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남대문 인근의 한옥카페


아직 대기 틈으로 봄이 스며들기 전, 혹은 그렇게 스며들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안은 숙녀들이 지나가던 세종로 인근 카페에 들어가 잠시 머물렀지.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고, 그 남자도 지나고 그 여자도 지나고 사랑도 지나고 이별도 지나고, 내 철 없고 순수하던 마음도 그렇게 지나가 버렸지. 하지만 내 몸은 철 없는 채로, 순수한 채로 여기 있는데, 이 몸에 어울리던, 그 마음은 사라지고 지치고 의욕 마저 희미해진, 누군가의 마음만 남아 그 몸과 싸우고 있었지.


그러다가 어느 새 봄이 오고, 황사가 오고, 미세먼지가 내 코와 입을 통해 내 폐로 들어오고, 내 깊은 마음 속으로 들어가, 억지로 잊고 있었던 그 옛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따스한 계절이 오고, 그 핑계로, 혹은 다른 핑계로 술을 마시고 자유로운 일탈을 꿈꾸며 영원한 도망자를 잠시 상상해보지만, 철 없고 순수한 몸에는 이미 무모한 용기 대신 차분한 현명함이 남아있었을 뿐. 


요즘 자주 낯선 이들로 가득찬 남대문과 명동을 오가지. 그러다가 혹시 예전에 사랑하던 이가 다녔을 법한 갤러리나 미술관도 갈 법 한데, 아니면 한 때 그 남자, 또는 그 여자가 함께 밤을 지새우고 새벽을 배회했을 그 거리 속에서 잠시 혼자 술 한 잔 할 법도 한데, 그렇게 하기 싫었지. 그런게 일상이거니, 체념했어. 깊은 체념, 그리고 저 봄인 듯 여름인 듯한 대기와 함께. 


그렇게 계절을 잊어버린 대기 속을 떠다니는 현명한 마음과 함께. 


*           * 


출근길에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미국 샌디에고 라디오방송을 듣는데, 모차르트의 심포니들 중에 도시 이름이 붙은 곡이 2곡이 있는데, 한 곡은 프라하, 다른 한 곡은 파리라고 한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31번을 들으며 나비가 마치 작은 새처럼 나는 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때 파리에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은 어디로 간 걸까. 


파리Paris라.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Paris, Texas>>도 있었구나. 이 때의 나스타샤 킨스키는 최고였는데!  





Comment +0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소개와 그 곳에 대한 간단한 느낌이나 감상, 그리고 소장 전시되고 있는 주요 작품들에 대한 짧은 안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매우 부러웠다. 한 달 이상 파리에 체류하면서, 일 드 프랑스와 생-제르맹 거리를 오가며, 갤러리에만 있었던 건 아닌가 후회를 한다. 누구나 다 가는 루브르와 오르세만 간 걸 이제서야 후회하다니. 다시 가게 되면 꽤 오래 머무르며 작품들을 보고 와야 겠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 대부분은 이미 여러 미술 관련 서적에서 본 내용들인 탓에, 빠르게 읽었다.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여행객들이 미술관 관람이 목적이 아닌 만큼, 이 책에서 언급된 도시에 가게 될 경우, 이 책은 꽤 유용할 수 있겠다.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을 탄식하는 예레미야>, 163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렸다. 렘브란트가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깊이를 가진 작품을 그렸다는 건 놀랍기만 하다. 아마 그만큼 신앙심이 깊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통을 지긋이 누르며 곤혹스러워하는 얼굴 옆으로 불타는 예루살렘이 보인다. 바로크 특유의 명암법은 화면 전체를 감싼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하지만 밝은 쪽은 슬픔으로 가득하고 어둠 속으로는 절망감이 감돈다. 그리고 팔을 괴고 있는 모습 아래로 성경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로부터 받은 금은보화로 보이는 것들이 놓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통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바로크의 고민이 보인다. 확실하 바로크는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미래로 열린 양식이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그러나 우리 시선은 어두운 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저 반짝이는 금속물질의 물건은 참 흥미롭기만 하다. 


이 책에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소개하면서 이 작품을 언급했다. 위 설명은 내가 별도로 작성한 것이라 책 내용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는데, 마네의 베르트 모리조 초상화와 렘브란트의 위 작품이었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관계에 대해선 다음에 한 번 언급하기로 하자. 혹자는 19세기 미술사 가장 아찔한 로맨스라고도 하니 말이다. 대체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Comment +0


시냇물에 책이 있다.
안치운(지음), 마음산책



시냇물에 책이 있다 - 8점
안치운 지음/마음산책



언제부터 프랑스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때 배웠던 불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나 르 끌레지오? 하지만 그 때 내가 열심히 읽었던 소설가는 헤르만 헤세였는데. … 아니면 먼 훗날의 필립 솔레르스, 로베르 데스노스, … 기억은 꼬리를 물고 빙빙 돌아, 몇 해 전 갔던 파리 하늘 아래로 모여든다.

