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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현대문학 +23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지음), 이용숙(옮김), 예담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경우를. 채 30분도 되기 전에 다 읽은 이 소설집.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금방 끝나버리는 소설. 그리고 누구나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짧은 소설들. 하지만 페터 빅셀은 이 소설들을 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지금 여기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주인공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자라는 사실이다. 정서적으로 유연한 여성들에 비해 남자들은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회와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경우가 더 흔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젊은 작가 빅셀이 고집 세고 편협한 이런 노인들을 더 없이 따뜻하고 이해가 충만한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지구가 둥근지 확인하려고 떠난 노인을 날마다 기다리는 작가, 또 요도크 밖에 아무 것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애정으로 감싸는 작가의 태도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작가적 사명감의 표현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101쪽


고집 세고 편협한 이런 노인들을 만난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할까? 따뜻하고 이해가 충만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면 고집 세고 편협한 젊은이들을 만난다면? 과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회와의 소통이 어려워진다면, 그건 그/그녀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문제인가. 


작가적 사명감은 이미 일어난 문제를 감싸 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페터 빅셀의 한계는 여기에 존재한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동화적 시선으로 현대의 문제를 바라보고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이다. 


다시 묻자. 당신 앞에 어버이연합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면서 싸우려고 든다면? 엄마부대 봉사단의 할머니가 나타나 편협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논리로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일베에 빠져 당신의 의견에 대해 사사건건 반박하며 과격한 논리로 공격을 일삼는다면? 


이 소설은 이 지점에서 무너져내린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읽고 자신의 잘못, 소외되고 편협한 사고와 언어를 가지게 된 이들에 대해 무정하게 대했다는 것을 후회하고 반성한다면, 그건 잘한 일일까? 


글쎄다. 내가 읽은 이 소설집은 좀 형편없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했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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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미나 마르케스Fermina Marquez

발레리 라르보(지음), 정혜용(옮김), 시공사 





<20세기 전반기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평가는 다소 황당해보인다. '20세기 청춘 소설의 효시'라는 뒷표지의 찬사도 오버다. 작고 흥미로운 소설이나, 과도한 찬사는 도리어 이 소설에 대한 쓸데없는 부푼 기대를 만들고, 짧은 독서 뒤의 실망감을 더 크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 정직해질 필요가 있겠다. 


1911년. 벨 에포크의 파리. 발레리 라르보의 청춘 소설. 밝고 낙관적이었던 시절, 소녀, 소년들이 보여주는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왠지 진지하고, 그렇다고 철학적인 소설이라고 하기엔 페르미나 마르케스라는 여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간지럽기만 하다. 조아니의 대사는 장황하기만 하고 산토스도 상남자 스타일로 등장한다. 


이소설은 전체적으로 감미로운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젊은 한 때, 설레는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진지하면서 외롭기만 한 스케치라고 할까. 그리고 이 스케치 앞에서 딱 멈춘다. 소설 마지막 부분의 회상은 어딘가 어색하고 '그 땐 그랬지' 수준에서 멈추고 만다. 조아니는 군대에서 죽고, 산토스는 결혼해 잘 살고, 페르미나 마르케스는 잘 살고 있겠지로 끝난다. 


1911년, 벨 에포크 시절의 청춘 소설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 소설은 읽을 만하다. 하지만 그 배경을 벗어나면, 이 소설은 평범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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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화해 Les accommodements raisonnables 

장 폴 뒤부아(지음), 함유선(옮김), 현대문학 





출처: http://lci.tf1.fr/culture/livres/2008-08/le-nouveau-jean-paul-dubois-est-savoureux-4873947.html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고려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또한 집중해서, 현재에 그대로 머무르는 능력이었다. 특히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아닌 걸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살결도 배의 연한 살도 손가락의 기교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 흥분이 지나가자, 우리의 신체를 연결하는 뼈 마디마디가 모두 별 차이가 없어졌다. (안나든 셀마든) 누구의 육체든. 그렇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에 이르고 싶다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그런 방식이었다.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요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 모든 걸 계속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 307쪽 



우울증에서 벗어난 아내와의 섹스. 폴은 '누구의 육체'든, 그렇다며, 자신을 뒤돌아본다. 우리는 이 소설 내내 어떤 궁지에 처한 것으로 보이는 중년의 프랑스 남자를 만나지만, 그가 왜 그 지경에 몰렸는지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변화, 우울증에 걸린 아내, 도망치듯 프랑스를 벗어나 미국으로 온 주인공 폴. 


몇 해 전 나에게 놀라운 감동을 안겨주었던 <<프랑스적인 삶>>과 달리, <<이성적인 화해>>는 밋밋하고 까닭없는 방황이 이미 진행된 채로 소설은 시작했고 시작과 동시에 그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결국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 


스크립터 닥터(script doctor)인 폴의 아버지 스테른, 아내 안나, 그리고 자녀들,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건너간 헐리우드의 휘트먼, 셀마, ... 폴의 주위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들, 폴과의 대화, 교감을 통해 소설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한국에 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그렇다고 공감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장 폴 뒤부아는 인물에 대한 사려깊은 태도와 쓸쓸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회고조의 문장으로, 내가 읽었던 <<프랑스적인 삶>>에서처럼 뒤부아만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작 <<프랑스적인 삶>>에 비한다면, 이번 소설을 평이했다. 


도리어 소설보다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폴이 부러웠다. (작중 인물의 환경을 부러워하다니!) 툴루즈에서 LA로.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한 채, 스스로 요양소로 들어간 아내 안나. 그 사이 폴은 안나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셀마를 만나 육체적 사랑을 속삭인다. 하지만 안나가 우울증에 빠져있듯, 셀마는 마약에 취해 있고, 파티를 할 때, 섹스를 할 때, 그저 쓸쓸했다. 이성적인 화해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방황 끝에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그런 희망을 꿈꾸는 걸까. 셀마와의 짧은 밀애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안전한 방황인 셈이다. 안나는 미국으로 오지 않았고 셀마는 프랑스로 가지 않는다. 갈등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우리가 왜 변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변화란 의미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테니 말이다. 


장-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은 권하지만, 이 소설은 권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이미 읽은 이들에겐 이 소설 몇 배의 감동을 <<프랑스적인 삶>>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보수적인 기준에서 권하지 않겠다는 뜻일 뿐, 이 소설은 여느 작가들의 소설들보다는 훨씬 좋다. 






