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4

2021년 8월, 사무실 오후 8시 38분.

서재에 있는 오디오로 음악을 듣지 못한 지 몇 달이 지났다. 서재에 에이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더위 속에서 책을 읽을 그 어떤 여유도 나에겐 없다, 없어졌다. 물질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면 정신적으로나마 여유롭길 바랬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실패라든가 아픈 것이나 후회하는 경험들이 쌓이자, 물러서지 않는 원칙 같은 것이 하나 둘 만들어졌다. 그 중 하나가 '프로젝트는 망가지더라도 사람을 잃지 말자'다. 그런데 막상 (나도 모르게) 프로젝트를 챙기다보니, 사람을 챙기지 못한 것 같아 너무 힘들다.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해야 했는데, 그걸 잊어버렸다. 그만큼 믿기도 했겠지만, 늘 그렇듯 말 없는 믿음보다 말 있는 믿음이 더 낫다. 프로젝트 규모가 커졌다...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만큼 빨리 지치고 상처입는다. 변화는 예고 없이 방문하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곤 사라지며 흔적을 남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빠르게 늘어나 거의 매일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노트북이 가벼워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가벼워질수록 이 녀석이 자주 나타난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까페에서, 심지어 집 거실에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메일이 오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온다.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와 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오후에서 저녁이 되었다. 또 야근이었다. 스트라다..

어느 저녁

야근 전 잠시 일 층으로 내려가, 일 층 한 모서리를 삼백 육십 오 일 이십사 시간 내내,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 초라한 뿌연 빛깔을 내는 형광등 불을 켜두고 있을 듯한 편의점에서, 따뜻하게 데운, 조각난 치킨들과 캔맥주를 마시고 올라왔다. 편의점 창 밖으로 어느 새 겨울 어둠이 내렸고, 눈발이 날렸고, 헤트라이트를 켠 검정색 차가 지나고, 이름 모를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추린 채 길을 걸어갔다. 검고 흰 젖은 길을. 그 순간 내 입술은 닫혔고 내 혀는 금방 스쳐지나간 맥주향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잠시 지나간 이천십일년과 결혼과 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편의점 치킨과 캔맥주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무실 책상은 쌓인 실패들과 꿈들과 계획들로 어수선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