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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얼음의 책

한유주(지음), 문학과지성사 




문장은 대체로 짧다. 그렇다고 긴 문장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의 호흡은 한결같이 짧고 반복적이며, 작가 한효주의 숨소리가 문장들에 어김없이 들어가거나 들어갈 것으로 계획되었던 '있다'와 '없다' 사이 어디쯤 자리잡고 앉아있었. 그 숨소리에 귀기울이며 나는 이 소설집을 읽는다. 그리고 읽었다. 계절과 계절 사이를 지나, 작년을 지나 올해 봄까지. 


그 사이 아이는 자라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자기 주장을 펼쳤고,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이 들고 늙어가는 우리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아이가 상처 입으며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동안, 나는, 늙어가는 우리들은 우리 밖으로 나가 혼자 웅크리고 말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아름답게 수다스럽던 청춘이 사라지고, 그 청춘 옆에서 조용히 젊은 영혼을 어루만지던 책도, 언어도 얼어 간다. 그가 내 곁을 떠나고 그녀 주변을 맴돌던 그 화사한 미소도 사라진다. 


변화란, 어쩌면 과거의 상실이고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의 증거다. 아마 작가 한효주는 얼어버린 마음을, 잃어버린 단어, 혹은 어떤 대명사를, 따스함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스스로 움츠리고 가라앉고 조용해지며 팔을 내리고 손을 굳게 쥐고 입을 닫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침묵을 견딜 수 없어질 때쯤 해가 완전히 졌다. 실내등이 켜져 있었지만, 매우 어두웠다. - 206쪽  


결국 침묵 바깥으로 나갈 일이 없다. 변화 앞에서 침묵은 그녀의, 나의 유일한 무기였고 그 무기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건, 언제나 황혼 녘이다. 작가의 숨소리에서 주저하며 강요된 억제의 불편함이 느껴지는 건 나 뿐일까. 때론 글쓰기보단 우는 것이, 잔뜻 술에 취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나이 들고 보니, 글쓰기가 내 일상에서 저 멀리 달아나, 도망가, 내 곁으로 오지 않을 거리로 밀려나있긴 했지만. 


문장이 딱딱해지고 건조해지고 반복되며 있음과 없음에 매달리게 된다. 실험적 글쓰기가 아니라, 침묵 밖으로 나가기 위한 싸움이고 이미 일어난 변화에 저항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다. 얼지 않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다. 그렇게 작가는 나이가 들고, 변하고, 나도 이미 죽은 날이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변화, 참 싫다. 그렇게 얼어가는 건 더 싫다. 



얼음의 책 - 8점
한유주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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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억해둘 만한 해가 되었다. 2016년, 아직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고 주말에 쉰 적이 없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음 뒤, 몸져 누워 나가지 않은 때를 제외하곤. WLB(Work & Life Balance)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던 때가 부끄러워졌다. 


일요일 출근 전, 르 클레지오를 짧게 읽었다.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동떨어진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스물 여덟 무렵, 자신만만하게 젊은 날의 르 클레지오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놀라웠던 데뷔작, <<조서>>, 그 이후의 슬프고 감미로웠던 <<홍수>>, <<사랑하는 대지>>, <<물질적 황홀>> ... 십 수년이 지나고 노년의 르 클레지오는 서울에 와서 살기도 하고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제 르 클레지오는 내 일상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내 탓도, 세상 탓도 아니다. 애초에 이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거대한 인과율 속에 우리는 잠겨 있고, 그 체계가 실재하는 것이든, 상상적인 것이든 상관없다. 꿈 속에 있으면 그것이 실재라고 믿듯, 우리는 새장을 벗어날 수 없고 언어를 버릴 수 없다. 쓸쓸한 1월이고 슬픈 겨울이다.  



모든 것은 자리를 바꾸고 움직이고 서로 침투하며 수정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존재하며 모든 것은 명백하다. 만약 죽음이 한 인간이기를 그치는 것을 뜻한다면 세계의 이 모든 광경은 죽음의 광경이다. 사실적이며, 실제로 있는, 효과적 죽음, 지울 수 없고 단단하고 정확한 죽음, 저항할 수 없고 바꿀 수 없으며 떼어낼 수 없는 죽음의 광경, 바라보는 수백만 개의 눈, 무한히 많은 눈들의 비전이요, 또 그 눈들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시선인 죽음의 광경이다. 