이성적인 화해 - 6점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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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럴 겁니다! 백작은 이른 아침, 정확히 8시 반에 일어났다. ... ... 백작 부인은 목 둘레에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라일락 꽃무늬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 ... 테레지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 ... 루크레지아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 ... 오, 세상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있습니까? 우리는 한줄기 태양광선을 채찍 삼아 쉼 없이 회전하는 보이지 않는 팽이 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연유도 모른 채,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때로는 더위를 때로는 추위를 선사하고, 혹은 쉰 번쯤 혹은 예순 번쯤 회전한 후에는 죽음을 - 대개는 어리석은 짓만 범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 선사하기 위해 그저 그렇게 돌고 도는 데에 재미 붙인 양 미친 듯이 회전하는 모래 알갱이 위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 아닐까요? 신부님,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코페르니스쿠스가 휴머니티를 더는 회복할 수 없을 만치 파괴시켰습니다. 우리가 이룬 그 모든 잘난 발명과 발견들로 인해, 어느덧 우리 자신이 무한히 작은 존재라는 새로운 개념에 서서히 젖어 들었어요. 그러고는 스스로를 우주 속의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자각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들 개개인의 불행뿐 아니라 인류의 총체적인 불행에까지요.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제 한낱 버러지들의 이야기에 불과해요. 앤틸리스 제도의 작은 재난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별거 아닙니다. 그 폴란드 참사회원의 주장대로, 아무런 목적 없이, 돌고 도는 데 진력이 난 가엾은 지구가 다소 인내심을 잃고 급기야 제 몸의 무수한 출구 중 한 곳에서 불꽃을 좀 뿜어내고 말았지요. 대체 무엇이 그토록 지구를 분노케 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지금보다 더 한심한 적이 없었던 인간들의 우매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만두죠. 햇볕에 그을린 무수한 버러지들. 그래도 우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 루이지 피란델로, <나는 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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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서서 

이우환 시집, 성혜경 옮김, 현대문학 




이우환 Lee Ufan, 대화(Dialogue), 2011 

 



그의 작품들이 좋아서일까, 이 시집은 그의 회화, 조각, 설치 작품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작고 단단한 설명서처럼 읽혀진다. 내가 알기로, 예술가들 중에서 이우환만큼 명징(明澄)한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옮겨도 다르지 않다. 그는 일본 모노하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이론가이며, 현대 철학과 현대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탁월한 실천력으로 현대 일본 미술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일본 국어 교과서엔 이미 그의 글이 실려있고, 일본어라는 걸 제외하면, 그는 검증 받은 글쟁이이다. 



이우환 Lee Ufan, 대화 Dialogue (2008) 

(사진 출처: artobserved.com)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이우환은 일본과 유럽에 먼저 알려졌고 그런 다음 한국에서 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가끔 한국이 대단한 나라인양 떠드는 사람을 보면,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이러한 태도 밑에 숨은 자신의 부족함이나 태만, 불성실을 감추려는 불순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지어 잘못된 관행, 정치적 낙후성 등마저도 옹호하려고 한다. 


해외에서 유명해져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 한국 내의 텃세는 만만치 않다. 이는 문화예술계는 더 심해서, 그들의 부족함을 상대의 몰이해, 또는 지역의 차이로 환원시킨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우환에 대한 관심은 국내 미술 시장의 급격한 팽창과 함께 한다(이우환 스스로도 그 곤혹스러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 전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계 한국 작가였을 뿐이다.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 이우환이 구겐하임과 베르사이유 궁에서 전시한 것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이야기해도 그들의 닫힌 귀와 닫힌 마음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우환의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식자들에 의해 거론되는 경우을 보지 못했다. 가끔 월간 현대문학에 실렸던 책 소개를 제외하곤. 이와 비슷하게, 무수한 번역된 소설들이 나오지만, 정작 한국의 비평가들이 번역 소설들을 평론하는 경우를 자주 보지 못했다. 문체나 문장을 떠나 어떤 세계관과 태도, 인물과 사건의 구성, 언어 등을 다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을 짧지만, 울림이 크다. 또한 이우환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언어로 안내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예전에도 옮긴 바 있지만, 가령 이런 시 말이다. 





진폭 



자코메티가 모델에게 육박해가면, 동시에 모델 또한 자코메티에게 닥쳐온다. 자코메티는 자꾸자꾸 내쳐가 이윽고 모델 너머까지 나아간다. 그때 모델 또한 점점 돌진해서, 자코메티를 지나 훨씬 이쪽으로까지 전진해버린다. 도전해가는 힘과 덤벼오는 힘이 세차게 겹쳐지는 가운데, 두 개의 대상은 깎여나가, 마침내 하나의 뼈가 되어 남겨진다. 이렇게 해서 생긴 대립의 축은, 자코메티를 넘고 모델을 넘어서 -. 그것은 끊임없이 커다란 진폭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를 공간의 펼쳐짐 속에 숨겨 지운다. 자코메티는 이것을 거리의 절대성이라 일컫었다. 이러한 시선에 따른다면, 본다는 것은 대상과 자신의 치열한 사랑의 운동이 겹치어, 드디어 투명한 여백이 된다는 것인가. 




이우환 Lee Ufan, 대화 Dialogue (2013)

(사진 출처: artobserved.com)



다행히 현대문학에서는 꾸준히 이우환의 책들을 찍어 내고 있다. 이우환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면 좋으리라.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십 수년 전 삼성미술관에서 열린 이우환 전을 잊지 못하듯, 그의 진수는 작품들일 것이다.  그리고 베르사이유에서의 이번 전시는 아, 내 처지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정말 느끼고 싶은 전시였는데. 기하학적으로 올려진 정원을 걸어가다가 무심코 마주하는 '조응'이라 ... 


 



멈춰서서

이우환저 | 성혜경역 | 현대문학 | 2004.11.19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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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누군가가 석유를 붓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다음, "신문 가져올 동안 좀 들고 있어"하며 내 손에 놓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아 불타고 있는 거대한 50센트 짜리 동전 같았다. (23쪽) 


가을은, 마치 육식 식물 속으로 질주해 내려가는 롤러 코스터처럼, 포트 와인과 그 진하고 달콤한 와인을 마셨던,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기억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39쪽) 


나는 그녀와 섹스를 했다. 

그것은 막 1분이 되기 전의 영원한 59초와도 같았고, 아주 수줍게 느껴졌다. (52쪽) 


-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 낚시> 중에서 



출처: http://www.pasunautre.com/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읽으면 왠지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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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들기 전 서가에서 낡은 시집 한 권을 꺼내 소리내어 읽는다. 




어떤 영혼들은 ...... 

1920년 2월 8일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들을 갖고 있다.

시간의 갈피에 

끼워놓은 아침들을,

그리고 꿈과

노스탤지어의 옛 도란거림

이 있는

정결한 구석들을.


      또 다른 영혼들은

열정의 환영(幻影)들

로 괴로워한다. 벌레 먹은

과일들. 그림자의

흐름과도 같이

멀리서

오는 

타버린 목소리의

메아리. 슬픔이 없는 

기억들.

키스의 부스러기들.


       내 영혼은

오래 익어왔다; 그건 시든다,

불가사의로 어두운 채.

환각에 침식당한

어린 돌들은

내 생각의 

물 위에 떨어진다.

모든 돌은 말한다: 

"신(神)은 멀리 계시다!" 


- 로르카, <강의 백일몽>, 정현종 옮김, 민음사, 2003년. 





이 밤, 로르카 시집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위안이다. 





강의백일몽 [개정]

로르카저 | 정현종역 | 민음사 | 2003.03.2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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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마음, 나쓰메 소세키(지음), 김성기(옮김), 이레 



1.
나쓰메 소세키, 무려 1세기 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시대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근대성(modernity)의 본질을 간파한 것이리라.  

