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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 소설을 읽는 내내, 루시디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 안에 들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그가 왜 이 소설을 왜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몇몇 이들은 이 소설을 영국의 아동법 등의 여러 법률에 근거한 법과 종교의 문제로 해석하지만, 그건 잘못된 해석이다. 판사가 나오고 소설의 많은 장면들이 법정이거나 법과 관계된 사람들로, 혹은 종교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를 법과 종교의 문제, 그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모든 이들이 탁월한 소설 비평가가 될 것이다. 


결국 읽는 이에 따라 소설에 대한 해석은 달리 되어, 터무니없이 낮게 평가되거나 비상식적으로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나에게 이 소설은 그간 읽어왔던 소설들 중 최고는 아니었지만, 살만 루시디에게 이 책은 최고의 소설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살만 루시디에게는.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피오나와 잭과의 관계. 피오나와 애덤의 관계. 이 두 관계는 서로 만나지 않지만, 이 소설의 큰 두 축이다. 하나는 성관계가 없는 중년의 판사와 교수 부부 이야기이며, 하나는 신앙으로 인해 수혈을 거부하는 한 소년과 수혈 집행 명령을 내리는 판사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관계 없는 듯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이 두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영향을 받고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궁극적으로 어떤 자유를 가지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우아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의외로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셈이다. 살만 루시디는 이걸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나이를 먹으며 어떻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가에 대해 이미 경험했다. 집을 나간 잭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피오나가 다시 잭을 받아들이게 되듯, 애덤은 수혈을 받게 한 피오나의 결정에 대해 찬사를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로 수혈을 거부한다. 이는 수혈 거부에 대한 법적인 기준에 질문이 아니다. 결국 '이것 아니면 저것'(키아케고르)이며, 우리가 종국에는 어떤 행동과 결정을 내리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내외적으로 무수한 갈등과 고민, 방황을 하지만,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아마 살먼 루시디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수한 이슬람 사람들을 떠올렸을 것이며, 자신의 무모한 신앙으로 지하드를 감행하는 이슬람의 젊은이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서방에서 태어났건 동방에서 태어났건 상관없이, 결국에는 그들의 조상이 믿었고 그들 가족이 지키고 있는 그 신앙을 따라, 그 자신 스스로의 종교적 신념과 자유의지로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를 향하는, 일부는 지하드를 벌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었던 셈이다. 아마 루시디는 이 소설 속에서 피오나가 애덤에게 수혈을 명령하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울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판결문은 동시에 애덤이 결국 수혈을 거부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고 결국 우리가 기대게 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일 뿐이다. 그것이 이해가능한 것이든 이해불가능한 것이든. 소설은 결국 우리의 무수한 시도들은 애초에 예정되었던 어떤 행동에 대한 변명만 만들어줄 뿐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꽤 비극적이며 소설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온다. 피오나와 잭은 같은 집에 사는 부부이고, 애덤은 예정된 대로 수혈을 거부한 채 죽는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들은 소설을 덮고 무수한 상념에 빠질 것이지만, 그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가 탁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우리의 자유 의지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고민하기 전에, 조언을 듣기 전에 우리는 이미 이것, 아니면 저것을 할 것임을 알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이번 처음이었다. 매큐언의 <속죄>를 영어로 읽다가 잠시 쉬고 있는 터라(아직도 영어 소설을 읽어내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칠드런 액트>가 처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번역이라서 그런가. 번역된 영어권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 다들 비슷해보이니 말이다(그러니 영어로 읽어야 된다). 


끝으로 조금 길긴 하지만, 피오나가 애덤의 강제 수혈 집행을 명하는 판결문 일부를 옮긴다.


A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에 근접해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심오한지 증명합니다. 또한 그의 부모가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을 신앙을 위해 희생시킬 각오를 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이 고수하는 교리의 힘을 보여줍니다. (...) 

바로 이 힘때문에 저는 멈춰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A는 17세가 되도록 종교적, 철학적 사고라는 격변하는 영역에서 다른 표본을 접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독교 종파는 신자들 간의 열린 논쟁이나 반대의견을 장려하는 문화가 아닙니다. 회중의 신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양'이라 부른다는데요. 적절한 명칭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A의 정신,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 ...)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 167쪽에 169쪽 



Iwan McEwan(1948 ~ )



칠드런 액트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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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의 책장수 The Bookseller of Kabul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Asne Seierstad (지음), 권민정(옮김), 아름드리미디어 





카불에서의 일상은 참혹하기만 하다. 실은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는 비교적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읽는 독자는 차분해지지도 않고 주관적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 남녀간의 사랑이 금지된 곳이라니. 아니, 남자의 사랑은 있지만 여자의 사랑은 없는 곳이 보다 현실에 근접한 표현일 것이다. 