- 르 끌레지오, '침묵' 중에서 (김화영 옮김, 세계사)




J.M.G. Le Clézio, portraits (1963 à gauche, 2011 à droite). Sourcing images : "L'Express", 1963. "Le Monde", 2011 (archives Vert et Plume) 

출처: www.the-plumebook-cafe.com/jusqua-la-fin-du-mond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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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Tiempo de Silencio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Luis Martine-Santos(지음), 박채연(옮김), 책세상 



스페인 원서. 주인공 페드로는 실험쥐를 통해 암을 연구한다. 실은 페드로가 현실 세계 속의 실험쥐였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이 책을 번역한 박채연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보낸다. 그녀의 번역이 정확한지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번역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번역을 했고 출판까지 이룬 것에 대해 독자로서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 스페인 소설의 기원’이라는 찬사를 받는 소설이지만, 실은 한국 독자에게 동시대 스페인 소설가는 낯설기만 하다. 소설은 현대적 서술 기법들이 망라되었으며, 게으른 독자를 쉽게 무시하고(그런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지도 않겠지만), 종종 문장 하나는 너무 길어져 독자의 집중을 요하기까지 하니(아니 번역된 소설이 이래서야!), 이런 소설을 읽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바라건대, 이 소설은 반드시 읽혀야 한다. 산토스의 ‘침묵의 시간’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을 가진다. 


첫째는 소설 기법의 측면에서 현대 소설이 가져야 하는 여러 가지 미덕을 한 눈에 보여준다고 할까. 산토스 스스로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는 하지만, 실은 ‘의식의 흐름’ 뿐만 아니다. 서술의 강약이 적절하게 조절되어 있어, 어느 경우에는 장황하다 싶을 정도의 서술과 묘사가 이어지는가 하면, 어느 문장들은 짧게 끊어지며 소설 속 인물의 심리를 드러낸다. 자주 화자가 바뀌지만, 어색하지 않고 독자는 인물들의 심리를 자신의 마음처럼 읽고 지나가며 사건이 아닌 실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두 번째 시사점은 서사적 측면에서의 시사점이다.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는 여러 번의 투옥 경험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현실 참여적인 작가였고, 이 소설 또한 대놓고 박제화된 지식인-주인공 페드로-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현실적 무능함을 극대화시킨다. 결국 아무런 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통해 현대 스페인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며 지식인 사회의 변화를 역설한다고 할까. 페드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으나, 그는 너무 현실 세계를 쉽게 보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였으나, 그 행동이 잘못 되었을 경우를 고려하지 않는 유아적인 태도, 그리고 심지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려고만 하는 그의 행위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을 모른 체 하고 그것에 대해 그 어떤 개입이나 참여를 하지 않고 용기 없고 무책임한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형식적 측면에서도 전위적이며, 서사적 측면에서도 전위적인 셈이다. 



1986년 스페인에서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은 참 슬프다. 페드로는 암 연구를 하는 젊은 의학 연구자일 뿐이다. 그가 우연히 휘말린 어떤 사건은 그의 인생을 정반대로 이끈다. 그의 의지와는 무관한 외부 세계는 그와 적대적이었으나, 심지어 그는 그가 외부 세계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마저도 모른다. 너무 선량해서 어리석고 무능하며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자까지도 잃어버린다. 그래서 문장은 종종 감상적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추악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인물에 대한 동정과 비아냥거림이 숨겨져 있다. 어쩌면 산토스 스스로는 자신이 버리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겨울, 진짜 소설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적어도 현대 소설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 순 있을 테니까 말이다. 






침묵의시간

루이스마르틴산토스저 | 박채연역 | 책세상 | 2005.12.1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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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옮긴다. 어제 아침 CNN에 올라온 기사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언론, TV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날이 멀다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시국선언을 하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다. 


언론과 관련된 교과서에는 '비판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그런 언론을 찾기 어렵다. 


이 나라의 미래는 이렇게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화살은 지금 침묵하는 언론들에게, 그 침묵을 강요하는 정부와 여당으로, 그 옆 무능력하기 이를 데 없는 야당에게까지 돌려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정치적 지형에 대해 알 생각도, 알아도 침묵하는 국민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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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추위를 지나자, 다시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건 이상 기후.

탈정치화, 탈역사화를 떠들던 학자들이 물러나자, 정치적 삶, 정치적 일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유행. 모든 것은 유행이고, 유행을 타는 타이밍은 모든 이들에게 중요해졌다. 진짜 중요한 것은 뒤로 숨어버리고 ...

