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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셰익스피어의 시대 The Age of Shakespeare 

프랭크 커모드(지음), 한은경(옮김),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 11



책은 얇지만, 의외로 단단하고 빽빽하다. 셰익스피어(1564 ~ 1616)가 살고 활동했던 시대 전후로 셰익스피어 극작품에 영향을 주고 받은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나 연극 제작, 그리고 개별 작품에 대해 분석하고 언급하고 있으니, 당연히 쉬운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독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 번역서에 대한 일반 독자의 반응은 좋지 않다. 너무 어렵다는.  


그러나 미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교수인 제임스 샤피로(James Shapiro)는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 1919~2010) 교수 생전에 '현존하는 최고의 셰익스피어 안내자(reader)'라고 평가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ank_Kermode)


이 책의 대부분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 제작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서술하고 분석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셰익스피어 극작품의 일부를 인용하여 어떻게 셰익스피어에게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시대(이 용어는 편의상 제임스 1세 초까지 망라하기도 한다)는 전문 연극이 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최초의 대중연극은 주로 임시 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심지어 여인숙의 뒷마당이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6세기 후기에 이르러 런던에는 최고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잇는 전용극장이 여럿 생겨났는데, 이런 극장은 주로 극단주들이 소유했다. 대개 극단은 과거 길드와 구조가 흡사했으나, 셰익스피어의 극단은 다소 달랐다. 단원들이 연극은 물론이고 극장까지 소유했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연극을 위탁하고 소유하고 출연했으며,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직접 연극을 쓰기도 했다. 그를 위시하여 일부 동업자들은 상당한 수입을 올리며 자산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건 나중 일이었고, 엘리자베스 여왕 초창기에 극장 공연자들은 여전히 곡예사나 순회 공연자, 방랑자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 10쪽 


(* 참고. 엘리자베스 1세(1533 ~ 1603), 제임스 1세(1566 ~ 1625). 엘리자베스 시대는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반으로 이해하면 된다. 예술사에서는 매너리즘 시대로 이해하는 기간이다.)


따라서 일반 독자에게 권하기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책이다. 더구나 2004년도에 런던에서 출간된 이 얇은 책을 내기 전 프랭크 커머드는 이미 10권 이상의 셰익스피어 저술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목차도 아래와 같다. 


- 종교개혁과 왕위 계승의 문제

- 엘리자베스의 영국

- 셰익스피어, 런던으로 가다

- 로드 체임 벌린스멘 극장

- 극장

- 초기의 셰익스피어 

- 글로브극장

- 글로브극장의 연극

- 블랙 프라이어스 연극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보물단지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 그 정도 되려면 전문연구자일 테니, 프랭크 커모드를 모를 일 없을테지만.  영미문학에서의 프랭크 커모드는 상당한 유명한 연구자이며, 오래 전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이라는 번역서가 나오기도 했다.  나 또한 이 책을 꽤 열심히 읽었으니, 프랭크 커모드의 책은 두 권을 읽은 셈이다. 


이 책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 영국 상황에 대해서도 간단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처녀성은 찬양과 희망을 표출한다는 은밀한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29쪽)라는 언급은 꽤 흥미로웠다. 왕이 아니라 여왕, 더구나 결혼을 하지 않은 여왕은 영국 귀족 사회에서도 상당히 골치거리였다고 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주요 극작품에 대한 간단한 언급도 등장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인용해본다. 먼저 <<햄릿>>에 대한 언급이다. 


이렇듯 다양한 스타일이 구사되는 이면으로 가족의 이중성과 그 외 여러 이중성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배어있다. 햄릿에게 클라우디우스는 삼촌이자 아버지이며, 그 자신이 조카이자 아들이다. 끔찍한 현실이다. 자신의 어머니와 계부가 몸을 합했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간통이 실은 근친상간이라는 것은 혐오스러울 따름이다. 

대사는 언어학적인 이중적 의미로 가득하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중언법이 많이 사용된다(중언법은 '하나를 통한 둘'을 뜻하며, 하나의 복잡한 개념이 형용사와 명사 대신 접속사로 연결되는 두단어로 표현된다.[옥스포드사전]). 사전에서는 중언법의 예로 <<햄릿>>이 인용된다. "의전법으로 잘 비준된 것 Well ratified by law and heraldry"(1막 1장 87).  이 때 '법과 의전 law and heraldry'은 '의전법'을 의미한다. 

