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귀향

자끄 프레베르 Jacques Prevert 

안민재 역편, 태학당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 예전엔 외국 번역 시집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긴 시집 읽는 이도 드문 마당에... 


번역이 다소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오늘 다시 보니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 


1994년에 출판되었고 인터넷서점에선 검색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 소개한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닫혀있는 마음은 밖으로 무너지고 저녁 바람을 새삼 느끼고 저 하늘 달빛이 이 버릇없는 작은 도시의 사람들 위를 비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될 것이다. 


대학시절 불어로 시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불어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흔적으로 남았다. 시를 읽으며 술을 마시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그 시절 탓에 지금 삶이 어려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갈피 잡을 수 없는 중년의 봄날이 이어진다.  


 



공원 Le Jardin 




우주 속의 별

지구 속의 

파리

파리 몽수리 공원에서

어느 겨울 아침 햇빛

네가 내게 입 맞춘 

내가 네게 입 맞춘

그 영원의 한순간을

다 말하려면

모자라리라

백만 년 또 수백만 년도 






어느 새의 그림을 그릴려면 Pour faire le portratit d'un oiseau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릴 것

다음에는 새를 위해

뭔가 예쁜 것을 

뭔가 단순한 것을

뭔가 예쁜 것을

뭔가 쓸모 있는 것을 그릴 것

그 다음엔 그림을

정원이나

숲이나

혹은 밀림 속

나무에 걸어놓을 것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고 ... ...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여러 해가 걸려서

결심하기도 한다

실망하지 말 것

기다릴 것

필요하다면 여러 해를 기다릴 것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것은

그림의 성공과는 관계 없는 것

새가 날아올 때

혹 새가 날아오거든

가장 깊은 침묵을 지킬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길 기다릴 것

그가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차례로 모든 창살을 만들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

나무의 초상을 그릴 것

푸른 잎새와 신선한 바람과

햇빛의 가루를 또한 그릴 것

그리고는 새가 결심하여 노래하기를 기다릴 것

혹 새가 노래 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쁜 징조

그림이 잘못된 징조

그러나 새가 노래하면 좋은 징조

당신이 사인해도 좋다는 징조

그렇거든 당신은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 뽑아서

그림 한구석에 당신 이름을 쓰라 





절망이 의자 위에 앉아 있다 Le de'sepoir est assis sur un banc 




광장의 의자 위에

어떤 사람이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

외안경에 낡은 회색 옷을 입은 그는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다

그를 바라보면 안 된다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냥 스쳐야 한다

그가 보이거든

그의 말이 들리거든

걸음을 빨리 하여 지나쳐야 한다

혹 그가 신호라도 한다면

당신은 그의 옆에 앉을 수 밖에 

그러면 그는 당신을 보고 미소 짓고 

당신은 참혹하게 고통 받고

계속 그 사람은 웃기만 하고

당신도 같은 웃음을 웃게 되고

웃을수록 당신의 고통은 더욱 참혹하고

고통이 더 할수록 더욱 어쩔 수 없이 웃게 되고

당신은 거기 의자 위에 

움직이지 못하고 미소 지으며 

주위에는 아이들이 놀고

사람들 조용히 지나가고 

새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고

당신은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조용히 

이 행인들처럼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날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사랑이라는 건 ...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으니, 내 산 새며, 내 산 꽃이며, 내가 산 사슬도 보지 못했지. 그리고 너는 나를 영영 만나지 않았지. ...  


진짜는 어렵다. 그게 사랑이든, 문학이든, 삶이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물 



프랑시스 퐁주 




  나보다 더 낮게, 언제나 나보다 더 낮게 물이 있다. 언

제나 나는 눈을 내리깔아야 물을 본다. 땅바닥처럼, 땅

바닥의 한 부분처럼, 땅바닥의 변형처럼.

  물은 희고 반짝이며, 형태 없고 신선하며, 수동적이라 

못 버리는 한 가지 아집이라면 그것은 중력. 그 아집 못 

버려 온갖 비상수단 다 쓰니 감아 돌고 꿰뚫고 잠식하고 

침투한다.

  그 내면에서도 그 아집은 또한 작용하여 물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순간순간 제 형상을 버리고, 오직 바라는 것은 

저자세, 오체투지의 수도사들처럼 시체가 다 되어 땅바

닥에 배를 깔고 넙죽이 엎드린다. 언제나 더 낮게, 이것이 

물의 좌우명. '향상(向上)'의 반대. 


(역: 김화영)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오랜만에 읽는 이름. 프랑시스 퐁주. 물에 대한 시다. 물은 정말 그렇다. 그렇구나. 



(6월 10일. 어딘가에서) 



하지만 물처럼 살지는 못하리라. 물은 물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별은 별대로.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다시 시집을 읽어야겠다. 나이가 들어 다시 시집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눈 




시몬느, 눈은 그대의 목처럼 희고,

시몬느, 눈은 그대의 무릎처럼 희다.


시몬느, 그대의 손은 눈처럼 차고,

시몬느, 그대의 가슴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볼의 키스에만 녹는데,

그대 가슴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가.


