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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이렇게 비 올 땐 쇼팽이구나. 

쇼팽의 녹턴만 들으면 왜 고등학교 때 가끔 주말마다 가던 창원 도립 도서관 생각이 나는지 몰라. 

노오란 색인표를 뒤져가며 책을 찾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 

혼자 온 나를 사이에 두고 앞서 책을 빌리던 아저씨는 무슨 책을 빌렸나 뒤에 빌린 그 소녀는 무슨 책을 빌렸나 궁금해 했지. 

아무 말 없이 서서 물끄러미 창 밖을 보며 아주 잠시 내 미래를 생각했어. 

그 옆을 지키던 네모난 색인표를 넣어두던 서랍장과 책들 사이로 지나는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들 사이로 계단이 이어지고 

해가 살짝 기울어, 도서관 앞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할 때쯤 나들이 나선 여학생들의 깔깔거리던 소리들과 ... 

지금도 그 자리에, 그 도립도서관은 그대로 있을려나. 

내가 타고 다니던 그 시내버스도 그대로 있을려나. 

그렇게 내가 짝사랑하던 그녀, 그녀의 흔적들도 그대로, 그 곳 어딘가 숨겨져 있으려나. 남아 있으려나. 

이렇게 비 올 땐 쇼팽이구나. 

얇고 슬프지만, 단단한 피아노 소리가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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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철수가 남의 일 같지 않다. 하긴 나이 들고 남의 일 같지 않은 일이 한두 가지일까. 


지금 고향인 창원(마산, 진해 포함)도 경기가 엉망인데, 그 곳의 경제를 지탱하던 한 축인 조선업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STX조선이 무너지자, 관계된 여러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월세나 전세집이 나가지 않으며,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심지어 어린이집들까지 폐업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기업의 생존은 기업 구성원을 너머 그 지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군산에서의 GM 철수는 GM군산공장에 다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주 중앙선데이에서 <한국GM사태로 본 '주식회사 대한민국' 구조조정>이라는 특별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이번 GM사태는, 실은 예상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대해 나도 깊이 공감한다.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GM는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죽다 살아났다. 이 때 해외 공장은 후순위로 밀린 상태인 셈. 그리고 2014년에 취임한 CEO 메리 바라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돈이 안 되면 철수한다"라는 신념으로 유럽에서 쉐보레를 철수하고 오펠은 팔았다.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 공장을 닫았다. 그리고 GM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과거 한국 정부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부터 GM 철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두고 준비해야 되는 것이다(하지만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를 말해서 뭐라고 할까. 그 정부 밑의 산업은행 또한!).


중앙선데이의 관점은 아래와 같다. 


정부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 구조조정에 익숙해진 금융 업체와 기업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만 쳐다보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 GM뿐만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STX조선, 금호타이어 등 수많은 기업이 이 같은 함정에 빠져 허둥댄다. 


BCG의 TURN(기업 구조조정 및 회생)부분 대표인 라스 파스테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톱다운(하향식) 구조조정에 대한 언급을 인용해보자면, 


"경쟁력 개선보다는 금융에 초점을맞춘다. 어떻게 하면 추가로 투자를 유치하거나 저금리 자금을 끌어다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할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어떻게 받을 지 궁리만 하게 된다." 


현재 한국GM의 접근법이나 한국정부, 산업은행의 접근법도 톱다운이다. 그러나 투자 유치나 자금 조달에 대해서 관련 사모펀드 관계자들은 부정적인 의견이다.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플랜이 없다. 재무적 문제는 자금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지만 전망 있는 사업 계획의 부재는 다르다. 나라면 투자하지 않는다." 


이에 라스 파스테는 "하향식(Top-Down)이 아니라 상향식(Bottom-up)으로 접근해야 한다. 생산과 영업 현장을 샅샅이 뒤져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만들어 생존 가능한 길을 찾아내야 한다. 임금 구조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대우해양조선에 대한 접근법에 대해서도 "공적 자금을 거제 지역 실업 대책이나 대안 산업 발전에 썼어야 한다"는 관련 전문가의 언급을 기사에서 인용하기도 한다. 


아마 다들 아래와 같은 관점이 담긴 기사들를 한 두번은 읽었을 것이다. 


한국 GM의 생산량은 가장 많았던 2011년에 비해 40%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적자는 9000억원에 달했다. 내수 판매, 수출 모두 줄었지만 임금은 꾸준히 올랐다. 2013~2016년 성과급은 매년 1000만원씩 지급됐다. 이 기간 기본금은 해마다 2.7~5% 올랐다. 


여기에 대해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GM 사태는 '철밥통' 노동자 때문?>라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GM 사태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소리 소문 없이 작은 기업들은 문을 닫고 있다. 임금 체불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이라고 해서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에 대해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게 된다. 


