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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오래 전 알던 지인을 십 수년만에 만날 때, '글을 쓰냐'고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글을 써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글과 어울렸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때로 내 불성실을 탓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나에게 사업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이럴 때마다 고민을 한다. 나는 사업을 하는 것이 어울리는가. 나는 사업 추진/실행에 대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훈수'와 '실제 플레이'는 다르다. 실제 플레이(사업)도 해보았지만, 철저한 준비나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되지 않는 까닭에 어디 가서 말하기 어렵다. 


사업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짧게 경영학 공부를 했고 전략 수립 컨설팅 업무도 했으며 IT 프로젝트에서 프로젝트 관리와 리딩을 경험하였으며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 영업을 하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조직 관리도 했고 사람을 채용하기도 했다. 사업을 할 수 있는 지식이나 기술들 대부분을 경험했다. 기업 규모의 문제가 있을 순 있으나,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사업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구나 사업을 성공시킨다는 건 전혀. 


그렇다면 사업을 한다는 건 진정으로 무엇일까. 내 짧은 경험을 비추어볼 때 그건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지키기 위해 기업은 수익을 내야 하고, 상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유지하며 월급을 주고 새로운 투자를 한다. 사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업은 결국 사람 앞에서 여러 차원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기업의 목적이 오직 '수익'이라면, 그 수익을 위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치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면 그 기업은 이 사회에 필요없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라고. 이 물음 앞에서 나는 늘 뒷걸음질 친다. 


(내 경우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책임에 대한 교육'이 너무 허술하다. 동시에 '책임'에 대한 불평등은 전 세계 최고로 여겨진다. 국회의원들은 매일 막말을 해대지만, 구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들은 운이 나쁜 경우 막말의 책임을 혹독하게 치른다. 잘못된 조직(시스템)의 의사결정에 대해 그 조직의 리더나 대주주가 아니라 대체로 조직 피라미드의 아래 쪽부터 책임을 진다. 이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고 나 또한 경험했으니, 나이 든 지금, 후배들에게 뭐라 말해줄 것이 없다. 


언제나 사업을 하지 않느냐의 물음에 대해 그 '책임'에 대해서 스스로 묻는다. 그 책임을 견디고 성실히 수행하며 완수할 수 있는가라고. 너무 이상주의적이거나 교과서적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언제나 조심스럽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조심스러워진다. 어렸을 땐,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더욱 강한 자신감으로 도전해나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나에게 묻는다. '사업을 할 수준이 된 것같다'고.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높이 평가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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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바빠서 - 이것도 핑계일 지 모르겠지만 -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다 보니, 책읽기, 글쓰기가 형편 없어졌다. 며칠 사이로 좋은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다음에 링크를 달아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페이스북을 하다보니, 정리되지 않은 단상을 올리고 그것으로 끝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글의 길이가 짧아지고 깊이는 얕아졌다. 여튼 그런 단상들 중 일부를 아래와 같이 옮긴다. 여유가 된다면 관련된 책들도 몇 권 읽고 길게 정리하고 싶지만, ... 늘 생각에만 머물 뿐이다. 


*  *  


정치에 대한 글을 적었다. 야당의 모습을 보면서 한심해서 적은 글이다. 몇 주 전에 적은 글이라 시의성이 떨어진다. 얼마 전 원내대표가 된 이종걸 의원은 한순간 언론에서 자신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건 (너무 불행하고 슬펐던) 장자연 사건으로 모 신문사 대표를 공격하자 그 신문사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그 이후 자신의 기사는 그 어느 신문사에서도 보도되지 않았다고.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언론은 중요하다. 하지만 언론을 믿을 수 없다. 언론 기사들을 분석해 문재인 의원과 김무성 의원에 대한 우호적/부정적 기사를 나열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와 똑같이 여당과 야당도. 


사람들은 언론을 믿는다. 나같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언론을 믿지 않고 아주 비판적으로 접근하지만, ....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한국 사회에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을 심정적으로 동의하게 되자, 절망적으로 변했다. ㅜ_ㅜ 


아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    * 


정당 정치 시스템이라는 게 있을 지 모르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쟁력은 10:1인 듯 싶다. 새누리당은 일 잘 하는 사람도 많고 컨셉도 잘 잡는다. 전략도 잘 세운다. 확실히 목적 지향적이다. 다만 그 목적이 국민 대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혹은 소수의 이들만을 위한다는 점. 보수를 표방하지만 전혀 보수스럽지 못하다는 점.\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나라 군대같다. 다양한 계파들이 존재하고 이들 간의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나온다. 끊임없이 친노가 공격 대상이 된다. 결국 대통령 탄핵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나. 열린우리당까지 가야 되나. 결국 형식적으로는 뭉쳤으나, 나머지 부분에선 뭉치지 못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에게는 시스템이라는 게 없다. 일 잘하는 젊은이들을 끌어당길 동력도 없고 새로운 컨셉도 제시하지 못한다. 더구나 너무 오만하다. 비난할 줄만 알지, 문제 해결에 대해선 빵점이다. 여당과 동의하면 비난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결정내리지 못한다고 내부에서 비판한다. 문재인 대표가 오만한 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최악의 행정과 정치를 하고 있으니, 무조건 이긴다고 믿고 있는 정치인들로만 모여 있고, 이런 정치인들의 모임의 대표가 문재인이니, 그도 오만한 사람이 된다. 


