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카프카의 드로잉을 한참 찾았다. 뒤늦게 발견한 카프카의 그림. 하지만 제대로 나온 곳은 없었다. 


잊고 지내던 이름, 카프카. 


마음이 어수선한 봄날, 술 마실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에 살짝 절망하고 있다. 한 때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나를 사랑하던 존재들이, 내가 그토록 원하는 어떤 물음표들이 나를 스치듯, 혹은 멀리 비켜 제 갈 길을 가는, 스산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탁, 탁, 지나쳤다, 지나친다, 지나칠 것이다. 


내가 보내는 오늘을, 십년 전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똑같이 내 십 년 후의 오늘을 지금 나는 상상할 수 있을까. 


뜬금없는, 나를 향한 물음표가 뭉게뭉게, 저 뿌연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새벽,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건 변하지 않았구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Comment +0



희랍 철학 입문 - 10점
W.K.C.거스리 지음, 박종현 옮김/서광사




희랍철학입문, W.K.C.거스리(지음), 박종현(옮김), 종로서적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1년 초판의 1997년 17쇄본이다. 그리고 서광사에서 다시 나왔으니, 이 책이 계속 나온다는 건 그만큼 학생이 읽기 최적의 책이라는 셈일 게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희랍적 사고 방식
- 질료와 형상
- 운동의 문제
- 휴머니즘으로의 반발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이 책은 철학에 관심있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되는 책 중의 하나다. 화이트헤드가 '철학사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이야기하듯, 플라톤 철학은 철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철학이라면, 플라톤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희랍(그리스) 철학 전반을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적 맥락 속에서의 플라톤 이해와 현대적 관점에서의 플라톤 이해는 다르기 때문이고, 전자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 하는 과정이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정독은 최근 몇 년 전에서야 이루어졌다. 책도 꽤 어렵게 구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한 두 번의 도전 끝에 완독할 수 있었다. 특히 arte(아르테)*에 대한 설명과 운동(잠재태와 능동태)에 대한 설명은 그동안 명확하지 않았던 나의 이해를 보다 심화시켜 주었다. 

워낙 대단한 책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철학 전공자에게 필요하기도 하지만, 인문학 전반에게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 아르테arte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는 '덕'으로 번역하며, 긴 역자주석이 달린 단어이기도 하다. 정확한 한국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대 언어로 번역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점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이 단어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Comment +0

향연 - 10점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이제이북스




향연 

플라톤(지음), 강철웅(옮김), 이제이북스



* 이 글은 '독서모임 빡센'의 5월 모임에서 오고간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정리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관계로 문장의 비약이나 비문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궁금하신 점은 댓글을 달아주시면 아는 만큼 답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1. 번역서의 선택 



<<뤼시스>>를 옮길 때 늘 걸리는 것이 ‘필리아’(그리고 ‘에로스’)였고 말하자면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해맸다. 결국 선택은 ‘사랑’을 ‘필리아’에 주고 ‘연애’를 ‘에로스’에 주는 방식이었다. 그 때 해둔 고민 때문에 이번에는 그 말들로 인한 문제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았다. 같은 옮긴이가 앞선 <<뤼시스>>에서는 ‘필리아’에 ‘사랑’을 주었다가 이제 <<향연>>에서는 ‘에로스’에 ‘사랑’을 줄 수 있겠느냐는 고민도 <<뤼시스>> 때 대강 끝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의 <<뤼시스>> 번역을 읽은 이들은 이 작품에서도 당연히 ‘사랑’이 ‘필리아’를 가리키리라고 예단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주요 어휘가 ‘필리아’에서 ‘에로스’로 이행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말에서도 가장 유연하고 적응력 있는 어휘인 ‘사랑’을 ‘에로스’의 역어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 역자 후기, 205쪽 



고전은 어떤 번역서로 읽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위 역자 후기에서 볼 수 있듯, ‘필리아philia’와 ‘에로스eros’라는 두 단어가 있고 이 두 단어의 쓰임새는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그리고 언어에 따라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다르니, 철학과 같이 개념을 다루는 학문 분야에서는 단어의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 단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번역서는 읽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상당수의 한글 번역서들이 이해가 전혀 없는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강철웅 교수의 <<향연>> 번역은 가장 최근에 이루어졌으며, 나온 책들 중 가장 신뢰할 만하다. 



