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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지음), 권진아(옮김), 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너무 유명했던 탓에, 내가 그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것이 세계문학전집의 폐해다. 헤밍웨이의 소설들 -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나 <무기여 잘 있거라>-을 고등학생이 읽고 이해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리고 그 시절 이후 헤밍웨이를 읽지 않았고, 이 사실마저도 이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새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말년에 행한 인터뷰들을 소개한다. 뭔가 깊이있는 이야기가 나오기 보다는, '아, 헤밍웨이구나'정도랄까. 그래, '헤밍웨이'.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고 끝냈을 때는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시작만 할 수 있으면 괜찮아요." 


하지만 글쓰기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고,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헤밍웨이의 대화를 글로 읽는데, ... (그러니, 이 책의 저자는 헤밍웨이가 아니라 인터뷰어로 나와야 한다.) 


"그 때 그 때 달라요.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 마지막 페이지는 서른 아홉 번 다시 쓰고야 만족했죠." 


"하지만 최고의 글은 분명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나옵니다. 그게 다 똑같아보인다면 차라리 아무 설명도 안 하렵니다."


"이렇게 말하죠. 글을 잘 쓰는 게 더할 나위 없이 힘들다면 나가서 목을 매야 한다고. 그러고는 무자비하게 난도질 당하고 남은 평생 최대한 잘 쓸 수 있도록 스스로 강제해야 한다고. 적어도 목매는 이야기부터 쓸기 시작하면 되잖아요."


글 쓰는 재능이 없기도 하거니와, 아주 가끔은 소설을 쓰지 않길 잘 했다고 여긴다. 문장과 싸우기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체력이 안 된다고 할까. 마루야마 겐지의 단어로 옮기자면, '근육'이 없거나 형편없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서서 글을 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가지고 있는 작업 습관이다. 그는 치수에 맞지 않는 커다란 로퍼를 신은 채 가슴 높이에 놓인 타자기와 독서대를 마주 하고 낡은 레서쿠두 가죽 위에 선다. 새 작품을 시작할 때 헤밍웨이는 늘 독서대에 반투명한 타자용지를 올려놓고 연필로 글을 쓴다.(23쪽)


책은 얇고 재미있다. 서점에서 서서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헤밍웨이 팬이라면 한 권 집에 소장해두어도 나쁘진 않을 듯. 올해 수십년만에 헤밍웨이의 소설을 다시 읽어야겠다. 아마 예전 내가 읽었던 그 소설은 아닐 것이다. 이제서야 제대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약간의 위안을 가져본다. 


호텔 암보스문도스 Hotel Ambos Mundos. 551호실에서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첫 몇 장을 썼다. 



쿠바 하바나에 있는 플로리디타 바. 헤밍웨이 덕분에 유명해진 바로, 하바나에선 보기 드물게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책에선 헤밍웨이가 서서 글을 쓴다고 했는데, 막상 찾아보니 이 사진 밖에 없다. 




헤밍웨이의 말 - 8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권진아 옮김/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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