많은 부분 중앙선데이의 의견에 공감하는데, 무엇보다도 대기업 노조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직원 협의체가 있는 회사를 다니긴 했지만, 고만고만한 중소기업에서의 노조나 직원 협의체는 큰 힘이 없다. 특히 IT 기업에서는. 업계 자체가 워낙 이직이 자유롭고 프리랜서도 많기 때문에 노조 결성에 대한 필요성도 많이 느끼지 못한다. 실은 임금 체불을 하거나 퇴직금 미지급 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바로 관공서나 법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조가 개입될 여지가 적고 있다손 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공적 인프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지(정부나 유관 기관의 정책), 노조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아마 IT 뿐만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들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즉 대기업 노조는 그냥 그들만의 세상이고 그들만의 리그다. 동시에 기업이 지역 사회나 나라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해서 계속 정부의 정책 지원이나 공적 자금 투입은 한 번 고민해볼 문제다. 도리어 그 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을 그만두게 될 사람들의 재취업이나 인프라를 지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후자의 방식은 아직 준비되지도 않았고 준비하기도, 실행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앙선데이의 특집 기사들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나 산업 은행의 역할이 더 중요하며,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하향식이 아니라 상향식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다. 


마지막으로 BCG의 라스 파스테의 의견을 인용해본다. 원래 컨설팅 펌 사람들은 좋은 말만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기 위해선 귀기울여 들을 필요도 있다. (군터 뒤크라면 아니라고 말했을 테지만) 


-평소 '지속적인 강박 관념(Constant Paranoia)'을 강조했는데

"그렇다. 경영자는 언제든지 경제와 시장 상황이 바뀌어 회사가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매 순간 긴장해야 한다. 요즘처럼 경쟁이 살인적인 상황에서는 상장 기업 세 곳 가운데 하나가 5년 안에 사라진다. 50년 전에는 20곳 가운데 하나가 망했다." 

-위기의 자동차 기업을 되살리기 위해 또 다른 조언은 무엇인가.

"난 디지털을 강조하고 싶다. 많은 경영자가 디지털을 구조조정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 회사를 포함한 모든 비즈니스 리더들은 디지털 기술에 투자해 고객의 경험을 풍요롭게 하고 상품과 서비스 질을 높이며 내부 효율을 개선해야 한다." 

-상향식 분석을 해보니 뽀족한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발견되지 않으면 상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생존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정부의 지원금에만 기대 살아야 하는 기업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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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두터운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났다. 비가 올 듯 구름들이 몰려들었지만, 더위는 여전했다. 병원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가지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낯설었다. 서울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도서관 열람실을 오고갔는데, 여긴 학생들만 보일 뿐이다. 


오전 10시. 


서울이라면 자리가 없었을 시간인데, 여긴 여유롭다. 하긴 도서관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마다 있으니까. 책들도 제법 있고 실내도 깔끔하다. 


대도시 생활이 익숙해지니, 견디기 어렵다. 떠나보니, 이 곳이 살기 좋은 곳임을 알겠다. 주말 내내 창원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올 한 해 자주 이 생활을 반복할 것같다. 한 때 이 도시에서 내가 알던 이들도 이젠 중년이 되었겠구나. 그도, 그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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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특정짓는 것이 짙은 녹음과 뜨거운 열기라면, 이미 여름은 왔다. 그렇다면 사랑을 특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이별?, 아니면, 나는? 


세월은 너무 흘렀다. 나만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다 아는 사실 하나,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 


평일 창원엘 갔다. 연휴나 명절이 아닌 날 내려간 건, 거의 이십년 만인가. 지방 중소 도시에선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도 서울에선 참 낯선 풍경임을 새삼 느꼈다. 그만큼 서울 생활이 익숙해진 건가, 아니면 지친 건가.  





올해 초 새로 생긴 경상대학교 병원 앞에 이런 하천이 있었다. 조금만 가꾸면 사람들이 다닐 수 있을 것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을 것이다. 여기저기 공원이다 보니.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몇 장의 창원 풍경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지난 기억이 떠올라 가슴 아팠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어떤 삶 앞에서 문학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던 시절, 그 이후 나는 술이 늘었고 주사가 생겼으며 마음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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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추석이 오고, 그 때마다 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내려간다. KTX 예매는 무척 어려운 종류의 일이 되었고 짧은 여행 시간마저도 꽤 고단한 일상이 되었다. 13시간이나 걸려 가던 여행 시간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옛날 일이 되었다.


내려가면 매일 회를 먹는다. 적어도 서울보다 저렴하고 신선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지만, 따지고 보면 막상 그런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마트에서 스미노프 한 병을 구입해 같이 먹었다. 





그리고 추석 다음 날엔 창원 해양공원엘 갔다. 세계 2차 대전 중, 1941년 뉴욕에서 만들어진 군함 한 척이 2013년 반도 남쪽 끄트머리 섬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과 세상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지만, 바다는 잔잔했고 사람들의 일상은 전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했다. 