2. 향연Symposion 



Symposion은 ‘함께 술을 마신다’는 뜻이다. 술자리의 이야기거리로 ‘에로스’가 나왔을 뿐이고, 그 술자리 대화를 옮긴 것이 <<향연>>이다. 


이런 술자리는 고대 그리스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달빛에 핀 매화를 연모하여, 매화가 핀 친구의 집을 옮겨다니며 밤마다 술 마시고 매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평하고 그리고 시를 지으며 한 계절을 보내기도 했다. 가지고 배운 자들의 전혀 현실적 기여가 없는 한량짓이긴 하지만.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이런 이야기가 잠시 언급된 기억이 있다. 


실은 지금도 symposion을 열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 술을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사라졌고, 그것 물질적 빈곤 탓이 아닌 상대적 빈곤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양화소록
강희안 저/서윤희.이경록 공역

('양화소록'은 최근 새로 번역되어 나왔으나, 개인적으로, 지금은 품절인 눌와(출판사)에서 나온 '양화소록'을 추천한다. 자세한 식물 사진 도판이 함께 있는 이 책은 식물에 대한 이해를 함께 도울 수 있다. 최근 번역된 '양화소록'(아카넷)은 강희안이 쓴 부분과 역자가 쓴 부분이 잘 구분되지도 않고 역자의 해설이 과도하게 많아, 번역서라기보다는 연구서에 가까웠다.)




3. 플라톤의 이분법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단순히 그리고 솔직하게 그리고 어쩌면 어리석게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은 이런 것, 곧 아름다운 사물이 아름답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에 의해서이다는 것이다.” - <<파이돈>> 



다소 번역된 문장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플라톤은 <<파이돈Phaidon>>에서 소크라테스를 통해 개별 사물을 가능하게 만드는 보편개념을 가정한다. 이를 현대적으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우리들이 하나의 사물(즉 하나의 개별적인 사례)이 속하는 그 집합에 그것을 연관 지을 수 없을 때, 우리들은 그것에 대해서 과학적인 설명을 할 수 없으며, 그리고 그건 집합 개념의 지식을 뜻한다.” - <<희랍철학입문>>, W.K.C. 거드리 (박종현 옮김), 종로서적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 세계로 나누는 것은 현실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의 ‘이데아 세계’를 가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 ? 생성계의 우리는 이데아 세계 ? 존재계로부터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생성계의 우리는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원래부터 ‘결여된 존재’가 된다.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원죄’라고 할까. 로마 후기의 신플라톤주의자들과 중세의 시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칠게 말해, 보다 좋은 것, 보다 나은 것, 보다 완전한 것을 있고 그것을 향해 살아간다고 하는 순간, 우리는 플라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본질이 실존을 앞서는 것’이다. 



희랍 철학 입문 -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W. K. C. 거스리 저/박종현 역


(그리스철학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이다. 그리스 철학을 넘어 현대 철학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잠재태/현실태, 이데아, 질료와 형상, 운동, 아르케 등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4. 소년에 대한 사랑



소년에 대한 사랑은 <<향연>> 곳곳에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에 매우 흥미를 가질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 이야기는 동성애에 대한 역사적 기원이 되지 않을까, 또는 현대 동성애 이론의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동성애 관련 추천 도서에 <<향연>>이 올라와 있다. 일본 에도시대에도 소년 ? 동성애가 유행하였는데, 이 때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던 관계로 동성애가 발생했다고 한다. 


<<향연>>에서 나오는 소년에 대한 사랑도 정치경제적인 배경이나 사회적인 배경을 가질 것이나, 충분한 설명을 얻지 못했으며, 또한 <<향연>>에서 동성애는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5.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사랑, 에로스eros 



“휼륭한 자는 초대받지 않고도 훌륭한 자의 잔치에 간다”는 속담 패러디가 구사된다. 소크라테스에게 붙인 ‘아름다운’(kalos)이 ‘휼륭한’/’좋은’(agathos)과 통한다는 것, 아가톤(Agathon)의 이름이 ‘훌륭한’/’좋은’을 뜻한다는 것이 작품 전체의 흐름과 관련하여 주목할만하다. 