가산디지털역 인근 커피숍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다. 몇 개의 전시, 몇 개의 작품을 떠올려 보지만, 역시 예술은 우리 일상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 삶 속에서 예술은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질, 공허한 대기의 무지개같다. 아무런 영향도 행사하지 못하는, 때도는 대단한 통찰을 수놓지만, 그건 마치 미네르바의 올빼미와도 같아서 그걸을 깨달은 때는 이미 시간이 한참 흘러 되돌릴 수 없을 때, 혹은 작품만 먼지 속을 뒹굴고 ...



네이쳐포엠 빌딩에서도 우리는 예술의 침묵과 만나고, 가을은 이미 지나 겨울 바람이 부는 어느 주말 밤, 며칠 전 노트와 사진을 꺼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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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폰으로 오늘 하늘을 찍은 사진임)


이 색깔은 ... 도시마다 다를까? 계절마다 다를까? 바람에 따라 달라지고,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까? 그래서 이 색깔은 계속 달라져 형체도 없이 사라질까?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닿지 못하는, 끝내 나를 향해 열어주지 않을 색으로 둘러쳐진 채, 말없이 흔들거렸다, 내 몸이.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오던 1970년대 후반의 창원 어딘가에서 가을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잃어버린 나는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 때면, 까닭없이 그립고 안타깝다.

어느 새 나도 닫히는 법만 배웠다, 거대하고 거친 도시에서. 닫힌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를 닫는 법만 배우는 우리는 이제 문을 여는 법, 마음을 여는 법, 대화를 여는 법을 잃어버렸고, 21세기에 들어서자, 마지막으로  닫힌 우리는 더 이상 낯설어하지 않게 되었다.

저 색깔은 ... 닫혀 있는, 너무 익숙한, 그래서 가치없는 색이다. 하늘색이다. 세계 최초로 소리 없이 활자를 읽었던 수도사에게서부터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를 지나, 우리는 그렇게 닫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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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 자리할 수 없는 불가능성들이 존재하는 황야에서의 고독.
문학은 우리를 그러한 황야로 이끈다. 문학은 언제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한다.
- 레비나스


한참 머뭇거렸다. 마치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와 내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를 담아낸 듯한 저 문장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사물들을 말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존재로 하여금 메아리가 울리는 근원적인 언어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일 게다. 사물들의 존재는 작품 속에 명명된 것이 아니라 말하여지는 것이며, 말들은 사물들의 부재를 가리킨다.
- 레비나스


그렇다면 한국어 문학 중에 그런 문학이 있었던 걸까?

오늘 잠시 들른 서점에서 모리스 블랑쇼 선집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기분이 묘했다.
블랑쇼.
매혹적이면서 기묘한 고유명사이다.
 
침묵은 언어를 낳고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낳는다. 그리고 그 곳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 영혼의 심연. 그리고 어두움. 내가 꿈꾸는 언어가 있다면 밝혀지지 않은 어두움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지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
에마누엘 레비나스 저/박규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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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이 있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보면 참 대단해요. 전 평생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런건 타고 나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부끄럽지 않은 소설 하나 쓰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요.

    •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소설 하나 쓰는 목표를 가지고 노년을 향하는 것도 꽤 멋진 소망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런 마음(꿈)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 그걸 하고 있지 않을까요.~






잠시 철길 너머 맞은 산등성이를 바라 보았다. 낮게 내려온 흰 구름은 금방까지 내렸던 굵은 빗줄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창원에 내려갔다 왔다. 주말에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 제사라고 해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토요일 아침에 내려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는 동안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나는 멈춰 있고,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하는 것 같다. 에고이스트여서 그런 걸까.

아내는 시댁 분위기에 한결 적응한 모습이었고, 어머니께선 며느리가 마음에 드시는 듯하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여동생 내외가 간밤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나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 이야기 사이로 언어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찔아찔하던 감정적 혼란도 한결 줄어들었다.

하지만 감정적인 어떤 것들은 소화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쌓이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세상은 강요된 평화스러운 침묵과 가까워져 있고 나도 그런 침묵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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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 책세상


1.
1년 전의 메모를 꺼내 읽는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두 세 번 읽어야 할 책이었으나, 한 번 읽었고 읽은 것을 정리하다가 그만 두었다. 결국 그 정리는 포기하고 읽은 지 1년 만에 간단하게 읽은 바를 적어본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로, 현상학에 있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특히 그의 예술론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는 그 메모의 일부분이다. 내가 쓴 것보다 인용한 것이 많다. 원래는 더 많았다. 퐁티의 글이 짧고 압축된 것이라, 어설픈 리뷰도, 상세한 설명도 어려웠다.

