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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엘리베이터 고장.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다 만난 봄,날의 기억. 

언제 인생의 봄은 다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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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생명을, 한 동안만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내려진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까닭에 소중하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기 어렵게 하는 번뇌를 뽑아내고, 고마운 세계를 직접 묘사해내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혹은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한다면 묘사해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샘솟는다. 착상을 종이에 옮기지 않아도 보옥이나 금속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가슴속에 일어난다. 

- 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7쪽~ 8쪽(오석윤 옮김, 책세상)



나쓰메 소세키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소설의 첫 문장들을 이렇게 구성했을까. 나는 몇 주째 이 문장들을 지나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그네슘 부족인지 왼쪽 눈 부근 근육들이 파르르 떨리기를 반복하고, 잇몸은 수시로 붓는다. 어깨가 결리고 입안은 헐었다.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 아니면, ... 


현암사에서 나오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장만하고 싶으나, 그의 소설을 읽을 시간마저 없는 이에게 전집은 사치라는 생각에 ... ... 


비 오는 대체공휴일, 사무실에 나와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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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휴일.퇴근길.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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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흔적


새해 아침 게으른 커피 한 잔 손열음의 쇼팽 이안 맥퀸의 속죄 도널드 바셀미와 몇 개의 펜 낡은 다이어리 그리고 견디기 힘든 일상의 스트레스, 하지만 올해에는 내 삶을 사랑해보기로 하자. 






1월 2일, 출근 






1월 2일, 퇴근 





어떤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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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많은 눈 속의 내키지 않은 출근길. 작고 낡은 검정 타이어를 끼운 초록 빛깔 마을버스가, 빠르게 떨어져 쌓이는 눈송이들을 아주 느리고 무겁게 밟으며 힘겹게 경사진 도로를 올라왔다. 누군가가 바쁜 출근길에 왜 이렇게 마을버스는 안 오는거야라고 말했지만, 정류소에 있던 다른 이들의 입술, 목, 눈꼬리, 머리, 다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못했다, 숨을 헉학대며 버스가 왔다. 계속 눈이 내렸다. 출근은 시작되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고 우리들 모두 내일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 모두 다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사랑하던, 했던 그녀도, 한때 믿는다고 착각했던 하나님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나를 찾는 걸까, 정말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 사람들을 모르겠다, 모른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없었다. 그렇게 실패하며 나는, 우리는 늙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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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도어즈의 '모리슨호텔'을 다운받아 들었다. 들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도어즈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맥주를 마시면서 취하고 싶다고. 


오후 미팅이 끝나고 저녁 5시가 되었고, 내일 오전 미팅 준비를 위해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쓸쓸해 보이는 강변을 찍었다. 낭만이 사라져 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감수성이 메말라가는 건 좋지 않지만, 건조해지는 만큼 상처도 덜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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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아침 ...
터벅, 터벅, 까끌, 까끌, 두리번, 두리번, 쓸쓸하다 말고
내일 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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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옆에서 2호선 선릉역까지 오는 건, 꽤 고역이다. 지하철 안에서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읽었다.

대학은 오직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뿐이며, 교수들은 오늘날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보여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아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다고 나는 느꼈다.
(13쪽)

... 때때로 우리는 석공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돌을 깨는 데는 의심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페이지마다 의심과 두려움 - 캄캄한 공포가 있다. - 조셉 콘라드
(3쪽)  


그 사이 많은 책들을 읽었다. 허균의 누이였으며,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으로 알려진 허난설헌에 대한 책을 읽었고, 조르주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꽤 힘들게 완독했으며, '창의와 혁신의 핵심전략'이라는 경영 서적도 한 권 읽었다. '햄릿'을 다시 읽었고,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다시 읽었다. 

전시는 더 많이 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못했다.

어젠 서울옥션에서 114회 미술품 경매가 있다는 레터를 받았다. 그 레터 안엔 청천 이상범의 산수화 엽서 몇 장이 있었다. 건조한 사무실에 앉아, 한참을 생뚱맞은 표현으로 엽서를 쳐다보았다. 