A WOMAN'S LOVE is taboo, banned by the prohibition of the honor code of Pashtun life and by religious sentiment. Young people do not have the right to see each other, love each other, or choose each other. Love is a grave mistake, punishable by death. The unruly are killed, in cold blood. The massacre of lovers, or of one of them (always and without exception the woman), initiates the never-ending process of vendetta between clans. 

- Sayd Bahodine Majrouh(ed), <<Songs of Love and War - Afghan Women's Poetry>>(Other Press, New York), p.3 

 


책은 카불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술탄 칸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탄 칸과 여동생 레일라, 그의 아들 만수르는 영어가 가능한 보기 드문 가족의 이야기다. 인구의 사분의삼 정도가 읽지 못하는 문맹의 국가에서, 영어까지 가능한 가족의 이야기, 책을 파는 술탄과 그의 아내들(처음은 한 명이었다가 두 명이 된다), 아들들, 그 외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 이야기라고 하면, 어떤 기대를 할까. 


책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어려운 환경이지만 희망을 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가 아는 세계도 아니고 우리가 경험해볼 수 있는 세계도 아님을 알게 된다. 도리어 이 세계 속에서 부르카를 쓰고 다닌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를 궁금하게 여기며,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 


그 정도로 카불에서의 일상은 지옥에 가깝다. 특히 여자들에게 있어 이 곳은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카불. 그러나 참혹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20세기 초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이루어진 여러 근대적 개혁들의 실패, 외세의 개입, 부족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 등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라고 말하긴 쉽다. 



"예전에는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었는데."

고모 한 명이 중얼거린다. 그녀는 좀더 자유로운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는 결혼식 때 샴페인과 와인을 마셨다.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겠지."

고모가 한숨을 내쉰다. 나일론 스타킹, 서양식 옷차림, 팔을 훤히 드러낼 수 있던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르카를 쓰지 않던 시절은 이제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 133쪽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은 어쩌면 갑작스러운 몰락의 과정일 지도 모른다. 한 때의 과거 - 지금보다 훨씬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대를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서 술탄 칸은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예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자기와 가족의 미래를 믿으며 앞을 향해 걸어나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집안에서는 전제 군주일 뿐이다. 


책을 읽을수록 그들의 삶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살먼 루시디나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적대적인 글들을 발표한 여러 작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헌책으로만 구할 수 있는 책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적어도 젊은 남녀간의 사랑이 허용된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았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003년 사담 후세인 궁전 안 뜰에서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카불의 책장수 - 10점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아름드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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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밌을 것 같은데... 품절인 모양이군요 ㅠㅠ

    • 아니 딸기님께서!! ㅎㅎ 바쁘시겠지만 번개나 한 번.. 책 구해서 드릴께요. ^^

      예전에 이슬람문명에 대한 책은 한 권 읽었는데, 그건 역사책이었고 이 책은 현재 삶에 대한 책이니, 차원이 다르더군요. 객관적으로 서술해도 이 정도니, 솔직히 답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조선 시대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까지.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부른다

-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디일까?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야만일까? 그러나 레비-스토스의 생각은 다른 듯 싶다. 


"계몽시대의 철학이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사회를 비판하며 합리적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상대주의는 하나의 문화가 권위를 앞세워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거부했다. 몽테뉴 이후로, 그의 선례를 따라 많은 철학자가 이런 모순에서 탈출할 출구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하지만 이 상대주의가 우리의 일상에선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대체로 우리 주변 대부분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바 상대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더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선택받은) 문명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들과 다른) 이방인들은 야만의 세계에 속한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바 야만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 문명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보여준다. 가령 장신구 문화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야만의 형태다. 이제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나, 애초에 주술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루비는 유해한 기운을 물리치며, 사파이어는 진통효과를 지니고, 터키옥은 위험을 미리 알려주며, 자수정은 그리스어 '아메두스토스'의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술기운을 쫓아낸다고 수 세기 전까지 믿었기 때문에 그런 보석들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비싸게 거래되었다는 것을 요즘에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91쪽 