지하철을 오가며 안치운의 산문집을 읽었다. 웬만한 문학 비평가들보다, 웬만한 소설가보다 뛰어난 산문을 가진 그는 연극평론가이다. 중앙대에서 연극을 공부하고(그는 예술대 선배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다(뜬금없이 고백하건대, 마음 깊이 모교 교수를 하였으면 했던 이가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이 안치운이었고, 나머지 한 명이 남진우였다).

생각은 계속 진전되어, 프랑스 쪽에서 공부를 한 이들이 대체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장이 서정적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불문학 전공자들 중 뛰어난 문학 평론가들이 많고 작가도 많고 .... (다른 문학 전공자들보다. 아니면 내가 너무 친-프랑스적이여서 그런 걸까)


책은 쉽고 편안하게 읽혔다. 하지만 예전만한 감동이나 몰입을 일어나지 않았다. 안치운의 글은 부드러웠고 적당히 쓸쓸했으며, 어디에서 읽어도 그 공간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독서는 예전만 못했다. 어느새 내 독서 행위의 표면 위로 굳은 살이 덮인 것일 게다. 그렇게 세상의 먼지가 내 영혼의 세포 사이 사이로 밀려들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은 이런 책을 읽을 때 알 수 있다.

침묵, 그것은 낯선 길이라는 타인과 친해지는 내밀한 상태이며, 귀 기울이는 일이며, 자신의 몸을 낮추는 일이며, 그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그리하여 배우는 일이다. - 118쪽



하지만 이 산문집은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좋다. 적당히 쓸쓸한 현대적 삶, 혹은 얇게 쌓인 눈이 한밤의 추위로 얼어 붙은 인도 위의 행인에게 이 책은 적절한 여유를 줄 것이고, 가령 키에로프스키를 좋아한다든지, 아니면 슈베르트, 파스칼 키냐르, 혹은 파트릭 모디아노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근사한 선물이 될 것이다.

Les objets parlent plus que les mot
사물은 낱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 키에로프스키,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이 책 속에서 연극을 이야기할 때의 안치운은 행복하나, 어딘가 쓸쓸해 보이고, 종종 힘겨워 보이는 것은 실제 세상-계량적 가치와 돈으로만 움직이는-과 너무 멀리 떨어진 탓이리라. 그리고 그런 쓸쓸함은 파리 풍경 속으로 사라지고 …

몇 해 전 파리, 생 제르맹 거리가 눈 앞에 선하니, 나는 다시 언제 파리로 갈 수 있을까.




Comment +0

런던 미술 수업 - 8점
최선희 지음/아트북스


런던미술수업
최선희(지음), 아트북스




매우 실용적인 책이다. 그러면서 재미도 있다.

수필 식으로 정리된 그녀의 글은 쉽게 읽히고, 또한 일목요연하다.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긴 책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어떻게 미술계로 들어오게 되었는가, 그리고 미술계에서 어떤 일들을 했는가에 대한 책이다.

미술 전공자가 아닌 저자가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어떻게 미술계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미술계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읽기에 따라서는 다소 신변잡기적이라고 여기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미술 종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해외에서 미술 전시나 미술 시장 종사자가 되기 위해 요구하는 여러 역량이나 스킬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국내에 나온 여러 책들 중에서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 이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책 중의 한 권이다. 








Comment +4

  • wooyeons 2008.03.19 23:39 신고

    오! 읽어봐야겠어요!

    • 재미있게 읽었어요. 깊이 있는 책이라기 보다는 진솔하게 쓴 수필집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쓴 게 좋은 것같아요. : )

  • 드디어 읽었어요.
    읽고나서 써주신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사실 그대로만 쓴 게 마음에 들었어요. 이렇게 힘든 걸 나는 이렇게 했다.. 이런 식의 글이 아니어서 참 마음에 들었어요. ^^

    • 글 쓸 때, 욕심 부리면 글 모양새(문장)가 이상해지고 내용도 억지스러워지는 경우가 많아요. ㅎㅎ. 그런데 너무 욕심 부리지 않으니까,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히는데, 두고두고 다시 읽어야 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죠. 글 쓰는 이 뿐만 아니라, 뭔가 창작하는 이들이 늘 부딪히는 문제죠. : )


일어나자마자 목과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결국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몇 주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 채 목감기까지 걸려버리는 바람에, 몸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이런 육체적 고통이 혼자 사는 이에게 주는 비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없었다면, 아마 자포자기 상태로 급격하게 무너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의원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환자를 대한 여자 한의사는 나에게 한 8주 정도 다니면서 한약도 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하지만, 바로 결정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삼성동 사무실에 왔다. 토요일 88도로는 꽉 막힐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버스는 시원스럽게 달렸다. 사무실에 와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잠시 사진 정리를 했다.

작년 파리 출장에서의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대학 졸업하고 난 뒤 몇 번 프랑스 유학을 고민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하는 여러 일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랑팔레 앞 다리. 멀리 에펠탑이 보이고. 이 때 피악이 열리고 있었다.

눈이 즐거워지는 아트페어가 있다.  몇 시간 동안 전시장을 돌아다녀도 전혀 피곤하지 않고 한 작품, 한 작품 매력으로 넘쳐나서 즐거운 아트페어가 있는데, 작년 피악이 그랬다.

