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46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지음), 이승수(옮김), 마음산책 극히 일부의 작가들만 여러 개의 언어로 글을 썼다. 또한 어떤 작가들은 모국어 대신 다른 언어로 글을 썼다. 사무엘 베케트는 영어와 불어로 글을 썼다. 대표작인 는 불어로 먼저 썼고 후에 스스로 영어로 번역했다. 조지프 콘래드는 모국어인 폴란드어 대신 영어로 글을 썼으며, 러시아 태생의 나보코프도 영어로 글을 썼다. 나보코프는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어 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그의 영어 문장은 압도적이다. 루마니아 태생의 에밀 시오랑은 젊은 시절 루마니아어로 글을 쓰다가 아예 파리에 정착해 불어로만 글을 썼다. 그의 불어 문장은 20세기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다. 줌파 라히리도 모국어는 뱅골어지만, 어렸..

발상의 전환, 전영백

발상의 전환, 전영백(지음), 열림원 책을 다 읽었으나, 메모를 하거나 리뷰를 하지 못한 책이 여럿 된다. 이 책도 그 중의 한 권이다. 올해 초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예전 노트를 꺼낼 일이 있어 보다가 이 책을 읽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이젠 뭘 읽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책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일까, 아니면). 개인이 겪는 상실의 아픔, 사랑과 그리움, 내면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신체적 경험과 그 감각, 그리고 작가의 손에 관하여 미학으로는 미술작업에서 경험하는 관조와 사색, 개입과 참여, 몰입과 침잠, 그리고 포스트모던 아트가 추구하는 주체의 체험과 감각에 대하여 문화에서는 문화번역의 문제, 국가주의와 다른 진정한 문화적 특징에 관한 모색,..

살아 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데미안 허스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뭔가 심오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글쎄다. 얼마나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을 지는 현대미술 전문가들의 손길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히 어려운 단어들로 포장해서 설명할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이.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은 신체에 대한 폭력성과 자기 분열을 보이는 일종의 '신경증적 리얼리즘neurotic realism'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허스트의 개념미술은 그러한 증상을 표현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 전영백, , 106쪽 '신체에 대한 폭력성'이 다소 낯설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대로 풀어보자면..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지음), 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상도터널 옆 김영삼도서관. 몇 년 동안 빈 건물로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겨우 개관할 수 있었다. 텅 빈 건물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 문을 열고 동네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었다. 아직 책이 많지 않고 장서 분류에 따라 몇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계단을 오가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새 책이 많다는 것이 좋다. 인근의 동작도서관가 장서 목록이 묘하게 겹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한 때 모든 걸 그만 두고 사서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서가 된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책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사소한 희망이었지만. 대부분의 취미, 혹은 사랑은 늘 마주하는 직업이 되는 순간 그 ..

여행, 페터 오토 코체비츠

오래된 노트를 뒤적이다가 메모해둔 시가 있어 옮겨 놓는다. 어디에서 옮겨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노트에는 시만 옮겨져 있다. 여행 코체비츠 나는그 기차를 타고 울므로 향해 여행하였다.나는 그 기차를 타고 울므로 향해 여행하였다.나는 그 기차를타고 울므로 향해 여행하였다.나는 그 기차를 타고 울므로 향해 여행하였다. 나는 그 기차를 타고 울므로향해 여행하였다.나는 그 기차를 타고 울므로 향해여행하였다.나는 그 기차를 타고 울므로 향해 여행하였다. 이제 나는 울므에 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그리고 코체비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았다. 한국어로 된 자료도 영어로 된 자료도 없었다. 페터 오토 코체비트(Peter O. Chotjewitz,1934 ~ 2010). 독일의 작가이자 변호사..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기둥

파일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이미지 하나. 그리스-로마 건축에서 기둥 양식을 정리한 것이다. 왼쪽에서부터 도리아식 - 이오니아식 - 코린트식으로 이어진다. 장식과 기교는 풍성해지고 기둥 높이도 올라간다. 그러다가 중세에 다시 사라지지만. 양식의 구분으로도 의미가 있으나, 기둥 단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건축물 전체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를 더 궁금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이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들 위로 천정을 올렸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론 초반 신전들은 목조였다. 그러다가 하부는 돌로, 상부는 나무로 지어지다가 나중에는 모두 돌로 지어졌다. 기둥에 장식을 덧붙인다는 것은 그만큼 건축술에 여유가 생겼음을 뜻하기도 하고 동시에 본질적인 것 대신 기교에 ..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 신시아 프리랜드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신시아 프리랜드(지음), 전승보(옮김), 아트북스, 2002 이 책은 현대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에 대한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종종 나는 신시아 프리랜드의 입장과는 다른 입장에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녀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이 글은 각 챕터별로 중요한 점만 이야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더 중요한 이야기도 있을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이 글은 매우 편파적이다. 빌 비올라라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있다. 비디오 아트를 이야기할 때, 백남준과 함께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예술가이다. 몇 해 전 국제 화랑에서 전시를 한 바 있는 그의 작품은 맨 마지막 챕터에 있지만, 이 책..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Die Kulture der Renaissance in Italien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안인희(옮김), 푸른숲 청춘은 아름다워라.그러나 쉽게 날아가버리네!즐거운 사람이여, 즐거워하라 내일은 아무 것도 확실치 않으니 Quanto e' belle giounezzaChe si fugge tuttavia!Chi vuol esser lieto, sia:Di doman non c'e' certezza - 로렌쪼 일 마니피코(Lorenzo die' Medici) 굳이 내가 이야기하기 않아도 이 책은 너무 유명하다. 문화사나 예술사가 학문의 주류로 등장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책이며, 역사 서술에 대해 있어 새로운 방식을 선 보였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로부터 ..

메리 카사트 Mary Cassatt

Mary Cassatt (American, 1844 - 1926). Young Mother Sewing, 1900. Oil on canvas. https://www.metmuseum.org/ 마음이 따뜻해진다. 봄날의 바느질. 아이의 표정에서는 날 왜 보느냐는 듯하면서도 맞은 편에 대한 궁금함이 묻어난다. 창 밖은 푸르고 집 안은 고요하다. 엄마와 아이 뒤에 있는 꽃화병은 흥미로운 오브제다. 저 화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상당해 보인다. 잠시 저 곳에 나도 앉아있었으면! 메리 카사트Mary Cassat.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예술가. 그리고 대단한 명성을 누렸던 여성 화가(역사상 거의 최초에 가까운). 평생 독신이었으며 에드가 드가가 죽을 때까지 교류했던 이였다. 작업실도 5분 정도 거리였고 둘..

2020.05.21. 드가와 함께 당구장에서

Billiard Room at Menil-Hubert, Edgar Degas, 1892, 오르세미술관 사는 게 쉽지 않다. 하루 24시간 중 가장 좋은 시간은 잠을 잘 때. 나머지는 조금 힘들거나 많이 힘들거나, 아니면 힘들었던 것들에 대한 걱정, 두려움, 후회같은 것으로 얼룩져 있다. 아주 짧게 그렇지 않은 순간이 있기도 하는데, 그건 사랑에 빠졌거나 사랑을 꿈꾸거나, 사랑에 빠진 듯한 봄바람, 봄햇살, 봄날을 수놓는 나무 잎사귀 아래 있을 때다. 그러나 이런 순간은 극히 드물어서 기억되는 법이 없다, 없었다. 원근법적 세계에 대한 그리움. 인상주의자들에게 원근법은 고민거리였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이어져온 어떤 원근법을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원근법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건 우리가 보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