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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페이스북은 정치 싸움 중이다. 각자 편을 나누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야기를 퍼다 나른다.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여는 즐거운 이벤트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한국의 정치 지형은 너무 형편없고 몇 명의 후보는 누가 봐도 함량미달인데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만만치 않다(일부 국민의 정치에 대한 이해나 식견이 한참 모자른다고 볼 수 밖에 업다고 말하는 너무 심한가. 하긴 트럼프도 만만치 않았으니, 여기나 거기나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 수준은 형편없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정치에 대한 이해나 분석력이나 판단이 희미해지는 듯 싶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학자나 정치평론가,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해선 안 된다는 건 아니다. 도리어 지지하는 편이 낫다. 나 또한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를 분명히 밝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편파적인 의견만을 고수할 땐, 해당 후보의 캠프로 들어가는 편이 낫다. 편파적인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자주 욕을 먹기 마련이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의 의견을 지킬 때, 비로소 평론가의 명성이 쌓이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객관성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주장만을 나열하곤 끝이었다. 결국 나도 나도 다소 화가 나서 친구 끊어야 했다. 아래는 친구를 끊으면서 짧게 단상을 적어보았다. 아마 정치평론 뿐만 아니라 다른 평론들이 이와 비슷해보이기에 블로그에 옮기고 저장해둔다.


*   *

2017년 5월 6일 저녁에 쓴 메모. 



(어떤 분야이든지 간에)평론가는 (무조건) 편파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편파적일 수 있다. 그 주장(누군가의 눈에 보기에 편견으로 가득 찬 자기주장)은 자신의 신념이며 현재이고 미래이다. 그런데 그것을 툭 던져놓고 그 주장 밑에 무수히 달린 댓글들을 통한 (경제적이지 못한)논쟁 중에 누군가가, "왜 댓글에 답글을 달지 않고"(사람들끼리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가)라는 문구를 읽고 난 다음 바로 페친을 끊었다.


(다소 이해는 가지만)그 신념 - 보수/진보 구도를 깨기 위해선 새로운 후보가 나와야 된다는 - 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과연 한국이 보수/진보 구도였던가 싶다. 한국은 이때까지 일당 독재 구도였다. 늘 정치적 주도권은 보수우파(내가 볼 때 수구 꼴통이며, 'conservative'라는 단어가 아까운)를 중심으로 한 헤쳐모여 구도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보수로 배를 갈아탔다. (왜 배를 갈아탔는지도 의문이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당선되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좌우 막론하지 않고 공격을 받았다(심지어 탄핵을 받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법적인 심판을 받은 후에도). 심지어 강준만 교수는 마키아벨리즘을 멈춰라고 소리 질렀다(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즉 보수우파는 늘 공격자의 입장에 서 있었으며 기득권과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매체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는 (무척 합리적인 단어들로 포장된) 무수한 표현들을 만들었다. 조중동 뿐만 아니라 한겨레, 프레시안, 오마이에서도. 그런데 그 표현들이 MB가 들어서자 (참 흥미롭게도) 표현의 빈곤함을 드러냈다. 그 사실이 너무 슬펐지만,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몰랐던가)


정치는 지정학적 구도나 평형의 문제는 아니다. 그건 신념의 문제이며 가치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신념과 가치에 기반한 미래의 문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를 담보로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반대로 미래를 가지기 위해 현재에 대해 모험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수한 이들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인생을, 삶을 던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인이 가져야 하는 첫번째 미덕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문과 심 이외엔 없다(아! 얼마나 안타까운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길 "그의 성격이 그의 운명이다."


그녀의 성격을 따라, 그녀의 운명을 따라 대한민국이 침몰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럴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은 단정한 언어로 명확한 평가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먼 미래를 보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이 점에서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녁에 날아오른다"라는 표현은, 지식인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한 것이다. 결국 (정치적) 상황 정리가 다 끝난 다음 지식인은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그러면 안된다고 헤겔에 기대어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선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주장은 늘 그렇듯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기반 위에 있어야 한다.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까닭에, .... 그러나 페친을 끊었다. 평론가는 편파적이어야 하지만, 그 주장이 너무 편파적이어서 끊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래야 평론가다.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평론가가 아닌 지지자일 뿐이다. 아마 그에겐 5천명 중의 한 명이겠지만, 나에겐 내 타임라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함으로 의미 깊은 페친이었음을. 내가 정치적인 이유로 페친을 끊는 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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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 