2.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다는 것, 느낀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의식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의식은 내가 경험한 세계를 다만 정리하고 배치해서 ‘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의식하기에 앞서서 세계에의 체험과 감각이 있고 우리의 실존은 ‘생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이며, 매순간적인 체험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서서 이미 존재하는 세계 속에 사는 ‘나’는 의식과 반성의 결과로 나타난 의미와 관념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정확한 범위 내에 이루어지는 ‘학문의 세계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세계 속의 ‘나’는 바로 신체를 가진 나로서, 몸 전체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메를로 퐁티는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순수 의식 대신에 신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체적 실존을 말하며, 신체가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세계를 ‘지각된 세계’라고 부른다.
신체는 감각을 통해서 외부에 있는 것들을 지각하고 세계와 교류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에 따르면 신체는 세계를 향한 통로이며, 지각은 곧 세계와의 소통 방식이다.
- '철학 용어 용례 사전', 박해용, 심옥숙 지음, 돌기둥출판사, 2004. 176-177.



3.
책에서 몇 문장을 옮긴다.

사유라는 것은, 사유에 적합한 단어를 찾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문장이 옮기려고 애쓰는 일종의 관념적인 텍스트로 존재하고 있다. (23쪽)

언어는 기호와 의미 간의 대조표를 전제하지 않고 세상의 어린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비밀들을 드러내어 가르쳐주는, 완전한 드러냄monstration이다. 언어의 애매함, 집요한 자기 지시, 스스로를 향한 방향 전환과 회귀 등은 언어에 정신적인 힘을 불어넣어준다. 언어는 차례로 사물을 의미로 바꾼 후, 그 안에 사물이 머물 수 있도록 하나의 우주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표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될 것이고, 결국 모든 언어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소위 침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25쪽)

왜냐하면 기호는 자신의 의미가 드러남과 동시에 사라질 것이고, 사유는 사유들 - 기호를 통해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유와, 지극히 명확한 언어로 형성하려는 사유 - 외에는 다른 어떤 것과도 만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6쪽)

회화처럼 인간과 세계와의 생생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를 무언으로 표현하고, 수많은 해석을 내포해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지 못하는 침묵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19쪽)



4.

이 짧은 책은 퐁티 철학에 대한 충분한 개론서이면서 퐁티의 예술론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한 번 읽기에는 부적합한 책이었으며, 두 세 번 읽고 노트해야 하는 책이었다.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 10점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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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격한 방식의 프랑스 소설가. 20세기 후반 문학 비평의 일대 혁신을 몰고 온 <<텔켈>>지를 주도했던 인물. <<여자들>>이라는 소설로 여자를 긴 시간에 걸쳐 까발리기도 한 그는 정신분석학자이자 기호학자이며 <<무사들>>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은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되었으나, 워낙 대중적이지 않고 식견있는 문학 애호가들에게조차 인기를 끌지 못한 채 곧바로 사장되었다. 그의 데뷔작은 80년대 초반에 나온 범한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실려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제 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내가 1997년에 그러했듯이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헌책방에서 쥐를 잡듯이 뒤져야 한다. 그냥 쥐가 아닌 황금으로 도배했다는 소문의 쥐를.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또는 운좋게 구한 젊은 솔레르스의 문장은 우울하고 기운 빠진 20대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 입안 가득 거친 독기를 품게 되며 세상에 대해 증오 선 칼날을 갈 수 있으며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나의 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끝내 '이 세상 드디어 나 혼자다'라는 극도의 희열과 끝없는 두려움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그것을 바란다는 그 청춘기의 병(病), 그 병이 솔직이 말해서 나의 내부에서는 거의 미친 듯한 비율로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피로하게 하고, 벌써 적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리고 달아나고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일찌기 없었던 나는 자신이 저주받고 있다고 믿었으며, 어쩌면 시인이었던 것이다. 커다란 불행이 나를 계속 엄습했다 ? 그것은 더우기 눈에 보이지 않아 그만큼 쓰라린 시련이었다. 나는 사랑과 침착성을 잃었다.”
- <<도전>>에서