장신구는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더구나 그 부분은 내가 '야생의 사고pense'e sauvage'라고 칭했던 것이 생생하게 지속되는 부분이다. 우리 시대의 여성도 귀걸이를 착용한다. 그런 여성이나,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남자도 불멸의 물질로 소멸하는 몸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장신구가 물렁물렁한 곳을 딱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 93쪽 


이와 반대로 우리 스스로 야만적 형태, 주술적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꽤 당혹스러운 방식이어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곤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반문하기까지 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산타클로스가 디종 성당 앞 광장에서 불태워졌다. - 디종, 1951년 12월 24일

- 12쪽 


일종의 화형식이었는데, 보수적인 가톨릭의 입장에서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의 문화였으며 천박한 자본주의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종교 당국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신화를 대중의 머릿 속에 심어주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불순하게 '이교도화'하려는 시도를 신랄하게 규탄했다. 

-11쪽 


확실히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적이고 지독히 상업적이다. 그것에는 종교적인 것은 없다. 산타클로스를 두고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당국(프랑스 가톨릭)의 입장은 이해되고 당연해보이긴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이 행위가 얼마나 고대적이며 주술적인 것인가를 드러낸다. 


식인풍습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식인풍습이 일종의 약탈이나 살인 행위의 일종일 것이라 여겼던 나에게, 실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으로서의 식인 풍습은 매우 의외였다. 내 생각은 더 나아가 성경에서 언급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이것이 내 살과 피라고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이어졌다(<<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 성경의 일부 이야기들은 얼마나 닮아있는가).


민족학자들은 그 지역에 들어가 다른 가정 하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를 받기 전에, 구루병이 만연한 부족사회의 식인 풍습이 있었다. 가까운 친척의 시신을 먹는 것이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한 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고인의 살과 내장 및 뇌를 익혀 먹었고  빻은 뼈를 채소와 함께 조리해 먹었다. 여성이 시신을 잘라내서 조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까닭에, 시신으로 여성이 감염된 뇌를 다루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것이고, 신체적 접촉으로 인해 어린 아이에게도 옮겼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 123쪽 

(* 구루병 - 우리에겐 광우병으로 잘 알려진 '크로이츠 펠트야코프 병'을 의미함. 양의 경우에는 '진정병scrapie'라고 함. 지연성 바이러스로 인한 퇴행성 질환이며, 식인 풍습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식인풍습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알게 된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먹다'와 '성교하다'라는 단어가 문명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언어에서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는 것이나. 모권제 사회에 대한 추측은 잘못된 정보라는 언급은 기억해둘만 했다. 


민족학 연구가 발전하면서, 한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모권제의 환상에 종지부가 찍어졌다. 부권제 아래에서는 당연하지만 모권제 아래에서도 권력은 남성의 몫이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권제에서는 어머니의 남자 형제들이 권력을 행사했고, 부권제에서는 남편이 권력을 생사한다는 게 유일한 차이였다.

- 154쪽 


이 책에 실린 레비-스트로스의 글은 대부분 저널에 실렸던 것이라 그 길이가 짧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무척 시사적이면서도 그 소재나 주제가 흥미로워 추천할 만하다. 


내 경우엔 이 책을 다소 급하게 읽긴 했으나, 오귀스트 콩트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언급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 콩트의 책을 읽지 않았고 그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가 없었으나, 콩트의 실증주의적 태도가 후대 학문에 꽤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콩트가 이야기했던 그 이론들이 지금도 유의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아래는 니콜라 푸생의 <에코와 나르시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 메모해둔다. 


Echo and Narcissus

Nicolas Poussin(1594-1665), oil on canvas, 74 cm* 100 cm, 1630, Louvre Museum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무엇보다 그림의 구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선이 분산되며 서로 멀어진다. 나르키소스의 두 다리는 오른쪽을 향해 벌어졌고, 두 팔은 서로 반대방향을 향한다. 다른 두 인물, 즉 숲의 요정인 에코와 장례의 횃불을 쥐고 잇는 푸토의 몸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분산은 그림에서 윗부분을 차지한 나뭇가지에서도 반복된다. 이런 분산 방향은 메아리(숲의 요정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거절당하자 슬픔으로 몸은 없어지고 메아리가 되었다 - 옮긴이)의 청각적 현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메아리는 소리의 원점에서 점점 멀어지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가. 보들레르의 유명한 시가 그렇듯이, 감각적 자료들 간에 연상되는 이런 조응(correspondance)으로 푸생의 그림에서는 멜랑콜리, 즉 일정한 배색 효과로 강조된 회상에 젖은 서글픔이 느껴진다.