(The Community of Those who Have Nothing In Common) 

알폰소 링기스Alphonso Lingis(지음), 김성균(옮김), 바다출판사 






우리가 속한 환경의 외계外界를 향해 우리가 전진하는 과정은 우리의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과정이다. 죽음은 세계의 모든 틈새에 존재하고, 심연은 세계를 연결하는 모든 회로의 이면에도 존재하며, 세계를 연결하는 길들의 저변에도 존재한다. (252쪽)




철학서답지 않은, 부드럽고 다소 낯선 문장들은 독자에게 느리게 읽을 것을 요구한다. 이 강제된 느림은 현대스럽지 않다. 책 표지는 알폰소 링기의 글과 어울리고, 타자와 공동체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담은 책이지만, 산문처럼 읽히는 건 그만큼 문학적인 탓이리라. 번역되자마자 바로 구입했지만,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던 건 저 느리게 읽기가 내 일상과 참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꽤 힘들게 읽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이 서평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이 읽기의 경험은 우리에게 독서에 집중할 한 두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 줄지도 모른다.


링기스의 철학은 사상의 측면에서나 행동의 측면에서 대학의 상아탑에 갇힌 보통의 포스트모던 학문들을 멀리 벗어나 있다. ... ... 그는 자신의 동료학자들과는 반대로 제 3세계와 고대 문명의 유적지들을 직접 여행하면서 체험한 사랑, 신뢰, 죽음, 육욕을 탐구하고 그 결과들을 독창적인 1인칭 문장으로 유려하게 서술한다. ... ... 링기스의 철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전통적인 철학의 강박관념을 떨쳐버리는 철학이다. 

- 스티븐 재니스Stephen Janis(<시티 페이퍼City Paper> 편집위원 및 기자) 

(* Mortal Thoughts - Philosopher Alphonso Lingis Brings the Real World to the Ivory Tower, by Stephen Janis, Citypaper.com) 



링기스는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 즉 타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타자를 받아들이며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 대해 서술한다. 그는 서구의 합리성이란 타자를 지우고 배제하며 추방하는 것임을 전제한 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그 극복의 계기를 '죽음'에서 찾는다. 책 말미에 그 스스로 타자로서 죽을 고비에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죽음이 우리와 타자를 이어주는 강력한 끈임을 주장한다.



합리적 공동체가 한창 작업하는 와중에 형성되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동체 - 죽음과 '죽어야 할 운명'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동체 - 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서로 분리시키고 격리시키는 죽음은 공통 죽음common death일까? 그리고 그런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닌 무無로서 분류될 수 있을까? 

- 38쪽 



그리고 책의 대부분은 합리적 자아가 어떻게 타자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논의(혹은 사색)이다. 합리성과 타자, 타자성의 경계, 개별화된 개인과 타자, 소통, 나라는 존재와 죽음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될 공동체에 대해. 



타자에게 내밀어지는 손은 타자의 취약성, 피로, 고통과 접촉하고 그 손의 소유자를 타자가 죽어가는 자리로 데려간다. 그 손은 낯선 정언명령에 순종한다. 이런 타자의 죽음 과정은 나와 유관한 것이다. - 252쪽 



하지만 우리 바깥의 타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심지어 우리 안의 타자도 무시하고 지우며 없애는 것이 바로 서구의 합리성이다. 그리고 타자와 마주하는 과정은 그 순간순간 모두가 투쟁의 과정이다. 



소통에 참여하는 과정은 전달하려는 메세지의 배경잡음과 그 메세지 자체에 내재된 잡음에서 메세지를 추출하는 과정이다. 소통은 간섭과 교란에 대항하는 투쟁이고, 배경으로 밀쳐져야 하는 부적절하고 애매한 신호들에 대항하는 투쟁이며, 소통자들 사이에서 상호적으로 제시되는 신호들에 내재된 잡음들 - 사투리억양들, 틀린 발음들, 모호한 발음들, 더듬거림들, 헛기침들, 돌발적 탄성들, 발설되다가 중단되는 단어들, 문법을 벗어난 축약어들 - 과 시각매체에 포함된 소음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 116쪽 



이 투쟁 속에서 타자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과 그 방법들에 대해 다양한 철학자들의 논의, 문화인류학적 사례, 현대 예술이나 과학 기술,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서 끄집어낸다. 