이번 소설도, 내가 이전에 읽었던 소설과 비슷하게, 큰 사건이 없이 한 편의 풍경화처럼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소설의 전반부는 나와 선생님이 만나고 가깝게 되는 과정을, 소설의 후반부는 선생님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 부분은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나머지 한 부분은 독백에 가까운 편지로만 구성된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대화가 아닌 '글로 씌어진 편지'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리고 오래 전에 상처 입었던 마음이, 누군가에 그 마음의 속내를 드러내자마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취하게 되는 건, 과연 올바른 방식일까 하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윤리적 질문까지 던지게 되는 건, 그 극단적인 선택- 죽음, 자살- 을 비정상적이라고 하기엔 이미 우리의 마음은 너무 닫혀있고 상처입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절벽의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더군. 만족할 만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좀 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을 테지. 하지만 ... ... 자네, 알고 있나. 사랑은 죄악이야." 
- 42쪽 


2.
사랑하는 마음은 죄악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일방적이고 소통하지 않으며 오직 내 마음을 알아주길 상대방에게 호소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선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야만 하고, 그 죽음 위로 사랑을 수놓아진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그런데 결국 사랑을 해도 쓸쓸하고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해도 마음은 위로받지 못한다. 마음은 혼자이고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한 채 (똑같은) 죽음을 향해 간다. 마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근대의 개인주의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고, 그 근대의 끄트머리에 선 우리들에게 자살이란 너무 일상적이 된 셈이다. 


3. 
강상중 교수의 최근 두 권,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나쓰메 소세키의 충분한 해설서가 될 수 있으며, 나쓰메 소세키를 기초로 하여 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위로가 될 순 있을 것이다. 그는 <<마음>>에서 선생님의 편지를 두고 아래와 같이 평한다. 


그리고 '개인적 공명'이라는 말에서 저는 소세키를 떠올립니다.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대에 고독한 영혼끼리 공명하는 무언가는 <<마음>>에서 '선생님'과 '나' 사이에 오고간 것이 아닐까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친척'과도 인연을 끊었으며, 고등유민이기 때문에 '사회'와도 접점이 없고, 단 한 명인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가족'인 '아내'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게 되어 버린, 세계 어디와도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우주로 튕겨 나간 공 같은 궁극의 개인입니다. 
아울러 선생님은 이름조차 없습니다. 이름 없는 공空입니다. 그 선생님은 최종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외에 길이 없었습니다만, 그때 작품의 절반에 이르는 길고 긴 고백인 '나'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는 테일러가 말하는 개인적 공명을 찾는, 세대를 초월한 이야기의 시도가 아니었을까요. 
강상중, <<살아야 하는 이유>>,  146쪽 - 147쪽 
(* 개인적 공명: 찰스 테일러가 주장하는 바로, '흩어진 개인들이 새로운 차원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개인적 공명'이라고 해야 할 새로운 공통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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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게,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 비가 내리고 우리들의 일상은, 놀랍도록 조용히 흘러간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나는 간밤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밟았다. 사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지나치게 되는 어느 중학교 뒷편은 고요했고 무채색 아파트 벽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어제 어쩌다가 보니, 시를 읽게 되었다. 알지 못하는 시인이었지만, 오래, 어떤 손이 가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우리 삶도 그치테지만, 어떤 시들의 여운은 문명의 끝까지 가면 좋으리라. 





손의 의미 

 

  

박서영 

 


 

기타를 잘 치는 긴 손가락을 갖기 위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

그러고 보면 호미를 쥐는 손은 호미에 맞게

펜을 쥐는 손은 펜에 맞게 점점 변해가는 것 같다

그건 자신의 울음에 알맞은 손을 가지려는 것

자신이 만져야 할 색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음악의 육체에서 고양이가 울고, 음악은 점점 자란다

시간과 공기의 색을 찢으며 

사자의 음악과 치타의 음악과 표범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악기들은 때때로

코끼리, 하마, 기린의 울음을 연주하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에는 겁에 질린 소녀의 색이 있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문을 흥얼거린다

기타를 잘 치는 손가락을 갖기 위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이 있다

그가 오늘은 어린 사자새끼를 연주하고 있다

울음이 길어지면 손가락도 점점 자랄 것이다

 

 

계간 [시에] 2011,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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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 10점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문예출판사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이휘영(옮김), 삼성출판사, 1982년(현재 구할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이 좋을 듯싶다.) 




그냥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다. 이휘영 교수의 번역으로 수십 년 전 출판된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다. 헌책방에서 외국 문학들만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적이 있었고, 그 때 사두었던 낡은 책이다. 요즘에도 좋은 소설들이 번역되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단지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뿐. 그래서 과거에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소설들도 꽤 존재한다.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이다. 실은 앙리 베르그송이 아니었다면, 그는 최고가 되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소설가적 문장 구사와 궁지에 몰린 철학의 돌파구로서의 새로운 단어 만들기에 여념 없었던 사상가들의 책보다는 도리어 우리 존재와 일상의 무의미함, 고독,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자유를 이야기한 사르트르가, 어쩌면 우리 미래를 꾸리는 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구분되는 이 작품 ‘구토’는, 글쎄 읽기를 권하기 망설여지는 작품이긴 하다.

나는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돌아보았다. 현재 뿐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현재 속에 들어박힌 가볍고 단단한 가구며, 탁자며, 침대며, 거울이 달린 양복장 - 그리고 나 자신. 현재의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 있었다. 존재하는 것 그것이 현재였다. 그리고 그 현재가 아닌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나의 과거가 나에게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중략)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것일 뿐이다. 그 <뒤>에는 ... ... 아무 것도 없다.
- 128쪽



실은 자신을 ‘여분의 존재’라고 여기는 주인공 로깡땡을 소개시켜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데카르트를 거부하고 존재를 부정한다. 더 정확히 말해 ‘존재의 의미 자체’를 부정한다. 그건 그냥 ‘없는 것’다. 아니면 ‘없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견딜 수 없는 <구토>를 느낀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왜 나는 생각하는가? 나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존재한다. 생각한다. 나는 ... ... 왜냐하면 ... ... 으윽! 나는 도망친다.
- 133쪽



 

존재는 물렁물렁하다. (중략) 존재는 떨어진 전락이다. (중략) 존재는 불완전한 것이다.
- 134쪽



 

존재는 기억이 없는 것들, 사라져 버린 것들이며, 존재는 아무 것도 - 추억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 172쪽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의 관찰과 사색이 대부분이고, 사건도 거의 없다.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 과거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안니의 역할도 제한적이다(아무런 영향력이 없고 소설의 중요한 구성도 아닌 셈이다).

결국 이 작품은 사르트르의 실존적 철학을 향한 일종의 관문이라고 할까. 그 정도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 작품을 소설로 인정하는 순간,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관찰과 사색을 통해 끊임없는 형이상학적 탐구를 계속하는 실험적 작품이 된다. 소설적 구성이 복잡하거나 난해한 것도 아니고, 일기를 통한 서술과 관찰과 사색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적 내용 또한 잘 어울리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꽤 드물다. 더구나 존재와 자유에 대한 탐구라니.


나는 자유롭다.나는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내가 애써 찾아낸 모든 이유들은 사라지고 다른 이유는 이미 생각할 수가 없다. (중략) 나는 마당과 마당 사이의 길 속에서 고독하다. 고독과 자유, 그러나 이 자유는 어딘지 죽음과 비슷하다.
- 200쪽



사르트르는 문학에서 시작해 철학과 실천으로 향했지만, 그의 프랑스 철학계 후배들은 실천적 철학에서 시작해 문학적 글쓰기와 예술적 가상(또는 개념)에 빠져들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20세기 전반부와 후반부는 이렇게 나누어지는데, 이는 철학 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다른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독서의 경험을 선물할 테지만, 일반 독자에게 추천하기에는 이 소설은 꽤나 지루하거나 너무 심각할테니, 고전이라고 무작정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프랑스 갈리마르사에서 나온 사르트르의 '구토' 표지. 사르트르는 1936년 32세의 나이로 '구토' 원고를 갈리마르사로 보내 출판을 의뢰하지만, 거절당한다. 그 다음해 갈리마르사가 출판하기로 결정하고 1938년에 출판되어, 무명의 사르트르는 일약 프랑스 문단의 신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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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산문집에서 그리운 이름 하나를 발견하고 기뻤다. 그 이름은 파트릭 모디아노. 프랑스의 대중적인 소설가(?), 라고 하면 그런가. 다른 이들 - 미셸 투르니에, 르 끌레지오 등 - 과 비교해 어떤 문학성으로 승부한다기 보다는 서정성, 분위기 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할까.