Alex Katz, Tiffany, 2003, oil on canvas, 244 x 85 cm


알렉스 케츠의 초상화는 꽤나 쓸쓸하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으로 현대인의 쓸쓸함을 그려낸다.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자신을 잡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누군가가 호의로 내민 손을 절대로 잡지 않는 현대인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David Hockney, Woldgate Lane to Burton Agnes, 2007, oil on canvas, 2 parts, each: 122 x 91.5 cm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경화는 충격스러웠다. 마치 이쁜 표지를 가진 동화책, 그러나 내용은 어둡고 기괴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향해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온통 초록색이었지만, 매우 낯설었다. 처음 보았을 때, 도대체 이런 풍경화를 그린 화가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역시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때 내 꿈도 그림 그리는 것이었는데, 어느 글쓰기로 바뀌더니, 이젠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확실히 지쳐버릴 것같은 느낌의 토요일 오후다. 남은 하루, 즐거운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것입니다. 작품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작품을 소개하기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Comment +0


사진 정리를 거의 못하고 있었다. 급한 일 하나를 끝내고 사진 정리를 한다.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다. 지난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흔들, 흔들 거린다.


갤러리 프레드릭 모아상의 입구. 17세에 지어진 건물 1층에 자리잡은 갤러리다.




갤러리 입구에서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의 풍경.



비가 왔다. 차창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정시키고 찰칵.




Comment +8


파리에 계신 작가의 메일을 받았다. 내년 2월에 일본으로 간다고 하니, 내년 일본에서 볼 수 있을 것같다. 남편은 프랑스 작가인데, 7~8미터 길이의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동경에 계신 noi님께도 연락해야지. 아참, 아직 책을 읽지 못했다. 빨리 읽고 서평을 올려야 겠다.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할 책임을 알기에 좀 태평스러웠다. 서문은 읽고 서가에 놓아둔 상태다.

이젠 시차엔 적응한 것같은데, 잠자는 시간을 놓치면 잠을 통 자지 못한다. 오늘도 벌써 새벽 두시 반이다. 오후엔 오랜만에 옷을 샀다. 겨울 옷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없다는 걸 며칠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운동화도 한 켤레 샀다. 운동화라기 보다는 트래킹화. 피트니스 센터 사물함엔 운동화가 하나 있고 외출용으로 간단한 운동화도 한 켤레 있고 해서 트래킹화를 샀다. 등산도 갈 겸해서. 등산화는 왠지 부담스러운 관계로.

저녁엔 운동을 했다. 지난 주 토요일에 운동을 했으니, 이틀 만이다. 좋은 일이다. 나란 인간에겐 반드시 운동이 필요하다. 술 대신. 베르그송의 의견대로, 우리의 지성은 우리의 생명에 종속된 것이다. 즉 문제는 육체다. 운동 습관을 확실하게 들이고 술을 줄일 생각이다. 하긴 예전에 비한다면 엄청 줄인 것이긴 하지만.

이번 주에도 몇 번의 점심 약속과 몇 번의 저녁 약속이 있다. 이번 주에는 이력서를 새로 업데이트를 하고 여기저기 보낼 예정이다. 미술 비즈니스계로 전직하기 위한 몇 번의 모험이 거의 실패로 향하고 있다. 마지막 시도를 하고 난 뒤, 깨끗하게 4-5년 후로 미룰 생각이다.  이번 11월이 나에겐 매우 중요한 달이 될 것이다. 미술 쪽에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워낙 연봉이 낮은 곳이라 있다고 하더라고 꽤 고민해야 겠지만 말이다).

파리 유학도 심각한 고려의 대상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결혼 이후라는 고집을 십 년째 꺾지 않고 있으니, 큰 일이다. 아무래도 내 인생에 결혼은 요원한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나에게도 오디세우스의 아테나
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거 참 어려운 일인 듯.


파리 사진을 올린다. 나는 파리 사람들이 좋다. 적당히 수다스럽고 적당히 관용적인 척하면서도 지킬 건 다 지키는 그들이. 프랑스의 지방 마을로 가면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랑팔레가 있는 거리와 연결된 다리다. 다리 너머로 에펠탑이 보인다. 내가 있는 동안 파리 날씨가 참 좋았다.

다리 교각 옆에 서 있는 기둥. 기둥 위로 황금빛 조각상이 눈에 띈다. 그런데 실제 금 도금이다. 이 금 도금 기술도 꽤 난이도가 있는 것이어서, 모두 아랍 쪽에서 배워온 것이라고 한다. 이 금 도금 기술에 대해선 다음에 자세히 언급해볼 생각이다.


Comment +0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피악(FIAC, The Foire Internationle d'Art Contemporain)이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와 루브르에서 열렸다.  하지만 바쁜 일정 탓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KIAF)를 이틀 연속 방문해 모든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본 것과 비교한다면, 이번 피악 방문은 너무 허술하기 그지 없었다.


