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9

일요일 오후 노들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소리 없이 다가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내 정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종일 책상에 앉아있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그저 불안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번 생은 어딘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불안에 대해서 최악의 처방전만 있다. 그것은 고개 돌리기, 외면하기, 회피하기, 도망가기, 망각하기. 서울시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근처로 나왔다. 가을 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들은 연신 브레이크를 잡으며 자신의 자전거 타기 실력을 뽐내고 한강대교까지 가는 동안 동네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이 근처에서 산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구나. 보통은 여의도 한강 시민 공원까지 가든지, 동작대교를 지나 반포대교 남단까지 갔다..

용기가 필요한, 어떤 시절

고민 많고 걱정 많은 여름을 보낸다. 4월 휴대폰 통화시간이 150분 남짓이었는데, 5월 300분을 넘어서더니, 6월과 7월은 모두 500분을 넘겼다. 자칫하면 600분을 넘길 태세였다. 스트레스 때문에 악몽을 꾸고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체로 나는 할 수 있다고 믿고 부딪히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대체로 해낸다. 처음 하는 일일 경우 시행착오도 있지만, 아직도 배우면서 해내곤 한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하지 못할 것같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들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은 바뀌고 새로운 경쟁력을 개인과 조직에게 요구한다. 특히 디지털 세계는! * * 피파 맘그렌의 을 다 읽었다. 평일 새벽까지 책을 읽기는 오랜만이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다고 할까. 조만간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지만..

주말 저녁 외출, 반포대교 무지개분수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다, 한강변으로. 몇 번 차를 타고 가다 반포대교 옆으로 쏟아지는 분수를 본 적 있었다. 재미있긴 했으나, 찾아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토요일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반포대교 아래로 푸드트럭들이 줄 지어 있었고,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하지만 이런 공간도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나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실은 관심에 없다, 관심을 둘 시간도 없다. 하지만 간만의 외출이 기분을 살짝 풀어주었다. 반포대교 무지개분수 - 주말에는 7시 30분부터 9시까지 30분 단위로 분수가 나오지만, 겨울엔 운영하지 않는다. - 반포대교 오른쪽으로 분수가 쏟아질 지, 왼쪽으로 쏟아질 지는 그 ..

어느 오후

내 마음과, 내 처지와 다르게, 하늘은 맑고 바람은 불고 대기는 상쾌했다. 아마 누구에겐 이런 날씨가 감미로운 휴식이 되겠지만, 누구에게는 감미로운 불안이 되었을테지. 그 불안 속에서도 다행히 한낮의 더위는 견딜만했고 아침과 저녁의 한기寒氣는 때때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마음 위에 앉아 아침 저녁으로 지친 손 두 개를 모으고 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파스칼Pascal을 읽은 까닭에, '저 끝없는 우주의 영원한 침묵' 앞에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 동안의 독서가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사소한 위안이 될 것이라 여겨지 않았건만, 예상하지 못한 사이, 다행스러운 일 하나가 더 늘어났다. (이렇게 '다행多幸'이 쌓으면 내 삶도 복福으로 가득차게 될 지 모른다) 나이가 들자 눈물이 많아지고 건강은..

평일 정오, 한강 공원

몇 장의 사진, 몇 줄의 문장, 몇 개의 단어, 혹은 유튜브에서 옮긴 감미로운 음악,으로 내 삶을 포장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진 못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한강시민공원까지 걸어나갔다. 더웠다. 근처 직장인들은 빌딩 앞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짙게 화장을 하고 곱게 차려입은 처녀는 향수를 뿌린 흰 와이셔츠 총각을 향해 윙크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평일 점오의 한강변은 텅 비어 있었다. 멀리 강변북로가 보였고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물 위로 유람선이 지나갔다. 이상하고 낯선 모습이었다. 원래 이런 모습이었겠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풍경이겠지만, 약간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지나치게 낯선 풍경은 이국적이나,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와 우리를 두려움와 공포로 둘러싼다. 어쩌면 그건 그건 이 세상에 어제까지..

초겨울 오후의 강변

출근길에 도어즈의 '모리슨호텔'을 다운받아 들었다. 들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도어즈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맥주를 마시면서 취하고 싶다고. 오후 미팅이 끝나고 저녁 5시가 되었고, 내일 오전 미팅 준비를 위해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쓸쓸해 보이는 강변을 찍었다. 낭만이 사라져 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감수성이 메말라가는 건 좋지 않지만, 건조해지는 만큼 상처도 덜 입는다.

주말

주말에 강원도 홍천엘 다녀왔다. 지난 주에 눈이 40센치나 왔다고 한다. 서울에서 오후 4시에 출발했으나, 이래저래 초행길이다보니, 어두워져서야 도착했다. 몇 년 터프하게 산 탓인지, 술을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해버렸다. 다음 날 내가 실린 몇 장의 사진을 찍었으나, 충혈된 눈, 피로해진 머리카락, 지친 볼 등으로 인해 여기 올리지 못하겠더라. 얼마 전에 간 나무로 된 근사한 실내공간을 가진 압구정 무이무이(1층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2층은 막걸리집)의 나무 가구들을 제작한 내촌 목공소엘 들렸다. 홍천 산골짜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런데 근처 땅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 사람들 소유라고 했다. 외진 산골짜기 조차 서울 사람들이 구입했다고 하니, 약간은 서글퍼졌다. 땅투기의 목적보다는 아..

달려간다. 인생은.

신길역에서 남영역까지 전철을 타고 움직였다. 초가을 햇살이 전철 유리창으로 밀려들었다. 사람들이 눈을 찌푸렸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다리를 오므렸다. 가슴을 닫았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옆으로 손이 짤린 외국인 노동자가 지나갔다. 산재 처리도 되지 못한 채,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한 채 구걸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구걸에 대해 알려준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구걸을 선택한 것일까. 간간히 구름이 지나갔다. 하지만 구름은 날 쳐다보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내 옆을 지나가면서도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어디선가 꽃내음을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건 꽃내음이 아니라 길 가는 여자의, 심하게 뿌린 향수 냄새였다. 다리가 아팠다. 손바닥이 아팠다. 마음이 아프고 불안했다. 전철은 연신 흔들렸는데,..

misc - 2006. 04. 16

마산 창동거리에서 어시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 동성동인가, 남성동 어디쯤 있었던 레코드점에 들어가 구한 음반이 쳇 베이커였다. 그게 94년 가을이거나 그 이듬해 봄이었을 게다. 그 때 우연히 구한 LP로 인해 나는 재즈에 빠져들고 있었고 수중에 조금의 돈이라도 들어오면 곧장 음반가게로 가선 음반을 사곤 했다. 어제 종일 쳇 베이커 시디를 틀어놓고 방 안을 뒹굴었다. 뒹굴거리면서 스물두 살이 되기 전 세 번 정도 손목을 그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치열함이라든가 진정성 같은 거라든가. 스무살 가득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탓일까. 아직까지 인생이 어떤 무늬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아무 것도 모르겠다. 문학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집트 예술가의 진정성과 현대 예술가의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