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가 지나서야 사무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축축하게 처진 내 육체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피로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집에 도착해 바로 이부자리를 펴 누워, 종일 앞을 향하던 눈은 어둠 속에서 침묵을 배우고 내 영혼은 슬픈 상상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다. 늘 그렇듯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몇 번을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 여러 번 뒤척이다 보니, 어느 새 새벽이었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육체와 영혼의 문제를 떠나, 마치 미로와 같은 우주 한 복판에 혼자 멍하게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과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를 번갈아 들으며 밀린 세탁을 했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도나텔로와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 도판을 보았다. 실은 회사 일도 했다. 딱딱하고 건조하면서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