 10점
조지수 지음/지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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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 10점
조지수 지음/베아르피


나스타샤, 조지수(지음), 베아르피, 2008


철부지 같은 생각이겠지만, 나는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순간이 다시 오더라도 지금의 내가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99%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후회한다’ 따위의 표현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 철부지 같은 생각이겠지만, 나는 내 깊고 처참한 후회의 심정을 그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각오(혹은 행위)로, 후회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텅 빈 심야의 카페에 혼자 앉아, 몇 병의 맥주에 취해, 문득 내 삶이 후회스럽다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취기 탓인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애의 실패 탓인지, 아니면 늘 최선을 다해 온 일상이 어떤 성공을 향해 연결되지 못한 채 뚝뚝 끊어진 채 내 발 밑에 쌓여있어서 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내 삶을 내 스스로 후회하고 있음을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그러자 눈물이 흘러나왔다.

마주 앉은 카페 주인과 이야기 중이었으나, 그도 딱히 나를 위로하진 못했다. 서른 후반의 사내와 마흔 초반의 사내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심야의 새벽까지 술 잔을 기울이는 풍경화는 아름답지 못했다. 지나간 사랑에 대해 이야기에 이미 식어버린 열정이 안타까웠고 몇 번의 실패로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가지는 충만한 여유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실은 보호 본능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은 실패였고 계속해서 실패해가고 있다. 행복할 줄 모르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나였다. 살기보다는 관찰하려 했고, 느끼기보다는 느낌을 이해하려 했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진실과 겸허와 소박함을 촉구했지만 먼저 나 자신에게 그것을 촉구했어야 했다.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생겼을까? 왜 나는 이런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을까? 그러고 보면 나에게 진심으로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다. 행복과 기쁨조차도 두려워했다. (219쪽)


소설 속 조지처럼 된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책은 두껍고 무거우며 600페이지에 이르지만, 활자는 크고 표현은 간결하며, 스토리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개울물처럼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며 흘러간다. 종종 작중 화자 조지의 사색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그것과 스토리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도리어 스토리의 어떤 방향을 암시까지 하면서 소설을 풍부하고 여유롭게 만든다.


사랑과 동정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 두 개는 서로 교차한다. 사랑은 종종 동정으로 변한다. 연인을 향한 동정은 사랑의 한 변용이다. 살아간다는 고통을 같이 겪은 연인을 향한 동정은. 공감과 측은지심이 같은 인간 조건에 묶인 연인을 향한다. 지친 채로 나이 들어가는 그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며 지나쳐 갈 사람이다. 젊었던 시절의 나의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그러나 동정은 사랑의 결과이고 파편이다. 동정이 사랑은 아니다. 사랑에는 그것 이상의 어떤 것이 있다. 질투가 사랑이 아니듯이 동정도 사랑은 아니다. (223쪽)


사랑에 대한, 일종의 연애소설처럼 읽히는 이 소설은 일상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어떤 행복이나 가족, 혹은 연인의 사랑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방황과 사랑을 위한 자유를 향해 우울한 표정을 한 채 달아나버린다. 사랑에 대한 표현은 많지만, 감미로운 키스나 열정적인 섹스, 혹은 피부와 피부의 맞닿음, 혀와 혀의 교차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사랑에 대한 사색이거나 나스타샤에 대한 관찰일 뿐이다.
 

나스타샤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곱슬거리는 단발머리를 바람에 찰랑거리며. 스커트를 입었다고 해도 어딘가 나이 어린 소년 같은 분위기이다. 봄의 전령으로는 그녀가 헤르메스보다 어울린다. 가볍고 가뜬하게 걷고 있다. 땅 대신 공기를 딛는 것처럼. 커피숍의 대리석 기둥에 무엇인가 반사되더니 그리스의 여신이 창에 나타난다. 흰색의 투피스를 입은, 아름답고 풍부한 갈색머리와 따뜻하고 깊은 눈을 가진 품위 있는 여신이. 가뜬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그리스 여신이.
신은 아름답고 연약한 피조물을 창조했다. 저 귀하고 아름다운 것도 소멸할까? 그럴 것이다. 먼지가 모두의 결론이다. 자연은 무심하다.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영혼뿐이다.(306쪽)


우리는 종종 어렴풋하게 차가운 이성이 원하는 바의 어떤 삶의 방향을 깨닫기도 한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무력해지며 비이성적으로 변하고 생각과는 무관하게 뛰는 심장 고동소리라든가, 길거리의 소음 속에서 들리는 어떤 착각이나 환청 같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이 누군가와의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지나쳐 온 현실 속에서는 그 경험은 쓸쓸하고 허무한 내 감정의 방황이거나 그냥 호르몬의 잘못된 분비일 경우가 많다. 쌓여가는 사랑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쓸모없는 엉터리 감정을 믿기 보다는 차갑고 건전한 이성을 신뢰하게 되는 셈이다.  

어쩌면 조지도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차가운 이성을 뒤에 숨기고 감정마저도 제어하려는, 아니 도리어 엉터리 감정으로 실패하기 쉬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찬란한 사랑의 감정은 모든 것을 마비시킨다.