- 148쪽 


아래는 <<맥베스>에 대한 서술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미래는 다의적이다. 시간은 다의성의 대리인이다. 던컨을 살해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 순간 어느 쪽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시간이 정지된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 순간은 의도와 행위 간의 간극이며, 그 사이에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의적으로 하나가 된다. 정당한 것은 사악한 것과, 실패한 것과 성공한 것과, 미래와 순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 176쪽 



영문학 전공자에게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는 을유문화사 관계자가 있다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크로노스 총서를 계속 발간하는 것을 검토해볼 것을 권한다.아마 국내에 번역된 여러 인문 시리즈들 중 이 시리즈가 단연코 최고라고 여기는데, 나오다가 중단되었다(참고로 이 시리즈의 1권으로 번역된 폴 존슨의 <<르네상스>>는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르네상스 개론서이다). 그러니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면, 나라도 열심히 소개할 테니 .... )






셰익스피어의 시대 - 10점
프랭크 커모드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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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 베로니카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닦아 준다. 그리고 그 수건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다. 아래 작품은 그 기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이콘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비잔틴의 이콘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스 태생의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 후기(매너리즘)의 화풍을 배웠고 이후 스페인 톨레도로 가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는다. 




엘 그레코, <<수건을 든 베로니카>>, 캔버스에 유채, 84 cm * 91 cm, 1580년경, 톨레도, 산타쿠루즈 성당



슬픔에 젖은 베로니카가 수건을 펼쳐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줄 때, 어떤 비장미까지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수건과 뒤 배경 사이의 묘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보면 아래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 사진 한 장을 더 올린다. 무표정해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베로니카, 두 손 사이의 수건, 주름진 천 위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6세기 후반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엘 그레코. 이 작품은 보면 볼 수록 빨려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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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문화혁명 - 10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동아시아


이런 두꺼운 책을 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한 것은 우연이었다. 읽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분량이었지만, 16세기는 나에게 무척 흥미로운 시기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16세기는 중세의 어둠이 유럽 전역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대이며, 마지막 마녀사냥과 연금술의 시대였다. 절정기 르네상스에서 시작해 매너리즘을 지나 바로크 양식의 카라바지오가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끝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16세기 풍경 속에서 세르반테스의 근대 소설이 시작하고 세익스피어의 희곡들이 16세기에서 17세기로 향한다. 루터와 에라스무스가 있었던 시기였으며, 본격적 근대가 시작되지도, 그렇다고 중세도 아닌 시기였다. 종교혁명의 시기였으며, 교회 권력에서 세속 권력으로 정치적 지형이 바뀌는 시기였다. 근대 자본주의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였으며, 도시가 세상의 본격적인 중심이 되었던 시기였다.



Parmigianino, 긴 목의 성모, 1533-40
16세기 매너리즘의 대표적인 화가인 파르미지아니노. 아마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과도기 미술 양식은 위와 같지 않을까. 과거에 대한 지독한 반감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미술에 있어서는 도리어 과거란 찬란한 절정기 르네상스이므로), 과거의 양식은 현재의 나에겐 맞지 않고 그렇고 현재의 나에겐 나에게 딱 맞는 어떤 양식을 찾을 능력이 없고, ... 그저 정처없는 방황만 있었던 시기가 바로 16세기였다.   




이 책은 그 16세기에 대해서 설명한 책이다. 책은 예술가에서 시작해, 외과의, 외과학, 해부학, 식물학, 광산업, 야금술, 시금법, 상업수학과 수학혁명, 군사기술혁명과 기계학, 역학, 천문학, 지리학, 16세기 후반의 잉글랜드, 16세기 유럽의 언어혁명에 대해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책의 서문, 1장, 9장, 10장은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부분이며, 나머지는 각 분야에서 일어났던 사례들을 병렬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적인 테마는 아래와 같다.

1. 언어의 변화
라틴어에서 속어로의 변화는 이 책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 저자는 라틴어의 정치적 위상을 강조하면서 라틴어가 반-근대적이었음을 실제 사실을 예로 들고 있다. 브로노프스키와 마즐리시의 '유럽의 지적 전통'을 언급하면서, 귀족적 르네상스와 민중적 르네상스로 나누고, 저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17세기 근대 과학혁명은 민중적 르네상스에서 기인한 것이지, 귀족적 르네상스에 온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결국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르네상스란 라틴어에 기초해 있었으며, 귀족이나 소수의 성직자, 지식층을 위한 것이며,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켰던 근대와는 무관하다고 이야기한다.