- 144 ~ 5쪽 



푸생의 그림에서 주조를 이룬듯한 분산이 온갖 모습으로 나타난다. 멍청한 듯 하면서도 기막히게 놀라운 일을 해내는 메아리의 물리적 현상에 내재된 분산이다. 따라서 메아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산책자와 여행자를 유혹한다. 푸생의 그림이 요정 에코와 초자연적 세계의 작은 특사(푸토)가 취한 상반된 방향을 강조함으로써 명백하게 드러낸 분산이기도 하다. 에코는 일관된 단조로운 색조로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바위의 형상으로 땅을 향하고 있다. 이런 대비가 구도와 색이란 상보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에코 요정의 헛된 회상과 나르키소스의 숙명적인 오해, 그리고 메아리의 무익함과 전능함을 하나의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 152쪽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 10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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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말아요. 난 지금 사랑에 빠졌거든요.

Don't Kill Me, I'm In Love



그러게, 사랑에 빠진 이를 죽이는 건 아닌 것같다. 하지만 그것이 불륜이라면. 레이몽 라디게의 소설 <<육체의 악마>>가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위험한 사랑만큼 진실해보이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위험한 사랑을 했듯, 젊은 날 우리는 모두 금기된 사랑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이 지나고 벚꽃이 피고 가늘기만 한, 얇은 봄바람에도 그녀의 손톱 만한 분홍 꽃이파리가 나부끼는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나는 애상에 잠기지 않, 아닌 못한다. 생계의 위협이란 이런 것이다. 


새장 속의 새를 아들은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새 한 마리 사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들마저도 남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거다. 




나라고 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냐만은,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다.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다, 라고 중얼거리지만, 그런 게 아니면 도대체 무언가. 인류가 신을 만들고 종교를 만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종류의 악행들의 시작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가 되기엔 어리석기만 하다. 다행인 것은 어리석다는 사실을 현대의 이론가들은 희미하게 깨닫기 시작했으니. 


새장을 보면, 늘 막스 베버가 떠오르고 구조주의자들이나 비트겐슈타인을 생각하게 되는 건, ... 내가 너무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는 걸까. 


아니면 새장 속의 자유마저도 부럽게 느끼는 걸까.


지난 봄날, 그 하늘거렸던 사랑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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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신 - 초월적 존재 - 를 부정하지 않으나, 칸트의 생각처럼 우리의 시대는 저 먼 세계와   거대한 단절이 있고 그 사이를 왕래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탓에, 무교에 가까운 나에게 절은 그저 관광지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부처님 오신 날, 아내가 절에 가자고 했다. 작년엔 뭘 했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절이라~ ... 하긴 긴 연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한 나에게 선택지란 없는 걸까. 





국립 현충원 안에 제법 큰 절이 있다고 했다. 국립 현충원은 입구만 보았을 뿐이고 그 안의 절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호국지장사' ... 





부처님 오신 날이라 사람들로 가득했다. 불심 가득한 신자들도 있었고 믿을만한 것들이 사라지는 21세기 어느 반도의 봄,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기대기 위해 온 사람들도 많은 듯했다.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절 안 가득 불경 읽는 소리와 목탁 소리, 간간히 들리는 종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불경 읽는 소리였던가. 


길게 늘어선 사람들 끝에 서서 기다린 끝에 절 밥을 먹고 내려오는 길, 현충원 내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었는데, 가끔 나들이 나오기 좋은 곳임을 알게 되었다. 





멀리 푸른 나무들과 아파트들이 보이는 것이 여긴 서울이 아닌 듯 싶기도 했다. 현충원 입구에서 위로 올라올수록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잔디밭이 있어서 ... 아래에선 언덕 위의 풍경을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입구 쪽에는 그늘이 없어 걷기 부담스러웠지만. 





