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8

일요일 오후 노들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소리 없이 다가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내 정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종일 책상에 앉아있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그저 불안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번 생은 어딘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불안에 대해서 최악의 처방전만 있다. 그것은 고개 돌리기, 외면하기, 회피하기, 도망가기, 망각하기. 서울시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근처로 나왔다. 가을 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들은 연신 브레이크를 잡으며 자신의 자전거 타기 실력을 뽐내고 한강대교까지 가는 동안 동네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이 근처에서 산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구나. 보통은 여의도 한강 시민 공원까지 가든지, 동작대교를 지나 반포대교 남단까지 갔다..

어느 화요일 밤, 혹은 수요일 새벽

어제 11시에 퇴근하곤 오늘 8시에 프로젝트 사무실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 혼자 저녁을 먹고 서점에서 두 권의 수필집을 산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굳어졌고 프로젝트 걱정, 미래에 대한 염려, 세상에 대한 불안, 가족에 대한 책임,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젠 잠마저 쉬이 들지 못하는 중년의 초가을. 장석주의 , 헬렌 맥도널드의 을 충동적으로 사선 내 마음이 물렁해지고 내 몸이 사랑으로 물들고 세상으로부터 온전한 내 전부가 자유로워지길 꿈꾼다.

5월 어느 오후 서울 거리

5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삼각지로 걸어가다 문득 마주친 대도시의 오후 상아색의 구름 한 떼가 지는 해를 감싸면서 하늘 꼭대기에서 땅 밑까지 노을이 가득 차고, 거대한 고독이 이미 식어버린 채 퍼져나가는 시간이다(조르주 베르나노스). 느리게 숨죽여 있던 무채색 건물이 숨을 쉬고 우리들의 숨겨진 영혼이 노래하는 순간이다. 태양이 사라지더라도 태양을 기다리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 속 노을가 근처에서 막걸리 중이다. 그의 삼각지에서.

책 읽는 일상

책을 다 읽고 노트에 옮겨적었다. 선물받은 라미 만년필은, 사용한지 꽤 되었는데, 아직까지 필기감이 좋지 않다. 비슷한 유형의 로트링 만년필은 필기감이 매우 훌륭했는데 말이지. 당분간 라미 만년필을 사용하면서 펜을 길들일 예정이다. 오늘에서야 수전 케인의 '콰어이트'를 다 읽었다.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으로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성격의 문화'가 가져다 준 영향, 그리고 아시아와 서구 사회를 비교하면서 자녀 양육으로 끝나는 책이었다. 그러나 명성에 비해 책은 얇다. 4시간이면 넉넉하게 다 읽을 수 있다.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책 읽는 재미는 무척 좋다. 내용도 훌륭하다. 깔끔한 정리는 아메리카 쪽 저자들의 특징이기도 한 듯 싶다. 하지만 책의 깊이는 유럽 쪽 저자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건..

낮은 하늘 아래서

해마다 가는 창원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건 내 나이 탓일까, 아니면 내가 처하게 되는 환경 탓일까. 집 밖을 나오면 멀리 뒷 산들이 보이는 풍경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건, 너무 오래 서울 생활을 했다는 뜻일 게다. 하긴 지금 살고 있는 노량진 인근 아파트 창으론 여의도가 한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연휴 때 나온 사무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다시 봄이 왔다

노곤한 봄날 오후가 이어졌다. 마음은 적당하게 쓸쓸하고 불안하고 기쁘고 초조했다. 잔뜩 밀린 일들은 저 깊은 업무의 터널 속을 가득 메우고 그 어떤 공기의 흐름도 용납하지 않았다. 피곤함과 스트레스로 사각형의 책상과 사각형의 모니터와 사각형의 문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얇게 열린 창으로 봄바람이 밀려들었다. 다시 봄이 왔다. 다시 봄이 왔다 이성복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동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 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

일요일 오후

겨울과 봄 사이의 어느 오후香이 서울 변두리 빌라 옥상에 조금, 서른 중반의 사내가 사는 4층 베란다에 조금, 흐릿한 대기들 위의 구름 위에 조금, 그 외, 이 곳, 저 곳, 띄엄띄엄 산개해 있었다. 사이먼 래틀과 빈 필이 연주한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듣고 난 다음 정경화가 협연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다. 별로다. 집에 있는 다른 앨범. 레너드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이 연주한 베토벤 5번이 훨씬 좋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나쁘지 않았으나, 정경화의 진짜 연주를 듣기에 곡 선정이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썩 신통치 못한 듯 하다. 그리고 그 다음. 아르보 페르트의 ‘PASSIO.’ 기독교적 파토스(Pathos). 하지만 불교적 파토스나 이슬람교적 파토스는 왠지 어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