에라스무스와 마르틴 루터의 결정적 차이는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결심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루터가 속어를 사용해 민중에게 직접 호소했다는 데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638쪽)



결국 에라스무스는 보수주의자였으며, 서민적 삶에는 관심없는 '엘리트 지식인 공화국'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로 알려진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연설(De hominis dignitaate oratio'의 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지고한 신성의 감춰진 의의를 민중에게 알리는 것은 성스러운 것을 개에게 던져 주는 것이나 다름 없고, 돼지 우리에 진주를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는 '완성된 인간들'에게 전해져야만 하는 것으로 범속이 대중에게는 내밀하게 해 둬야 한다. 이는 사려 깊은 행동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가 신이 정해 둔 규칙이다.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렸던 피코 델라 미란돌라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귀족적 르네상스와 민중적 르네상스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심지어 코페르니스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으나, 교회나 성직자로부터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았던 것도 라틴어로 쓰여져 일반 민중에게 그러한 사실이 알려질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2. 무너지는 권위와 지식의 전파
성직자, 대학교수, 그 외 지식인들(라틴어가 가능했던)의 라틴어는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는 암호와도 같았다. 12세기 르네상스로 인해 그리스, 로마의 많은 저서들이 라틴어로 번역, 소개되었으나, 그것은 책의 지식이었을 뿐, 실제적인 지식은 아니었다. 특히 의학이나 수학, 천문학 등의 과학의 영역에서 그 정도가 심했다. 전구 하나 갈아끼우지 못하는 대학 교수의 일처럼, 그 당시 지식인들은 실제적인 활동에서는 분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실제 노동은 직인 계급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라틴어 책을 제 아무리 많이 읽고 여러번 읽었다고 한들, 전쟁터에서 무수한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직인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16세기의 직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속어로. 그 결과 지식은 전파되기 시작했고 비밀은 사라졌다. 교회의 권위가 독일어 성경으로 인해 무너졌듯이, 과거의 지식이 사라지고 새로운 지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3. 과거의 이론에서 현재의 경험으로
경험적 지식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수학도 수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역과 거래를 하기 위한 상업 수학이 중요해졌으며, 이론적 지식도 실제 경험과 오랜 기간에 거쳐 수집된 측량과 정보를 통해 검증되어야 했다. 17세기 대륙의 합리론이 과거의 철학과 비교해 유연해질 수 있었던 것도, 영국 경험론이 경험 우위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16세기를 거쳐 지나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속어로 씌여진 책이 인쇄술로 인해 대량복제가 되기 시작하자,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제 세상은 중세를 확실히 떠나 근대로 진입하게 된다. '문서 편중의 학문에서 경험 중시의 지식으로 전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예술가와 직인이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베살리우스의 '파브리카'(1543), 첫 번째 근육인 (266쪽)
세밀하게 표현된 판화는 지식의 전파에 큰 기여를 하였다. 16세기 몇몇 책들은 미술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도판을 가지고 있다.



4. 세속화
르네상스를 세속화의 진전이라고 볼 때, 르네상스의 실질적인 주역은 인문주의자들이 아니라 예술가와 직인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직인들을 소개하는 데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잡다한 사례들로 구성된 책은 병렬적인 구성으로 인해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진 않지만, 일본의 서양사 연구 수준을 알게 해주며, 르네상스에 대한 이해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역사, 특히 과학사에 관심 있다면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16세기 자체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은 문화/과학에 그 중심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읽게 되는 역사책과는 다르다. 또한 본문만 800페이지 가까이 된다는 점은 일반 독자에게 선뜻 이 책을 추천하기 어렵게 한다.



다음 독서 모임의 책은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이다. 이 책에 대해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듯.


