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2

토요일, 이른 오후의 외출

창 밖으로 불상들이 보였다. 파란색 카디건 안에 숨죽이고 있던 땀이 올라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차가운 목소리를 가진 커피숍 아가씨가 내 대답을 받아주었다. 한남동이다. 나에게 조금 익숙한 신동빌딩이 있고 그 빌딩 일층엔 언제나 가고 싶은 와인샵이, 그 옆으론 BMW도이치모터스 한남전시장, 그리고 할리데이비슨 코리아가 있었다. 봄이라고들 말하지만, 봄은 중년 사내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겉돌고 있기만 하다. 하긴 어느 해의 봄인들, 지쳐가는 중년을 즐거이 맞이할까. 봄은 화려한 사랑을 꿈꾸는 처녀들과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모험과 도전만 있다고 믿는 청년들만 반길 뿐이다. 테이블 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다 주었다. 그 사이, 나는 책을 떨어뜨렸다. 고요하던 커피숍 안으로 떨어지는 책..

걸어가면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리가 듣고 싶었다.

대출 기한을 넘긴 책을 도서관에 반납했다. 반납하는 내 손에서 먼지 냄새가 났다. 발바닥에 굳은 살이 일어났다. 마치 지구 밑바닥을 흐른다는,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용암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표하듯, 2011년의 봄이 오는 속도로 굳은 살들이 허옇게 올라왔다. 나는 무인 대출반납기에 서서 책 한 권을 반납했다. 여러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여러 차례 햇살이 비치는 곳과 그늘 진 곳을 번갈아가며 낡고 오래된 갈색 구두 굽이 보도블럭에 닿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구두굽은 보도블럭을 사랑하는가 보다. 그 소리가 그렇게 상쾌하게 들릴 수가. 회사 일 때문에 요 며칠 한남동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오늘은 이태원에서 내려 한남동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커피 몇 잔을 사 들고 걸어갔다. 걸어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