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3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The God of Small Things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지음), 박찬원(옮김), 문학동네 잔인하기만 하다. 몇 명의 죽음 앞에서도 그 잔인성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마음 한 켠을 어둡게 물들이지만, 그 잔인한 마을의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은 더 없이 아름답기만 하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6월의 비'는.하늘이 열리고 물이 퍼붓듯 쏟아져내리면, 오래된 우물이 마지못해 되살아났고, 돼지 없는 돼지우리에 녹색 이끼가 끼었으며, 기억의 폭탄이 잔잔한 홍찻빛 마음에 폭격을 가하듯 홍찻빛 고요한 물웅덩이에 세찬 비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풀들은 젖은 초록빛을 띠었고 기쁜 듯 보였다. 신이 난 지렁이들이 진창 속에서 자줏빛으로 노닐고 있었다. 초록 쐐기풀들이 흔들렸다. 나..

소유 Possession: A Romance, 수전 바이어트

소유 1, 2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지음), 윤희기(옮김), 동아출판사 꽤 오래 읽었다. 강렬한 몰입감보다는 잔잔한 호기심이랄까. 두 시인, 랜돌프 헨리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의 이야기는, 이들의 흔적을 쫓는 롤런드와 모드의 이야기와 겹치며, 끊임없이 독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너무나도 문학적인 이 소설은 거의 모든 챕터마다 랜돌프 헨리 애쉬나 크리스타벨 라모트의 작품이 인용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두 시인이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실존했던 작가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 두 작가는 수전 바이어트가 창작해 낸 가상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다면, 이 두 작가가 실제 있었던 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가상의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들이 놀랍기 때문이다. 서신들하며, 시 작품들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80쪽) 살아가면서 과거를 끄집어내는 일이 얼마나 될까. 삶은 고통스러워지고, 사랑은 이미 떠났으며, 매일매일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이 세상은 한때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빛깔을 잃어버렸음을. 감미로운 허위만이 우리 곁에 남아 우리 겉을 향기롭게 감싸며 근사하게 보이게 만들지만, 그것은 언젠간 밝혀질 시한부 비밀같은 것. 그럴 때 그 과거는, 어쩌면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낸 고통의 근원일까, 아니면 도망가고 싶은 이 세상 밖 어떤 곳일까. "토니, 이제 당신은 혼자야."라고 이혼한 아내 마거릿은 전화 속에서 이야기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