피악이 열리고 있는 그랑 팔레(Grand Palais) 정문. 지난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 곳 그랑 팔레를 비롯해, 루브르 박물관 내의 전시 장소(Cour Carree Du Louvre), 튈리즈 정원(Jardin Des Tuileries)에서 열렸다.


아트페어가 열리는 공간의 특성 상, 작품 하나하나에 주위를 기울이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한 번 본 작품은 다시 한 번 더 봐야 하고, 구입하였을 때는 그 작품이 실제로 놓이는 공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아트페어에서는 이런 고려를 할 틈이 없다. 마음에 드는 작품인데, 가격까지 흡족하다면 구입할 수 밖에 없다.

해외의 몇몇 갤러리들은 자신의 고객들에게 아트페어 참여를 공식적으로 알리고 원하는 작품들을 그 때 경제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고객이 원할 때 무조건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아트페어라는 행사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랑 팔레의 유리 천정 아래로 가을 파리의 햇살이 밀려들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가끔 그림자가 생겨 작품 위로 올라올 때만 제외하곤 전시장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피악이 열리기 전 런던에서는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미술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런던의 아트페어를 건너뛰고 뉴욕의 몇몇 갤러리들이 곧장 피악으로 향했다는 사실이다.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프리즈 보다는 피악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VIP 프리뷰 때에는 영화 배우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LVMH 회장 등 명명이 자자한 대형 콜렉터들과 전 세계 박물관/미술관 관계자들이 참여하였다고 전해진다(데니스 호퍼가 유명한 콜렉터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의 명배우 알랭 들롱도 많은 미술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얼마 전 경매를 통해 자신의 모든 작품을 팔아 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전문적인 안목으로 모은 작품들이 아닌 탓에 그의 배우로서의 명성에 비한다면 그가 모은 작품들의 수준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내 눈을 사로잡은 풍경화 하나. 온통 녹색임에도 불구하고 힘있고 간결한 터치와 구도는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런, 데이빗 호크니의 2008년도 작품이었다. 역시 대가는 틀리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작년에 비해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터라, 피악에 대한 미술 관계자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피악의 결과는? 몇몇 뉴스들을 살펴보니,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거품이 끼인 듯, 호황을 구가하던 최근 미술 시장 분위기 속에서 진짜 작품을 찾으러 다니는 콜렉터들이 보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따져 묻는 그들의 태도에서 일부 관계자는 미술 시장이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국내 미술 시장이나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소 논쟁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삼가 해야겠지만, 확실한 것은 피악에 나온 조각이나 설치 작품들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미술 시장 내에서 소화시키는 그들의 수준은 매우 부러웠다. 미술 작품은 다시 시장에 팔려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보면서 즐기고 감상하기 위함이 일차적인 목적이다. 돈 되는 작품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 어떤 것인가를 많은 작품들을 보고 감상하는 동안 자연스레 알게 되는 어떤 것이다. 혹시 며칠 간의 여유가 된다면, 해외의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꼭 가보길 권한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작품들의 가격은 어떤지, 그렇게 자신의 예술 경험을 늘리다 보면, 작품 보는 눈이 생기게 될 것이다.

Lionel Esteve의 2008년도 작품이다. 돌을 올려놓은 것같지만, 돌에다 금빛의 플라스틱 소재를 붙여놓았다. 돌이 가지는 자연적 속성은 이 플라스틱 소재로 인해 다소 무뎌지면서 인공적인 느낌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테이블 위의 돌을 보았을 때의 시각적 즐거움은 꽤 좋았다. 


골판지에다 아무렇게 그려놓은 듯한 이 작품은 그랑팔레을 들어서는 사람들의 눈을 바로 사로잡는다. 누구인가 하고 살펴보았더니, 타피에스였다. 


 

장  미셸 아틀랑의 작품이다. 20세기 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추상 화가로 프랑스 내에서는 대단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는 1913년도에 태어나1960년도에 죽는다. 이번 피악에 나온 작품들은 20세기 전반기의 작품들이었다. 제작된 지도 이미 50년 이상 지난 작품들인 셈이다. 따지자면 이 정도는 약과다. 다른 프랑스 갤러리에서는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 중 한 명인 키르히너의 1910년대 작품을 내놓기도 했으며, 다른 갤러리에서는 에밀 놀데의 20세기 초반 작품들을 무더기로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설치와 조각 작품들의 작가 이름과 제목은 모두 확인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메모해놓은 작가 이름들도 일일히 인터넷으로 찾아 실제 작품의 작가가 맞는지도 확인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확실히 조각 작품들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또한 조각 작품들에 대한 수요도 꽤 있는 듯, 대부분의 갤러리에서 조각 작품들을 가지고 나왔다.

 

Fiac에 갔다온 흔적. 입장료는 25유로, 카타로그는 35유로,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Fiac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카타로그를 20유로에 온라인 판매를 한다고 한다. 거의 팔리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너무 비싸게 받았다.




