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6

카프카의 드로잉. 그리고

카프카의 드로잉을 한참 찾았다. 뒤늦게 발견한 카프카의 그림. 하지만 제대로 나온 곳은 없었다. 잊고 지내던 이름, 카프카. 마음이 어수선한 봄날, 술 마실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에 살짝 절망하고 있다. 한 때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나를 사랑하던 존재들이, 내가 그토록 원하는 어떤 물음표들이 나를 스치듯, 혹은 멀리 비켜 제 갈 길을 가는, 스산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탁, 탁, 지나쳤다, 지나친다, 지나칠 것이다. 내가 보내는 오늘을, 십년 전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똑같이 내 십 년 후의 오늘을 지금 나는 상상할 수 있을까. 뜬금없는, 나를 향한 물음표가 뭉게뭉게, 저 뿌연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새벽,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건 변하지 않았구..

희랍철학입문, W.K.C.거스리

희랍 철학 입문 - W.K.C.거스리 지음, 박종현 옮김/서광사 희랍철학입문, W.K.C.거스리(지음), 박종현(옮김), 종로서적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1년 초판의 1997년 17쇄본이다. 그리고 서광사에서 다시 나왔으니, 이 책이 계속 나온다는 건 그만큼 학생이 읽기 최적의 책이라는 셈일 게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희랍적 사고 방식- 질료와 형상- 운동의 문제- 휴머니즘으로의 반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 책은 철학에 관심있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되는 책 중의 하나다. 화이트헤드가 '철학사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이야기하듯, 플라톤 철학은 철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철학이라면, 플라톤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희랍(그리스) 철학 전반을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플라톤, '항연'(Symposion)

향연 -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이제이북스 향연 플라톤(지음), 강철웅(옮김), 이제이북스 * 이 글은 '독서모임 빡센'의 5월 모임에서 오고간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정리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관계로 문장의 비약이나 비문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궁금하신 점은 댓글을 달아주시면 아는 만큼 답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1. 번역서의 선택 를 옮길 때 늘 걸리는 것이 ‘필리아’(그리고 ‘에로스’)였고 말하자면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해맸다. 결국 선택은 ‘사랑’을 ‘필리아’에 주고 ‘연애’를 ‘에로스’에 주는 방식이었다. 그 때 해둔 고민 때문에 이번에는 그 말들로 인한 문제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았다. 같은 옮긴이가 앞선 에서는 ‘필리아’에 ‘사랑’을 주었다가 이제 에서는 ‘에로스’에 ..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구토 -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문예출판사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이휘영(옮김), 삼성출판사, 1982년(현재 구할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이 좋을 듯싶다.) 그냥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다. 이휘영 교수의 번역으로 수십 년 전 출판된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다. 헌책방에서 외국 문학들만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적이 있었고, 그 때 사두었던 낡은 책이다. 요즘에도 좋은 소설들이 번역되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단지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뿐. 그래서 과거에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소설들도 꽤 존재한다.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이다. 실은 앙리 베르그송이 아니었다면, 그는 최고가 되..

블랑쇼와 레비나스를 지나는 문학, 또는 언어

세상 속에 자리할 수 없는 불가능성들이 존재하는 황야에서의 고독. 문학은 우리를 그러한 황야로 이끈다. 문학은 언제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한다. - 레비나스 한참 머뭇거렸다. 마치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와 내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를 담아낸 듯한 저 문장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사물들을 말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존재로 하여금 메아리가 울리는 근원적인 언어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일 게다. 사물들의 존재는 작품 속에 명명된 것이 아니라 말하여지는 것이며, 말들은 사물들의 부재를 가리킨다. - 레비나스 그렇다면 한국어 문학 중에 그런 문학이 있었던 걸까? 오늘 잠시 들른 서점에서 모리스 블랑쇼 선집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기분이 묘했다. 블랑쇼. 매혹적이..

온 카와라On Kawara, 두아트서울

ON KAWARA JUL.23, 2008 - AUG.24, 2008 doART Seoul 흥미로운 의문이지만,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되는 문장이 있다. 특히 반데카르트주의가 횡행하는 현대에서 그 문장은 종종 한 개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온 카와라(On Kawara)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시간과 인간 존재에 대해 천착한다는 점에서 로만 오팔카(Roman Opalka)와 비교하였지만, 실은 로만 오팔카보다 더 개념적이고 추상적이다. 로만 오팔카는 회화적 형태에 대한 탐구를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로만 오팔카의 페인팅 작품들은 숫자들의 끝없는 나열들이 극도로 절제된 색채와 형태로, 현대 미니멀리즘 회화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