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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나이가 들수록 명절 보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내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는지 모르겠지만. 과거는 화석이 되어 이젠 향기마저 풍기지 않고 미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끝도 보이지 않는 계곡 사이로 이어진다. 중년이라 그런 건가. 돌파구는 늘 위기에 있다지만, 우리 인생은 늘 위기 위에 있다. 올웨이즈 리스크 모드라고 해야 하나. 


음악을 들었지만, 예전같은 감동을 찾기 어려웠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가을이 왔다고들 말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끔찍했던 여름이 이어져, 계속 지치고 땀이 나고 흔들거린다. 그래도, 기어이 가을은 올 것이고, 그래도 나는 나이가 계속 들어갈 것이고, 그래도 내 아이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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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추석이 오고, 그 때마다 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내려간다. KTX 예매는 무척 어려운 종류의 일이 되었고 짧은 여행 시간마저도 꽤 고단한 일상이 되었다. 13시간이나 걸려 가던 여행 시간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옛날 일이 되었다.


내려가면 매일 회를 먹는다. 적어도 서울보다 저렴하고 신선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지만, 따지고 보면 막상 그런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마트에서 스미노프 한 병을 구입해 같이 먹었다. 





그리고 추석 다음 날엔 창원 해양공원엘 갔다. 세계 2차 대전 중, 1941년 뉴욕에서 만들어진 군함 한 척이 2013년 반도 남쪽 끄트머리 섬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과 세상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지만, 바다는 잔잔했고 사람들의 일상은 전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했다. 


이제 만 두 살이 된 아들을 안고 군함에 올랐다. 그리고 바다를 쳐다보았다. 아들은 지나는 배마다 손짓을 하며, '배'라고 외쳤다. 나는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응', '응'이라고 대답했다. 저녁이 왔고 어김없이 생선 회를 먹었다. 사다놓은 스미노프를 다 마신 탓에 그냥 소주를 마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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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사방에서(From the four direction), 1985 




다행이다. 이우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니.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고, 내가 조금 더 일찍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이우환의 작품을 살 수 있을련지도 모르리라. 기회가 닿으면 포스터 액자라도 구해야 겠다. 


가을, 살찌는 계절이지만, 나는 지쳐가기만 한다. 아마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직장인들도 그럴까? 하긴 이런 때가 있으면 저런 때도 있는 법. 


오후 외부 회의를 끝내고 들어온 사무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래 시를 읽는다. 




生의 쓸쓸한 오후를 



生의 쓸쓸한 오후를 걸어갈 적에
찬란하여라 
또 하루가 가는구나 

내 무덤에 풀이 
한 뼘쯤은 더 자랐겠구나 

- 최승자
(<포지션> 2013년 가을호 수록) 

(* 위 시는 http://blog.naver.com/lalalal22 에서 읽었습니다.) 




역시 최승자라고 중얼거린다. 이런 느낌, ... 하지만 이 느낌마저도 '소비의 사회' 속에서 희석되고 있었다. 어쩌지 못하는 쓸쓸함마저도 소비되는 시대. 끔찍하기만 하다. 그렇게 끔찍한 2013년의 가을. 



나는 내일 새벽, 내가 스무 해 넘게 살아온 도시로, 노트북과 서류와 책을 안고 내려간다. 아마 내려가서도 바쁘게 보낼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그래도 나이는 먹는다. 어쩌면 시간 가는 것이 우리 인생 최대의 축복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무덤을 향해가고 언젠가 내 무덤에도 풀이 자랄 것이다. 사방을 둘러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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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는 창원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건 내 나이 탓일까, 아니면 내가 처하게 되는 환경 탓일까.


집 밖을 나오면 멀리 뒷 산들이 보이는 풍경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건, 너무 오래 서울 생활을 했다는 뜻일 게다. 하긴 지금 살고 있는 노량진 인근 아파트 창으론 여의도가 한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연휴 때 나온 사무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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