Comment +6

  • 안녕하세요.티스토리 입니다^^
    회원님의 포스트가 현재 다음 첫화면 카페.블로그 영역에 보여지고 있습니다. 카페.블로그 영역은 다음 첫화면에서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님께서 작성해 주신 유익하고 재미있는 포스트를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다음 첫화면에 소개 하게 되었으니, 혹시 노출에 문제가 있으시다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티스토리와 함께 회원님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핫. 이런 영광이.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도 더 올리고(아직까지 사진 정리가 안 끝나서.. ㅡ_ㅡ;), 글도 좀 더 길게 적을 걸 그랬어요. 때늦은 후회를.. ㅎㅎ

  • 파란하늘 2008.11.06 01:50 신고

    파리의 미술축제, FIAC에 가다.
    프랑스 파리 미술 축제 우와 저도 가고 싶어요
    외국에 ㅠㅠ
    추천 누르고 갑니다.

    • 서유럽의 아트페어는 참 좋습니다. 작품 수준도 높고 한국처럼 사진 찍으러 다니는 학생들도 없고(한국의 KIAF를 갔다가 엄청 놀랬습니다)...
      혹시 유럽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아트페어가 있는 시즌도 매우 좋습니다. 독일(퀼른, 칼스루헤), 스페인(아르코), 프랑스(피악), 영국(프리즈)에 가면 무척 좋아요. : )

  • 저는 그림그리는 사람입니다.
    올해 피악아트페어를 보러 가볼까 정보를 찾고 있었는데 피악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더군요.
    님의 포스팅이 너무 반갑네요^^
    서유럽아트페어를 많이 보러다니신 듯한데 저는 회화적인 현대미술을 많이 보고 싶은지라...
    혹시 어디가 가장 좋을지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 페인팅은 프랑스보다 독일 쪽이 좋습니다. 퀼른 아트페어가 현대적인 회화 작품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피악아트페어도 좋고요. 아트페어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미술관까지 본다면~.. 파리가 좋겠죠. 그 외 바젤이나 아르코도 명성만큼 대단한 작가들과 갤러리가 참여하니 추천합니다. ^^


사진에서 보는 에펠탑과 실제로 보는 에펠탑은 너무 달랐다. 대단한 느낌을 주는 탑이었다. 파리에 가게 된다면 에펠탑을 놓쳐선 안 된다.

에펠탑이 멀리 보이는 트로카데로에서 사진을 찍었다.


Comment +6

  • skynsea 2008.10.23 15:55 신고

    ㅎㅎ.. 수학여행온 자세로.. ㅋㅋ.. 귀엽사옵니다.

  • noi 2008.10.25 14:52 신고

    위에도 올라가 보셨어요? 전 왕년에 코앞까지 갔다가 줄이 길어서 못 올라갔다는..ㅠㅠ 참을성 제로인데다 다른 거 볼 시간이 아까워서..

    근데 유럽연합기에 있는 별들이 에펠탑에 수놓여 있군요.. 오예 ^^b

    파리에서 건강하게 지내시다 오세요!

    •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찔해지기 때문에, 올라갈 수 있어도 올라가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늘 긴 줄 때문에 꽤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더군요.
      바로 아래에서 보면 무척 좋다는데, 트로카데로 광장에서만 에펠탑을 보았습니다. : ) 그리고 건강하게 서울에 왔습니다. 하지만 시차 적응에는 꽤 시간이 걸릴 것같은데요. ㅎㅎ

  • jina 2008.12.09 12:45 신고

    팔래드 도쿄 사진은 없나???
    그동네인데...


비싸기로 유명한 파리 물가에다, 환율 폭등에, 절약해 쓴다고 했으나 금세 현금이 바닥나 버렸다.

와인 가격이 싸다고 하나, 먹을 만한 와인들은 보통 3~4 유로는 줘야 하니, 요즘 환율로는 7-8천원이다. 마자랭 가에 있는 갤러리를 나와, 메트로와 RER을 타고 숙소까지 오면 하루의 피로가 몰려든다. 저녁으로는 돼지고기를 숯불에 훈제로 구워, 와인과 함께 먹었다. (여긴 과일 가격이 엄청 비싸고 돼지고기, 소고기 가격은 엄청 싸다. 아마 한국도 이렇게 될 듯 싶다. 그리고 생선은 구경하기 힘들고 회는 너무 비싸서 먹을 수 없다.)

연일 사건사고로 정신없는 서울과 달리, 파리는 조용하다. 내일은 피악FIAC이 시작된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다. 파리에서의 일정 때문에 Contemporary Istanbul 페어엔 가지 못했는데, 카타로그를 보니, 작년보다 수준이 좀 떨어진 것같다. 그렇다고 해도 KIAF보다 조금 못한 수준. KIAF는 참여 갤러리 수는 많으나, 작품 수준은 아직 국제적인 수준에 올라가기 위해선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 듯 했다.

오늘은 마자랭가에 있는 갤러리 투어를 할 생각이었는데, 갤러리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오늘 일정은 이것으로 끝일 듯.


* 사진설명: 구름이 거의 없는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어느 날엔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기다란 구름들 여러 개가 서로 엇갈리며 하늘을 장식하기도 한다.







