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한강이 보입니다. 아침 출근길, 동쪽으로부터 몰려온 햇살에 밝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육삼빌딩을 뒤로 하고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사를 했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이사였습니다. 그리고 38년의 생을 힘겹게 지탱해주던 책들의 상당수는 이번 이사에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무지개 빛깔이 숨겨진, 어떤 면에선 당황스러운 감도 없지 않은 이사였고, 책들의 입장에선 책임감 없는 주인을 만난 탓이겠지요. 그 책들은, 내게는 물질적 욕망을 향한 폭풍우 같은 자본주의 세계가 요구하는 사고력과 실행력이 없었던 나의 아슬아슬한 삶을 증명하고 변명하던 사유의 물리적 성벽과도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 성벽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가상이었으며, 일루전이었고,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별과 같다고 여겼는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