언덕 뒤로 사당동과 상도동의 번잡스러운 풍경이 펼쳐져 있을 테지만, 시선은 그 곳에 가닿지 않았다. 서울에서 가장 좋은 명당이니까. 원래 중앙대 터를 여기로 잡았는데, 누군가가 이 터는 현충원 터가 될 터이니, 그 뒤로 잡으라고 했다고 들었다(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가 강의 중에 했던 말인 듯싶은데, 기억은 나질 않고.. ). 


 


사진을 찍고 여기저길 돌아다니는데, 도통 정리를 못하고 있다. 이런 식 - 블로그에 올리기 - 으로라도 정리를 해놓아야 겠다. 조만간 최근 일본 여행 기록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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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 10점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사계절출판사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지음), 송태욱(옮김), 사계절




결국 우리는 각자 자신이 꿈속에서 제조한 폭탄을 껴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껴안고 있는지 다른 사람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병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유럽의 전쟁도 아마 어떤 시대부터 계속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계속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 나쓰메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 (산문집) 중에서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이 번역되어 나온지도 몇 년이 지났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깨달았다. 그 사이 일본의 지진이 있었고 절망적인 원전 사태가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우리와 적대적일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의 전작 <<고민하는 힘>>과 함께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그는 이번에도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 특히 나쓰메 소세키에 의존하며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설명은 독자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강상중 교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를 인용하면서, '거듭나기twice born'에 기대어 고통스러운 번민과 나락으로의 절망이 새로운 앎을 열게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전작 <<고민하는 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윌리엄 제임스)는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보다는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다시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121쪽 


책은 짧고 단단하다. '사랑은 상대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181쪽)처럼 자신을 포함한 세상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주문한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테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 말에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은 틀림없이 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한 장에서는 "'자연의 법칙'이 '숭배되어야 할' 것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과학이 신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112쪽 


이는 계량적 세계의 질서처럼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종교적인 질문, 형이상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강상중은 신을, 종교를 부정하는 도킨스, 히친스 대신 <<신을 옹호하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의 테리 이글턴의 편에 선다. 결국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의미를 구하는 현대인에게 과학은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 

-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중에서


이번 겨울, 이 책은 흔들리는 현대인을 위한 작은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로 이어지는 작은 독서 여행의 시작이 되기를! 


강상중 교수 (출처: 강상중 교수 홈페이지) 



<<고민하는 힘>>에 대한 서평

2011/12/26 - [책들의 우주/문학] - 고민하는 힘, 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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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필름이 끊어져버렸다. 매번 다짐을 하지만, ... 결국엔 ... 또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나이가 들수록 허공 속에서 내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잦아진다. 술을 마시는 횟수는 줄면서 말이다. 

와인 몇 병을 마셨고, ... 그 맛에 반해 달리고 말았다. 좋은 와인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가 한없이 좋은 의미로 세상에 사용될 때를 아는 탓에, 그 종교를 믿어보기로 하자.

Band Aid의 노래다. 영국 팝뮤지션들이 모여 아프리카를 원조하기 위해 불렀던 노래....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이 노래를 떠올린다. LP로도 가지고 있는데...아, 그러고 보니, 내 오래된 오디오를 처리해야 하는데.. ~ 
 
다들 행복한 밤 되시길~.  

(Band Aid II는 오늘 처음 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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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무대가 되는 멜크 수도원은 9만여권의 장서를 가진 도서관을 가진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976년 레오폴드 1세(남부 오스트리아의 군주)는 지금의 멜크 수도원 자리에 자신의 성을 지었고 그의 후손들은 이 곳에서 지냈으며, 1089년 레오폴드 2세가 베네딕트 수도회에 성을 주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배경은 바로 이 시대부터 시작된다. 12세기 많은 수도사들이 멜크 수도원에서 성경을 옮겨 적으며, 도서관을 만들게 된 것이다.




현재의 멜크 수도원은 18세기 초 Jakob Prandtauer에 의해 새롭게 지어졌다. 이로 멜크 수도원은 중부 유럽의 대표적인 바로크 건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수도원 건축물의 발달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구교의 위기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 1545 ~ 1563) 이후 많은 수녀회, 수도회가 생겨났으며, 기존 수도회도 개혁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자연스럽게 수도원 건축물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고 카톨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지역의 귀족들과 국왕들은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개신교에 대응하여 수도원 건축물에 지원을 한 것이다.