내가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때 언제였는지 아련하다. 고등학교 때부터였나. 그리고 대학시절까지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지금 스토리가 기억나진 않지만, ... 지금 그의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번역된 그의 소설 몇 권을 리스팅해본다. (예전 내가 읽었던 소설들은 이제 품절이거나 절판이다. 이런..)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역

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운비 역




팔월의 일요일들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옮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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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넷서점의 파워블로그 혜택을 받게 되었다. 꾸준히 포스팅을 하고 트위터에 글을 보내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월 5만원 상당의 포인트는 꽤 좋은 혜택이다. 포스팅이야 꾸준히 하는 것이고 트위터에 글을 보내, 이 블로그로의 유입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 내 블로그로 오는 이들은 꾸준히 방문하는 일부의 단골 손님들과 검색 엔진 통해서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크게 신경쓸 건 없는 듯하다. 

여하튼 며칠 전 인터넷서점 블로그에 올린 글인데, 오늘 퇴근 전에 여기에다 올려놓는다. 요즘 소설 잡으면 몇 달 동안 읽는다. 좋은 소설을 잡은 탓이기도 하지만, 실은 네 다섯 시간 이상 집중할 여유와 새벽까지 지탱할 건강이 사라진 탓이다. 독서가의 입장에선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다. 다행인 것은 절망적인 일임을 알게 되었으니,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아암.~.

---

긴 회의를 끝내자, 잠시 머리가 멍해진다. 이 작고 거친 틈새를 타고, 몇 권의 소설을 이야기해본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필독이다.

김승옥은 한국 근대 문학에 서구에서 이해하는 바의 모더니즘(modernism)이 있었다면, 그 모더니즘의 절정이다. (김승옥의 소설집이 집에 있는데, 다시 꺼내 읽어야 겠다. 몇 개의 단편은 정말 좋은데..) 
 

무진기행
김승옥


우리가 실존주의적 문학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 카뮈, .. 또는 베케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동양에도 그런 소설가가 있으나, 그는 단연코 아베 코보가 될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여러 작가들이 선보였던 실존주의적 절망과 자포자기가 동양에서는, 특히 일본에서는 어떻게 이해되고 소화되는지는 극적으로 보여준다. (2003/01/27 - [책들의 우주/문학] -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저/김난주


한국에도 한 때 후일담 문학이 유행했다. 80년대 운동권 세대들의 경험, 도전, 후회, 자기 반성들로 이루어진 이 문학들은 대체로 그 작품성이 낮고 완성도도 떨어졌다. 그래서 관계된 사람들이나 읽는 소설들 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제는 읽지 않는 소설들이다. 나는 후일담 문학에 대해서 입에 침을 바르지 않고 찬사를 해대던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기억난다. 그들의 형편없는 심미안이란!

하지만 장 폴 뒤부아의 이 소설은 읽다면, 후일담 문학이라는 것도 이렇게 우아하고 근사하며 문학적 완성도를 이룰 수 있구나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후일담 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2008/02/01 - [책들의 우주/문학] - 프랑스적인 삶, 장 폴 뒤부아 )



프랑스적인 삶
장 폴 뒤부아 저/함유선

몇 권의 소설을 추천했다. 다음에도 이런 틈새가 생긴다면, 한 번 정리해서 올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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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1 - 10점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민음사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Woman on the Edge of Time 1권, 2권
마지 피어시 Marge Piercy 지음, 변용란 옮김
민음사 모던 클래식 031, 032


1.
이 책은 민음사 홍보기획부의 정은년 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것이 작년 여름(8월)이니, 벌써 몇 달이 지난 것인가! 책은 완독한 것은 올해 2월이었다. 책을 받고 몇 달은 밀린 책 읽기에 여념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이 소설 읽기는 어수선한 일상의 삶에 의해 방해 받았다. 겨우 소설을 다 읽었지만, 그 이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서평을 올린다. 이 소설에 대한 서평은 자신 없고 깊이를 가지기엔 내가 아는 지식도 부족하고 여러 문헌을 뒤져가며 연구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작은 글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2.
소설을 다 읽었지만, 이 '투박한'(*) 소설은 너무 현실적(realistic)이었고 여성적(feministic)이었으며, 혼성 장르였으며, 정신분열적이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놀라운 소설들의 부류에 속했다. 그러나 이는 소설적 재미와 무관한 것이다. 마치 마지 피어시라는 작가의 약력처럼.


1936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다. 가족 중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은 그녀는 미시건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다. 촉망받는 대학생 작가에게 수여하는 홉우드 상을 여러 번 받았고 훗날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비서, 계산원, 강사 등 여성 임시직 노동자의 생활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 간 그녀는 계급과 여성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 연합’ 뉴욕 지부장을 맡아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한편으로 ‘빠른 몰락’(1969), ‘독수리를 춤춰 잠들게 하라’(1970)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에 케이프코드로 이주한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관심을 기울였고, 오랫동안 동료로 지낸 아이라 우드와 1982년에 결혼했다. 희곡 ‘마지막 백인 계급’(1979)을 공동 집필했던 두 사람은 소설 ‘폭풍의 물결’(1998) 역시 함께 작업했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였던 ‘입대’(1988)을 비롯하여 ‘한줄기로 땋은 삶’(1982), ‘여자의 갈망’(1994) 등 여러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회상록 ‘고양이와의 동침’(2002) 역시 호평을 받았다. ‘그, 그녀, 그것’(1991)으로 최고의 과학소설에 수여하는 아서 C. 클락 상을 받기도 했다.
피어시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정치적 작가로 자신을 정의한다. 지금까지 소설 열일곱 권과 시집 열일곱 권을 발표한 그녀는 여전히 열렬한 사회운동가이자 작가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 위의 글에서 '투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소설의 극적 재미나 사건의 진행이 독자의 몰입을 위해 구성된 것이기 보다는 현실과 이상의 대비를 위해, 그 대비 사이에 여백(코니의 환상으로 여기게 하게끔)을 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극적 소설에 비교한다면 소설적 재미는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투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투박함은 마지 피어시의 여성주의(페미니즘) 소설이 가지는 또다른 매력은 아닐까.




3.
19세기 후반 Elizabeth Stuart Phelps와 Mary E. Bradleydhk 같은 작가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소설을 발표하였다. 이는 20세기 초 Charlotte Perkins Gilman에게로 이어진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 일군의 페미니즘 소설가들이 등장하는데, 마지 피어시, 르 귄 Ursula K. Le Guin, 사무엘 드레니 Samuel Delany, 조안나 루스 Joanna Russ 등이었다. (여기에서 인용된 작가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준비해볼 생각이다. 마지 피어시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의외로 주목할만한 여성주의 소설가들, 특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풍부한 표현들로 채워나간 작가들이 꽤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현실 비판적인 경향의 소설들은 그 소설이 지닌 경향성으로 인해 디스토피아를 드러내든지(조지 오웰의 1984), 유토피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페미니즘 소설가들에게서는 유토피아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 경향은 20세기 후반으로 올수록 디스토피아적 색채를 띠게 되는데, 마지 피어시의 작품도 여기에 속한다.