결국 차기 대선주자 1위를 공격해 끊임없이 끌어내리기를 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정당이다. 내가 보기엔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는 그 어떤 이보다 문재인의 살아온 행적이 나아보인다. 중도를 표방하지만, 보수스럽고 종종 과격한 발언까지 나온다는 점에서 정치적 컨셉을 찾기 어렵다. 부산의 모 의원은 과격 보수처럼 여겨진다. 결국 권한을 얻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이다. 늘 국민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은 말 뿐이다. 말이라도 해야, 능력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능력 있지만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능력이 없다. 더 큰 일은 새누리당은 끊임없이 젊은이들이 끌어당기지만(이준석이나 손수조),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직도 동교동계 이야기가 나온다. 헐~ 도대체 이들의 평균 나이는 몇 살인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헤쳐 모여야 된다. 강력한 리더십과 정당 시스템을 마련해야 된다. 결국 키는 문재인 대표일텐데, 그는 신중하나 결단력이 없고 쓸모없는 말을 하진 않으나, 모든 이들이 원하는 정치적 제스추어에는 약하다. 그리고 옆에서 코칭해줄 만한 능력자도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없거나, 아니면 도리어 너무 많은 것이다.


*  *  


정치적 제스추어에 있어선 이재명 성남시장이 단연코 최고다. 그의 정치적 감각은 탁월하다. 야당에 이런 감각을 가진 이가 2-3명만 더 있어도 기대해 보겠건만.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 시장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정치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열심히 투표하지만, 실제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질 때 그 정치의 실질적 혜택을 보게 될 이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세계는 조각나고 조각난 세계들은 서로의 세계에 무관심해질 것이기에. 


*  * 

인문학자들의 무책임함은 그들 특유의 비현실성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그들은 최신이론의 수입자 혹은 해석자로만 있을 뿐 지금 여기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하거나 할 생각이 없거나 하더라도 형편없는 글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한때 탈정치화를 이야기하던 일군의 학자들이 있었다. 탈정치화가 불러올 현실적 파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학문수입상으로서의 입장만 고수했다. 그들은 그 때도 대학교수이고 지금도 대학교수다. 그 때 나도 그런 류의 논문과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앞으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더라. 그 이후 대단한 연구서가 나온 것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학자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학문 수입상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리고 학생들을 닥달하고 자신의 무식함을 최신 수입 이론으로 가린다. 그들은 젊음 옆에 서서 젊음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인문학을 죽인다. 죽어가는 인문학은 인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 교수들의 문제이고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문제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닥힌 삶의 문제이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지도, 알 필요도 없다. 


최근에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생계를 핑계로 무책임한 기사들을 쓰고 있다. 이 사회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이들이 언론이 되고 있다. 한 때 나락에 빠진 한국 사회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발 벗고 나선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으니 ... .... 


실은 모든 이들이 월급을 핑계로 사소하지만 거대하게 무책임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그게 모여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책임한 투표 탓에 우리는 한국 사회가 전형적인 후진국적 사건사고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무언가에 대해 책임 지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알아야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대처할 수 있다. 즉 모르니 대처할 수 없고, 그러니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그 파장이 큰 것일수록 리더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하물며 작은 회사의 팀장이 지는 책임, 대표가 지는 책임의 무게도 가볍지 않은데, 한국은 큰 조직의 리더가 될수록 무책임해지고 무식해진다. 이것이 한국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요즘 한국 사회도 이렇고 나도 이렇구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기분... 언제쯤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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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주도권싸움 2015.06.05 09:11 신고

    모 주도권싸움이죠. 서로간의 앙금이 있는 상태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뭉친거라서...
    문재인은 대권을 잡을수 있는 두번의 기회를 날려버린거죠. 당대표를 박지원에게 양보안한것
    선거에 진후 바로 사퇴안한것 두가지를 모두 거부하고 호남여론이 나빠진다는걸 예측못했다면 정말 정치력이 없다는 증거고 예측하고도 그리했다면 대권보다는 친노의공천이중요하다고 생각한거죠
    현재 문재인 지지율은 계속 하락중이고 끝났다고 봐요
    이재명 안철수 박원순 반기문 손학규정도가 대권후보인데 총선은 망할게 확실시 돼고 일말의 희망이 있는게 대권인데 정말 희박하네요
    어차피 이리된거 차라리 분당하는것도 야권쪽에서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정책연대나 대권연대만 하면돼지 굳이 같은 당에서 니꺼니 내꺼니 싸울 필요가 없죠

    • 정치력 부재가 큰 일인 듯합니다. 정치력이 부족하면 서로 대화를 해서 풀어나가는 지혜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없고요. 저도 차라리 분당해라는 쪽으로 기울더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리더에 관한 한 내가 아는 두 가지 극단적인 사례가 있다.