살아있는 우리는 타자들의 죽음에 노출된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것은 근본적인 의무, 즉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하며 그들과 동반해야 하는 근본적인 의무이다. 병원에서든 빈민촌들에서든 외롭게 홀로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하는 사회는 급속히 자멸하는 사회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우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는 '공통적인 것을 공유하고 공립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을까? 

- 261쪽 



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천천히 읽는다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    * 


덧붙이는 글)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위 서평과는 무관하게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란 바로 평범한 우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논의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니, 꽤 심각한 정치학 서적이 된다. 타자란 바로 우리들이고, 합리성으로 무장한 자들은 바로 국가 권력이다. 국가 권력은 타자인 우리를 배제하고 지우고 있었다. 링기스에 의하면, 합리성이란 개개의 특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균질성을 향해간다. 


세계의 잡음을 제거하는 과정은 합리주의자가 되는 과정이다. 소통의 위한 최초 노력은 사고력이 추구할 탈물질화를 미리 시작한다. 하나의 형식을 그것의 경험적 실현과정들에서 독립시키기 위한 노력은 보편적인 것, 과학적인 것, 수학적인 것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된다. - 128쪽 



애초에 타자의 죽음이란 죽음이 아니다. 그냥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시되는 것이며 그 어떤 호소력도 가지지 못한다. 평범한 우리들은 지금도 죽어나가지만, 국가 권력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소통하려고 노력하지만, 소통이란 단어는 우리들에게만 해당될 뿐, 그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즉 소통의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소통을 폭력의 연속으로 간주하되 특히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폭력의 연속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주장과 논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의 변증법 과정에서 소통자들 각자를 타자가 아닌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틈새 시간을 목격한다. 그 사람은 그 틈새 시간에 '저마다 자신이 하는 말의 정당성을 확증하기 위해 말하는 소통자들'을 목격한다. 소통자는 자신의 정당성을 확증하기 위해 말하는 과정은 타자를 침묵시키기 위해 말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처음부터 소통자의 정당성을 확증할 가능성을 배제해버렸다. 왜냐면 소통은 타자 - 소통자의 상대방 - 가 아닌 국외자 - 야만인, 의인화된 잡음 - 를 침묵시키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 118쪽 



한국의 보수 정권 앞에서 국민들은 타자이며, 국외자이고, 잡음일 뿐이다. 그들 앞에서 우리는 침묵해야 될 자들이며, 그들 앞에서 나서서는 안 될 존재다. 잊혀진 존재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다. 


그러니 우리에겐 자유만 있을 뿐이다.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도 있다. 단 저 성벽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와 어떤 행동을 하는 순간, 그 때서야 비로서 우리가 타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자괴감, 이 무능력함, 그리고 스스로 속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과 후회가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즉 그들을 향한 분노나 투쟁의식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스스로 침묵을 강요한 채 걸음을 멈추고 부서지는 자신의 마음 속으로 숨는다. 


한국 사회의 비극은 드러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곳에 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타자화시키면서 끊임없이 무능력하게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타자로 만든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공격하거나 우리들 내부에서 갈등하고 상처입고 상처입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미 타자화된 우리는 한국 사회에 속한 이가 아니다. 국가는 없고 국가 없는 국민이다. 그러니 이 사회의 미래는 더 이상 호소력이 없거나, 지금 당면한 문제만으로 타자인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럽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사실조차 모른 채,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으며 따라하면서 타자를 부정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긴 이것도 전체 역사로 보자면, 아주 짧은 기간일지도 모르리라. 아주 사소한...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하나) 




* 스티븐 재니스: 탐사 보도 전문 저널리스트로 여러 저널리스트 상을 수상했다. 아마존에 저자 페이지가 있다. http://www.amazon.com/Stephen-Janis/e/B009OBYC6O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인용하는 것이 다소 무책임해보여 누구인지 찾아보았다. Citypaper라고 해서 이런 잡지가 있는가 했더니, 미국 대도시마다 다 있었다. 다행히 스티븐 재니스가 쓴 리뷰가 있었지만, 이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다. 시티페이퍼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원문이 사라진 것이다. 해당 시티페이퍼는 볼티모어 시티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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