- 작품 안내, 11쪽 



이와 관련해 거드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Kalon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정확한 영어 해당어가 없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역어인 “beautiful”이라는 말로는 결코 적합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 거드리, <<희랍철학입문>>, 112쪽(박종현 역, 종로서적)




그리스적 의미에서 ‘아름다움’과 현대에서 이야기되는 바 ‘아름다움’은 전혀 다르다. 가령 우리는 여성에 대해서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지만, 남자에 대해서는 대체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들을 떠올려보라. 여성을 그린 조각상은 밀로의 비너스 정도 떠오를 뿐, 대부분 남자 조각상들이다. 그것도 미끈하게 빠진. 


그리스 시대는 ‘선한 것’, ‘좋은 것’이 바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를 ‘칼로카가티아 

Kalokagathia’라고 말한다. ‘선미善美’라고 하는데, 아르놀트 하우저는 ‘육체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의 균형이라는 이념을 내세운’다고 설명한다. 



지혜는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들에 속하는데,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에 관한 사랑(에로스)이지요. 그래서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일 수밖에 없고,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기에 지혜로운 것과 무지한 것 사이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 <<향연>>, 204b (129쪽)



우리는 편의상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을 ‘에로스’라고 옮기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설명한다. 그래서 에로스는 미학에서 중요한 단어가 되는데, 실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정의부터 내리고 난 뒤 에로스에 대해 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이라고 설명하는 통에 아름다운 작품이라든가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연모나 사랑 따위로 해석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곤 한다. 


아름다운 것에는 좋은 것, 선한 것, 완전한 것이 된다. 따라서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이데아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지혜이거나 진리일 것이다. 반대로 이데아에 속하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 것이다. 왜냐면 그것들은 좋은 것이며 완전한 것이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로스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이데아를 향해 가는 길목에 있는 어떤 사랑’이 된다.


에로스가 아름다움과 추함, 좋음과 나쁨 사이에 있다는 점, 그리고 신조차도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고 이 둘에서 결국 에로스가 가사자(죽을 수 밖에 없는 자, 인간)와 불사자(죽지 않는 자, 신) 사이의 중간적 존재 즉 신령(다이몬daimon)임이 귀결된다.

- 작품 안내, 19쪽 



헤르메스 조각상이다. 고대 그리스 후기, 초기 헬레네즘(혹은 그리스 낭만주의)에 속하는 조각상으로, 남성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표현되고 있다. 이 조각상과 비교해 그리스 시대의 여성 조각상은 그 유려함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6. 에로스와 불멸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의 과정을 에로스의 기능으로 설명하나, 이는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남녀 간의 만남, 결혼 등을 넘어서 있다. 아름다운 것 안에서의 출산을 거듭하며, 이를 통해 불사한다는 견지는 마치 리처드 호킨스의 ‘밈Meme’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앎으로의 상승’을 이끈다. <<향연>>에서 인용해보기로 하자. 


그런데 몸에 있어서 임신한 자들은 여인들에게로 더 향하고 이런 방식으로 사랑에 애타는 자들입니다. 아이 낳기를 통해서, 장차 이어질 모든 시간을 위해, 불사와 기억과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의 행복을, 자신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려 하면서 말입니다. 반면에 영혼에 있어서 임신한 자들은 … 몸에 있어서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많이 영혼에 있어서 임신하는, 그런 자들이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무엇을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이 적당한가요? 사리분별과 여타의 덕이지요. 시인들도 그리고 장인들 가운데 창의력이 있다고 말해지는 자들도 다, 바로 이것들을 낳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리분별 가운데서도 단연 가장 중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 국가들과 가정들의 경영에 관한 사리분별인데, 바로 그것에 붙어 있는 이름이 바로 절제와 정의입니다. - 208e, 209a 



몸에서의 출산 과정이 있듯, 영혼에서도 그런 과정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음을 <<향연>>에서는 디오티마를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오히려 아름다움의 큰 바다로 향하게 되고 그것을 관조함으로써, 아낌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많은 아름답고 웅장한 이야기들과 사유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거기서 힘을 얻고 자라나서 어떤 단일한 앎을, 즉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으로서의 앎을 직관하게 됩니다. - 210d  



즉 에로스는 결여된 자로서 살아가는 생성계의 우리들에게 완전한 앎을 획득할 수 있는 존재계를 향한 사다리를, 통로를 열어준다. 