이제 만 두 살이 된 아들을 안고 군함에 올랐다. 그리고 바다를 쳐다보았다. 아들은 지나는 배마다 손짓을 하며, '배'라고 외쳤다. 나는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응', '응'이라고 대답했다. 저녁이 왔고 어김없이 생선 회를 먹었다. 사다놓은 스미노프를 다 마신 탓에 그냥 소주를 마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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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는 창원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건 내 나이 탓일까, 아니면 내가 처하게 되는 환경 탓일까.


집 밖을 나오면 멀리 뒷 산들이 보이는 풍경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건, 너무 오래 서울 생활을 했다는 뜻일 게다. 하긴 지금 살고 있는 노량진 인근 아파트 창으론 여의도가 한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연휴 때 나온 사무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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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물리적 공간, 혹은 거리와 면적은 언제나 넓고 길다. 마치 지나온 시간 만큼, 쌓여진 추억들만큼, 기억 속에서 공간들은 소리 없이 확장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무렵의 마산의 중심가는 창동과 불종거리였다. 그 곳에서의 사춘기 나에겐 무수한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늘 현재를 살기에, 단지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만 짐작할 뿐, 추억의 상세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힘들고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올 여름의 휴가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마산 창동에 갔다. 한 때 극장과 서점, 까페, 옷가게들로 융성했던 거리는 이제 쇠락해가는 구 도심일 뿐이었다. 화요일 점심 때가 가까워져 오자, 사람이 한 두 사람 느는 듯했지만, 서울과 비교해 인적은 뜸했다.





이 곳을 가게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창동 예술촌’ 때문이었다. 아마 보기 드물게 활력을 잃어가는 도심을 살리기 위해 예술가들과 지자체가 함께 하는 예술 마을 프로젝트가 여러 번 저널에 실리고 TV에도 방영된 탓에, 내 기억 속의 거리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시선을 잡아 끄는 벽 장식들과 건물 외벽의 색채들, 벽화들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했다. 실험적이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고 진솔해 보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지역적 특색을 살리고 있어, 예술로 시작했지만 예술은 뒤로 사라진 채, 코스모폴리탄적 무국적성이 아닌 상업적 무국적성을 띄어가는 서울 인사동이나 삼청동, 혹은 홍대 거리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예술가들의 의식적 실험이 지역의 도심을 살릴 수 있다는 흥미로운 발상은 다른 지역의 예술 공동체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클 것이라 생각 되었다.




마산 창동예술촌을 둘러보던 중에 먹은, 추억의 음식인 마산 코아양과의 밀크쉐이크와 육이오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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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철길 너머 맞은 산등성이를 바라 보았다. 낮게 내려온 흰 구름은 금방까지 내렸던 굵은 빗줄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창원에 내려갔다 왔다. 주말에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 제사라고 해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토요일 아침에 내려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는 동안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나는 멈춰 있고,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하는 것 같다. 에고이스트여서 그런 걸까.

아내는 시댁 분위기에 한결 적응한 모습이었고, 어머니께선 며느리가 마음에 드시는 듯하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여동생 내외가 간밤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나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 이야기 사이로 언어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찔아찔하던 감정적 혼란도 한결 줄어들었다.

하지만 감정적인 어떤 것들은 소화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쌓이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세상은 강요된 평화스러운 침묵과 가까워져 있고 나도 그런 침묵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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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고향 집 근처 어느 거리의 오후


창을 열면 들판이 보이고 멀지 않은 곳에 나무와 풀들로 가득한 숲이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만약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그러면 내 상상력은 좀더 풍성해지고 내 우울함도 가라앉으리라. 내 영혼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지고 내 언어는 진실하면서 감동적으로 변하리라.

시간이 흘러 서울로 올라온 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그 사이 내 나이는 서른을 넘겼고 부모님은 그만큼 늙으셨다. 고향집 내 작은 방은 가끔 집에 들르는 여동생 내외가 자다가 가는 방, 내가 명절 때 잠시 지내는 방으로 변해버렸다. 그 사이 부모님과 할머니와의 사이는 더욱 나빠져 아흔을 향해 가시는 할머니는 늙은이들이 사는 집의 외딴 섬같이 변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꼭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살아남은 한 명의 베로니카가 죽은 베로니카의 집에 찾아가는, 그 때 그녀의 다른 아버지는 혼자 집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근대적(Modern) 삶 속에서 늙는다는 건 혼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혼자 죽는다. 그건 진리를 파악하는 자로, 이 세계를 인식하는 자로 ‘생각하는 나’를 두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쓸쓸함을 노발리스는 ‘고향상실’이라고 말했다. 신을 믿었던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라고 했지만, 여기서도 인간은 혼자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혼자 있는다는 것이 너무 싫은 인간이 더 이상 진리의 파악도, 이 세계의 인식도 싫어, 싫어라고 외치는 흐름이다. 그래서 모더니티, 즉 근대성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슴에 앉고 난 이 세계를 알아낼 수 있을거야라고 시작하는 것이라면 포스트모더니티, 탈근대성은 외로움과 쓸쓸함에 지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내가 왜 이렇게 외로워하고 슬퍼하는가가 물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엉엉 울기 시작한다.