Comment +0


화창한 일요일, 베르사이유 궁전에 갔다 왔다. 동양에서는 매우 익숙한 '중앙집권'이 서양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전성기 로마를 제외하곤 서양에서 중앙 집권 국가는 근대에 들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과 무관하게 그의 일상은 참 피곤한 것이었다. 그의 식사는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였으며, 그에게 비밀스러운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오래 살지 못했고 그의 가문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라졌다.

프랑스의 일부 사람들은 루이 왕가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하긴 조선 왕조 복권을 꿈꾸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화려하면서도 절제와 규율을 지키는 바로크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궁 건물과 화려한 로코코 장식들로 채워진 궁 내부는 현대인들이 보고 감탄하는 화려함 혹은 우아함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렸을때, 다소 쓸쓸하고 외로우며 슬프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리는 11월부터 3-4월까지 두꺼운 커튼을 열어도 어두운 실내의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을 것이다.

로코코의 화려함은 이런 일상을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한 과장한 몸짓일 지도 모른다. 베르사이유를 보면서 나는 이런 슬픔 같은 걸 느꼈다.

일요일을 맞아 많은 파리 사람들이 베르사이유엘 왔다.

프랑스식 정원. 프랑스 사람들 특유의 고전적 풍모를 느낄 수 있는 정원이다.

베르사이유 궁에 기거했던 여왕(?)의 방.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 실내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베르사이유 안에 제프 쿤스가 있었다. 미국인들이 베르사이유 관광을 많이 하기를 바라는 프랑스 정부의 의도가 깔렸다는 평도 있지만, 이방인인 내가 보기에도 베르사이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베르사이유와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가 사뭇 궁금해지기도 했다.







Comment +2

  • skynsea 2008.10.23 15:57 신고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많이 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미국인들 의외로 여행 안합니다.. 올 사람들은 오고... 그나저나 베류사유도 보시고.. 프랑스는 가볼만 하죠..

    • 베르사이유는 기대했던 것보다 즐겁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르사이유 궁에 붙은 정원은 환상이더군요. 궁 뒤쪽 먼 정원은 무료 개방이기 때문에 많은 파리 사람들이 나들이를 왔더군요.



길을 가다 사진을 찍었다. 며칠 날이 흐리다가 화창하게 해가 났다. 걸어 루브르에 갔다.
 

예술의 다리 위에서 세느강 동쪽으로 보면서 찍었다.

잠볼노랴의 '헤르메스'다. 날아갈 듯한 가벼움. 매너리즘 조각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각작품이다.

폰토르모의 작품이다. 화사한 색감의 무너지는 듯한 라인들은 16세기 후반의 심리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성 제롬이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종교적 황홀경을 표현한 작품들은 많다. 이들 작품들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아도 무척 재미있는 스토리가 될 것이다.  



Comment +0


파리에 온 다음날, 시차에 적응한 듯 느껴졌으나, 일주일 정도 지나니, 새벽마다 잠을 깬다. 밤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유럽 도시에서의 하루는 늘 일찍 끝났다가 일찍 시작된다. 아침 식사를 하고 일드프랑스 동쪽 끝에서 전철을 타고 파리 오데옹 역까지 와서, 마자랭 거리의 갤러리까지 오면 오전이 거의 끝나 있다.

원래 일정이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갔다가 바로 서울로 올 예정이었는데, 그냥 파리에서 2주 넘게 머물게 되었다. 어제는 퐁피두의 국립현대미술관엘 갔다. 알베르 망구엘 컨퍼런스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엔 한두권의 책이 번역되어 있는 이 잡학다식한 저술가는 프랑스에선 꽤 유명인사인 모양이다.

20세기 초반 아름다운 추상미술을 보여주었던 보치오니, 그리고 안토니 타피에스,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이 좋았다.


숙소 앞 정원에서 찍었다.

숙소로 들어오는 길, 노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퐁피두 센터 내부.

Comment +0



어제 오전 일찍 나와, 세느강 옆을 걸었다.

서울은 마치 표준화, 규격화, 효율화의 전범처럼 꾸며져 있다면, 파리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르다. 얼마 전 서울시 청사의 재건축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 문화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느강 옆을 걸으면서 보게 된 강 옆에 놓인 배들의 모양 하나하나는 각각의 개성을 살려 설계되고 장식되어 있었다.

동일한 디자인의 아파트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서울은 꼭 20세기 초 근대주의자들의 잃어버린 로망을 되살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보인다. 하나가 잘 되면, 그 하나를 따라하기 바쁘다. 한국 사업가들이 '벤치마킹'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세계가 놀랄 정도의 시간 단축을 보여주었지만, 개성화나 창조성의 부분으로 들어가버리자 여기저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떠들고 있는 '잃어버린 10년'이 바로 '삐걱거리기 시작한 10년'이다. 이는 좌파(이 표현만큼 부적절한 것도 없을 텐데. 실은 전혀 좌파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편의상 사용한다.)적 정책과는 무관하다. 현 정부의 잘못된 정치적 주장이 잘못된 정책 수립과 집행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시 유예된 미래를 파리에서 보내고 있는 나는 마자랭 72번지 갤러리 프레드릭 모아장(Galerie Frederic Moisan)에서 하루의 반을 보낸다. 그리고 갤러리 닫는 시간 쯤, 오데옹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샤틀레 역에서 일드프랑스로 나가는 A4 전철로 갈아타고 뷔시 생 조지 역에서 내려 숙소가 있는 골프장 마을까지 걸어간다.

