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4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지음), 송태욱(옮김), 자음과모음 재미있게 읽었다. 의외로 금방 읽을 수 있다. 일본 학자의 책들은 의외로 쉽고 명쾌하게 읽힌다. 가라타니 고진도 마찬가지이고 사사키 아타루도 그렇다. 이와 반대로 한국 학자들의 책은 상당히 어렵고 난해하며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나조차 어렵다. 실은 쉽게 씌여진 책은 너무 뻔한 이야기만 적고 있어 시간이 아깝고 깊이를 가진 듯한 책은 이 학자는 자신도 알고 쓴 것일까, 그 스스로도 이 단어나 이 개념을 제대로 알고 쓴 것일까 되묻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한국 학자가 쓴 책에는 손을 대지 않고 번역서에만 손이 갔다. 다만 이건 내가 한창 공부할 때이니, 지금 나오는 책은 어떤지 잘 모른다. 최근 읽은..

2011년의 어느 가을

거추장스러운 퇴근.길. 먼 길을 돌아 강남 교보문고에 들려, 노트를 사려고 했다. 몇 권의 빈 노트를 뒤적이다가 그냥 나왔다. 노트 한 권의 부담을 익히 아는 탓에, 또 다시 나를 궁지로 몰고 싶진 않았다. 토요일에는 비가 내렸고 일요일은 맑았다. 지난 주 세 번의 술자리가 있었고, 오랜만의 술자리는 내 육체를 바닥나게 했다. 늘 그렇듯이 회사에서의 내 일상은 스트레스와 갈등 한 복판에 서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고, 내가 느끼는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만, 그럴 형편도 되지 못했다. (다만 지금 내 경험이 시간 흐른 후에 내 능력의 일부로 남길 바랄 뿐) 모든 이야기는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텍스트는 없고 컨텍스트만 있을 뿐이라고들 하지만, 결국엔 텍스트만 있고 컨텍스트..

퇴근길 어둠 속의 마음

퇴근길 어둠이 행인의 발 끝으로 스며드는 오후 6시 24분. 어느 SF소설 속 백발의 과학자가 만들었을 법한 '마음 읽는 기계장치'가 내 손에 있다면, 내 앞으로 길게 이어진 건조한 도로 위,를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할까? 그리고 읽는다면, 나는 무수한, 혹은 몇 개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까? 21세기의 가을, 지구 위의 동물 중 유일하게 마음(mind)을 가졌다는 인간들은 지금 스스로의 마음도 알지 못한 채,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술집으로, 혹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겪는 곤혹스러움은, 내 옆을 지나는 그, 또는 그녀를 어디선가 보았던 사람이며, 아주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하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라는 생각의 빈번함이다. 왜 나는 그런 ..

콘텍스트 속의 midnight blue

콘텍스트가 싫다. 텍스트만의 자족적인 세계가 나는 좋다. 와토가 사랑의 정원에 머물다가 사랑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듯, 프라고나르가 깊은 숲 속에서 남이 알지 못하는 밀애를 즐기듯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무렵, 한때 우리들의 신앙이었던 마르크스는 당당하고 비장한 어조로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고 외치며 자본주의 이후의 신세계에 대해서 슬프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을 무렵, 오스카 와일드는 고상한 연애짓을 해대며, 우리 삶이 예술을 닮아있다고 말했다. 콘텍스트가 싫다. 텍스트만의 자족적인 세계가 나는 좋다. 하지만 슬픈 표정의 예술가들이 끝내 그 희망을 이루지 못했듯이, 내 사랑도 그렇게 변해갈 것같아 두려웠다. 콘텍스트 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