4.
여 주인공 코니는 사회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정부의 복지 정책마저도 그녀의 일상과 삶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녀에게는 그 어떤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루시엔테일 것이다. 먼 미래에서 온 루시엔테는 소설 속에서 그것이 실제 사실인지, 아니면 코니의 환상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묘사로 인해 그것의 사실성이 드러나지만, 우리는 그것을 환상이라고 단정할 수 없듯이, 똑같이 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미래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드러내는 것은 경향주의 소설이 자주 취하는 방식이지만, 그 방식의 상투성으로 인해 소설이 지닌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 방식은 정신병이라는 교묘한 장치에 숨겨지고 먼 미래와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소설은 SF적 색채를 띤다. 하지만, 루시엔테가 사는 미래에도 전쟁이란 존재하고 그 곳에서 코니는 고통을 받는다. 코니의 시선은 그녀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끊임없이 어긋나고, 독자는 외부의 공간에서 코니를 지켜볼 뿐이다.

소설은 환상과 현실, 현재와 미래를 오가고 페미니즘과 SF 소설을 넘나든다. 장르적 한계를 넘어 성적 한계마저도 뛰어넘는다. 소설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듯하지만, 마지 피어시가 취하는 전략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쓸쓸해지고 슬퍼지는 이유는 변두리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을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5.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때때로 무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현실을 드러내는 일도 고통스럽지만, 현실로 드러난 소설을 읽는 독자도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독자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타인의 일로 치부하며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읽으려 한다. 고통은 탈색된 채 TV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위를 떠돌고, 고통은 언급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침묵의 바다에 속하게 되었다.

마지 피어시의 작품이 문학적인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은 현실을 드러내고 싸우는 문학적 방식의 탁월함에 있을 것이며, 고전의 지위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소설 읽기는 고통스럽고 재미없으며 종종 지루해지기 까지 하다. 하지만 현실을 이야기하는 현대적 방식의 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 소설은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2 - 10점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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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 10점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민음사



조르즈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Joural d'un cure' de compagne』, 
안응렬 옮김, 삼성출판사, 1988.




H. S. 휴즈가 쓴 『현대 프랑스 지성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소설가를, 모리스 삐알라의 영화인 『사탄의 태양 아래』의 원작자로,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유명한 영화인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의 원작이 바로 이 소설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들의 문화적 편식은 꽤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위의 사실들은 그의 명성을 빌어 내 감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잔 수작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우리가 아주 가끔 말할 수 없는 떨림과 흐느낌, 영혼의 고통을 느낀 다음 그것을 표현할 말들을 찾기에 실패한 순간, 매우 어리석게도 객관적 사실만으로 그것을 빗대어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니 이 유명한 소설을 모른단 말이야’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명성은 독자의 감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신을 믿는 자들의 믿음이란 때때로 정당화하기 힘들고 그들마저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신을 향해 가는 한 발 한 발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믿음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지닌 자로서 살아가는 것 또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거리에 네온사인 십자가가 늘어날수록 도시가 피폐해지고 황량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범하다는 것은 하나의 죄악이며 마귀의 함정이다. 그들은 신을 믿는다라고 말만 할 뿐,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이 젊은 신부는 자신의 본당(카톨릭 교회의 행정구분의 제일 작은 단위) 마을에서 자신의 고독과 우울을 써나간다. 하지만 신을 믿는 자의 행동이란 이방인의 것이고 끊임없는 오해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그 오해 속에서도, 자신의 몸이 죽어가고 있는 속에서도, 자신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참으로 이 세상을 조금도 모른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127쪽)

(사족이지만 난 이 소설 속 젊은 신부의 눈빛을 보면서 울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해 둔다. 작은 꼬마여자아이 세라피따 뒤무셸이 앙큼한 표정으로 한 말-“그건 신부님 눈이 하도 예뻐서 그래요”-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감동을 표현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 언어가 내 인생만큼 어리석고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1990년대 후반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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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8. Mon.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가 번역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소설이 되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에선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내가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흥분과 떨림을 잊을 수 없다. 지금 읽어도 그럴까. 아마 그럴 것이다. 조르주 베르나노스를 알고, 그의 글을 읽으며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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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민음사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세워서 자연을 억지로라도 자기의 계획에 맞추려드는 고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계획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연을 거역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건 버림받은 아내가 이혼장을 방패 삼아 부부 관계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228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된다. 적어도 다이스케에게 있어선 그랬다. 그는 자연의 이치대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 일도 기획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외부 세계와는 무관한 듯 그렇게.

 

 

다이스케는 책상 위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약간 열려있는 툇마루의 유리문 사이로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화분에 심은 색비름의 빨간 꽃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큰 꽃 위에 햇살이 가득했다. 다이스케는 허리를 굽혀 꽃 속을 들여다 보았다. 이윽고 가늘고 긴 수술 끝에서 꽃가루를 따다가 암술 끝으로 가져가서 정성스레 발랐다.

- 58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아무 일도 못 하리라 여겨지진 않았다. 많은 책을 읽었고 부드러웠으며 신중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의 하루 일상은 단조로웠지만, 지식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종류였다. 그는 매일 차를 마셨고 책을 읽었으며 다양한 화초가 자라는 정원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달리, 자연을 따르기로 한 다이스케에게 있어 '자연'이란, 이 외부세계의 어떤 거대한 흐름 이전에 정처 없이 떠도는, 자기자신에게마저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이었다. 사람의 마음, 나무의 마음, 구름의 마음, 식물의 마음이 모여 이 거대한 자연을 이루듯, 그 시작에는 다이스케의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솔직해진다는 것의 무모함이란, 자기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가져다 주는가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21세기 초반의 TV 드라마들 대부분은 이 마음의 자유가 가져오는 통속적 비극에 대한 것들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이여,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말고 어른이, 이 세계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각하고 움직여라)

 

요즈음 마음이 쓸쓸하니 자주 와주세요.”라는 미치요의 말에 다이스케는 휘청거리며 100미터 정도를 걸었다.’ 마음 가는 대로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와 친구인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주선하였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마음 가는 대로 친구의 부인인 미치요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비극을 선물한다. 우리 비극의 원인은 바로 자연이다.)


 

왜 저를 버렸지요?”

라고 말하고는 다시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대고 또 울었다.

- 286

 

 

미치요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면서 띄엄띄엄 한 마디씩 말하고 있었다. ‘너무하세요’, ‘잔혹해요라고 말하며, 지나간, 이미 버림받은 사랑을 되새기고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된 미치요 앞에서 19세기 후반의 다이스케는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용납하지 못할 어떤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없어요?”

라고 물었다.

그런 건 없어요. 뭐든지 당신 뜻에 따르겠어요.”

떠돌이 생활 …….”

떠돌이 생활을 해도 좋아요. 죽으라고 말씀하시면 죽겠어요.”

다이스케는 또 한번 전율을 느꼈다.

- 316

 

 

이 흥미로운 소설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사랑에 대해선 별 내용이 없다. ‘그 후이라는 소설의 잔인한 제목처럼, 현대적 비극은 막이 내려간 다음 이루어지고 그 누구도 그 비극의 원인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데에 나쓰메 소세키는 의문을 갖는다.