어제서야 비로소 미술관을 갔다. 미술관 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은 이 곳이 19세기 중후반 미술에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는 뮤제 오르세임을 알게 해 주었다. 약 3시간 동안 관람을 했다. 하지만 나는 빈 노트 하나 들고 나와 하루 종일 앉아 작품 보면서 작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많은 전시와 아트페어를 다니면서 무수한 현대 작품들을 보아왔으나, 19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근대 미술 작품 앞에서 얼마나 많은 현대의 예술가들이 절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미술(부게로, 제롬 같은 이들) 앞에서 A3 사이즈의 정도의 작품들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매혹시켰으며 끊임없이 물결치는 위대한 예술의 바다를 창조해낸 19세기 후반의 인상주의자들과 그 후예들을 만나면서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르세를 나오는 길에 책 몇 권을 사들고 나왔다. 잠시 한국 미술에 대해 생각했다. 온통 꽃 그림들과 과일 그림들로 도배된 한국 현대 미술을 보면 얼마나 참혹스러운 기분이 드는지, 도대체 몇 명쯤이나 알까. 아니면 숲 풍경?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한국 미술인 셈이다.


세느강변 산책로

드가(Degas)의 조각 작품들.

조르주 쇠라의 작품들. 어쩌면 후기 인상주의자들이야 말로 현대 추상 미술의 시작을 알린 예술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모네, 피사로, 시슬리 같은 인상주의자들을 넘어서기 위해 쇠라, 시냑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어떤 이는 일찍 죽은 조르주 쇠라를 아쉬워 하기도 한다.

Comment +2

  • skynsea 2008.10.23 16:00 신고

    혼자서 오르세 갔다가 위통이 생겨서 거의 기절해서 일층 로비에 누워 있다시피하다가 온 기억이 나는 군요.. 기절 끝에 황홀경이라니,.. 복통 중 인상파의 거장들 앞 의자에 앉아 한참을 고통과 감동의 두가지 감정이 복받쳐서.. ^^;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역시 일 때문에 오는 건 재미없다.

갤러리에서 일찍 나와 잠시 길을 걸었다. 얇은 구두가 발을 아프게 했다. 일요일 파리 거리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퐁네프 표지판.

노트르담을 지나 샤틀레 역으로 향해 가던 중.


오데옹 극장 거리 앞 노천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노트르담 성당 정면 왼쪽 부분.

마자랭 거리에 위치한 갤러리 프레드릭 모아상 내부. 현재 강창열 작가의 초대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Comment +0


파리에 왔다.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전시 준비를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고 비상식적으로 올라간 환율 때문에 계획했던 일 몇 가지를 못할 것같다. 그리고 예정에 있었던 이스탄불 방문은 다음 기회로. 

파리의 여러 미술관과 FIAC를 방문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미래는 계속 유예되고 있는 느낌이다. 파리라는 도시의 모습보다 파리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파리의 매력을 이끄는 힘인 듯 싶다. 비좁은 카페에서 길을 지나는 행인들과 아래로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그들은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음식을 먹으면서 담배를 피운다. 거리는 온통 담배 꽁초들로 가득하고 거리는 차로 밀린다.
 
오래 전에 파리로 유학 왔더라면, 후회하지 않았을 듯 싶다. 르 클레지오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고 한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고 보면 미셸 투르니에도 있는데, 르 클레지오가 받는구나.

루브르 앞에서 찍었다.

퐁네프 다리 위에서 찍은 세느강

길거리 까페에서 한 장.

Nation 역. 파리 근교로 나가는 환승 전철역이다.


Comment +2



힘들 때마다 꺼내드는 책들이 있었다. 루이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오래 전에 출판된 임화의 시집, 게오르그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 그러고 보니, 이 책들 모두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엔 이 책들을 읽지 않는다. '힘들다'는 다소 모호하지만, 여하튼 요즘엔 이 책들을 읽지 않는다. 어쩌면 힘들다고 할 때의 그 이유가 다소 달라진 탓일 게다.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를 보냈던 20대엔 대부분의 고초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똑같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30대의 고초는 경제적이거나 업무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파리로 가서, 다다음 주 초엔 터키 이스탄불로, 다시 그 다음 주엔 파리로, 그리고 그 주말에야 비로소 서울로 돌아온다. 빠듯한 재정 상황 속에서 가는 아트페어 참가라,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오후엔 이스탄불에서 독촉 전화가 왔다. Deadline이 내일이라고 서류들을 챙겨서 보내라고 한다. 할 일이 밀리는데, 책상은 어지럽고 컴퓨터의 파일들은 뒤죽박죽이다.