나스타샤와 나는 둘만의 세계 속에 잠겨있는 듯하다. 모든 것이 정지해있다. 움직임도 시간도. 침묵과 고요함 속에 나스타샤와 나만 세계의 전부가 된다. 사람들 모두가 각자 하나씩의 세계를 가진 채로 우리와는 격리된다. 꿈과 환각 속에 잠겨든다.
“조지, 나는 무엇도 견딜 수 있어. 조지, 나를 사랑해줘. 사랑만 있으면 나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사랑해.”
나는 꿈에 잠겨 있고 나스타샤는 꿈 속에서 말하고 있다. 조금 취한 듯하다. (309쪽)


동구권 공산주의 몰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나스타샤와 조지의 사랑은 광대한 캐나다의 자연 속에서 그 빛을 더해간다. 미술사 교수인 조지는 지적이고 냉정하지만, 사랑 앞에선 무력하고 나스타샤는 언제나 솔직하고 투명하게 자신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지키고 가꾸어 가야 하는지 알았다. 둘 사이의 사랑에 어떤 제약이나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고 하지만, 실은 사랑은 소유다. 그것도 강력하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형태의 소유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한다. 끊임없는 문자질과 전화질이 아니라 눈빛의 마주침만으로도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인 셈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다. 하지만 눈빛의 마주침만으로 이런 감정을 가지기엔 우리들의 사랑은 너무 길고 길거리 도처에 이쁜 여인의 미소 섞인 시선이나 멋지게 차려입은 사내의 근사한 손길과 같은 위험 요소가 흘러넘친다.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 시작만 안전했을 뿐, 늘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스타샤는 혼자가 아니었고 이미 결혼한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현재의 조지 옆에는 언제나 과거의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사랑과 사려깊고 배려심이 많은 사랑 중 당신은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사랑과 이성적이고 차가운 사랑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실제의 현실의 사랑은 이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을 섞어놓은 것일까.

하지만 조지는 자신의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을 잠시 접어두고 사려 깊고 배려심 많은 사랑을 선택한 듯 보인다. 나스타샤의 과거는 변하지 않고 과거의 어떤 것으로 인해 현재와 미래가 위태롭다는 것을 조지는 알고 있었다. 실은 조지는 자신의 이기적인 사랑과 배려심 많은 사랑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스타샤는 아니었다.


나스타샤가 그날 고백한 사랑은 그러나 초연하고 의연한 것이었다. 나스타샤는 이를테면 자연의 딸이었다. 언제나 솔직하고 투명했다. 나스타샤는 자기의 현재 입장과 자기의 사랑을 순간적으로 분리했다. 그 사랑은 사랑 그 자체 외에 다른 것은 아니었다. 나스타샤는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 없이 자기를 내게 의탁한 것이다. 헌신과 신뢰와 자기 포기의 사랑. 그러나 이 사랑에 의해 족쇄가 채워지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다. 본래 운명이 그녀의 지배자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족쇄는 오히려 그러한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새롭게 채워진다. 그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므로. (253쪽)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러시아에 있는 남편 보리스와 아동보호시설에 내맡겨진 아니카를 자유의 땅 캐나다로 데리고 오기 위한 조지의 노력이 이어진다. 하지만 조지의 이러한 노력이 어떤 파국 - 새로운 갈등이나 사건의 시작이 아니라 - 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랑은 논리적이지도 지적이지도 않다. 도리어 시시때때로 변하고 비일상적이며 우연의 소산이다.


나스타샤는 온타리오 호수에 투신했다. 우리가 같이 앉아서 사진 찍었던 벤치에서 몸을 던졌다. 나는, 나스타샤가 보리스의 병이 낫고 아니카가 자랐을 때 자기에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스타샤는 죽을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608쪽)


조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나스타샤는 죽음을 택한다. 어쩌면 나스타샤는 자신의 죽음으로서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불가해한 사랑 앞에서 소설이 뒷걸음질 치는 부분이다.


사랑은 이성과 논리로 상대를 파악하지 않는다. 사랑은 분석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감과 일치이다. 나스타샤의 마음이 내 마음을 파고들어서 내 마음에 공감의 반향을 일으킨다. 이때 둘 사이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마음의 벽은 일거에 허물어진다. 언어는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부적절한 도구이다. 언어가 끝나는데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은 보여지는 것이지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419쪽)


소설은 끝나고 조지와 아니카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지만,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다. 소설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여주듯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불가해한 사랑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조지 같은 남자가 있었고 나스타샤 같은 여자가 있었을 뿐, 이 둘의 사랑마저도 종국에는 의심스러워진다. 그리고 결국 '내가 바라는 사랑은 저런 사랑이 아니야'라고 되뇌이지만, 실은 우리에게 사랑을 할 용기나 그것을 감내할 정신력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우리는 도리어 쓸모없고 엉터리같은 감정에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싣는 편이 더 나을 수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소설 '나스타샤'와는 또다른 어떤 파국이나 절망적인 실패를 향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조지의 사랑이 거짓이고 나스타샤의 사랑이 허위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내부에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분투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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