 

다이스케는 19세기 후반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한 나약한 일본 지식인을 떠오르게 하며, 미치요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일본 여성을 보여준다. 결국 둘의 사랑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다이스케와 같은 지식인 류의 고백이란 늘 한 발 늦기 마련이고, 어떤 상황은 종료되고 현장은 깨끗이 치워진 이후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질서에 순종하며 늘 자기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하다며, 이미 끝난 사랑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붙잡곤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봐달라고 해대는 것이다.

 

 

잘 알았습니다.”

라고 다이스케는 간단히 대답했다.

너는 바보 천치다.”

라고 형이 크게 소리쳤다. 다이스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지 않았다.

얼간이 녀석.”하고 형이 또 말했다.

평소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입심이 센 놈이 정작 이런 때는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잠자코 있구나. 그리고 뒤에서는 부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나쁜 짓이나 하고 말이야. 이제까지 무엇 때문에 교육을 받은 거냐?”

- 348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나고 그 후 아무도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사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아무렇게나 그 둘은 슬픈 풍경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고 지병이 있었던 미치요는 갑자기 무능력해진 다이스케의 손을 잡으며 죽었을 것이다. 자연의 질서란 언제나 잔인하게 공평한 것이다.


그 후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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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 2009.12.30 21:07 신고

    몇해 전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싶으면서도 또 스산한 감흥을 가지고 덮었던 책인데
    어제 집에 들어갔더니 엄마가 이 책을 꺼내놓고 계시더군요. 이상하게 <그 후>와 거푸 마주치게 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란 인사를 하러 왔어요.
    새해에는 함 만나서 수다떨 기회라도 있길 바래요. :)

    • 소세키의 소설은 19세기말, 20세기초의 분위기스럽지 않게 스산하더군요. 아니면 우리는 스산하지 않았던 때 없었던 건지. ㅡ_ㅡ;;;
      수다~! 너무 좋아해요.. ㅎㅎ 딸기님두 건강하시고요. ^^ 새해에는 수다를 기필코.. : )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8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민음사



대단한 찬사 속에서 읽을 만한 소설책은 아니다. 하지만 대단한 찬사 속에서 이 소설을 읽었을 독자들에게 아마 그 찬사는 그대로 전달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관심과 자기 보호로 뒤범벅이 된 폭력성'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주제의식이라면,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단편은 매우 잘 씌여진 소설임에 분명하다.

그녀의 작가적 재능은 폭력적인 이 세계나 이 세계 속의 개인들에 대한 집요한 탐구 의식, 또는 진지한 성찰에 있기 보다는 번뜩이는 재치가 묻어나는 짧고 강렬한 스토리라인에 있는 듯하다(그래서 그녀의 많은 단편들이 영화로, TV 드라마로 재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곳에서 멈춘다.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과는 달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잘 만들어진 TV 단막극을 보는 느낌을 던져준다. 어쩌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점이 그녀의 장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권 사서 읽었지만, 그녀의 나머지 책들을 사서 읽을 생각은 별로 없다. 그 시간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도 더 나아보인다. (혹시 방송 단막극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이 소설가의 작품들은 필독서다. 놓치지 말기를.)

 Patricia Highsmith (1921 - 1995)

미국의 범죄 소설가. 스릴러 작가. 2 다스(dozen) 이상의 작품이 필름으로 옮겨졌다. 혹시 오래된 스릴러 영화를 볼 때, 원작가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나올 수도 있으니 유심히 보기를.
(위키피디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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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의 비상 - 10점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은주 옮김/현대문학


흡혈귀의 비상, 미셸 투르니에(지음), 이은주(옮김), 현대문학



'독서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이 한국적 상황 속에서 온전한 의미의 '독서노트'로 읽혔으면 좋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문학평론가들이 써대고 있는 비평문들이 미셸 투르니에의 독서노트 수준이라도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최근 내 기억에 그런 평론은 없었다. 도리어 난삽하고 정의되지 않는 개념어들의 나열이고 시덥잖은 작가의 작품을 띄워주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다.
(젊은 평론가일 수록 이런 경향 더 심해지니 어찌할 노릇인지.)


이 책을 읽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독자에겐 이 책은 어렵고 지루하며 도통 모르는 작가들과 작품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러니 읽지 말아야 된다. 아니면 가령 이런 식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셸 투르니에의 '흡혈귀의 비상'을 읽기 전에 읽어야 할 책들 http://blog.aladdin.co.kr/misshide/115519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었던 이유는, 미셸 투르니에의 문학적 안목과 식견,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경우, 이미 한국에 여러 권의 산문집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그 중에서 몇 권은 매우 뛰어나다. 산문집이라면, 미셸 투르니에 정도는 되어야 하지만, (정말 안타깝고 불행하게도) 한국 작가들이 낸 산문집 대부분은 여기저기 쓴 기고문들이나 일기 쪼가리들의 짜집기들이다.
(표현이 과격한 이유는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평가했을 때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과 비교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나름 괜찮은 산문집들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미셸 투르니의 이 책이 읽고 싶다면, 도리어 미셸 투르니에의 다른 산문집을 낫다.이 책은 불문학을 전공한, 성실한 학생에게조차 버거울 정도로, 비평적 통찰과 듣지도 못한 작가들이 툭툭 튀어나기도 때문이다.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는 시간의 방향에서 비롯되는 차이가 있다. '문헌적인' 진실이 언제나 회고적이라면, 이에 반하여 '픽션의' 진실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다. (15쪽)


소설의 주인공과 그 환경 - 사회적 환경뿐 아니라 또한 물리적 환경 - 과의 이 근본적인 대립은 소설의 어떤 범주를 잘 정의해주는데, 그것은 성장소설과 짝을 이루면서 그것과는 반대되는 논리를 따르는 소설인 '대결의 소설'이다. 스탕달이 바로 "적과 흑" 안에서 말하는 유명한 정의는 이 대립을 아주 잘 설명한다 : 하나의 소설은 "대로 위를 움직이는 하나의 거울"이다. 이선 이 표현의 비인격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 거울은 혼자서 움직이며, 그 뒤에서 거울을 붙들고 동시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소설가는 없다. 그런데 거울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다. 거울이 반영하는 것은 아주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지워진다. 이것이 자기 자신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수많은 모험들과 실패를 겪어내는 스탕달의 주인공을 대단히 잘 특징짓는다. (160쪽)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글은 '클라이스트 혹은 시인의 죽음, 자료들', '질식한 신비주의자: "마담 보바리"', '앙드레 지드를 위한 다섯 개의 열쇠', '헤르만 헤세와 "유리알 유희"', "귄터 그라스와 그의 양철북", "에밀 아자르 혹은 자기 뒤의 생" 등이다. 특히 '클라이스트 혹은 시인의 죽음, 자료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클라이스트는 독일의 시인이다. 아마 독일문학사를 공부를 해야만 읽을 수 있는 이 시인은, 불과 서른 네 살에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는 이미 동갑네기인 헨리에테 포켈 부인을 먼저 권총으로 쏘아 죽인 후였다.