눈은 소나무 가지에서 슬픈데

그대 이마는 밤빛 머리칼 밑에서 슬프구나.


시몬느, 그대의 동생 눈은 정원 속에서 잠들고 있다.

시몬느, 그대는 나의 눈, 나의 사랑. 


-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 (1838 ~1915)  

(오증자 옮김, 정우사, 1976년)  






퇴근길, 길가 헌책방엘 들렸다. 알라딘이 아니라 진짜 헌책방. 그리고 이 책을 들고 나왔다. 오증자 교수. 한때 성실했던 프랑스문학 번역가였지만, 지금은 그녀의 번역서는 거의 없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그녀의 번역작인데, 그녀 남편은 유명한 연극연출가 임영웅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출판되고 있는 걸까. 


정말 오랜만에 구르몽의 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소리 내어 읽으니, 술 생각이 났다. 나이가 들어도 좋은 시 읽을 때, 술 생각 나는 건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요즘 사람들은 구르몽의 시를 알까. 쓸쓸하기만 한 6월 밤이다. 나라는 엉망이 되었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로 변해간다. 이제 시인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소문이 들린다. ... ... 나는 어쩌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 가슴을 가진 채로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어떤 푸른 이야기(une histoire de bleu) 
장 미셸 몰푸아(Jean-Michel Maulpoix) 지음, 정선아 옮김, 글빛(이화여대출판부) 






늦가을, 잔잔히 비 내릴 때, 하늘의 흐느낌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럴 때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착잡한 눈물을 슬레이트 지붕과 아연 홈통을 두드리는 맑디맑은 빗물에 보태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부드러운, 거의 평온해진 동작이다. 이 시각, 이 계절에, 우리는 언어를 뒤흔들지 않고, 거기에 우리 자신을 내맡긴다. 이번만큼은 그 적절함이 빗줄기의 속삭임과 유리창의 어둠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확신하며. 그 순간, 뜻이 확실치 않아 오래 전부터 밀쳐두었던 책 몇 장을 다시 읽어보고 싶으리라. 이번에는 그 감동을 되찾고 그 의미를 이해할 거라고 확신하며. 그래서 만일 펜을 들게 된다면, 무엇을 발견하기보다는 기억해내기 위해서이리라. 자신의 얼굴이 비친 수면 위로 마침내 몸을 숙이듯. 
- 144쪽
 

몰푸아의 시집을 읽으면서 작고 낮은 웃음을 천천히 흘러 나왔다. 번역 시집을 읽으며 이런 기분에 빠진 건 정말 오랜만이니, 역자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푸른 바다에 대한 끝없는 무한과 사랑, 그리고 서정성에 대한 시집이다. 감미롭고 부드러우며 읽는 이의 마음을 스다듬는다. 

아주 드물게, 좋은 번역 시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단어들로만 구성하여 풍부한 시적 풍경을 만들고 그 속에 독자를 안내한다. 이 시집도 여기에 속한다. 아주 드문 번역 시집에. 


청명한 날이면, 난바다는 찬란히 부서진다. 

하얀 기와 얹은 하늘. 낮잠에 취한 바다가 잉크빛 기다란 상처 자국을 수평선의 뺨에 새긴다. 그곳에 돛단배들이 고요한 한길을 내고 새를 키우는 사람의 순백색 사랑을 심는다. 

수풀 넘쳐나는 정원들은 박하, 물망초, 봉숭아 향 날리며 난바다를 향해 더 높이 자란다. 페인트칠한 나무발코니에 뱃사람들의 가슴이 물거품처럼 튀어오르면, 라일락 꽃잎 술렁이는 소리가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바다의 대기실에서 보낸 어느 여름날 일요일. 드리워진 커튼이 조금 벌어져 있다. 불빛이 깜박인다. 바다의 투명한 물결이 왁스 칠한 가구와 종이 위로 흐르며 잔잔히 흔들린다. 출범을 앞둔 빈약한 함대 한 척. 그리고 물살 위의 배처럼 살랑대는 한 편의 시. 알 수 없는 욕망 하나 눈을 뜬다, 아니 잠든다. 난바다를 향해 문들이 살짝 열리다 이내 다시 닫힌다. 몽상에 젖은 자, 손가락을 푸르름에 적시면 그의 몸은 이윽고 모래가 된다. 
- 16쪽 


시의 제목처럼 첫 문장 하나가 떨어져 나오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하다.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사적인 테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짧은 시들이 모여 어떤 지향을 가지긴 하나, 이는 비평가에게 맡길 일이니, 우리는 그저 읽으며 조용해질 뿐

'무한은 인간의 문제'라고 여기는 몰푸아는 이 시집을 통해 자신만의 시론(詩論)을 펼쳤는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론인가! 


http://www.maulpoix.net/ (장 미셸 몰푸아의 홈페이지. 프랑스어로만 구성되어 있음)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폴 발레리의 문장. 






어떤 푸른 이야기 - 10점
장 미셸 몰푸아 지음, 정선아 옮김/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쇼핑몰 멤버십 프로그램 (e-commerce membership)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