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9

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예술과 풍경 The Pursuit of Art: Travels, Encounters and Revelations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지음), 김유진(옮김), 을유문화사 “모든 화가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속 48킬로미터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좋은 회화와 나쁜 회화를 구분할 수 있다." - 케네스 클라크 빠르게 책을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이었다(이건 내 기준일테니,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마틴 게이퍼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평론가이면서 데이비드 호크니나 루시안 프로이드와 같은 현대 예술가들의 친구이다(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로 책을 몇 권 내었다). 이미 몇 권의 책들이 한글로 번역 출판되어, 현대 예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어떤 아침 풍경

봄 바람이 차가웠다. 대기는 맑았다. 하늘은 높았다. 하얀 구름을 시샘하듯 파란 배경 위로 햇살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내 마음은 알몸인 듯 추웠고 쓸쓸했으며, 비에 젖은 스폰지마냥 몸은 무겁고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출근길은 길고 지루했으며 해야할 일들의 목록을 사랑의 주문을 외듯 되새기며 걸었다. 걷다가 살짝 삐져나온 보도블럭 모서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그렇게 넘어져 다쳐 응급실에 실려가는 걸 잠시 상상하다가, 말았다. 불길한 상상은 현실이 되고 행복한 상상은 언제나 상상으로만 머물었다. 그랬다. 마치 우리 젊은 날들을 슬프게 수놓았던 사랑의 흔적들처럼. 마치 공부하는 학생처럼 두꺼운 책 한 두권을 들고 다닌다. 오늘 들고 나온 책에 인용되었던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책상 위 풍경, 1월 10일 일요일

2020년 1월 10일 일요일 저녁, 책상 위 풍경 인스타그램을 보니, 자기가 공부하는(혹은 책을 읽는) 책상 위를 찍는 이들이 있었다. 다양한 펜들로 공책에 필기 하고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긋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나도 한 두 번 찍어보다가, 어쩌면 이것이 내 기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르렀고, 이렇게 카테고리를 만들어 업로드를 해 본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시간은 거의 없는 직장인인지라, 이것도 내 보잘 것 없는 허영에 기댄 놀이같달까. 또는 구입하긴 하였으나, 완독하지 못해 소개하지 못한 책들을 이렇게 보여줄 수도 있을 것같고 좋은 음반이나 이것 저것도 알려줄 수 있을 것같기도 하고. 첼리비다케. 내가 선호하는, 그러나 어떤 연주는 지독하게 느려터져서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

성당 풍경

마음이 스산하고 몸은 피곤하다. 꿈은 외롭고 발걸음은 정해진 궤도만 오간다. 나무와 본당 건물 사이의 전선만 없으면 어느 유럽 도시 풍경처럼 보일텐데. 저 풍경 사이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싶다. 그리곤 나오지 말아야지. 그렇게 사라진 몇몇 사람들은 나는 알고,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를 나는 알고, 그녀는 나를 잊었다. 가을 오는 소리에 살짝 놀라 궤도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모든 것들은 정해진 대로 갈 뿐이다. 벗어난 그 곳마저도 예정된 궤도 위라는 걸. 그걸 알았다면, ... ...

데이비드 밴 David Vann 인터뷰 중에서 (Axt 2017. 11/12)

를 가끔 사서 읽는다. 얼마 전에 한 권 샀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겨울에 산 것이었다. 그 사이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버렸다. 아. 데이비드 밴David Vann이라는 미국 소설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의 번역 소설을 보긴 했지만, 읽진 않았다. 라는 잡지가 출간되었을 무렵 자주 사서 읽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지 않는다. 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놓고 읽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읽을 것들이 너무 밀려있기 때문에. 좋은 잡지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밴이라는 소설가와의 인터뷰 중 흥미로운 몇몇 구절을 옮기고 메모해둔다. 흥미로운 관점이다. 풍경 묘사와 가족 이야기. 소설을 쓰는 이들에겐 꽤 유용한 조언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소설을 쓸 때 항상 인물과 장소에 집중한다. 인물의 정신은 대체로 풍경 ..

2011년을 되돌아보며 - 1. 풍경으로서의 정치

* 이 글은 몇 달 전에 시작되었고 아직 끝나지 않은 글의 일부다. 그 사이 세상은 꽤 변했고 ... 하지만 쓴 글이니.. 끝까지 다 쓰고 올릴 계획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서두부터 올리고 글이 씌여지는 대로 업데이트를 할 생각이다. 2011년을 되돌아보며 01. 풍경으로서의 정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한미FTA를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난 뒤, 그 누구도 그 행위에 대한 반성 표명 없이 스스로 일신하겠다며,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헤쳐모여 하고 있다. ‘비대위’라는 상징적 기구를 통해 일신의 모양새를 만든 후, 친이계와 현 MB정부를 압박하는 듯한 풍경을 연출하지만, 이건 그저 풍경일 뿐이다. 풍경은 소통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드러낼 뿐이며, 보는 이들을 향해 풍경 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보는..

풍경화에 대하여

* 이 글은 1998년 예술사 수업 과제물로 제출한 리포트이다. 참고용으로 활용하기 바라며, 인용 시 출처를 밝혀야만 할 것이다. 1. 지금 당장 밖에 나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린다면 그것도 하나의 풍경화(landscape painting)가 될 수 있을까? 가령 건조한 표정으로 서있는 건물들이나 건물 앞 둔탁하게 생긴 구조물과 초췌한 빛깔의 나무들, 혹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그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해서 풀밭이나 산이나 강을 그린 화가에게 깊은 겨울의 우울함으로 물들어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들이밀면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화인가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먼저 우리가 여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우리가 '풍경화'라고 할 때의 그 '풍경'과 철학이나 미학에서 말하는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