문학기행 애호가가 서(西)베를린에 간다면, 고속전철을 타고 종착역 바로 전 역인 반제역에 갈 수 있다. 오른쪽으로 대(大) 반제를 두고 다리를 건너면 소(小)반체의 가장자리에 이르게 된다. 나무들 밑을 조금 찾으면, 클라이스트의 무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헨리에테 포겔이 그의 곁에 묻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아마도 거기에 함께 있을 테지만, 1811년 말에 온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스캔들이 필경 그녀의 무덤에 이름이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1811년 11월 22일 그날, 한 건의 살인과 한 건의 자살이 철 이른 겨울 선잠에 빠져있던 슈티밍 여관의 사람들을 뒤흔들었던 것이다.(117쪽)

미셸 투르니에는 이 사건을 경찰 조사 기록, 진술 조서들, 압류된 편지들과 같은 자료들로만 재구성해낸다. 그리고 클라이스트(빈번한 연애 실패로 점철된 시인, 더구나 동성애로 의심까지 받았던)와 헨리에테 포겔(자궁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던 유부녀)의 사랑을 믿을만한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더구나 연애 편지가 사라진 디지털 시대에 클라이스트와 헨리에테 포겔의 편지를 읽는 건 참 이상하고 야릇하고 가슴 아픈 경험이다. 가령 이런 편지가 우리 시대에 다시 씌여질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을까.


헨리에테 포겔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에게

베를린, 1811년 11월

나의 앙리, 나의 아름다운 이, 나의 히아신스 꽃밭, 나의 오로라, 나의 석양, 나의 평화로운 태양, 나의 공기의 하프, 나의 이슬, 나의 무지개, 내 무릎 위의 갓난아기, 내 소중한 사람, 고통 속의 나의 기쁨, 나의 재생, 나의 자유, 나의 노예, 나의 안식일, 나의 황금 성배, 나의 대기, 나의 열기, 나의 생각, 내가 기다리던 내세와 현세, 나의 사랑하는 죄, 내 두 눈의 위안, 나의 가장 소중한 근심, 나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 나의 자부, 나의 보호자, 나의 양심, 나의 숲, 나의 영광, 나의 투구 나의 칼, 나의 용기, 나의 오른손, 나의 크리스탈, 나의 생명의 원천, 나의 수양버들, 나의 주인 영주님, 나의 희망, 그리고 나의 굳은 결심, 나의 사랑하는 성좌, 나의 어린 아양꾼, 나의 흔들리지 않는 성채, 나의 행복, 나의 죽음, 나의 도깨불, 나의 고독, 나의 아름다운 배, 나의 골짜기, 나의 보상, 나의 베르테르, 나의 레테, 나의 요람, 나의 향 그리고 나의 몰약, 나의 목소리, 나의 판관, 나의 다정한 몽상가, 나의 노스텔지어, 나의 영혼, 나의 황금거울, 나의 루비, 나의 목신의 피리, 나의 가시관 , 나의 수많은 골짜기들, 나의 스승, 나의 제자, 내 생각 속에 있는 이 모든 것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나의 영혼은 당신의 것입니다.

헨리에테

추신 - 나의 정오의 그늘, 나의 사막의 오아시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종교, 나의 내면의 음악, 나의 가엾은 병든 앙리, 나의 부드럽고 하얀 유월절의 어린 양, 나의 천국의 문.



이 독서노트가 가치있는 것은 이러한 풍부하고 사려깊은 자료집의 역할도 충실히 한다는 점도 빠질 수 없다.


추천하는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짧은 글 긴 침묵 - 10점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현대문학


예찬 - 8점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현대문학


생각의 거울 - 8점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북라인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의 개정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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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민연우맘 2009.01.09 16:31 신고

    저는 김정란 여사 번역의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산문집을 가장 좋아합니당. 이 낯뜨거운 제목으로는 아마 절판됐을 텐데 요즘은 뭔 제목으로 출판되고 있는지 몰겠네용. 짧은 글 긴 침묵도 재밌게 읽었어용.

세잔의 산을 찾아서 - 불멸의 산 생트빅투아르 기행
페터 한트케(지음), 이중수(옮김), 아트북스



세잔을 좋아하는 나. 전후 독일문학의 가장 실험적인 소설가 중의 한 명은 페터 한트케가 세잔에 대해서 적었다? 바로 사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하지만 사 둔 지 몇 달만 읽었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다. 책의 내용도 평이하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바의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세잔에 대한 현대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 농후하게 묻어나오길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세잔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산문집에 가깝다. 한 쪽에서는 세잔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가고 한 쪽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가는 산문집이다.

이는 나쁜 시도가 아니다. 세잔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페트 한트케에 대해선 확실히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의 세밀한 관찰력은 글 여기저기에서 빛난다. 하지만 번역이 매우 나쁘며, 페트 한트케의 유려한 문장의 힘이 살아나지 못하는 듯 하여 다소 아쉽다(아래 댓글을 참조하세요). 세잔에 대해 궁금한 독자들보다는 글쓰기, 또는 산문의 힘, 현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어떤 시각에 관심이 있는 이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초기 철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시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썼다. 이는 시인들이야말로 모두가 현실과는 다른 허구에 가득 찬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실은 그만큼 불행한 삶의 조건과 불길한 징조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현실 그대로 재현해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술은 다소 우스워지기도 하는 불행한 삶의 조건과 비관을 예시함으로써 진정한 현실 해석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세잔의 산을 찾아서
페터 한트케 지음, 이중수 옮김/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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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는 이 2008.11.07 15:26 신고

    이 책 사실 번역이 엉망입니다. 2/3는 틀린 번역이라고 봐도 잘못이 아닐 겁니다. 꼭 번역기로 돌려서 한국말만 맞춘 것 같아요. 원문과 반대의 뜻으로 번역한 구절들도 많이 눈에 보입니다. 번역자를 만나서 따지고 싶은 기분입니다. 뭘 보고 어떻게 번역한 거냐고...저 위에 인용하신 부분도 완전히 틀렸어요. 원문은 이렇습니다.
    "최초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은 시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이미 그 때부터 현실이란 나쁜 상태와 좋지 못한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 생각에 따르면] 예술의 주된 대상과 모티브가 악한 것일 때, 또는 현실에 대한 다소간 우스꽝스러운 절망일 때 비로소 예술이 현실에 충실하다는 것이다."('Die Lehre der Sainte-Victoire'(Suhrkamp, 1984) 17-18페이지)

    • 헉.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원문 번역과 책에 나온 글을 읽으니, 매우 다르군요. ㅡ_ㅡ; 쩝. 영어 번역본라도 구해서 새로 읽어야겠어요. 댓글의 문장은 간결하고 힘이 있는데, 책의 번역은 쭉쭉 늘어지고(마치 책 페이지 수를 고려한 듯한..) 구구절절 부연적이며 결국에는 엉망이 되는 것같아요. 편집자의 의도가 심하게 들어간 느낌도 드는..
      번역에 대한 지적 감사합니다. : ) 제 글에 오류가 있었음을 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T_T;

  • 행인 2010.02.17 15:46 신고

    전 이책을 독어로 읽다가 포기하고 한국어로 읽었습니다.
    음.. 님의 말씀만큼 번역이 나쁘진 않았는데... 제가 인상적이었던것은
    그 한국의 번역가님께서도 직접 이 산을 방문하고 번역했다는것입니다.
    저는 거기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드케의 문장가 많이 다르다는것은 눈치 챘습니다. 하지만 의미상으로 매우 다르다고 하기도 힘들거 같습니다. 번역할때 완전히 다른 언어를 그 의미의 변화없이 유려하게 옮기는 가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불가능한 표현이 너무 많습니다. 그에비해
    저는 그냥 이 번역에 만족했습니다. 독일인 조차도 사실 읽기 힘든 책이 한드케의 이 책입니다. 자신들도 읽고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매우 섬세하고 깊은 명상을 요하는 책이죠. 그냥 슥 읽고 무언가를 얻기 바라는 책이 아닌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책을 읽고 세잔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한트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었으나, 번역본이 완벽하게 충족시켜주지 못한 느낌이 들었는데, 님의 댓글을 읽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네요. 참, 번역이란 어려운 일인 것같습니다. ㅡ_ㅡ;;; 그런 점에서 한국은 그 힘든 번역에 대한 대우가 바뀌어야 할 텐데 말이죠.
      님의 댓글을 읽으니,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감사합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10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문학동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지음), 김남주(옮김), 문학동네, 2001

세상에 이렇게 비극적이며 냉소적인 소설가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또한 세상에 대한 끝없는 냉소로 일관하듯이 이 소설집 또한 그러하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유머러스함마저도 로맹 가리의 냉소적인 시선을 배가시킬 뿐이다.