멜크 수도원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앙과 믿음의 상징인 수도원도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무관치 못했다는 점은 종교가 역사 속에서 성스러운 신앙 이전에 막강한 정치적 권력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 ‘기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10세기 이후 세속의 군주들은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하며 일반 민중으로부터의 지지를 구하고 종교 권력으로부터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력을 종교에 아낌없이 기부하였다. 중세 후기의 교회 건축물들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지어진 것들이다.


참고 문헌)
프레데렉 다사스,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시공디스커버리
멜크 수도원 홈페이지 http://www.stiftmelk.at/englisch/index.html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elk_Abb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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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ian. The Young Englishman. c.1540-1545. Oil on canvas. Palazzo Pitti, Galleria Palatina, Florence, Italy


이 오래된 초상화는 16세기에 제작된 초상화들 중에 가장 뛰어난 것들 중의 하나에 속하리라. 16세기 베네치아 최고의 예술가였던 티치아노는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영혼의 숨결까지 담아내는 듯 보인다. 르네상스 시기, 일군의 화가들의 붓에서 시작된 위대한 초상화 양식들은 새로운 시대의 한 획을 그으며, 20세기까지 이어진다. 양식의 변용과 혁신을 거듭하면서.

초상화 양식의 역사와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아래 초상화를 보자. 이 흥미로운 초상화는 티치아노가 교황 파울루스 3세(재위 1534 - 49)의 손자를 그린 작품이다.



Titian. Portrait of Ranuccio Farnese. 1542. Oil on canvas.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권세가의 자제라서 그런 걸까. 고종희의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에서 한 문장을 인용해본다. "아이의 경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12세에 기사가 되었고, 베네치아에 거주하면서 어린 나이에 산조반니푸르라리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는가 하면 14세에는 나폴리의 대주교가 되었고, 1년 후인 15세에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긴 하다. 이 때 교황은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종교 권력이 세속 권력과 한 판 전쟁을 벌이는 시기였던 16세기의 그리스도교는 현대와는 많이 달랐다. (종교, 또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적인 양식이므로, 다양한 변화를 겪어 왔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종교와 신앙이 없다. 무한자의 세계를 유한자가 알 수 없으므로 무한자의 세계란 결국 철부지 같은 유한자들의 입맛에 맞게 편성된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윌리엄 오캄의 세계가 아직도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리석은 신앙인들은 윌리엄 오캄의 극적인 신앙에 대해 그 어떤 감동이나 전율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결국 초상화라는 양식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양식으로 시작되었다. 작품의 완성도 후대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지만,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프로퍼갠더로서의 기능도 수행하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예술 양식의 자율성에 대한 추구라는 것이 지극히 현대적인 태도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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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태양 아래 - 10점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윤진 옮김/문학과지성사




사탄의 태양 아래 Sous le soleil de Satan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폴 장 툴레가 좋아하던 저녁 시간이다. 이맘때면 지평선이 흐릿해진다. 상아색의 구름 한 떼가 지는 해를 감싸면서 하늘 꼭대기에서 땅 밑까지 노을이 가득 차고, 거대한 고독이 이미 식어버린 채 퍼져나가는 시간이다. 액체성의 침묵으로 가득 찬 지평선 … … 시인이 마음 속에서 삶을 증류하여 은밀한 비밀, 향기롭지만 독을 간직한 비밀을 추출해내던 시간이다.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팔과 입을 가진 사람들이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다. 큰 길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여기저기 불빛이 비친다. 시인은 대리석 탁자에 팔꿈치를 괸 채 이 밤이, 마치 한 송이 백합처럼, 조금씩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 11쪽




솔직히 이 소설을 추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과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에 대해 진지한 사람이라면, 베르나노스는 한 번쯤 읽어야 할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소설은 깊고 우아하며, 그러면서 처절하고 고통스럽다. 이 소설도 그 고통 속에서 시작한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서사는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생의 굴레, 신의 존재, 자신의 믿음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갈등, 그로 인한 환각과 맹목, 죽어가는 시간과 자신의 영혼뿐이다.

그리고 소설은 지평선이 흐릿해진 저녁 시간에서 시작해 아침을 기다리는 것으로 끝이난다(어쩌면 아침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이야기는 내내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 있는 것이다(마치 우리들의 현대적 삶처럼).