르 끌레지오Le Cle’zio. 문학애호가인 여성들 틈에서 보기 드문 키와 외모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소설가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 실제로도 무명에 가까운 그가 테오프라스트 르노도상을 받고 일간지에 사진이 실렸을 때, 매혹적인 금발과 깊은 눈길에서 누가 반하지 않았겠는가. 개인적으로 지금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르 끌레지오의 후기작들은 별로 재미없다. 꼭 왕가위의 초기 영화가 거칠긴 하지만 청춘의 끝없는 터널 같은 절망과 사랑을 보여주기에 적당했듯이 르 끌레지오의 초기 작품들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초기작들도 구할 수 없다. 너무나도 매혹적인 <<홍수>>는 아주 오래 전에 동문선에서 출판되었으나, 현재는 구할 수 없고 최근 새로 번역되어 나왔으나, 아직 나머지 한 권은 미처 번역을 끝내지 못한 듯 보인다. <<침묵>>은 세계사에서 고대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출판되어 나왔으나, 지금은 도서관에서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김화영 교수의 번역도 좋지만, 고(故) 김 현의 번역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상하듯이 이 번역도 구할 수 없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세계문학전집에서 복사한 것이 있었는데, 몇 번의 이사와 몇 번의 실패, 몇 번의 도망, 몇 번의 사고 끝에 잃어버렸다. 그리고 겨우겨우 계간 <<작가세계>>에 실린 김화영 교수의 번역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여기저기 먼지 묻은 <<작가세계>>는 찾아내지 못한다.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채 서재의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장소로 달아나버린 르 끌레지오. '내가 죽으면,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던 저 사물들은 더 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고 난 후, 저 사물들을 내가 증오하기 시작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르 끌레지오는 갑자기 남미로 날아가 이국적 글쓰기를 감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증오하지 않기 위해.

르 끌레지오의 <침묵>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한다고 우기고 있을 때, 혹은 날 이해해주길 바라는 오직 한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떠나갈 때, 그래서 오직 한 가지 길, 내가 죽으면, 내가 죽으면, 내가 죽으면 되는 어떤 길만 있을 때, 그 속에 웅크려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럴 때 읽으면 펑펑 울고 마는 단편이다. 1997년과 98년의 내 어두운 이십대 후반의 겨울을 끝까지 지켜주었던 소설.


1984년에 나온 범한출판사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


필립 솔레르스와 르 끌레지오가 같이 묶여 있다. 이런 신기하고 매혹적인 조합이 또 어디에 있을까.




<침묵>을 원어로 읽고 싶은 마음에 산 <<물질적 황홀>>. 교보문고 외서부에 주문해 한 달만에 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선명하게 보이는 글자. 침묵.


침묵의 첫 부분.



지금을 구할 수 조차 없는 故 김휘영 교수의 번역본. 초기작들 중에서 문학성으로만 따지자면 최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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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일찍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늘 그렇듯이.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가라 앉고 까닭 없이 끝 간 데 모를 슬픔으로 가득 찰 때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거나 글을 읽거나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악기 하나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만, 지방 중소 도시에서 자란 터라 학원도 많지 않았고 여유도 되지 못했다. 그 흔한 기타 하나를 사놓긴 했지만, 몇 곡 연습하다 그만 두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기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버린 적이 없는데.)

 

우울할 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지난 연말부터 무너진 마음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쫓기듯 살아온 걸까. 아니면 게을러져서. 그것도 아니라면, 판도라의 상자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인터넷 서점에서 슈베르트와 고흐, 아르보 페르트와 나쓰메 소세키를 주문했다.

 

오늘은 일정이 빠듯하다. 오전에는 여의도 근처, 오후에는 삼성동 코엑스, 청담동, 압구정동을 거쳐야 한다.

 

당분간 말을 줄이고 침묵을 즐겨야겠다.