7. 실존주의로 본 '향연'



하지만 우리는 완전한 앎을 획득할 수 있는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결여된 자로서의 우리는 과연 에로스의 도움을 받아 존재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 시대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신비주의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근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답게, 존재계의 흔적이 생성의 세계에도 있다고 여겼다. 그것이 근대적 사유, 생각하는 나였다. 그것은 존재계는 기하학적 세계이며, 그 기하학적 세계는 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여기는 세계관이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해석되어졌고 물질문명은 발달했다.  


그런데 과연 그랬던 것일까? 우리가 아는 기하학은 불완전한 것이며, 동어반복일 뿐이었다. 극미의 세계와 극대의 세계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귀결이고 ‘서로 평행하는 두 직선은 만난다’는 것이 19세기 후반의 수학에서 드러나게 된다. 


실존주의자들은 물 자체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나눈 칸트,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에서 더 나아가 그래서 현실 세계의 우리는 결여되었고 의미도 목적도 없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플라톤 <<향연>>의 ‘에로스’는 타락한다. 결여된 우리를 완전한 우리로 만들 수 있는 에로스 따위는 없다. 고작 결여된 우리를 세속적 방식으로 위로해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욕망이 될 것이며, 자포자기이거나 별의 지도를 잃어버린, 방랑하는 영혼의 타락한 벗이 될 뿐이다. 







Comment +0


구토 - 10점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문예출판사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이휘영(옮김), 삼성출판사, 1982년(현재 구할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이 좋을 듯싶다.) 




그냥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다. 이휘영 교수의 번역으로 수십 년 전 출판된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다. 헌책방에서 외국 문학들만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적이 있었고, 그 때 사두었던 낡은 책이다. 요즘에도 좋은 소설들이 번역되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단지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뿐. 그래서 과거에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소설들도 꽤 존재한다.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이다. 실은 앙리 베르그송이 아니었다면, 그는 최고가 되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소설가적 문장 구사와 궁지에 몰린 철학의 돌파구로서의 새로운 단어 만들기에 여념 없었던 사상가들의 책보다는 도리어 우리 존재와 일상의 무의미함, 고독,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자유를 이야기한 사르트르가, 어쩌면 우리 미래를 꾸리는 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구분되는 이 작품 ‘구토’는, 글쎄 읽기를 권하기 망설여지는 작품이긴 하다.

나는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돌아보았다. 현재 뿐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현재 속에 들어박힌 가볍고 단단한 가구며, 탁자며, 침대며, 거울이 달린 양복장 - 그리고 나 자신. 현재의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 있었다. 존재하는 것 그것이 현재였다. 그리고 그 현재가 아닌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나의 과거가 나에게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중략)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것일 뿐이다. 그 <뒤>에는 ... ... 아무 것도 없다.
- 128쪽



실은 자신을 ‘여분의 존재’라고 여기는 주인공 로깡땡을 소개시켜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데카르트를 거부하고 존재를 부정한다. 더 정확히 말해 ‘존재의 의미 자체’를 부정한다. 그건 그냥 ‘없는 것’다. 아니면 ‘없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견딜 수 없는 <구토>를 느낀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왜 나는 생각하는가? 나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존재한다. 생각한다. 나는 ... ... 왜냐하면 ... ... 으윽! 나는 도망친다.
- 133쪽



 

존재는 물렁물렁하다. (중략) 존재는 떨어진 전락이다. (중략) 존재는 불완전한 것이다.
- 134쪽



 

존재는 기억이 없는 것들, 사라져 버린 것들이며, 존재는 아무 것도 - 추억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 172쪽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의 관찰과 사색이 대부분이고, 사건도 거의 없다.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 과거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안니의 역할도 제한적이다(아무런 영향력이 없고 소설의 중요한 구성도 아닌 셈이다).