며칠째 슬픔이 너무 밀려들어 견딜 수 없었다. 꿈 속에서 어떤 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없고 그의 이미지들은 내가 혼자 있다는 공포 속에서, 그 공포에서 도망치면서 축조해낸 것들이었다.
장정일은 80년대 후반 문단에 나오면서 자신은 도망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몇 권의 시집을 내고 몇 권의 소설을 내고 몇 개의 희곡을 내었다. 나에게 아직도 그는 소년처럼 보인다. 중졸이었나. 소년원 생활에다 문제아로 자라난 그였다. 그의 소설 중에 ‘아담이 눈뜰때’가 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박하여 내가 국립 서울대학교에 입학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소망이나, 커서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하기를 꿈꾸는 어린 사촌동생의 소망보다 차라리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지금 이 소설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 2학년 때, 내 나이 스물이었을 때 이 소설을 너무 좋아했었다. 한 때 타자기를 가지고 있었고(지금은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 뭉크화집이 있으며 오래된 오디오를 가지고 있다. 음반은 한 육 백장 정도 있고 책은 몇 천 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가 가진 물건들이 늘어날수록 내 영혼은 초라해지고 빈곤해지고 슬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내일보다 어제를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겁이 많아지고 뜨거움을 잃어버리고 한발한발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정말일까.

오후 늦게 외출해 영풍문고 강남점에서 그라모폰 2월호를 샀다. 지금 부록으로 들어있는 시디를 듣고 있는데, 무척 좋다. 이제 수입도 없는 주제에 하는 짓은 여간 고급스러운 게 아니다. 사려고 적어놓은 클래식 음반, 재즈 음반 리스트는 늘어가고 사려고 하는 책도 여럿 된다. 온라인 서점의 wish list만으로도 보통 회사원 한 달 월급이 날아갈 정도다. 그리고 서브시스템으로 사용 중인 오래된 리시버 앰프와 작은 스피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고 싶고 우드 케이스의 이쁜 턴테이블도 다른 것으로, 보다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다.

대책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자기 전에 ‘아담이 눈뜰때’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슈퍼에서 사온 맥주 한 병 홀짝거리면서 말이다. 가령 이런 문장들은 지금 봐도 찡하다.

‘우리는 부산행 보통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가슴에는 창녀의 마음을 안고.’ 

‘내 성감대는 모의고사에 있어. 시험때만 되면 바짝 달아 오르곤 해.’

‘그리고, 끝이었다. 심육일간의 올림픽 일수를 자신의 죽음을 위한 카운트 다운으로 삼았던지, 그녀는 올림픽이 끝난 다음날 저녁, 그녀의 아버지가 지었을지도 모르는 빌딩의, 자신이 애용하던 디스코 클럽의 십층 유리창을 깨고 보도로 떨어져 내렸다.

지방의 석간 식문을 통해 현재의 죽음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그녀의 팬티였다.’

‘-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은 염세주의자다.
- 우리는 성적 욕구까지 억제하며 떳떳하게 도망을 다녔는데 그게 아니었어
- 경찰놈들, 그렇게 비상을 쳐놓고도 우리를 못 잡으면 간첩은 어떻게 잡느냐.
- 돈 있으면 판, 검사도 살 수 있는 더러운 세상이다. 이 새끼들아.
- 열두 시까지 차를 대기시켜라. 공기 좋은 산이나 강에 가 죽고 싶다.
- 무전유죄, 유전무죄
-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이다.

생으로 중계되는 티브이로 툭툭 던져지는 지강헌의 말을 들으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는 경찰에게 비지스의 <할리데이>가 들어 있는 테이프를 갖다 달래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은 자신의 목에 유리를 그었고, 몇 시간 뒤엔 특공대의 총을 맞고 죽었다.’

‘대구에 내려온 나는, 등록금의 매우 적은 일부를 덜어 중고의 사벌식 타자기를 한 대 샀다. 나는 늘 타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스무 살이 되어서야 그것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 무엇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편지나, 일기, 아니면 진짜 창작을 말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제일 먼저, 이렇게 시작되는 내 열아홉 살의 초상을 그릴 것이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라디오에 연결해서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내 슬픈 영혼도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 있겠지. 아마 얻을 수 있을 거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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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 그라모폰 잡지.(* 월간 클래식 전문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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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Irving Penn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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