“아! 아! … …” 울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이 말을 되풀이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볼 때처럼, 매 순간이 돌이킬 수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아무리 짧은 밤이라 해도, 아침은 언제나 너무 늦게 찾아온다. 셀러멘은 어느새 입술 연지를 발랐고, 주정뱅이들은 술에서 깨어났다. 밤의 향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녀는 뜨겁게 달아오른 몸이 아직 식지 않은 채 하얀 시트 속으로 숨어든다. … … 아침은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 …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곳에 유일한 정의(正義)가 불현듯 찾아올 것이다.
(* 셀러멘: 몰리에르의 극에 등장하는 여인으로, 많은 남성들의 연모의 대상이다. 남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여자를 말한다: 옮긴이)
- 274쪽




프랑스와 모리악은 베르나노스에 비하면 너무 밋밋하고 평면적이다. 하지만 베르나노스는 단순한 표면 밑의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며, 그 고뇌하는 정신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래서 맞이하게 되는 것이 어떤 죽임일지라도 말이다.

죽음을 각오한 신앙, 혹은 믿음.


그러나 종교적 열정이나 신앙마저도 인스턴트 음식이거나 자신의 건강을 지속시켜주는 영양제처럼 변해버린 요즘,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이 소설은 너무 낯설고 정신적이다. 마치 중세의 어느 시대를 거쳐가는 것처럼, 어둡고 축축하며 고통스러운 종교적 환각과 환청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베르나노스의 인물들은 그 속을 꼿꼿하게 선 채 지나가며 울부짖는다. 휴즈의 말대로 ‘인간의 위대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고통스럽고 중세적이며 기사도적이었다.’(H.S.휴즈, 현대프랑스지성사, 문학과지성사, 135쪽)

베르나노스의 주인공들이 주로 신부이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소설은 종교 소설이 아니다. 그의 소설이 가치있는 것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서, 인간의 영혼이 현대의 물신주의 속에서 소외당하고 버림받으며, 심지어 분열되어 자신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할 때, 분명한 목소리로 세계를 향해 나는 살아있고 고통받지만 앞으로 나갈 것이고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내 삶, 내 신념, 내 확신, 내 믿음의 존재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지 묻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에 있다. 마치 현대라는 강물이 바다를 향해 시류에 휩쓸려 바다로 흘러갈 때, 그의 인물들은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통스러워하며 절규한다. 심지어 그의 편에 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귀한 신마저도 그의 옆에 없음을 직감했을 때조차도.




모리스 삐알라 감독이 연출한 '사탄의 태양 아래'(1987) 트레일러. (* 한국에서도 비디오로 출시되었으나, 오래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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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정승우(지음), 책세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지만, 다니면 다닐수록 교회가 바람직한 신앙을 추구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탓에 몇 번 나가다가 그만 두었다. 이러한 결정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기독교 교회가 보여주는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은 도리어 나로 하여금 무신앙으로 이끈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가끔, 매우 드문 경험이긴 하지만, 나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소수의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배타성, 편협함, 그리고 맹목적인 전투성 때문이다. 신앙이 사라진 이 시대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신중함과 관용, 사려 깊음을 가진다는 얼마나 좋을까. 아래의 인용문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지적이 될 수 있겠다.


사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예수에 관한 이해는 고백의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다. 즉 ‘예수가 누구였는가who was Jesus’라는 역사적 물음을 생략한 채, ‘지금 나에게 예수는 누구인가who is Jesus to me’라는 실존적 고백에 기초하고 있다.
- 11쪽
히틀러에 항거했던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신앙적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값싼 은혜’를 비판했다. ‘십자가를 메고 나를 따르라’는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을 죽을 때까지 따르고자 하는 행동이 동반되지 않은 신앙은 값싼 믿음에 불과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이는 당시 히틀러 정권에 순응과 침묵으로 일관했던 독일의 교회를 향한 간접적 비난이기도 했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예수의 보혈로 구원받고 천국 간다는 개인주의적인 신앙 형태야말로, 바로 본회퍼가 가장 경계한 값싼 은혜의 전영이라고 할 수 있다.
- 12쪽



이 책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책이 아니다.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기 위해,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은 객관적 관점에서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여러 연구자들의 성과를 모으고 있으며,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짧은 개론서에 가깝다.  이 책에 나온 어떤 해석에서는 ‘예수’는 후대의 사람들이 조작한 상상 속의 인물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신약성서의 5대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말씀들 중, 진짜로 예수가 말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전체 중 18%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해석들은 경건한 신앙심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근대의 산물이다. 18세기 말에서 시작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문제제기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양한 견해들 - 종말론에 경도된 유대 예언자,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의 회복 운동을 벌인 인물 등 - 속에서, 나는 예수에 대한 관심보다는 예수를 신적 존재로 만들어 숭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태도가 궁금해졌다.