결국 이 작품은 사르트르의 실존적 철학을 향한 일종의 관문이라고 할까. 그 정도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 작품을 소설로 인정하는 순간,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관찰과 사색을 통해 끊임없는 형이상학적 탐구를 계속하는 실험적 작품이 된다. 소설적 구성이 복잡하거나 난해한 것도 아니고, 일기를 통한 서술과 관찰과 사색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적 내용 또한 잘 어울리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꽤 드물다. 더구나 존재와 자유에 대한 탐구라니.


나는 자유롭다.나는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내가 애써 찾아낸 모든 이유들은 사라지고 다른 이유는 이미 생각할 수가 없다. (중략) 나는 마당과 마당 사이의 길 속에서 고독하다. 고독과 자유, 그러나 이 자유는 어딘지 죽음과 비슷하다.
- 200쪽



사르트르는 문학에서 시작해 철학과 실천으로 향했지만, 그의 프랑스 철학계 후배들은 실천적 철학에서 시작해 문학적 글쓰기와 예술적 가상(또는 개념)에 빠져들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20세기 전반부와 후반부는 이렇게 나누어지는데, 이는 철학 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다른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독서의 경험을 선물할 테지만, 일반 독자에게 추천하기에는 이 소설은 꽤나 지루하거나 너무 심각할테니, 고전이라고 무작정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프랑스 갈리마르사에서 나온 사르트르의 '구토' 표지. 사르트르는 1936년 32세의 나이로 '구토' 원고를 갈리마르사로 보내 출판을 의뢰하지만, 거절당한다. 그 다음해 갈리마르사가 출판하기로 결정하고 1938년에 출판되어, 무명의 사르트르는 일약 프랑스 문단의 신예로 떠오른다.

Comment +0


세상 속에 자리할 수 없는 불가능성들이 존재하는 황야에서의 고독.
문학은 우리를 그러한 황야로 이끈다. 문학은 언제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한다.
- 레비나스


한참 머뭇거렸다. 마치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와 내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를 담아낸 듯한 저 문장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사물들을 말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존재로 하여금 메아리가 울리는 근원적인 언어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일 게다. 사물들의 존재는 작품 속에 명명된 것이 아니라 말하여지는 것이며, 말들은 사물들의 부재를 가리킨다.
- 레비나스


그렇다면 한국어 문학 중에 그런 문학이 있었던 걸까?

오늘 잠시 들른 서점에서 모리스 블랑쇼 선집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기분이 묘했다.
블랑쇼.
매혹적이면서 기묘한 고유명사이다.
 
침묵은 언어를 낳고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낳는다. 그리고 그 곳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 영혼의 심연. 그리고 어두움. 내가 꿈꾸는 언어가 있다면 밝혀지지 않은 어두움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지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
에마누엘 레비나스 저/박규현 역


Comment +2

  • 깊이 있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보면 참 대단해요. 전 평생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런건 타고 나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부끄럽지 않은 소설 하나 쓰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요.

    •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소설 하나 쓰는 목표를 가지고 노년을 향하는 것도 꽤 멋진 소망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런 마음(꿈)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 그걸 하고 있지 않을까요.~

ON KAWARA JUL.23, 2008 - AUG.24, 2008    doART Seoul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흥미로운 의문이지만,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되는 문장이 있다. 특히 반데카르트주의가 횡행하는 현대에서 그 문장은 종종 한 개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온 카와라(On Kawara)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시간과 인간 존재에 대해 천착한다는 점에서 로만 오팔카(Roman Opalka)와 비교하였지만, 실은 로만 오팔카보다 더 개념적이고 추상적이다. 로만 오팔카는 회화적 형태에 대한 탐구를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로만 오팔카의 페인팅 작품들은 숫자들의 끝없는 나열들이 극도로 절제된 색채와 형태로, 현대 미니멀리즘 회화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온 카와라는 이러한 회화적 전통과는 무관하거나 대립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 점에서 온 카와라는 현대 개념미술에 있어서 특별한 작가로 인정받는다. 그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면서 자신이 있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범위를 넘어,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앞으로 존재할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그 존재들의 증명 방식에 대해 탐구한다. 하지만 시간 앞에 유한한 우리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시간과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온 카와라에게 있어서 그 싸움의 방식은 우리가 있었던 한 순간의 시간을 그대로 옮겨놓는 방식이 된다.