집을 나서기 전에 금붕어 모이를 주면서, 잠시 웃었을 뿐... 

요즘 내 모습은 마치, 억지로 바쁘게 보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여 약간 서글퍼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것일 뿐.
 




일요일 아침이면, 내 방은 이렇게 변한다. 턴테이블엔 오래된 LP를 올리고, 휴일에 듣고 읽을 시디와 책, 잡지를 방 옆에 쌓아둔다.

내 일상이 위선적으로 보이는 건, 정말로 위선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세상이 위선적이어서 그런 걸까.

마치 살아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는 금요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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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된다. 늦게 자면서도 일찍 일어나는 사람을 부러워 했는데,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하지만 자정이 되기 전에 잠을 청한다는 건 바쁜 현대인에게 꽤 어려운 일이다. 나같이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인간에겐 특히나.

어제부터 삼성동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을 시작했다. 작은 Web Service 회사로, 전형적인 IT 기업이면서, Early Adopter와 Early Majority 사이의 캐즘(Chasm)을 넘지 못하고 있다. 캐즘을 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이 요구되는데, 그 전략의 일환으로 내가 합류하게 된 것이다. 뭐, 비즈니스의 근본은 다 비슷하고,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IT와 전략 컨설팅을 하고 돌아다녔으니.

그리고 미술 시장이 꽁꽁 얼어붙다보니, 나같이 시작한지 채 몇 년 되지 않은 사람에겐 꽤 터프하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미술에서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 들어온 이상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으니, 올해도 미술 쪽에서 많은 일들을 할 예정이다.)

올해 들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우려고 했으나, 아직 세우진 않았다. 그냥 작년 말부터 시작된 규칙적인 생황, 일주일에 운동 3-4회(회당 1시간 이상) 정도만 있는 상태다. 그리고 블로깅에 대해서도 업데이트 전략을 세워야할 것같다. 가령 북 리뷰는 한 달에 2개 이상, 전시 리뷰도 한 달에 2개 이상, 이런 식의 원칙 말이다.

작년에 내가 읽은 책들을 보니, 의외로 책을 읽지 않았음을 알았다. 주당 1권은 무리겠지만, 한 달에 5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같다. 하지만 책 권수가 중요한가. 읽다만 칸트의 <판단력비판>,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만 읽어도 될 것이다. 그리고 파노프스키, 카시러, 비트겐슈타인의 책 몇 권과 여러 철학 입문서만 꼼꼼히 읽어도 좋으리라. (사람들은 많은 책을 읽은 이를 부러워하지만, 별로 부러워할 필욘 없다. 정말 좋은 책 몇 권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더 좋다. 요는 정말 좋은 책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 있지만)

새벽까지 일어나 공항버스를 타고 삼성동까지 오는데, 출근시간의 88도로는 늘 막히는 관계로 지하철로 오는 것과 시간이 거의 비슷했다. 내일은 지하철로 올 생각이다. 출퇴근 거리가 멀다보니, 조만간 이사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 삼성동 근처에 계신 분들이 있다면 점심 번개 환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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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i 2009.01.14 10:10 신고

    권수보다는 좋은 책을 자꾸 읽는 게 낫다는 데 한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군요. 재미있게 일하시길 빕니다.

    요즘 Bertagnolli랑 Mingardo 목청 듣는 재미에 정신 못차리고 있슴다.. 일할 때도 배경음악으로 틀어놔요^^ 고맙슴다!!

    • 사람들의 좋은 책 고르는 안목이 시간이 갈수록 없어지는 것같아요. 그래서 정작 좋은 책은 읽히지 못하고 쉽게 만들어진 책들만 유통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같지 않고, 여튼 ... 잘 되어야 할 텐데 말이죠. 크~
      음악 들으면서 뭔가 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인 것같아요. 저도 삼실에 오디오 설치해놓고 음악들으면서 일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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