중세의 가을 - 10점
요한 호이징가 지음, 최홍숙 옮김/문학과지성사

8월 첫주 토요일에 독서모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모임에서 읽었던 책에 대해 올린다. 다음 독서 모임은 9월 첫주 토요일이다. 그나마 독서모임이라도 하니, 이런 역사책을 읽는다. 요즘은 손에 잡히는 건 경제경영서가 태반이라서... 그것도 읽기 바쁘고 정리해서 짤막한 서평 조차 쓰지 못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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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어느 문화센터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강의였고 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루었던 관계로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만, 그 때 정리해놓은 강의 노트가 있습니다. 여러 참고 문헌, 그리고 제가 배웠던 서양미술사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제 이력이 유별나,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인문학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양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입니다. 철학사(혹은 지성사)와 비슷하게 움직이며,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들의 정신적 세계를 보여주며, 그 시대의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작품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동시의 철학 책이나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 경우, 16세기 미술사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마키아벨리, 세르반테스, 세익스피어, 에라스무스, 루터 등을 이야기하지만, 서양미술사를 배우는 학생에게나 이를 가르치는 선생에게나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우리 시대가 게을러지고 편한 것만을 찾기 때문에 온 것이지, 인문학이 더 이상 필요 없거나 그 가치를 상실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큰 활자에 예쁜 그림으로 채워진 대중미술서들이 난무하는 요즘, 몇 백 년전의 고리타분한 작품을 앞에 두고,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 그동안 완역되지도 않았던 세르반테스,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는 다 알려져 있으나, 정작 읽어본 이는 드물고, ‘우신예찬의 에라스무스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도대체 몇 번이나 들을 수 있을까요? 인문학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심지어 인문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마치더라도 우신예찬표지도 보지 못하고 석사 학위 논문을 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텐데 말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기는 것입니다. 서양미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편없는 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양식적 설명이나 도상학적 설명만을 주절주절대면서, 정작 그 작품이 왜 형편없는지, 혹은 왜 감동적인지에 대해서 한 마디 설명도 없습니다. 미술 작품은 감상과 감동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서 온전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따져 묻고 작품 속 어떤 형체를 보면서 그 의미를 궁금해 합니다. 천박한 방식입니다.

 

먼저 전체를 보고 감상하는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훈련은 매우 어렵습니다. 마치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는 이에게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듣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얼마나 지루하고 졸리겠습니까. 그러니 선생은 활자 크고 경박스러우면서도 재미 있는 사실들과 일화들로 채워진 다이제스트를 팔아야 학생과 대중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이러면서 천천히 하향평준화가 시작됩니다.

 

작년에 읽은 어느 서양미술사 번역서에는 ‘arete’를 번역할 수 없는 단어라고 하였습니다. 이 번역자는 프랑스에서 역사학까지 전공한 이였습니다. ‘arete’를 번역하지 못한 이라면, 간단하게 말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한 번도 읽지 않았음을 알게 합니다. 역사학 전공자라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읽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다. 읽었다면 제대로 읽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virtue’으로 번역하는 arete라는 단어는 군주론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한국어로 번역된 군주론에도 이 단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원래 희랍어에서 유래한 arete의 그리스적 사용은 다소 다릅니다. 영어의 virtue처럼 단독으로 사용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단어였습니다. 희랍인들에게는 무엇의 arete인가?’ 또는 누구의 arete인가?’라는 표현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arete는 단독으로 불완전한 단어였습니다. 레슬링 선수들의 arte, 말타는 사람의 arete, 장군의 arete, 노예의 arete가 있으며, 정치적인 arete, 가정적인 arete, 군사적인 arete가 있습니다. arete는 어떤 특정의 일에 있어서의 숙달 도는 능함을 의미했고, 따라서 그와 같은 능함은 종사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단어가 시간이 흘러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일반화되어 현대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참조: ‘희랍철학입문’, W.K.C. 거드리 지음, 박종현 옮김, 종로서적)

 

이제는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들도 생겼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차는 노릇입니다. 심지어 창의적 경영을 위해 인문학 전공자들이 중요해졌다고 해댑니다. 하향평준화도 이런 하향평준화가 없습니다. 그만큼 인문학 전공자들의 수준이 지적으로 무능하고 현실적으로 형편없으며, 인문학 선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요? 하긴 프랑스에서 역사학까지 전공하였으며, 전문번역자라는 이가 ‘arete’를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넘어가며, 이를 제대로 교정해줄 출판사 직원도 없는 마당에, 과연 인문학이 제대로 될까요?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젠 주위에 공부하는 이도 드물고 같이 책을 읽을 사람도 없습니다. 매월 말 영업 실적 정리하고 다음 달 마케팅 전략, 영업 계획 세우는 일상 사이로 미술 전시 기획하고 돈과는 무관한 책을 읽습니다. 그러다 보니, 푸념이 길어졌습니다. 매우 사적인 푸념이니, 못 들은 척 하는 배려를 가져주세요.