사간동 두아트서울(doART Seoul)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한국에 온 카와라가 처음 소개되는 전시이면서 난해하기로 유명한 현대 개념미술이 어떤 것이며, 그 난해함 너머로 우리 현대인들의 존재 본질을 탐구하는 현대 예술의 한 극점과 만날 수 있다.

아래의 글은 두아트서울의 전시 안내문에서 인용한 것으로, 현재 두아트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I WENT
1968년 6월 1일부터 1979년 9월 17일까지 작가가 이동한 경로를 지도 위에 상세히 기록한 작품. 1년이 한 권의 책을 이루어, 총 12권으로 구성된다.

I MET
1968년 5월 10일부터 1979년 9월 17일까지 작가가 만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이름을 매일 매일 기록한 작품. 1년이 한 권의 책을 이루어, 총 12권으로 구성된다.

I GOT UP
1968년 5월 10일부터 1979년 9월 17일까지 작가가 매일 아침 일어난 시각을 기입한 엽서를 두 명의 지인에게 보낸 엽서를 모은 작품. 1년이 한 권의 책을 이루어, 총 12권으로 구성된다.
I GOT UP은 엽서에 본인의 메시지를 직접 쓰지 않고 고인으로 찍어 보내는 데 의의가 있는데, 이는 최대한 개인적인 궤적을 남기지 않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로 보여진다. 이것은 작가가 다른 작품들의 모든 글을 타이핑으로 입력하며, 또한 일본을 떠난 이후, 세계 공통어라 일컬어지는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ONE MILLION YEARS
1969년에 제작되어 이전 백만년(998031 BC)을 타이핑한 작품과 1993년 이후 백만년(1001980 AD)의 날을 타이핑한 작품. 1969년에 제작된 백만년의 과거편은 “그동안 살다가 죽은 사람들 모두를 위하여”라는 헌사로 시작되며, 1981년 제작된 백만년의 미래편은 “마지막 생존자를 위하여”라는 헌사로 시작된다. 그러나 두 작품 사이에 설정된 12년이 무엇을 뜻하거나 지시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PURE CONSCIOUSNESS
1998년 이후 계속 진행되어오는 프로젝트로, 1997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 7개의 날짜그림을 세계 각지의 유치원에 설치한 후 어린이들의 일상을 작품과 함께 촬영하는 조그마한 책자로 만들어낸다. 현재까지 총 17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며 그 도시들은 Sydney, Reykjavik, Abidjan, Shanghai, Leticia, Sisli-Istanbul, Avignon, Lund, Madagascar, Bad Blankenburg, London, Thimphu, Bequia, Toronto, Yusuhara Cho, Inari, New York이다.


8월 24일까지 하는 이번 전시를 놓치지 말기를 바라며, 온 카와라의 한국 전시를 진행한 관계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작권 공지]
- 중간에 인용된 글의 저작권은 '두아트서울'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 맨 위의 이미지는 두아트서울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왔으며, 저작권은 '두아트서울'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두 이미지는 두아트서울에서 발간한 ‘온 카와라 한국 전시 도록’을 제가 직접 찍어 올린 것입니다.
- 온 카와라 전시 작품은 두아트서울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doartseoul.com/en/exhibitions/introduction.asp?ExhibitionsPK=10 




Comment +0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경쟁 우위의 종말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리타 맥그레이스

경쟁 우위의 종말 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리타 군터 맥그레이스(지음), 정선양, 김경희(옮김), 경문사 "소니는 스스로 경쟁우위의 함정에.....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

반듯이 누워

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지음), 장영준(옮김), 그린비 노엄 촘스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의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지음), 권진아(옮김), 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너무 유명했던 탓에, 내가 그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것이 세계문학전집의 폐해다. 헤밍웨이의 소설들.....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유현경, <은주>
비 오는 날
데이비드 밴 David Vann 인터뷰 중에서 (Axt 2017.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