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19

술 마시기 좋은 한낮의 무지無知

낮술 마시기 좋은 날이다. 그런 하늘이다. 그런 빌딩 숲 강남 역삼동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바다로 나오기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났다. 그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고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인류는 멸망해도 된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듯이 지금의 이상 기후는 지구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며 대응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만 이상할 뿐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 또한 지구를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차라리 반대여야 한다. 최근 들어 형편없는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행태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그러한 형편없는 이들을 향한 지지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절망했다. 결국은 무지한 극단주의가 세상을 휩쓸고 지나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많은 사람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한다. 원자력학과 교수들도 나와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학자는 지금 논의가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정부와 여당은 괴담이라고 말하고 야당은 방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여러 기사나 의견들을 종합해볼 때 아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1. 일본 정부나 도쿄 전력이 공개하는 정보로는 안전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IAEA도 믿을 수 없다. 이들은 원자력 산업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국제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이는 원자력 관련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원자력의 안전함을 알리고 원자력 산업이 계속 지속되길 희망한다. 그들은 원자련 기술이나 산업에 대한 ..

짧은 생각,들

강렬한 더위가 이어졌다. 검은 도로는 불타고, 그 열기 앞에서 나는, 너는, 우리는 끝없이 움츠려 들었다. 그 거칠었던 폭염 전에는 긴 장마, 비의 계절이 있었다. 이러한 급격한 기후 변화의 원인은, 어쩌면 사유하는 나의 세계관, 근대 기계론, 혹은 도구적 이성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젠 그것도 철지난 유행이랄까. 그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생각엔 예상치 못한 평화가, 큰 전쟁 없이 이어진 사오십년 동안 인간은 다시 오만해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평화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고통받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 없지만. 어느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얼마나 죽였는가를 보았더니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그냥 걸핏하면..

요리하는 나에 대한 반성

냉장고에서 길을 잃어버린 무우 하나가 몇 달째 냉기를 먹으며, 한때 딴딴하고 신선했던 탄력을 상실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숙취와 스트레스의 바다 속에서 겨우 살아나와, 푸르딩딩한 겉이 살짝 물렁해진 무우를 꺼내 껍질을 도려내고 네모나게 잘랐다. 하나, 하나, 하나 그릇에 담고는 꽃소금 몇 스푼을 뿌려 같이 놀게 해주었다. 소금 알갱이들이 네모난 무우 사이에서 낄낄거리며 노는 소리가 작은 집 부엌 한 구석에 쌓여갔다. 그러나 봄햇살은 놀러오지 않았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는 그 노는 소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십대란 부모가 관심 가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나아가며,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와 정의를 만들어 간다고 여겨졌다. 고향 집에서 가져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심하게 짜 바다 향이 그 소금기에 짓눌려 응축된..

misc. 23.04.11

같은 성당을 다니는 원양 컨테이너선 선장이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에는 컨테이너만 있고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몇 달을 배 위에서,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하니, 상당히 건강도 그렇거니와 심적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임을 미처 몰랐다. 배에 오르기 전에 이런저런 검사를 받은 후에 오른다고 하니. 저 끝없고 평온한 바다만 보고 나도 저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한때의 바람일 뿐이다. 요즘 역사책과 지리정치학이나 경제학 책에만 손이 가게 된다. 특히 한국 역사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서양사 책들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 찾으면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중고등학생용이 있을 뿐이다. 아니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대중 교양 서적이 대부분이다. 좀 깊이 있는 지식..

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고래가 가는 곳 Fathoms: The World in the Whale 리베카 긱스Rebecca Giggs (지음), 배동근(옮김), 바다출판사 고래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고래의 삶, 일생 같은 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알게 되긴 했지만, 책 대부분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고통받는 고래의 모습과 환경 오염 이야기뿐이었다. 20세기 후반 후기구조주의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는 우리를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오만함, 바로크적 근대주의에 대한 반발,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이끌었다면, 최근의 인문학적 논의는 철학적인 견지를 넘어서 실제 우리 문명, 문화, 일상생활의 문제, 가령 환경 오염이나 기후 위기, 경제적 불평등이나 정치적 갈등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그리고 이 책 또한 고..

우중산책

종일 비가 왔다. 예전 남부 독일에서 맞았던 그 비를 닮은, 차갑고 무겁고 바람 섞인 겨울비가 내렸다. 펼친 우산이 바람에 흔들렸고 머리카락 끝과 안경과 옷소매, 그리고 바지와 신발이 젖었다. 그 비 위로 음악이 이어졌다, 끊겼다. 바다는 높았고 북에서 남으로 쉼없이 흘렀다. 저 흐름은 어쩌면 달의 부름에 바다가 응한 것일까. 나도 한 때, 누군가의 부름을 한없이 기다리곤 했는데, 딱 오늘 같은 날이었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YongSup Kim(@yongsup)님의 공유 게시물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지음), 이윤기(옮김), 열린책들 하나, 둘, 셋, 넷, ... ... 계단을 올라가듯 만남도, 사랑도, 인생도 그렇게 올라갔으면. 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요즘 초등학생도 알고 있을 터, 꿈은 부질없고 희망은 덧없고 현대의 사랑은 하면 할수록 쓸쓸해지기만 한다. 이 소설 속 '나'도 그렇게 여겼던 건 아닐까. 나는 구석자리에 앉아있었다. 한기가 느껴져 두 번째로 샐비어 술을 시켰다. 나는 자고 싶은 욕망과 이른 새벽의 피로, 그리고 적막과 싸웠다. 나는 희뿌연 창문 저쪽의, 뱃고동과 짐수레꾼, 뱃사람들의 고함 소리로 깨어나는 항구를 바라보았다. 보고 있는 동안 바다, 대기, 그리고 내 여행 계획으로 짜인, 보이지 않는 그물이 내 가슴을 압박하는 것 같았다. (..

스탠포드 인 부산 호텔 출장

대도시에서 대도시로의 출장. 그냥 평범한 가을날. 바다가 아닌 곳에서 바다 앞 도시로. 그렇게 서울에서 부산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산시-지금은 창원시로 바뀐-에서 다녔고 가끔 부산에 갔던 터라, 왜 서울 사람들은 부산에 가고 싶어할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출장으로 그간의 오해가 풀렸다고 하면 과장일까(아니면 내가 서울 사람이 다 된 것일까). 부산 출장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 휴가를 가기도 했으며, 그 때마다 어떤 연유에선지 몰라도 해운대 근처 호텔에서 묵었다. 많은 이들이 광안리나 해운대를 좋아하지만, 너무 관광지의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 멋진 수평선과 높은 파도로 뒤덮이는 넓고 긴 백사장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무수히 넘쳐나는 외지인들의 일부에 휩쓸려 들어가 관광객으로만 머물다 그렇게 나온다..

통영 출장, 그리고

눈바람이 부는 바다 앞에 서서 수면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도시의 거리에나 그 도시 앞 바다에나 눈을 쌓이는 법이 없었다. 자주 만나면 사랑이 싹틀 것이라는 바람 대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는 것처럼, 몇 시간 동안 내린 눈은 내린 시간 보다도 더 빨리 녹아 사라졌다. 바다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통영은 그 도시 근처에 있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자주 갈 일도 없었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다. 윤이상 음악당이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고 윤이상 선생의 세계를 알려고 해도 알지도 못할 이들이 나서서 명칭을 바꾸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분개했다. '내 고향 남쪽바다'라고 일컫어지던 고향 앞바다를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