그 당시의 역사적인 환경(context) 속에서 종교나 신앙 태도도 변하기 마련이다. 즉 예수가 살았던 그 시대의 가르침과 종교적 의식이나 태도는 현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렇게 볼 때 기원후 1세기의 그리스도교와 현대의 구교나 신교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종교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옛날의 예수와 현대의 예수가 전혀 다른 존재이듯이 말이다.



결국 종교란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인 셈이다. 그런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맹목적인 신념이나 배타성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기독교에서는 더 심한 듯 보이는데.



예수가 역사이든 신화이든, 이미 믿고자 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또한 역사 사료나 객관적 근거를 통해 예수가 어떤 인물이었던가를 따져 묻는다고 하더라도 신앙과는 무관한 것이다. 우리가 초월적 존재를 향해 끊임없는 경배를 해온 것은 신석기 시대 이후부터 계속된 일이며, 우리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어떤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신앙심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종종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까지 한다. 그 점에서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는 일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나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신앙이 사려 깊고 신중해지며, 타인에 대해, 타 종교에 대한 배려심이 늘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정승우 지음/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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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무한Ethique et Infini』
엠마누엘 레비나스와 필립 네모와의 대화, 양명수 역, 다산글방. 2000





분명 앞으로 펴쳐질 100년 동안 윤리, 또는 윤리학은 첨예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왜냐면 우리의 사유가 '존재'에서 시작되었기에 그 존재가 허무로 휩싸이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퍽퍽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존재는 부정되기 시작했으며 존재가 부정되기 시작하는 순간 '생의 허무(vanitas)'는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존재의 철학들(이 말이 가능하다면!)은 대학 강단에서, 먼지로 뒤덮인 책 속에서 걸어나와 거리를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

레비나스는 그 철학들의 우두머리격이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몇몇 명징한 말들로 독자를 감동시킨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 가지 못하고 너무나도 착한 이 사람은 타자에 대한 책임만을 말할 뿐, 자기자신에 대한 책임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책임성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성이다. 그러므로 내 문제가 아닌 것에 대한 책임성이요 얼핏 보면 나와 상관없는 것에 대한 책임성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와 관계가 있고 내게 얼굴로 다가오는 것에 대한 책임이다'

타자에 대한 책임이란 정말로 중요한 문구이다. 하지만 갑자기 '나'로 살아온 역사가 '나를 잊어버리고 타자만 배려하는' 역사로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이 '차이의 역사'를 증언한다면, 그래서 '타자의 배려'만을 강요한다면 그리고 레비나스가 이처럼 말하기를 계속한다면 나약하고 외롭고 지친 '나의 영혼'은 누가 돌볼 수 있는 것일까.

레비나스는 우리에게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학자이다. 그래서 그의 사유는 포스트모던의 주요 테마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는 어떤 부정만을 우리에게 가르쳐줄 뿐이다. '있음'으로서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

그는 '윤리의 증언은 앎이 아닌 계시'이며 '윤리란 거룩함의 요청'이라고 말한다. 그가 끝내 의지하는 곳은 '성스러운 종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철학의 어려움과 종교의 위로>이다. 왜 그는 종교로 발길을 돌릴 것일까. 이 세상은 다시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되었고 그것은 어떤 계시로 이루어진 세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해명을 구하고자 할 때 과거의 빛나는 철학적 영광은 이제 피바랜 청동거울로 변하고 오직 신만이 그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다시 중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는 옛 스승들이 그랬듯이 '불경'해져야 한다. 불경해져야 한다. 거친 황무지로 추방당한 존재로서 직접 맨 몸으로 세상과 대자적 위치에서 다시 존재를 세워야하는 것이다. 인생의 자그마한 위로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이 세상을 해명하는 의미에서의 종교란 고귀한 것을 추구하는 학자에게 매우 치명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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