 

1505년에 그린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16세기 초반 베네치아. 막 세기말이 지났으므로 세기말의 어수선함이 아직도 남아있으나, 세기 초의 열광적인 기분은 느끼지 못하고 고작 불투명한 안도감 정도. 논리적으로는 신의 존재가 사라졌음을, 종교적 미덕과 가치가 세속화되는 세계 앞에서 무너지고 세속적 가치로 대체되던 시대. 마치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수작을 거는 남자에게, 아니면 이미 바람난 아내의 부도덕함에 격분하여 바람 피운 남자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자신의 도덕적 정당함은 증명하지 못한 채, 결국 죽어버리고 마는 생의 역설마냥, 벨리니의 피에타는 한없이 쓸쓸하고 슬프다. 과거는 이미 잊어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기.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고 믿었으나, 마음이 낸 상처로 인해 모든 인지를 상실한 시대. 쓸쓸함과 슬픔이 지나치면 혁명이 도래하는 걸까. 아니면 광포한 현실정치가 도래하는 걸까. 아니면 다락방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쓸쓸히 죽어가는 걸까(폰토로모는 그렇게 죽었다). 오늘 종일 조반니 벨리니의 이 작품이 떠오를 것 같다. 하지만 내 생이 이토록 쓸쓸하고 슬프지 않기를 바란다.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패널에 유채, 65*90, 1505, 이탈리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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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나를 알고 있었던 이 대상들은 더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되겠지.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생명이 꺼져버릴 때, 내게 주어졌던 이 통일성을 내가 마침내 흩어버리게 될 때, 소용돌이는 중심을 바꿀 것이며 세계는 그 자체의 존재 방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긍정과 부정의 대결, 소란, 빠른 움직임, 압박들이 이제는 더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의 차디차고 불타는 흐름이 멈추게 될 때,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던 저 숨은 목소리가 말하기를 그치게 될 때, 흉물스럽고 고통스러운 이 모든 소란이 잠잠해질 때, 세계는 간단하게 이 상처를 되아무릴 것이며, 부드럽고 한가한 세상의 층을 넓혀갈 것이다. 더이상 과거의 잠재적 나를 초월하여 가기 위한 무슨 상처자국도 추억도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여행하지 않으리라. 나는 이제 현실의 천을 찢는 일을 그만둘 것이며 내 의식의 충동은 마치 우스꽝스러운 새울음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이 문득 잊혀져 버릴 것이다. 촘촘하고 검은 상보는 툭 떨어져버릴 것이고, 나는 그게 떨어지는 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이기도록 생겨먹지 않았다. 나는 지탱하기에 너무나 센 전류를 받아서 버쩍 달아오른 줄, 사물의 모서리를 비치고자 하다가 스스로 타버리는 가는 줄에 지나지 않는다."
- 르 끌레지오, <<침묵>> 중에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에게 침묵은 죽음 이후에만 허용되는 어떤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저주 받은 채로 낙인찍혀 태어난 우리들은 한 시라도 누군가의 저주와 비난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겠끔 생겨 먹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누군가의 증오 어린 시선을 피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선량하게 보이는 내 웃음을 내 저주받은 생을 숨기고 위한 위장막이며, 내 부드러운 눈빛은 누군가의 증오어린 시선을 피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거대한 도시의 탁한 공기로 오염된 피부 위로 흘러내리는 끈적이는 땀이 지쳐가는 육체를 지나, 버림받은 마음마저 적시고 있는 8월 오후 ... 어수선한 나라, 어긋나는 대화들, 서로의 이익을 따지기 시작하는 세계 앞에서 어쩌지 못하며, 고작 허용된 건 침묵 뿐이라고 위안할 때, 그것마저도 불가능함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 주말엔 르 클레지오의 '침묵'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아니면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복사해와야 겠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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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안으로부터 말라버린 갈색 프라스틱 화분에 갇힌 채, 몇 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견뎌온, 이름 모를 화초가 죽었다. 이번 겨울, 내 바쁜 일상은 내 방을 거처로 삼은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해내고 말았다. 그가 죽어가며 내뱉었을 고통이 눈 앞에 선하다.

하지만 고통의 침묵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법. 꼭 사랑의 침묵처럼. 이제 세상은 침묵을 귀담아 듣지도, 눈여겨 보지도 않는 곳.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나 그녀의 사랑스런 볼이나,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슬픈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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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사람들을 만나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가 하고 묻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주위의, 많은 이들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만나기로 예정되어있던 몇 명은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너무 끔찍해서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르 끌레지오의 <침묵>이 생각난다.

"내가 죽으면 나를 알고 있었던 이 대상들은 더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되겠지.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생명이 꺼져버릴 때, 내게 주어졌던 이 통일성을 내가 마침내 흩어버리게 될 때 소용돌이는 그 중심을 바꿀 것이고 세계는 그 원래의 존재 방식으로 되돌아 가겠지."

어제 집에 있었고 오늘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드디어 흔들리는 공간 속으로 되돌아왔다. 끔찍하긴 하지만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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