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167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단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수레바퀴 이후 단요(지음), 사계절, 2023년 솔직히 중간 정도까지 읽다가 그만 두었다.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그렇다고 에세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했다. 전체적으로 애매하고 모호했다. 대단하게 복잡한 서사나 은유가 사용된 것도 아니다. 심각하게 불길한 느낌도 아니고 일종의 문제 제기로 읽히긴 하나, 그래서, 뭘, 어떻게 라고 묻기 시작하면 애매해지는 글들이었다. 도리어 이 소설을 두고 찬사를 늘어놓는 평자나 독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토마스 만이나 로베르토 무질을 떠올렸지만, 이들의 소설은 그야말로 정말 사변적이다. 이토록 허술하지 않다. 그냥 읽었으니, 리뷰를 올린다. 또한 누군가는 이 소설 - 이걸 소설이라고 한다면 - 을 정말 재미없게 읽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어야 겠다..

만프레드 프랑크, <<현대의 조건>> 읽기 1

1. 2002년에 한글로 번역 출간된 만프레드 프랑크(Manfred Frank, 1945 ~ )의 (최신한 옮김, 책세상)을 읽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이 책을 구해 몇 번 읽으려고 도전했지만,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다시 시도했는데, 어, 읽을 수 있다. 더구나 이해가 된다. 너무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대로 다시 현대/근대에 대한 정리를 할 겸, 책을 읽어 가면서 블로그에 요약, 또는 정리를 해서 공유하려고 한다. 2. 튀빙겐 대학 교수로 소개되는 만프레드 프랑크는 문예 이론과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초기 낭만주의에 대한 연구서인 (무한한 접근)은 전후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서적으로 인정 받을 정도다(이건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았다). 2000년대 전후..

계속되는 이야기, 세스 노터봄

계속되는 이야기 Het Volgende Verhaal 세스 노터봄 Cees Nooteboom (지음), 김영중(옮김), 문학동네 이것이, 내가 믿는 그것이다. 육체적 죽음의 거친 고통이 아니라, 존재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데 필요한 신비로운 정신적 행위에 비할 데 없는 고통이다. 그 고통은 쉽게 찾아온단다. 알겠니, 아들아.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공허함, 그것은 어지러워하는 개의 눈에서 볼 수 있는 공허함이다. 내가 그 낯선 침대에서 느꼈던 것도 공허함이다. (13쪽) 사랑이야기지만, 사랑에 대해선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단어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히 사랑이야기다. 동시에 불륜이야기다. 동료 교사 유부녀와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한참 어린 제자에 대한 사랑이야기다..

저 사람은 알렉스, 욘 포세

저 사람은 알렉스 Det er Ales 욘 포세Jon Fosse(지음) 정민영(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시간은 겹쳐지고 각기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 속에서 사건을 만들고 대화를 하며 사라진다. 어슬레의 실종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현재에서 시작하여 그 공간 속으로 어슬레의 고조할머니가 등장하면서 약간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읽는 이는 자연스럽게 욘 포세 만의 흥미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마치 한 무대의 한 쪽 편에서 현재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다가 그 무대의 불이 서서히 꺼지면서 다른 편 무대에 불이 환히 들어오면서 과거의 이야기가 전개되듯 소설의 문장도 그렇게 이어진다. 지극히 연극적이거나 영화적인 수법이다. 이렇듯 현대의 장르는 서로 다른 장르들에게 영향을 주며 각 장르들의 표현 방식을 풍성하..

O Do Not Love Too Long 오 너무 오래 사랑하지 마라, W.B. 예이츠

태풍이 지나가자 더위가 이어졌다. 화요일, 공휴일, 광복절, 출근을 했다. 후문이 잠겨 있었다, 정문이 잠겨 있었다, 쉬는 날엔 지하 주차장만 열린다는 걸 잊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기한이 정해져 있는 업무로 신경이 곧두선 상태라 집에서 일을 하기 참, 어려웠다. 사무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소셜 미디어를 둘러보다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우연히 본다, 읽는다, 소리를 내어 읽었다. 한 언어는 다른 지역의 언어와 겹치면서 퍼져나간다. 각 나라말은 절대 일대일로 옮겨지는 법이 없다. 하나의 시가 다른 나라 말로 옮겨질 땐 여러 개의 시들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영어로 된 시를 읽을 땐 하나의 한국어 단어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단어 꾸러미로 연결된다. 훨씬 풍성해지는 느낌..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Klara and The Sun 가즈오 이시구로(지음), 홍한별(옮김), 민음사 클라라는 조시를 위해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 돕는다. 클라라에게 햇빛이 자양분이듯, 햇빛을 향해 조시를 낫게 해달라고 빈다.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노력한다. 실은 이것도 일종의 프로그래밍일 텐데, 이것을 풀어내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관찰과 학습을 통해 클라라는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자신만의 성찰로 조시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봐, 네가 아주 똑똑한 에이에프일지 몰라도 네가 모르는 게 많아. 너는 조시 쪽 이야기만 들으니 전체 그림을 못 본다고. 조시는 엄마만 가지고 그러는 것도 아냐. 항상 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해." (212쪽) 하지만 한계는..

헛되지 않을 텐데 Not In Vain,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Not In Vain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헛되지 않을 텐데 만약 내가 어느 한 마음이 부서지는 걸 막을 수 있다면, 나는 허무하게 살지 않을 텐데, 만약 내가 어떤 한 인생을 힘들게 하는 아픔으로부터 가볍게 할 수 있다면, 또는 어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아니면 어느 쓰러지는 새 한 마리를 도와 그의 둥지 위로 다시 보낼 수 있다면 나는 헛되이 살지 않을 텐데. - 에밀리 ..

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미셸 포르트(지음), 신유진(옮김), 1984북스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했을 때,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더듬어 보니 그녀의 소설은 딱 한 권 읽었다. 더 있을 듯한데, 기록된 것은 뿐이었다. 이 소설에 대한 내 평가도 평범해서 금세 잊혀진 소설이었다. 그 당시 읽었던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나 미셸 투르니에와 비교한다면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은 아니 에르노에게 있어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린 작품이었음을 이 인터뷰집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바로 글이에요. 글은 하나의 장소이죠. 비물질적인 장소. 제가 상상의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기억과 현실의 글쓰기 역시 하나의 도피방식이에요. 다른 곳에 ..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를 그리워할 것이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그는 나에게 현대소설을 가르쳐 주었다. 소설론 수업이 아니라 쿤데라의 소설이!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형편없는 문학강사들과 평론가들은 하일지의 소설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들이 왜 로브-그리예나 미셸 뷔토르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늘 밀란 쿤데라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궁금했다.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는, 안타깝게도 체코에서는 조국을 버리고 떠난 이방인일 뿐이었다. 의 보후밀 흐라발이 체코에 남아 그 곳에서 싸우며 글을 쓴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토니 주트는 20세기를 회고한 책에서 그의 체코 친구들은 밀란 쿤데라가 서방에서 인정받고 인기가 많은 것에 대..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지음), 송은경(옮김), 민음사 '위대한 집사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내가 지금까지 제대로 숙고해 보지 못한 어떤 총체적인 차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145쪽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왜 스티븐스의 집사 이야기를 계속 읽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법도 한데,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연신 재미있어하며 읽고 있었다. 실은 대부분 의미 없는 에피소드들이다. 스티븐스이 캔턴 양을 찾으러 가는 동안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이 소설의 중심 사건은 스티븐스과 캔턴 양과의 관계로 집중된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전개에 익숙한 독자는 이 관계에 호기심을 가지며 읽지만, 켄턴 양의 이야기가 소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