한 리더는 아침에 와서 모든 직원들의 책상을 닦고 사무실 청소를 한다. 그는 직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 그것은 그들이 일을 성실히 하고 있다는 것. 그 다음은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 직함이나 부서로 그들이 하는 일을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직원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일할 수 있도록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하였다. 그는 그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만, 묻지도 간섭하지도 않는다. 마치 브라질의 샘코 같은 회사라고 할까. 그런 회사가 있고 그런 리더가 있다.

또 다른 리더가 있다. 그의 책상 위로 무수히 많은 문서들이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그의 이메일함은 폭발 직전이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철두철미함으로 사소한 것 하나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이며, 탁월하면서도 빠른 업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고 조정하며 지시를 내린다. 그래서 그 회사에는 탁월한 업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새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잊어버린다. 그리고 리더가 명령하는 대로만 따라간다. 그런데 그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이유는 탁월한 일당백의 리더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리더가 사라졌을 때, 그 회사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실은 그 리더가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옆에서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일 것이다.

술자리에서 나는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모티베이션의 역량이 필요하다. 즉 회사가 원하는 종류의 일을 직원들 스스로 찾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여기게 만드는 동기 부여의 능력이다. 그 다음은 적극적인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 권한 다음에 책임이다. 한국의 회사에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업무가 많다. 한국의 기업이 군대로부터 업무 처리를 배워서 그런 걸까. 1960 ~ 70년대 한국 최고의 조직은 군대였고 군대에서 업무 처리 능력을 배운 이들이 한국의 기업을 성장시킨 탓일까?

책임 다음은 실패에 대한 가치를 깨우치는 것이다. 이는 개인에게도 요구되며, 회사에게도, 한국 사회 전체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모습이 이 사회 전반에 투영되고 반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모이면 한국 정치를 욕하지만, 실은 사람들이 뽑은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 한국 정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는 회사를 포함한 모든 조직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모든 것을 직원들에게 맡기는 어떤 리더와 모든 것을 하나하나 관여하고 조정하고 지시하는 어떤 리더 사이의 스펙트럼일 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할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해야 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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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란 전략으로 상호 독립적인 상황이다. 즉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움직임'은 의사결정자가 하는 선택이고, '플레이어'는 모든 의사결정자다. '제로섬 게임'은 누군가의 소득이 오직 다른 사람의 손실이 있을 때만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라이벌'은 게임에 참가한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이다.
- 권춘오, '게임이론으로 보는 전략의 기술', 동아비즈니스리뷰, 4월1호


게임 이론에 대해선 몇 편의 아티클들을 읽었으나, 이를 내 일상에 적용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슬슬 적용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은 내가 속해있는 여러 조직에서 내 책임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이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하며, 그 권한을 행사함으로, 다른 이들의 리액션을 유도할 수 있다.

리더십과 의사결정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일상에서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직까진 왔다 갔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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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형성된 것은 언제부터 일까? 가령 예를 들자면, 술버릇이라든가, 말 하는 속도라든가, ... ... 실은 이것도 일종의 관성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관성 이상의 어떤 힘이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고... 특히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힘이나 에너지들은 종종 사랑의 실패, 오랜 인연의 결렬, 사소한 실수로 인한 감당하기 힘든 시련, 혹은 우연에 의한 비극 등으로 인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온 관성 속에서 어떤 변화를 시도하지만, 아주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변화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으며, 번번히 관성에 이끌려 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볼 때, 감당하기 어려운, 그러나 결국에는 감당하고 극복해내고야 마는 어떤 실패나 결렬은 필요악이 되는 것일까?

올해 들어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을 부쩍하고 있다. 나와 동년배처럼 보이는 이들은 띠동갑이고, 실제 나와 동년배들은 배가 나오고 일상의 피로에 지친 아저씨이거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가진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서도.

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과연 어떤 것들에 대해서 책임 질 수 있을까? 내가 20대 초반에 만났던 어떤 이는 40 이상 먹은 이들은 이 나라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한 것은, 아마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그의 말이 그만큼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국에서 알아주는 공기업에 다니고 있었던 그는 한참 동안을 부정 부패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젊음과 진보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아마 그도 지금은 40대 후반이 되었을 텐데...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삶에 있어서 대부분의 변화는 우리들에게 모험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험의 시대가 아니다. 안정적 삶에 대한 욕망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는 건, 우리가 믿어왔던 어떤 가치나 신념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따라 결정하고,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하거나 변명만 늘어놓게 된다.

그것은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실명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문화에서 실명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 보인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이 사회는 더욱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Network은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찾아 관계 맺게 한다. 개방적이라는 것도 일종의 방향성(관성)에 의해 결국은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관성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볼 생각이다. 또한 정치적 의식, 혹은 활동이나 실천, 그리고 내 삶에 대해서도. 이제 나도 이 사회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할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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