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5

헛되지 않을 텐데 Not In Vain,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Not In Vain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헛되지 않을 텐데 만약 내가 어느 한 마음이 부서지는 걸 막을 수 있다면, 나는 허무하게 살지 않을 텐데, 만약 내가 어떤 한 인생을 힘들게 하는 아픔으로부터 가볍게 할 수 있다면, 또는 어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아니면 어느 쓰러지는 새 한 마리를 도와 그의 둥지 위로 다시 보낼 수 있다면 나는 헛되이 살지 않을 텐데. - 에밀리 ..

더 고독했던 때는 없네, 고트프리트 벤

더 고독했던 때는 없네 - 고트프리트 벤 (Gottfried Benn, 1886 ~ 1956) 8월처럼 고독했던 때는 없네성숙의 계절 -, 땅에는붉은, 황금빛 신열(身熱)그런데 그대 정원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맑은 호수, 부드러운 하늘,깨끗한 밭들은 조용히 빛나는데그대 군림하는 왕국의 개선(凱旋)은,그리고 그 개선의 자국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이 행복을 통해 드러나는 곳,술 냄새 속, 물건 소리 속에시선을 나누고, 반지를 나누는 곳에서그대는 행복의 적(敵)인 정신에 몸 두고 있네 지독했던 8월이 가고, 여기저기 긁힌 마음의 가장자리는 찢어진 헝겊으로 잘 덮어두곤 가을 놀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는, 몸에 무리를 주기 마련. 노트 정리를 하다가 메모 해 두었던 벤의 시를 읽으며, 문득 ..

귀향, 자끄 프레베르

귀향자끄 프레베르 Jacques Prevert 안민재 역편, 태학당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 예전엔 외국 번역 시집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긴 시집 읽는 이도 드문 마당에... 번역이 다소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오늘 다시 보니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 1994년에 출판되었고 인터넷서점에선 검색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 소개한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닫혀있는 마음은 밖으로 무너지고 저녁 바람을 새삼 느끼고 저 하늘 달빛이 이 버릇없는 작은 도시의 사람들 위를 비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될 것이다. 대학시절 불어로 시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불어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흔적으로 남았다. 시를 읽으며 술을 마시던 그 시절..

여름 소식, 파울 첼란

여름 소식 파울 첼란 이제는 아무도 밟지 않는, 에둘러 가는 백리향(百里香) 양탄자 종소리벌판을, 가로 질러 놓인 빈 행(行).바람이 짓부수어 놓은 곳으로는 아무 것도 실려 오지 않는다. 다시금 흩어진 말들과의 만남, 가령 낙석(落石), 딱딱한 풀들, 시간. - 전영애 옮김, (민음사) 중에서 이렇게 다시 시집을 읽을 줄 알았다면, 그 많던 시집들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외국 시를 읽게 될 줄 알았다면, 지금 나오지 않는 번역 시집을 사두고 버리지 말 걸, 이렇게 외국 시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될 줄 알았다면 외국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 둘 것을... 이번 주 내내 파울 첼란의 시를 읽었다.

어떤 푸른 이야기, 장 미셸 몰푸아

어떤 푸른 이야기(une histoire de bleu) 장 미셸 몰푸아(Jean-Michel Maulpoix) 지음, 정선아 옮김, 글빛(이화여대출판부) 늦가을, 잔잔히 비 내릴 때, 하늘의 흐느낌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럴 때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착잡한 눈물을 슬레이트 지붕과 아연 홈통을 두드리는 맑디맑은 빗물에 보태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부드러운, 거의 평온해진 동작이다. 이 시각, 이 계절에, 우리는 언어를 뒤흔들지 않고, 거기에 우리 자신을 내맡긴다. 이번만큼은 그 적절함이 빗줄기의 속삭임과 유리창의 어둠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확신하며. 그 순간, 뜻이 확실치 않아 오래 전부터 밀쳐두었던 책 몇 장을 다시 읽어보고 싶으리라. 이번에는 그 감동을 되찾고 ..