그의 냉소는 어디에서 시작한 것일까. 하긴 우리는 늘 어딘가에 속고 산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으로부터, 교과서로부터, 하이틴로맨스로부터 속고 청년 시절 사랑스럽던 그녀‘들’에게서 속고 장년 시절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직장 상사에게서, 동료에게서 속임을 당한다. 정치인에게서도 속고 장사꾼에게서도, 심지어는 길거리 행인에게서도 속임을 당하기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까지 한다. 도대체 태어났을 때, 이 세상에 드디어 존재하게 되었다는 찬란한 신비와 성스러운 기쁨은 다 어디로 가고 끝없이 속고만 사는 걸까.

이 소설집은 몇 편의 ‘속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몇 편은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적 태도’에 대한 것이며 몇 편은 ‘사랑’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며 그저 무너지기만 기다릴 뿐이라는 것.

참혹함을 기다린다는 것만큼 참혹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1980년 12월 2일, 로맹 가리는 권총 자살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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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버지니아 울프(지음), 정덕애(옮김), 솔, 1996년


문학비평가들이 쓴 문학에세이들 대부분이 그들이 가진 편협한 이론적 시야에 갇혀 일방적인 해석의 늪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하고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 반면, 작가들이 쓰는 에세이는 적어도 작품이나 작가를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때로 더 뛰어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 산문집 또한 그러하다. 19세기, 20세기 영국 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도 그녀의 문장은 독자를 배려하며 독자의 눈길 앞에 순결한 그 하얀 살결을 드러내며 초봄의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위장(僞裝)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공손함이 너무나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통과 의식을 던져 버리고 마음에 맞는 한두 사람과 ‘가벼운 말’로 대화하는 것은 더운 방의 한 줄기 공기처럼 필수적이다.
- 25쪽


수 차례의 정신병 경력이 있고 빈번한 자살 시도, 그리고 끝내 자신의 생을 자살로 끝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글은 감미롭고 때로 냉정하며 격정적이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버리지 않는다. 아니면 그녀 스스로 이러한 에세이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그녀의 소설을 꺼내보아야겠다. 세월. 버지니아 울프. 열린 창으로 봄 바람이 들어와 반대편 베란다 창으로 나간다. 그렇게 봄은 지나가고 아직도 영국의 우즈 강은 이승에서의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표정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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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의 세계 (Glass, Paper, Beans)
리아 코헨 지음, 하유진 옮김, 지호





잔뜩 달아오른 아스팔트 거리 위에 한바탕 빗줄기가 밀고 지나간다. 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 책을 다 읽었다.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그 상쾌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잡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마지막 부분은 건성으로 책장만 넘기고 말았다. 이 책을 쓴 이에게나 옮긴이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일이지만.

이 책은 유리, 종이, 커피에 대한 책이며 유리를 만드는 사람, 종이를 만드는 사람, 커피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가 여러 층을 나누어 전개되어 있다. 가령 종이가 생산되는 방식에서부터 종이가 역사적으로 어떤 변천이 겪어왔으며 현재에는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잘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난 왜 이 책을 이토록 재미없게 읽은 것일까. 짧은 생각이긴 하지만, 번역한 이의 문장 서술에 있는 듯하다. 특별한 오역이나 부적절한 문장이 있었다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산만한 문장 진행 때문인 듯하다. 어떤 문장은 너무 짧고 내용을 다 담고 있지 못하다.

결국 원서를 사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번역서임에는 분명하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탁자 위의 세계 - 10점
리아 헤이거 코헨 지음, 하유진 옮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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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영혼 - 8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서유정 외 옮김/도서출판빗살무늬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사로잡힌 영혼>, 빗살무늬



재미있게 읽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다. 그것은 라니츠카가 생각하는 문학이나 예술과 내가 생각하는 그것들과 많은 부분에서 틀리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작가들을 자기애에 가득찬 인물로 매우 공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애에 대한 판단이나 간략한 상황 설명만 있을 뿐, 깊은 분석은 없다. 분명 수긍할 만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냥 자기 생각나는 대로 서술했을 뿐이다. 자기 느낌대로.

라니츠기의 문학에 대한 사랑은 무척 감동적인 구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대 작가나 예술가들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에 대한 아무런 통찰도 없어 보인다. 그는 삶과 유리된, 세계와 유리된, 그렇게 자족적으로 구성된 문학의 세계를 읊고 싶은 것이지, 문학이 반영하고 있는 하나의 삶이나 그 삶이 처해있는 현실 세계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는 교묘하게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면서 자신의 평가를 누군가에게 알리는 데 있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간결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말. 라니츠키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 그러한 그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하지만 라니츠키에게 문학은 구원이었겠지만, 현대의 예술은 ‘예술은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한 테마들 중 하나이다. 고작 자기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그것마저도 폭로해버리고 있는데.

분명 이 책은 쉽게 읽히고 그러면서 저자는 글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데 큰 미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문학이나 비평은 나에게 있어 아주 오래된 고전 문학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 정도로 열성적이며 대중적인 비평가를 우리 문학은 가지고 있지 못하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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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 10점
이경림 지음/이룸


파란 하늘이 위로, 약 이십킬로미터 정도 끝없는 우주 쪽으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조금 넓어진, 또는 매우 넓어진 하늘을 메우기 위해 공기들이 이리저리 재빨리 움직이며 바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해마다 삼월 초면 이런 일이 생기곤 했다. 하늘이 먼저 움직이고 뒤따라 공기들이 움직였다. 옷깃 사이로 공기들이 밀려들어왔다 밀려나갔다. 꼭 파도 같았다.

방 구석 오래된 책장 속에서 '정원'을 페이지 속에 숨긴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숨긴 정원의 크기를 가늠할 방법은 없었지만 내가 책을 들고 흔들자, 우수수 작은 나무며, 푸른 잔디며, 둥글고 맨들맨들한 돌맹이들이 떨어져내렸다. 꼭 한겨울 함박눈처럼 내려 금새 방을 가득채웠고 열린 창을 넘어 골목길을 채우기 시작했다.

정원에 익숙하지 못한 도시의 주민들이 문을 열고 나와 정원을 숨긴 책 한 권을 들고 있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종일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쓰레받기로 떨어져있는 나무며, 잔디며, 돌맹이들을 책 속으로 집어넣어야만 했다. 몇 시간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돌맹이 하나가 바람에 밀려 하늘로 올라갔다.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부니까, 나무며, 잔디들도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가 싱그러운 향기를 뿌려댔다. 무척 좋은 향기다. 삿대질을 하던 주민들도 나와 그 향기를 맡으려고 했다. 그건 좋은 글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였다.

오랫만에 무척 좋은 향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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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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