 

 

이번에 정리할 노트는 근대 미술입니다. 아마 꽤 긴 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이 그 시작입니다. 제가 그동안 정리해놓은 미술사 강의 노트를 모두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양의 15세기, 16세기는 발명과 발견의 시대로 통칭됩니다. ‘콤파스가 발명되었고 동양으로부터 화약이 전파되어 왔으며, ‘종이가 보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하나가 거대한 역사적 전환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콤파스의 발명은 장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도 이 발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화약으로 뭐가 바뀌었을까요? ‘화약으로 인해 기사 계급이 결정적으로 와해됩니다. 이제 전투의 양상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창과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포와 총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기사 계급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종이야 두말 할 필요 없이 인쇄술의 발달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시대는 이렇게 변화합니다. 결국 과거가 물러나고 미래가 다가오게 됩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합니다. 종교(구교)의 시대가 물러나고 시민(신교)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막스 베버는 한참 후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를 이야기합니다만, 실은 이 무렵 시작된 어떤 현상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질문을 해볼까 합니다.

 

진시황은 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했을까요? 우리는 분서갱유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진시황은 중국 최초로 중앙집권에 성공한 이입니다. 그는 많은 부문에서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사상은 너무 자유로웠습니다. 나라의 모든 것들이 황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으나, 사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혼란은 사상이 자유로운 데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분서갱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한 무제는 분서갱유를 거울삼아 사상의 통일을 이루어냅니다. 그것이 공자 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학을 나라 사상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주류 사상과 비주류 사상으로 나누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서 만나 싸우면서, 실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대립하지만, 겉으로는 과학과 예술, 사상의 문제로 포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오르다노 브루노는 화형을 당하죠.

 

Ubi materia, ibi geometria. 물질이 있는 곳에 수학도 생겨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학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중세시대 내내 잊고 있었던 학문입니다. 그 전까지 가치(value)란 질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신을 중심으로 한 위계질서처럼, 가치로 그렇게 유비적(analogical)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대 초기, 가치를 양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즉 계량화된 가치 체계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르네상스란 바로 이것입니다. 질적 가치 체계에서 양적 가치 체계로의 변화. 르네상스의 이념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질적 가치 체계 속에서 유지되던 것들이 양적 가치 체계로 오면 맥을 추지 못합니다. 이렇게 묻는 편이 간단할 것입니다.

 

나에게 네 사랑을 증명해줘?’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세인과 근대인의 태도는 극명하게 다릅니다. 중세인이라면, 보여주지 못하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삶에서 하나하나씩 소박하게 행위로 보여줄 것입니다. 하지만 근대인이라면 사랑한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나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몇 번 사랑한다고 말을 했으며, 몇 번 데이트를 하고, 몇 번 같이 식사를 했으며, 몇 번 선물을 하고, 몇 번 성행위를 했는가 표현할 것입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게 됩니다. 모든 가치를 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싹튼 것입니다. 콤파스를 든 신의 모습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시인이자 화가인 베이컨의 그림을 떠올리면 쉬울 것입니다.) (기하학)으로 이루어진 신이 등장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기하학으로 풀 수 있으니, 이 세상 모든 것에 신이 편재해있다는 믿음으로 달려나갑니다. 이것이 르네상스적 범신론입니다.

 

지오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우리는 일정 불변의 자연법칙 또는 이 법칙 속에서 호흡을 같이 하는 심정으로 가득 차고 경건한 느낌을 통해서만 신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수학적 법칙이 있고 그 법칙 속에서 경건해질 때 신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는 화형을 당합니다. 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표현입니다. 마치 교회를 무시하고 성직자의 밥벌이를 빼앗기 위해 작정한 듯한 표현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화형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직 세상은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건하고 성실했던 수사가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통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교회는 필요 없는 곳이 되며, 독실한 기도와 성경이 자기 신앙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종교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르네상스적 이념과도 결탁된 것입니다.