유로 환율은 왜 이 지경이 되어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걸까. 내가 참가 했던 지난 아트페어들을 챙기면서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남는 건 이런 사진들과 갤러리와 작가들 명함들 뿐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앞 서점이다. 문고판 책들을 할인해서 팔고 있었다. 여기에서 모차르트의 '돈 조바니' 가사집을 한 권 샀다. 문고판 책도 참 이쁘게 만든다. 난 이런 책이 좋은데. 깔끔하고 가지런한 디자인의 문고판. 

하이델베르크 성에 놀러온 프랑스 아이들이다. 한결같이 영어를 잘 못한다는 특색을 지닌 아이들. 카메라를 든 동양인을 보자 엄청 즐거워했다. 사진 보내라고 했는데, 메일 주소라도 적어둘 걸 그랬나 싶다.

이런 풍경은 펜시상점 엽서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엽서가 된다는 게 흥미로웠다. 서울 풍경을 찍으면 엽서가 될까. 


작년 이스탄불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정리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 여행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자기 전에 기도해야 겠다. 보이지도, 경험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조금만 더 행복해지고 윤택해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Comment +4

  • 서울에도 찍으면 엽서가 될만한 곳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
    우리가 이국적인 풍광에 더 쉽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여행중이신 것 같네요~ 아~~~ 부러워요~~~ ^^

    • 올해 초, 독일에 갔습니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일로 갔죠. 편하게 여행 갔으면 좋으려만, 딱히 그렇지도 못했어요. ^^

  • 2008.10.02 21:52

    비밀댓글입니다

    • 사진 찍는 데 거의 소질이 없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만, 사진을 잘 찍지 않죠. 독일 가서 찍은 사진들 중에서 그나마 좋은 사진입니다. 크~.
      괜찮습니다.


창을 열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는, 두텁고 축축한 서른다섯 사내의 불쾌한 냄새를 치우려고 해보지만, 바람이 밀려들어 오는 것도 잠깐, 뒤 따라 들어온 빗방울들은 먼지가 쌓인 책상 귀퉁이를 적시고, 체모가 뒹구는 방바닥을 적시고,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책을 덮치고 내 발은, 내 손은 금세 젖어버린다.

나무로 된 케이스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갈라진 캔우드 리시버 앰프의 불륨을 조절하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 풍의 피아노 음악 소리 사이로 비가 지상의 여러 구조물과 만나 부서지고 흐르는 소리를 엿듣는다. 그 소리 속에 이 여름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어떤 비결이라도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기대를 해 보지만, 삐친 애인의 숨소리 마냥, 그 비결을 눈치 채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주눅이 들 정도로 비 소리는 요란하기만 하다.

아찔아찔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왜 이리 평온한 것일까. 꼭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마냥, 모든 걸 손놓고 여신 아테네의 손길을 기대하는 오딧세우스처럼. 어제 몇 년 만에 만난 후배가 ‘형, 글 잘 썼는데, ...’이라고. 그러게. 원래 나는 한 가지만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너무 낙천적이고 터무니없이 희망적이니, 그래서 너무 절망적인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읽은 A. 리샤르의 <<미술비평의 역사>>에서 봤던 들라크르와의 <야곱과 천사의 싸움La Lutte de Jacob avec l'Ange>가 떠오른다. 그 작품을 두고 A. 리샤르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를테면 생-쉴피스(Saint-Sulpice) 성당에 있는 <야곱과 천사>를 볼 때 우리는 성서 가운데 씨름하는 천사(그는 야곱의 넓적 다리의 신경에 손을 댔다. 그러자 곧 힘을 못 쓰게 되었다)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작품의 힘 있는 형태와 은색의 빛에 감탄하게 되며, 성서에 쓰여있는 기묘한 사건보다도 들라크르와의 위대성에 감탄하게 된다. 즉 예술은 그 자율성을 획득하고, 각 예술은 저마다 그 특수성을 획득한 것이다.
- A. 리샤르, <<미술 비평의 역사>>, 48쪽, 열화당

우리 삶의 자율성이 거대한 자본주의에 종속되면 종속될수록, 그 반대 항에 대한 열망도 커져나가는 걸까. 그렇지 않을까. 아니면 포기하게 되는 걸까. 다시 도전하는 걸까. 아니면 위대한 천재들의 모습만 동경하다가 늙어버릴까. 과연 어떻게 될까.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오늘도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과 마주 하기 싫어 고개 돌리기만 지속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들라크르와, <<야곱과 천사의 싸움>>, 1858-61, 715*485 cm, 캔버스에 유채, 생-쉴피스 성당, 파리


Comment +0

보르헤스 씨의 정원

일러스트: 메테오 페리코니 보르헤스 씨의 정원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꼴레타 인근의 어느 집에는 이중의 특권을 가진 창문이 있다. 그 창문에서는 한 눈에 하늘이 들어오고, 이웃한.....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메시Messy, 팀 하포드

메시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지음), 윤영삼(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확실히 기존 통념을 깨뜨린다. Messy라는 제목 그대로, 무질서와 혼.....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

맑스주의와 형식, 프레드릭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일요일 오후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