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8

구름 위로

길을 가다 문득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입체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고대인들의 상상을 떠올렸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더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변하여 이젠 신비로울 지경이다. 그 도저한 신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조심스럽게 기도를 하는 것. 내가 이 동네로 왔을 때만 해도 아파트가 이 정도로 많진 않았는데, 이제 아파트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오래된 낮은 아파트와 빌라들이, 그 낮은 건물들 사이로 더 낮았던 양옥 주택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사이 집값도 올라 서울에 사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 된 요즘, 내일을 위해 살지만 내일은 더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문득 내가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 떠올려보니, 참으로 암울해서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

나의 사유 재산, 메리 루플

나의 사유 재산 My Private Property 메리 루플Mary Ruefle(지음), 박현주(옮김), 카라칼 그래서 경찰들이 내게 달리 할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러다 우리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될 때면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들은 그 말에 만족한 듯 보였다. 경찰들도 참, 그들은 모두 젊다. (15쪽) 결국 나(자아)를 알거나 너(타자, 외부, 세계)를 알게 될 뿐, 나와 너를 동시에 알고 받아들이진 못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도서관 2층 카페 의자에 앉아 살짝 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찰들이 모두 젊어서 다행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더 들었다면 만족하지 못했을 ..

2월을 물들이는 스산함, Hoc erat in votis

우리에게 삶의 희망이나 목적 같은 건 없고 사랑이라거나 미래 따윈 필요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노력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아주 오래 전 조지 기싱George Gissing의 을 읽은 다음의 내 감상평이었다. 늘 다시 읽고 싶은 책이지만, 늘 다른 책들에게 밀려 손 안으로 들어왔다가 바로 서가 사이로 돌아가지만. 어쩌면 시의적절한 포기는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은 아닐까. 아는 분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너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니'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멈칫 했다. 글쎄, 나는 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코스닥 상장까지 시키는 것, 또는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의 물리적 기반을 마련하고 싶은 것, 아니..

최근

1. 최근 블로그 상에서 바로 글을 써서 올린다. 그랬더니, 글이 엉망이다. 최근 올린 몇 편의 글을 프린트해서 다시 읽어보니, 문장의 호흡은 끊어지고 단어들이 사라지고 불필요한 반복과 매끄럽지 못한 형용어들로 가득했다. 결국 나는 몇 번의 프린트와 펜으로 줄을 긋고 새로 쓰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끼인 세대인 셈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끼인 세대.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지만, 읽기는 무조건 종이로만 읽어야 하는. 그래서 최근 올렸던 글을 프린트해서 다시 쓰고 고쳐 새로 올릴 계획이다. 얼마나 좋아질 진 모르겠지만. 2. 헤밍웨이의 를 읽고 있다. 무척 좋다. 번역된 문장들이 가지는 태도가 마음에 드는데, 원문은 얼마나 더 좋을까. 영어 공부를 열심해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번역된 셰익스피..

어느 설날의 풍경

겨울비가 내리는 마산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도로 옆 수백억 짜리 골리앗 크레인은 어느 신문기사에서처럼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텅 빈 자리엔 무엇이 들어올까.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따뜻한 평화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또다른 아픔을 알리는 신호일까.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 한 켠의 불편함과 불안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과 멀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모두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기사에서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전부는 아니고 약간, 어느 정도까지는.. 돈으로 당신은 행복을 살 수 없다. 맞을까? 틀렸다. 약간은 (살 수 있을 듯) 돈이 많은 사람들이 실은 더 행복하다. 단지 어느 정도까지는. 여분의 재력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은 약간의 즐거움 정도다. 곧 드러나게 될 테지만, 우리는 빨리 돈을 가지고 있는데 익숙해 질 것이고, 우리들의 대부분은 가진 예쁜 새 인형들과 이웃이 가진 인형들을 바로 비교하게 될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돈으로 가질 수 있는 행복..

요리와 일상

요리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 작은 소망 리스트들 중 하나는 일요일 오전 가족보다 먼저 일어나 주말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든든한 일요일 아침 식사로, 행복한 일요일을 보낼 수 있는 육체의 준비. 그러나 21세기 초 서울, 나는 그 무수한 나 홀로 집안들 중의 하나로, 이젠 혼자 밥 지어 먹는 것마저도 힘들어 굶거나 식당에서 아무렇게나 먹기 일쑤다. 나를 위해서 요리하는 것만큼 궁상맞은 짓도 없다. 요리란 참 근사하고 아름다우며 행복한 행위인데, 나를 위해 뭔가 만들고 있노라면 참 서글픈 생각이 앞선다. 나에게 그런 요리의 기회가 자주 찾아오길 기대할 뿐이다.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테터앤미디어에서 명함을 보내주었다. 근사한 명함..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힘들 때마다 꺼내드는 책들이 있었다. 루이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오래 전에 출판된 임화의 시집, 게오르그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 그러고 보니, 이 책들 모두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엔 이 책들을 읽지 않는다. '힘들다'는 다소 모호하지만, 여하튼 요즘엔 이 책들을 읽지 않는다. 어쩌면 힘들다고 할 때의 그 이유가 다소 달라진 탓일 게다.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를 보냈던 20대엔 대부분의 고초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똑같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30대의 고초는 경제적이거나 업무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파리로 가서, 다다음 주 초엔 터키 이스탄불로, 다시 그 다음 주엔 파리로, 그리고 그 주말에야 비로소 서울로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