(
그렇다면 요즘의 한국 기독교는 과연 마르틴 루터와 칼뱅이 이야기했던 그 기독교가 맞을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의 개신교는 루터와 칼뱅을 버리고 중세적 마인드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시대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 아주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 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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퀜틴 스키너(지음), 신현승(옮김), <마키아벨리>, 시공사, 2001
니콜로 마키아벨리(지음), 강정인(옮김), <군주론>, 까치, 1994(1판), 2000(9쇄)


최근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르네상스에 대한 찬사가 19세기의 유산임을 알았다. 그간 공부를 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인가에 대해 매우 많은 의구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19세기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편견일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된 셈이다.

이런 문예 부흥의 시기에 니콜로 마키아벨리 같은 인물은 다분히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여지기도, 높게 평가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는 공공연하게 '비열한 권모술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퀜틴 스키너는 여기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450여 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도, 교활함과 이중성 그리고 정치 문제에 대한 오도된 신봉의 전형으로 지금껏 생존해 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말마따나 소위 '잔인한 마키아벨리'는 각 종파의 도덕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 및 혁명론자들의 눈에 줄곧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비쳐졌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환경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어떤 점에서 틀리며 <군주론> 이후의 저작들을 통해 그가 '고전적 공화주의자'로서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 피력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스키너는 마키아벨리의 문제성 보다는 그의 사상이 가지는 고전적 인문론자로서의 측면을 부각시키는데, 이는 정치학 연구자로서의 입장일 뿐, 다른 맥락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가지는 중요성은 그의 정치학적 측면이 아니라, 그가 16세기의 현실을 그대로 옮겼다는 '심리학적 폭로주의'의 입장에 서있으며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묘한 심리 상태를 유발시킨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크레인 브린튼 같은 학자는 '마키아벨리는 전도된 이상주의자요, 그 자신 과도한 완전성을 원했기 때문에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문제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연구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과거의 인물들로서는 거의 해결 불가능한 과제이다. 마키아벨리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지식인'(<서양사상의 역사>, 371쪽, 을유문화사)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퀜틴 스키너의 책보다는 강정인 교수가 번역한 <군주론>를 읽는 것이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데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분히 예술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로선 마키아벨리는 전형적인 매너리즘 사상가 이며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 속에서 분열적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저자로 볼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서술된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크레인 브린턴의 책이나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과 소외>(종로서적, 절판)이 좋기는 한데, 안타깝게도 이 두 권의 책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15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반도는 유럽의 경제적 주도권을 상실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지리상의 발견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등장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과 세속 권력과의 대결은 종교 개혁이라는 가면을 쓰고 한 바탕 전쟁을 벌인다. 이 때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느꼈던 감정이란 인간이란 거짓말하기를 일삼고 폭력적이며 하찮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자 현실 앞에서는 무력하며 자신의 이상은 지켜야만 하는 분열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 때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현실 정치의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래서 스키너와 같은 현대의 정치학 연구자들은 그를 고전적 공화주의자로 평가하고 싶어하지만, 그 평가는 도리어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왜냐면 마키아벨리는 그리스나 로마의 학자들이 주장했던 견해와는 다른 의견을 밝히고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케로의 '덕(virtu')'와 마키아벨리의 '덕'은 틀린 개념이 된다.

거대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마키아벨리는 <군주론>과 같은 분열적이며 자기 기만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네가 하면 살인이지만, 내가 하면 군주가 되기 위한 뛰어난 전술이 되는 것이다.



군주론 - 10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까치글방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 - 10점
퀜틴 스키너 지음, 강정인.김현아 옮김/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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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useppe Arcimboldo
Fire.
1566. Oil on wood.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쥬세페 아킴볼도의 작품이다. 매우 특이한 그림들로 유명한 이 매너리즘 화가는 초현실주의적 원조격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천재적이거나 위대한 통찰력을 가진 예술가는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가 그렇듯이)

불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초상화는 그려진 모든 것들이 불타고 있거나 불에 잘 타는 것들로만, 즉 우리가 불을 붙일 때 사용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다른 초상화에서는 과일과 꽃들로만 그리기도 한다.

16세기 매너리즘의 주요 경향들 중의 하나가 '알레고리화의 유행'이다. 위 초상화의 도상학적 의미는 연구서적을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추측컨대 불의 알레고리, 혹은 불이 관련된 어떤 알레고리를 응용한 작품이다. 중세, 특히 고딕 무렵에 활성화되기 시작한 알레고리의 경향은 매너리즘에 와서 그 절정기를 맞이하며 바로크까지 이어진다. 낭만주의 시대에서 알레고리화가 그려지기도 하지만,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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